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샘터

최요한 선교사의 북간도 일기

인쇄

김미화 [panie] 쪽지 캡슐

2002-11-11 ㅣ No.160

제233호 11월3일 일요일 맑음.

용해소학교.

 

... 집안에 않아있을 때면 늘 TV를 켜 놓는 것이 불문율이다.

중국말이 귀에 들어올때까지는 무조건 듣기로 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오늘은 TV를 끄고 컴퓨터에

CD 한장을 넣고 않았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따사롭다.

우리는 그분의 투명체가 되어야 한다던 교수신부님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났다.   우리의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의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던,

비춰오는 햇살을 그대로 전해주는 잘닦아 놓은 유리창처럼

그저 그분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던

말씀이 창가의 햇살을 타고 떠올랐다.

 

*** *** *** *** *** *** *** *** *** *** ***

용해 소학교는 중국인학교이다.

그러나 조선족 아이들도 20여명이나 있다.

왜냐하면 북쪽에 있는 용호 소학교가 조선족 학교였는데

지금은 폐교된지 2년이나 되기때문이다.

남쪽에 있는 조선족 석국소학교도 지금은 10여명의 학생만

남아 곧 폐교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렸지만 더 나은 환경을 찿아 떠난

부모들을 무작정 야속하게만 생각 할 수도 없었다.

특히 조선족들은 아이들의 교육을위해 도시에 조그만 아는

이가 있어도 아이들을 도시로 내보낸다고 한다.

지금 12명의 교사와 136명의 학생이 있는 용해 소학교는

화룡현에서도 시골 학교 치고는 큰 학교라고 한다.

교장 선생님은 내년에도 벌써 20여명의 신입생이 있기

때문에 또 한반이 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사실은 용호와 석국의 조선족 소학교가 먼저 있었는데

용해에서 거리가 어중간해 68년에 소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조선족 소학교가 무너지고 한족 소학교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팠지만,

그것은 현실이고, 한족이라고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될수는 없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달랬다.

더구나 우리에게 신앙의 단초를 제공해준

중국이라는 생각에 미쳐서는 이제야말로 정말

주는 교회의 역할을 해야할 때라는 생각도 들었다.

5리는 족히 됨직한 교장선생님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등뒤로 따사로운 햇살은 여전했다.

미루나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길을 따라

석탄을 실어내는 화물차들도 먼지를 일으키며 꼬리를 이었다.

 

창가의 포근한 햇살처럼 컴퓨터에서는

부드러운 음악이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But when I dream, I dream of you,

maybe someday you will come true."

끝.

 

홈페이지 WWW.Cyworld.com/jachoi 에 들어가시면 최요한님의

강원도 삼남면의 산골일기와 중국 북간도의 일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배경음악  "When I Dream"

 



123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