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사순 제4주일]태생 소경 치유 (요한9,1-41)

인쇄

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0-03-22 ㅣ No.203

 

[사순 제4주일]태생 소경 치유 (요한9,1-41)

   

1독서 <다윗이 이스라엘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다.> (1사무16,1ㄱㄹㅁㅂ.6-7.10-13)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이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0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사무엘은 이사이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12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화답송 시편 23(22),1-3.3ㄴㄷ-4.5.6(◎ 1)

◎ 주님은 나의 목자아쉬울 것 없어라.

○ 주님은 나의 목자아쉬울 것 없어라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당신의 막대와 지팡이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2독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에페5,8-14)

형제 여러분, 8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10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

11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일에 가담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십시오.

12 사실 그들이 은밀히 저지르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13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으로 밝혀집니다.

14 밝혀진 것은 모두 빛입니다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자는 사람아깨어나라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복음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요한9,1-41)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저 사람입니까그의 부모입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7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이웃 사람들이그리고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온 이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 하고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그와 닮은 사람이오.” 하였다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0 그들이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11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나에게 이르셨습니다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2 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 있소?” 하고 물으니그가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들은 전에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바리사이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그는 그분이 제 눈에 진흙을 붙여 주신 다음제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17 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18 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그리하여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그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20 그의 부모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그에게 물어보십시오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22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이렇게 말하였다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이미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23 그래서 그의 부모가 나이를 먹었으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하고 말한 것이다.

24 그리하여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 하고 말하였다.

25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그러나 이 한 가지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

26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소그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소?” 하고 그들이 물으니,

27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어째서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28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그자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29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오그러나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

30 그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31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32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33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34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며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35 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그 사람이 선생님그분이 누구이십니까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38 그는 주님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39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40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4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사순 제4주일 제1독서 (1사무16,1ㄹㅁㅂ.6-7.10-13ㄴ)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13)

 

인본주의적 통치로 실패한 초대 임금은 사울의 뒤를 이어서하느님께서 새롭게 준비하신 임금인 다윗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다윗'이란 이름의 어원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상징적으로 '사랑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도드'(dod)를 어근으로 해서 '사랑을 받는 자'(beloved one)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기도 한다.

 

사실상 사무엘서의 중심인물인 '다윗'이라는 이름을 지금까지 숨기고 있다가 기름부음이 이루어지는 사무엘기 상권 16장 13절에서 갑자기 등장시킨 것은 이사이의 아들 중에 하찮게 여김을 받은 사람이 결국 위대한 '다윗 왕'이 되었다는 것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다윗이 몇 살 때 기름부음을 받았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하지만 다윗이 친교제 이후 공동 식사에도 불참한 것으로 보아 성인(成人)으로 인정되던 20세에도 이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그는 B.C.1025년경약 15세에 처음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다윗은 두 번 더 기름부음을 받았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임금이 된 B.C.1010년경약 30(2사무2,1-4)때와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임금이 된 B.C.1003년경약 38세 때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이다(2사무5,1-5).

 

이처럼 다윗은 임금으로서 처음 기름부음을 받고 정식 임금으로 등극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며그 기간 동안 하느님께로부터 많은 단련을 받았다.

 

한편, '들이닥쳐'에 해당하는 '왓티츨라흐'(wathitsllah; and came)의 원형 '찰라흐'(tsallah)는 '갑자기 엄습하다'(rush)라는 뜻을 갖는다.

특히 이 단어가 본문의 표현처럼 '위에'라는 의미를 지닌 ''(el; upon)과 같은 전치사를 동반하여 사람과 결합될 때에는 '주님의 영이 간택한 자의 위에 내리는 것'을 나타낸다(판관14,16; 10,6).

 

'주님의 영'이 과거 사울에 내리셨던 것처럼(1사무10,6; 11,6), 이번에는 다윗에게 내리셨다그러나 두 경우에는 차이가 있다.

사울의 경우에는 기름부음을 받을 때 곧바로 주님의 영이 내린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돌발적으로 내렸다.

하지만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을 때 곧바로 주님의 영이 내렸으며 그 능력은 줄곧 지속적인 것이었다이러한 차이점도 결국 하느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간택하셨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제 사무엘기 상권 16장 13절은 사무엘기 상권 16장 1~13절의 사건을 마무리하는 부분으로서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라는 명시적 표현으로 막을 내린다.

 

반면에 다음에 이어질 사무엘기 상권16장 14~23절의 악령으로 말미암은 사울의 번뇌와 다윗이 사울의 손발이 되는 내용은 '주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고'라는 명시적 표현으로 시작된다.

이로써 인본주의적인 임금의 시대에서 신본주의적인 임금의 시대로 서서히 이동해 가는 것이다.

 

 

 

 

공동변역성서

태생소경 치유 (요한 9.1-7)

1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2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4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 때는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다. 5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 6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7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 실로암은 '파견된 자' 라는 뜻이다. )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왔다.

 

하느님께서 인간들을 구원하여 하느님 나라를 완성시키겠다고 계획하셨을 때 그 전체 밑그림을 그리셨을 거 아니에요 인간에 구원에 주도권 그리고 하느님나라에 완성의 주도권이 하느님에게 있다. 이것만 확인이 되면 계획은 당연한 거죠. 하다못해 개집을 하나 짓더라도 우리 이렇게 밑그림 그리잖아요 요건 지붕 요건 앞문 뒷문 그거 안그리면 뒷문을 앞에다 갖다 붙이고 앞문을 뒤에다 갖다 붙이고~ 개집을 지을때도 밑그림을 그리는데 하느님이 당신의 백성들의 구원과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시겠다고 계획하셨을 때 그 밑그림을 안그리셨겠냐구요 그렸단 말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이들이 들어가야 할 거 까지도 정해 놓으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세전에 우리에 이름이 불렸고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었다라고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성경에서 계획은 항상 영적 관점에서인 거에요 내가 이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이렇게 복음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그렇게 감사하고 기뻐하며 찬양하면서 살 수 있었지 라고 돌아보니까 하느님이 나를 이렇게 끌고 오셨구나. 이 자리로 옮기려고 그런 많은 사건들을 이렇게 허락하셨구나. 그리고 그것들을 선용하여 나를 이렇게 이끌어 오셨구나,~~~~

 

오늘 본문이 어떻게 하느님의 주권과 열심에 의한 그 구원에 이야기를 전개해 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구원을 얻은 하느님의 백성들은 어떠한 삶을 살게 되는지 한번 구체적으로 보자구요 먼저 1절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

자 소경이 먼저 주님을 본게 아니라 주님이 먼저 소경을 보셨죠? 소경은 볼 수가 없으니까 흐흐 여기에서 보다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에이돈은 알다 라는 뜻이에요 원래 알다라는 뜻과 같이 써요 그래서 종종 그 단어를 알다라고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우연하게 지나가다가 불쌍한 소경을 발견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계셨으며 알고 있는 그를 찾아갔다.라는 의미에서 에이돈라는 단어를 쓴 것입니다

소경은 주님이 오신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어요 그는 주님이 누군지도 몰랐고 주님이 어떤 능력을 가진 분인지도 몰랐어요 따라서 그는 주님께 눈을 뜨게 해달라는 부탁도 할 수 없었어요 그게 바로 구원받기 전에 우리에 상태란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노력하여 우리가 자격을 갖춰 구원에 이르겠다라는 그게 말이되나요? 그래서 성경에서 소경을 죄인들을 총칭하여 상징하는 단어로 자주 쓰는 거에요 그리고 복음서에는 주님에 많은 치유사건중에 유독 소경이 고침받은 사건을 특별하게 많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 치유사건은 귀먹은 벙어리 고친 사건이 하나. 중풍환자 고친거 하나. 열병 앓던 자 고친거 하나. 그리고 문둥병 고친거 둘. 또 다시 살려낸 사건 셋. 반면에 소경 고친거 다섯. 압도적으로 많죠? 그것은 성경이 소경에 상태를 영적으로 어두움 가운데에 있는 죄인들에 상태라는 것을 강조해서 보여줌으로 해서 주님은 그런 영적 어두움에 상태에 있는 죄인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을 광명한 빛으로 인도해 내시는 분이심을 상징적으로 설명을 해주는 거에요.

 

우리는 혼돈과 공허와 어둠속에서 갈길 몰라 해매며 살고 있던 그 성전 문앞에서 구걸을 할 수밖에 없는 거지같은 존재였더라는 것을 예수님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에요 그래서 날때부터 소경된 자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죄 속에 빠져서 거지같은 인생을 거지같은 삶을 살다가 거지같이 죽어야 되는데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하느님 없이 사는 삶은 전부 거지같은 삶이니깐요. 그게 죽어야 하는데 그 삶은 인간의 근원적인 죄에서 기인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인간은 어머니 배속에서 태어날때부터 죄인이잖아요 그래서 하느님이 날때부터 소경인 자를 택하신 것입니다 이게 바로 너희들에 실존이였다 그래서 날때부터 소경된 자 날때부터 죄인이였던 우리를 어떻게 고치실 것인가를 보여줄려고 날때부터 소경된 자를 택하신 거에요 주님은 그 눈을 값없이 치료해 주심으로 해서 당신에 하실 일이 어떠한 것인지를 설명하세요 주님이 소경을 찾아가셨을 때 주님과 함께 있던 제자들이 주님께 물었어요 본문 2절로 갑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당시 유다인들은 모든 고난과 불행과 그 질병을 죄에 결과로 이해를 했어요 물론 그런 것들이 죄의 결과 인간들에게 찾아온 그 죽음에 증상들인 것은 사실이에요 아름답게 창조된 하느님에 피조세계에 고난과 불행과 질병이 찾아온 것에 그 근원적인 뿌리를 찾아가 올라가 보면 어디에요 아담에 죄잖아요 그러니까 죄로 부터 온 것은 맞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당하고 있는 그 불행 고난 질병이 바로 당사자에 죄때문에 그런 것이다라고 이해하는 것은 착각이란 말입니다 고건 오해란 말입니다 그렇지 않단 말이에요

전생의 죄를 많이 진 사람이 이생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고 질병을 얻게 된다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 사상은 유다인들에게 조차 아주 편만하게 일반화되어 있었어요 무서운 거에요 그러니까 영지주의에 영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여러분 모릅니다 오늘날 까지도 있죠 그래서 그러한 환생 교리에 젖은 사람들은 자신들에 고통과 불행과 질병을 전부 전생에 죄로 돌려요 물론 유다인들에 선생인 랍비들은 그 이론을 전혀 지지하지 않았어요 많은 유다인들이 거기에 넘어갔지만 랍비들은 그 이론을 지지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랍비들에 주장도 옳은 것은 아니였습니다. 그들은 출애굽기 204-5절에

4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5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

라는 그 구절을 근거로 해서 죄의 유전으로 고통의 문제를 이해했어요 그 아비 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 죄가 나에게 전가가 되어 유전이 되어 나에게 질병과 고난으로 내려오게 된다라고 이해를 했다구요 거기에서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그런 주장이 나온 거죠 말도 안되는 거에요 그런 책은 집에 있으면 빨리 갖다가 찢어 버리세요 그래서 이 제자들이 그가 소경이 된게 그 사람에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에 죄 때문입니까 라고 물어본 거에요 그런 사상에 영향을 받아서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태아가 어머니에 뱃속에서도 죄를 지을 수있다라고 생각했어요 성경을 근거로 한거에요 창세기 2522-23절 보실까요

22 뱃속에 든 두 아이가 서로 싸우므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와서야 어디 살겠는가!' 하면서 야훼께 까닭을 물으러 나갔다. 23 야훼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태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태에서 나오기도 전에 두 부족으로 갈라졌는데, 한부족이 다른 부족을 억누를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

거기서 죄 지은 놈들은 날 때 병얻어서나온다 이렇게 이해했다니깐요 시편 583-5절 보세요

3 모태에서부터 잘못된 자들, 나면서부터 빗나가서 거짓말만 하는 자들, 4 독사같이 독이 서리고, 살무사처럼 제 귀를 틀어막고는 5 솜씨 좋은 마술사의 소리도, 홀리는 요술사의 소리도 듣지 않는다.

악인은 모태에서 부터 멀어졌다 거기서 죄를 지었다는 거에요 이러한 이해, 그러니까 이러한 구절을 근거로 해서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죄를 지으면 장애를 갖고 불행을 갖고 이렇게 태어난다. 라고 이렇게 믿기도 했어요 이렇게 환생에 교리나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이론이나 모태속에서 지은 죄에 결과에 의한 그런 질병등에 이론은 참 더무니 없는 이론인 거에요 그런데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아서 이게 누구에 죄에 결과입니까 라고 제자들이 물어본 거에요 그러니까 주님이 단호하게 대답해 주시죠 3절 보세요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이게 하느님은 자기가 하는 일을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장애를 갖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을 장애를 막 주어서 내보낸다는 이야기입니까? 자 우리말 성경은 헬라어 성경에 원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아주 엉뚱한 번역을 해 놓았어요 그러면 3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에 하시는 일이라는게 뭘까요 지금 날때부터 소경된 자를 택하셔서 그 소경을 통해 하느님에 하시는 일을 지금 나타내겠다라고 하시는데 그 소경을 통해 나타내려고 하는 하느님 일이 뭐겠냐 말이에요 4절 보세요

4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 때는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다.

조금더 명확해 져요 여기서 또 번역이 조금 잘못된 부분이 있어요 여기서 우리라고 번역이 된 단어는 사실 아이 머스트 워크 란 뜻이에요 '내가' 라는 거지 우리가 아닙니다. 단수에요 그러니까 제대로된 번역은 '나를 보내신 이에 일을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 라는 뜻이에요 요한복음 33절 보세요

3 그러자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볼 수 없음새로나지 안음을 동격으로 이렇게 올려놓고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이야기는 뭐에요 볼 수 없음 소경을 통해서 새로나지 않은 자들이 새로남을 설명해 주는 거에요 자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새로나게 하시는지 한번 볼까요 소경을 어떻게 고치는지 보면 알겠죠 96절 보세요

 

6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주님께서는 소경뿐만이 아니라 많은 각양각색의 병자들을 고치셨죠? 그러나 오늘 본문처럼 지저분하게 흙에다가 침 뱉어 갖고 그걸로 이렇게 진흙 이겨서 눈에다 발른 적은 한번도 없어요. 죽은 사람도 심지어 죽은 사람도 나와라 하니까 나왔다니깐요 문둥병자들 보고 깨끗해져라 하니까 깨끗해 졌다구요 심지어 어떤 여인은 예수님이 아무말도 안했는데 옷만 만졌더니 혈루병이 나아 버렸어요

그런데 왜 오늘에 이야기에서면 지저분하게 침으로 진흙을 이렇게 개서 눈에다 다 발라주고 그러는 거에요 그리고 또 가서 귀찮게 가서 씼으라고 왜요 하느님에 하시는 일을 가르쳐 주기 위해. 앞에 답이 나왔었잖아요 우리가 전에 간음한 여인 이야기에서 본 것처럼 성경에서에 그 흙 그 티끌은 저주받은 죄인들과 그들에 죄를 총칭하는 소재였어요 창세기 27절 볼까요

7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이 흙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창세기 314-19절 보세요

14 야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너는 저주를 받아, 죽기까지 배로 기어 다니며 흙을 먹어야 하리라. 17 그리고 아담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내의 말에 넘어가 따 먹지 말라고 내가 일찍이 일러 둔 나무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 또한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 땅이 저주를 받았어요 흙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18 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할 터인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19 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 먹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이렇게 아담이 범죄한후에 흙은 저주받은 인간에 현실과 결국을 가리키는 소재로 등장한다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간음한 여인에 이야기에서 처럼 자신과 흙을 섞어서 개버리는 거에요 예수님에 침이 나와서 이 저주받은 흙과 섞여 지는 것입니다. 하느님 하늘에 빛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저주받은 육신 안으로 들어와 버리시는 거에요. 예수님의 성육신 인카네이션을 이야기하는 거죠 주님의 인카네이션은 육신을 입으신 하느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체로도 우리 죄인들에 구원에 방법을 담고 있어요

 

어떻게 하느님이신 그분이 죄인과 연합함으로 하느님이 죄인에게 전가되고 이 죄인에 실상이 하느님에게 전가되어져 버리는 거에요 그리고 이 하느님이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고 하느님이신 그 예수님 인카네이션한 예수님에 몸 안에 이미 구원에 방법이 들어가 있는 것이죠. 그렇게 하늘의 것 침과 흙이 개어져서 예수가 죽어야할 소경에 환부인 눈에 붙여지는 것입니다 치료받아야할 부분에 붙여지고 예수님이 실로암 못가에 가서 물속에 빠져 죽으시는 것입니다 딲여져 내려가는 거에요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 고쳐져야할 환부가 낫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구원이라고 하는 거죠.

하늘의 주인이신 성자 하느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이 죄인들과 개어지셨단 말입니다 그들에 죽음을 품어 안아 버리시고 예수님이 물에 빠져 죽어버린 것입니다 홍수에 빠져 죽어버린 거에요 그리고 그 죽음을 품고 죽어 버렸기 때문에 이들이 눈을 번쩍 뜨게 된 것입니다 구원을 받게 된 거에요 그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에 그대로 그려져 있는 거에요. 날때부터 소경된 자에 이야기가 내가 세상에 빛이다라는 그런 선언뒤에 이렇게 붙여 있는지는 이제 이해가 가시죠 ? 그것만 이해가 가셨으면 됐어요

그런데 잘 보시면요 8장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그 일과 9장에 그 소경에게 일어난 일이 정확하게 같아요 8장에서는요 하느님에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가 세상에 빛임을 유다인들에게 이야기하자 유다인들이 득달같이 주님을 거짓말 쟁이로 몰아붙이죠 볼까요 812-13

12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 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13 그러자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당신이 당신 자신을 증언하고 있으니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 됩니다' 하며 대들었다.

9장에서는 눈을 뜨게 된 소경이 거짓말로 몰려요 빛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 소경도 거짓말쟁이로 몰립니다.

18 유다인들은 그 사람이 본래는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마침내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이 사람이 틀림없이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유다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아울러 8장에서는 주님께서 당신에 대한 아버지에 증거하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유다인들이 아버지의 증거를 알아듣지 못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볼까요

818 내가 바로 나 자신을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증언해 주신다.'19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은 '당신 아버지가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할뿐더러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만일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9장에서는 어때요 소경의 부모가 아들에 대해 증거하죠 그런데 유다인들이 안 받아들여요 918-20

18 유다인들은 그 사람이 본래는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마침내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이 사람이 틀림없이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20 그의 부모는 ', 틀림없이 날 때부터 눈이 멀었던 저희 아들입니다.

부모에 증언이 나오죠 또 여기에 뿐만 아니라 8장에서는 주님에 말씀을 들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돌로쳐서 죽일려고 하고 9장에서는 그 소경의 말을 들은 유다인들이 그를 쫓아 내버리죠 뿐만 아니라 주님은 당신을 가리켜서 보내심을 받은자라고 8장에서 이야기하세요 816-18절 보세요

16 혹시 내가 무슨 판단을 하더라도 내 판단은 공정하다. 그것은 나 혼자서 판단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 판단하기 때문이다. 17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이 증언하면 그 증언은 참되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18 내가 바로 나 자신을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증언해 주신다.'

날때부터 소경된 자는 어때요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요 볼까요 97절 보세요

7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 실로암은 '파견된 자' 라는 뜻이다.)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왔다.

아주 흡사한 구조로 8장과 9장이 대조가 되고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당신을 가리켜서 에고 에이미 라고 칭하시는데 그거는 하느님에 것에 쓰인 단어거든요 9장에서 예수님이 자기를 가리켜 '내가 그다' 에고 에이미라는 단어를 씁니다 볼까요 858

58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하고 대답하셨다.

이게 에고 에이미 내가 하느님이라는 뜻이란 말이죠 여기에서 나는~있었다 에고 에이미에요 98-9절 볼까요

8 그의 이웃들과 그가 전에 거지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을 보아 온 사람들은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9 어떤 이들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을 닮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아니라고도 하였다. 그 때 눈을 뜨게 된 사람이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에고 에이미 똑같은 단어를 쓰고 있어요 요한은 지금 8장과 9장에서 의도적으로 이같은 단어들과 내용들을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묘사하고 있는 거에요 하느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께서 육신에 몸을 입으시고 다른 말로 더러운 티끌과 이겨지셔서 죄인에 환부에 붙여지시고 가장 비천한 죄인의 모습이 되셔서 실로암 물에 빠져 죽으심으로 죄인들이 구원을 받아요

그 보내심을 받은 주님의 십자가에 삶을, 주님께 보내심을 받은 소경이 그대로 판박이처럼 보여주고 있는 거에요. 날때부터 소경인 자가 이제 그 눈에 진흙을 이겨 붙임으로 말미암아 가뜩이나 안보이는데 거기다가 진흙까지 덕지덕지 붙여놨으니 더 안보이죠? 그리고 그것은 나는 소경입니다 하고 광고를 하는 낮아진 모습으로 서는 거에요 그 상태로 실로암으로 가는 것입니다 자기에 명령을 받은 그 목적지로 소경이 가는 거에요 실로암에 가서 씻어라라는 자기를 보내신 분에 명령을 확실하게 수행하기 위함인 거죠 그 목적지까지 가면서 그 진흙을 눈에 이겨 바른 그 소경은 온갓 조롱과 멸시를 받았을 거에요 그리고는 실로암 연못에 도달하죠

실로암 연못은 예루살렘 키드론 골짜기에 그 기혼샘에서 흐르는 물이 마지막으로 고여있는 곳이에요 그래서 성전에서 그 물을 떠다 썼잖아요 초막절에도 갖다 붓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실로암 물은 기혼샘에 가장 낮은 곳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가장 낮은 곳을 상징하는 거에요 물이 아래에서 위로 흐를리는 없잖아요 그 가장 낮은 곳에 조롱과 멸시에 모습으로 내려가서 그 자기를 보내신 이에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조롱과 멸시를 감수하고 내려가서 가장 낮은 곳에 도달하여 무릎을 꿇고 눈을 씻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삶이라는 건 예수의 삶이 그랬다구요 하늘 보좌를 차지하셔도 아깝지 않은 그 분이 이 땅에 내려오셔가지고 이 세상에 죄악들과 이겨지셨어요 그리고 갖은 수난과 멸시를 받으시고 그러한 조롱과 멸시 속에서 하느님에 명령을 이루겠다고, ‘내가 너에게 준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마라라는 하느님에 명령을 이루겠다고 십자가까지 내려가신 거에요 내려가서 거기서 무릅을 끓고 죽어버리신 것입니다 그 삶이 소경의 삶에 그대로 전가되고 있다라는 것을 8장과 9장에 그런 단어들과 상황들을 통해서 요한이 일부러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그렇게 보내심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하느님이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어디로 보내요 실로암 못으로 우리를 보내는 것입니다. 구원에 완성 지점으로 우리를 보내시는데 거기까지 가는 길에는 온갓 조롱과 멸시와 억지와 천대와 이런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고 하느님을 니 목숨처럼 사랑하라 라는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실로암 못으로 낮은 곳으로 한발 한발 걸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에 삶인 거에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에 삶 그것을 우리는 자기 부인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시편 1165절 볼까요

5 야훼께서는 너그럽고 의로우신 분, 우리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

이거 다윗이 쓴거에요 야훼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전하시어 내가 낫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다 다윗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재물과 권세를 한 손에 줬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어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범죄를 짓죠 밧세바를 범하고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자기에 욕정을 채울 수 있었는데 그걸로 안채워지니까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기에 만족을 채울 수밖에 없는게 인간이란 말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힘으로도 행복과 만족에 도달할 수 없어 그런데 가장 낮은 곳에 내려가 무릅을 딱 꿇었더니 주님이 거기서 나를 구원하시더라. 그때에 비로소 참 행복에 내가 도달할 수 있겠더라 라는 것을 다윗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한 심령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낮은 자리에 섰을 때 우리는 하느님에 구원을 경험하고 그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는 거에요.

 

교우여러분 세상에 힘을 쫓아 갈때는 그것에 눈이 팔려 절대 하늘의 것으로 기쁘고 만족한 삶을 맛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자들에 표지는 뭐에요 실로암으로 내려가는 낮아짐이에요 낮아짐 자꾸 나를 자랑하고 유명해지고 높아질려고 하는 그런 시도가 아니라 낮아짐. 돈을 많이 벌고 못벌고 유명해지고 안유명해지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아니고 이거 문제가 아니라 낮아짐. 돈이 많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보잘것없는 나를 이렇게 전심으로 섬겨줄 때 참 우리 행복해 지지 않아요 낮아짐입니다.

뭐 개뿔도 가진게 없는 사람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눈에 그냥 진흙을 이겨 발른거 처럼 그런 부끄러워한 모습으로도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열심히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 우리는 감동받지 않습니까? 그게 낮아지는 것입니다. 각자의 처지에서 각자의 상황속에서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에 십자가에 삶 섬김에 삶 사랑의 삶을 살아 내라는 것입니다 그거에요 때로는 하느님께서 우리들 눈에 자꾸 그냥 침을 퇴퇴 뱉어 갖고 진흙을 이렇게 이겨 붙이는 듯한 그런 기분 나쁜 경험을 할 때가 있을 거에요. ‘아 더럽게 이걸 왜 자꾸 붙이시고 그래가 아니라 나는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하느님이 명령하신 니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좀 사랑해 달라는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그 상황에서 보여주는 거에요

덕지덕지 붙이고 그러나 마지막에 그거 다 닦아 주신다니깐요 영적으로는 예수님이 이미 그거 다 품어 안으시고 여러분의 고통 질병 불행 다 품어 안으시고 이미 다 불살라 버리셨다구요 그리고 나중에는 인제 그게 가시적으로 나타날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잠시 부끄러움 당하는거 뭐 어때요 괸찮아요 잘 참으세요 잘 참으시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실로암으로 내려가는 그 낮아짐에 삶을 잘 살아 내십시오

성경이 뭔지, 깨닫는 시간 허락하심에 감사를 올립니다. 아멘.

교형자매 여러분 코로나-19’ 슬기롭게 잘 이겨내십시오. 하느님께서 왜 이 세상에 질병으로 질책하시는지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1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