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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덕/전례] 11월...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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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한 [yunsh] 쪽지 캡슐

1999-11-06 ㅣ No.1693

 1999년..20세기도 두달밖에 남질 않았다는 생각이 밀려오자 나는 잠시 하던 일을 접고 담배를 물어본다. 25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기나긴 한숨을 쉰 적은 없었다. 누군가 내게 ’넌 왜그래?’라고 물었다. 넌 왜그래...내가 뭘? 내가 어때서?

 

 11월...가을이 오는가 싶더니..三寒四溫에 맞춰 봄날씨다. 막내는 6주의 훈련을 마치고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준비중일터. 모두들 분주히 움직이지만, 그런 움직임 속에서 진지함을 찾을 순 없다. 단지 어서 귀가해 쉬고 싶은 생각이 가득한 얼굴들...November Rain..Guns n Roses의 음악이 나온다. 뭐야...이렇게 맑은 날에..비가 오는날에 틀어주면 좋을 텐데..괜히 맑은 하늘에 삿대질을 해본다. 그리고 재 한번 털고. 대학로에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가득하다. 무엇이 좋은지 웃으며 기다리는 사람,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는 사람, 아..저 사람은 연인을 기다리나보다. 난 누구를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55일. 내게 주어진 올해, 20세기 날들이다. 55일 동안 무엇을 할까. 무언가 남는 일을 하고 싶다. 지금껏 헛되이 보냈기에..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치는 마지막 몸부림이라 할까...누군가 내게 무엇이든지 일을 시켜주었음...차라리 그랬으면..이리 고민하지도 않을 텐데...

 어제 회합때 지혜누나가 물었다. ’처음 마음으로 살고 있느냐’고..솔직히 나는 처음엔 무엇이든지 시큰둥하다가 나중에 점점 그것에 빠지는 스타일이다. 글쎄 뭐랄까..권태? 마땅한 표현은 없지만 권태가 가장 가까운 표현이군..난 그런게 없다. 기계적으로 하는 사랑도 싫고 일도 싫다. 이렇게 마음이 점점 커지는데....

 

 오늘 난 또 아빠가 된다. 대부..아직 견진도 안받았지만..못받은 건 아니다..게을러서 안받은거지...유아영세...태어난지 두달밖에 되지않은 그 녀석은 날 알아보기나 할까? 부모가 되면 느껴진다는 책임감이 벌써부터 느껴지는 것을 보니..이제 결혼할 때도 되었나보다. 많이많이 기도할 것이다. 나같은 사람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괜히 트집잡고 투정을 부렸다. 적은 나이도 아닌데...마치 철없는 애처럼..부모님께 죄송하다. 부모님께서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그런것은 아닌데..내몸하나 힘들다고 떼쓰는 모습...역겹다...난 정말 불효자다..죽을 때까지 반성하고 기도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차를 타고 가다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았다. 저 녀석들은 정말 용하다. 가을을 어떻게 알고 저렇게 얼굴을 내미는 걸까?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나는 내 삶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보았다. 아쉬움....내가 분명히 보았지만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코스모스처럼, 사람들 또한 그냥 보고 스쳐가는 관계로 살아온 것같아 맘이 쓰렸다. 아쉽다...아직 늦지 않았다면 오늘 술한잔을 기울이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것을 나누고 싶다.

 

 11월....이렇게 넋두리를 늘어놓는 나를 보니..가을을 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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