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내 뜻대로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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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정 [coolio] 쪽지 캡슐

1999-10-17 ㅣ No.941

제    목 :내  뜻대로  해주소서

 게 시 자 :25025(이호경)          게시번호 :205

 게 시 일 :99/09/16 22:34:00      수 정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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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뜻대로  해주소서 ◀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1요한 5, 14]

 

 

        텔마(Thelma,   ‘바라다·원하다’라는  뜻)가   결혼하고   피아(Pia,

      ‘경건한’이라는 뜻)의 옆집으로 이사 온 후,  피아와 텔마는 삼년 동안

      좋은 친구로 사이좋게 지냈다.  텔마가 그곳으로 이사  온 무렵에 피아도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나이도 동갑이었다. 게다가 거의 같은 시기에 둘

      다 아기를 가진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서로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보통 이웃 이상으로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비록 그들은 성격이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피아는  자신을   운명에 맡겨   버리는 소극적이며   수동적이고 유순한

      성격이어서 마음이 쉽게  상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텔마는 피아와는

      정반대로 고집이  있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은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텔마는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감수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정열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주어진 성격대로 그들  나름의 깊은 신앙심을

      지니고 있었다. 피아는  매일 미사를  드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묵주의 구일기도까지 드릴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다. 텔마는 자신을 위한

      몸치장에는 한푼도   낭비하지 않을   만큼 돈에   인색한 면이   있었다.

      그렇지만 만일 누군가 정말 필요로 할 때는  마지막 남은 자신의 구두 한

      켤레까지도 서슴없이 내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드디어  이 젊은   두 여자는 똑같이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한동안은

      아무런 일 없이 행복하게 잘 지냈다. 두 아기는 무척 건강했으며,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홍역이 발생하여 두 아기는  홍역에 걸려 몹시

      심하게 앓게 되었다. 담당 의사가 아기들이 살아날 수 있다는 장담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아기들은 위험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피아와 텔마에게는  첫번째 아기였으므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세상이 온통 꺼져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신앙심이 깊은 두 여자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는데, 이제껏 자신들의 생애에  있어서 결코 그토록 애절하고

      뼈에 사무친 기도를 드린 적이 없는 절박한 기도를 드렸다.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심약한  성격을 지닌 피아는 끊임없이 이 말만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나의 주 예수님,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당신의 뜻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게 힘을 주소서!”

 

        반면에 텔마는  기도를 결코 오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여인은 이

      말만을 되풀이했다.

 

        “나의 주 예수님, 내 아들을 살려 주세요!”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의 병이  몹시 악화되었을 때,  텔마는 이제껏 살아

      오면서 생전 처음으로 가장 긴 기도를 드렸다.

 

        “나의 주 예수님, 당신은 힘이 있으십니다. 그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만이 아시는   계획이 있으시고  절대 전능하심으로,

      당신은 그 계획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 가신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제 아들의   생명을 데려가시려는  데는 일천

      가지의 타당한 이유들이  있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한 당신이

      무엇이든지 당신 뜻대로 결심하신 것을 미리 앞당겨서 하시는 일이라 해도

      저는 그 뜻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뜻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제가  드리는 말씀을  들어 주십시오.

      당신은 저에게서 당신이 계획하신 당신만이 아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저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어  아들을 주시고 제  마음에 아들에

      대한 사랑을 가득 차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로 하여금 아들을 보호하고

      양육하게 하셨나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제가 당신의 현존 안에서 당신께

      부여받은 저의 특권을 실행하려 합니다. 그 부여받은 특권으로 저는 지금

      당신께 애원하고   있습니다. 제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제가   당신께

      터무니없는 요청을   드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잘   아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노예가 주인에게 하는 것처럼 당신의 발 밑에 엎드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단지 무력한  한 어머니에게  당신의 친절과

      당신의 힘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제

      아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아들을 살려 낼 힘이 없습니다. 당신도 아들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아이를 살려

      주실 힘이   있으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습니다. 제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그  전염병은 맹렬하게 한참이나  기승을 부리며

      번지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그  기세가 한층   누그러졌다. 결국 피아의

      아들은 죽고, 텔마의 아들은 살아났다.

 

        피아는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의  죽음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지만

      시종 견디기 힘든 시련을 겪어 나가면서  자신에게도 힘든 고통을 감수해

      낼 수 있는 힘이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그 여인은

      가슴 에이는   참담한 일을  당했는데도  그  비통한  상황 속에서   자신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잘 견뎌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피아는 자신의 아들은 온데간데없는데, 텔마의 아들은 살아났다는

      사실에 대해 그토록 열심히 믿던 자신의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고 말았다.

      그 여인은 아기 둘이 다 죽는 것보다는 그래도 그나마 친구의 아들이라도

      살아난 것을 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피아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이 지녔던 것들이 왜 떠나가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왜  하느님은 자기의

      아들은 살려 주시지 않고  텔마의 아들만을 살려  주셨는가 말이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 물음이 떠나지  않고 계속  메아리치며 가슴을 파고들어

      괴롭혔다.

 

        아들의 장례식이 끝난 직후에 피아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그 여인은

      부드럽게 웃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 피아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즉시 발 아래  엎드렸다. 그러자,  마음 속에 비통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문제가 자신도 모르게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주님, 왜 제 기도에 응답을 안 하셨습니까? 왜 텔마의 기도에만 응답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매우 인자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사랑하는 피아야,  나는 너희들 둘의  기도에 다  대답을 했단다. 너는

      무엇을 내가 원하든지 나의 의지대로 하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힘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했단다. 텔마는 아들의 생명을 살려

      달라고 내게 강력하게  구해서 나는  그렇게 되도록 텔마의  기도를 들어

      주었단다.”

 

        피아는 이 말씀에 깜짝 놀라 주님께 여쭈었다.

 

        “그렇지만 만일 제가  제 아들을 살려 달라고  말씀드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나는 네 기도를 그대로 들어 주었을 게야.”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시자 피아는 더 놀랐다.

 

        “그렇지만   저는    당신이   게쎄마니   동산에서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라는 기도를   성부께 드렸듯이,  정확히  저도 그렇게   당신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 정말로  너는 네 말대로  그렇게 했지.  그렇지만 내가 죽음에서

      구해 달라는 기도를  먼저 드렸다는 것을  너는 잊고  있었어. 나는 먼저

      ‘내 뜻대로 해주소서.’라고 기도를  드렸지. 결국  이것이 바로 기도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이유이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기도해야 하는

      내용은 오직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일 수밖에 없을 게야.”

 

        피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잠시 동안 이 말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다시 예수님께 여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에는   예수님의 뜻대로  하게  해달라는 첫번째

      요구가 무슨  소용이었습니까? 게쎄마니에서의  예수님의  첫번째 요구는

      어쨌든간에 예수님의  운명이 그렇게  되도록 미리   예정되어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렇지. 그렇게 되도록 미리 정해졌었지, 피아야.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버지께서는 나의 상반되는 요구 둘 다에 대답해 주시는 것을 택하셨다는

      거야. 성부께서는  먼저  나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심으로 그분의

      뜻대로 하셨고, 그 다음에 나를 부활시키시어 나의 삶을 돌려 주심으로써

      나의 뜻을  들어 주신  것이지. 그런데  너무도  분명한 사실은  그 삶은

      영원한 삶이란다.”

 

        이 말씀은 피아의 숙명론적인 삶의 태도와는 상당히 다른 말씀이었다.

 

        “그   말씀은  우리가   요구하는   모든  기도를   다  들어   주신다는

      말씀이신가요?”

 

        피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여쭈었다.  예수님은 잠시

      동안 말없이 피아의 눈을 응시하시더니 강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바로 그것이 정확하게 내가  네게 해주려고 하던 말이다, 피아야. 모든

      기도는 다 응답을  받지. 그리고  때로는 기도하면서  기대했던 응답과는

      너무나 다른 응답을  받게 되곤 하는  것 또한  사실이란다. 내가 너에게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구하는 것은  모두 받게 된다는

      것이다.”

 

        피아가  잠에서 깨었을  때, 그  여인은  다른 여자로  변화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피아는 위기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는 언제든지,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기도는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여인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진지하고 성실하게 들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기대하는 응답을 전적으로 그대로 다 응답하시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피아는 그 후부터는 이렇게 기도를 하는 것이다.

 

        “주님, 제가 원하는 대로 이루게 하소서.”

 

        물론 그 여인은 또한  하느님이 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순종하는

      마음의 자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마음은 두 번째가 되었다.

      모든 것을 다  시도해 보고  나서 안 될  때는 어쩔  수 없이  어떤 것에

      의지하는 것이 필요할 때처럼 말이다.

 

        피아는 어떤 힘든 일에 직면했을  때, 그것이 달리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때까지,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 있는 자신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주님, 제 원대로 해주소서.”

 

        게다가 피아는  얼마나  자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되는지를

      깨닫고는 몹시 놀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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