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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걷고 싶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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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염 [kd29680] 쪽지 캡슐

2005-10-24 ㅣ No.7286


      가을에 걷고 싶은 길 정산 / 김 용 관 벼들이 머리가 무거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몸까지 지탱하기가 힘 드는지 논두렁에 빗살처럼 누워 누군가를 기다리며 잘 익은 볏단에 붙어 있는 메뚜기는 없어도 빈 호리병은 입을 벌리고 푸른 가을 하늘을 담고 있다 어머니 가르마 같은 논 뚝 길을 조심스럽게 밟고 저만치 가면 그리워하는 임의 발자국이 아닌 듯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빈 껍질만 달고 있는 벼는 입을 꼭 다물어 참새를 원망하듯 몸을 흔들고 있다. 몇 십 년 흘러간 가을 앞에서도 아직 빈 항아리 속 메아리만 원숭이처럼 받아먹고 사는 나 무엇을 얻으려는지 거미줄만 일생동안 쳐 놓고 분주하게 길 아닌 길을 가다보니 이슬 맞아 축 쳐지고 바람에 찢겨져 있다. 나는 지금 그런 길을 가고 있다. 고개 숙인 벼들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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