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걷고 싶은 길
정산 / 김 용 관
벼들이 머리가 무거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몸까지 지탱하기가 힘 드는지
논두렁에 빗살처럼 누워
누군가를 기다리며
잘 익은 볏단에 붙어 있는
메뚜기는 없어도
빈 호리병은 입을 벌리고
푸른 가을 하늘을 담고 있다
어머니 가르마 같은 논 뚝 길을
조심스럽게 밟고 저만치 가면
그리워하는 임의 발자국이 아닌 듯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빈 껍질만 달고 있는 벼는
입을 꼭 다물어 참새를 원망하듯
몸을 흔들고 있다.
몇 십 년 흘러간 가을 앞에서도
아직 빈 항아리 속 메아리만
원숭이처럼 받아먹고 사는 나
무엇을 얻으려는지
거미줄만 일생동안 쳐 놓고
분주하게 길 아닌 길을 가다보니
이슬 맞아 축 쳐지고
바람에 찢겨져 있다.
나는 지금 그런 길을 가고 있다.
고개 숙인 벼들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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