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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믿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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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18 ㅣ No.17

[교리 해설] 교회를 믿나이다
 
하성호
 
 
“왜 교회를 다니는가?” ‘누구를 만나기 위해 교회에 나왔는가?”라는 물음에 과연 어떤 대답들을 할까? 얼른 튀어나오는 말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대답일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하느님을 만나고 있소?”라고 되묻기라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대답하기를 주저한다. 과연 우린 하느님을 만나고 있으며,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고 있는가?
 
 
교회란 무엇인가
 
지난 호에서 사도신경의 세 번째 부분은 성령에 관한 것으로 교회와 우리 구원의 관계를 신앙으로 고백하는 내용이라 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관계가 잘못 이해되기도 했다. 성령론과 교회론은 분리할 수 없음에도 어느 한쪽만을 강조함으로써 절름발이 신학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교회와 영원한 삶의 희망은 성령에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성령은 구천을 해매는 잡귀신도 아니요 더욱이 외계인도 아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현존케 하시는 교회의 영이시다. 그리스도의 현존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성령의 역할은 우리 구원에 중요하다.
 
그럼 교회란 무엇인가? 구약에서 하느님의 백성의 모임(Kahal)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던 그 말을 그리스어로 ‘에클레시아’(ecclesia)라 번역하였고, 이 말을 초세기 때부터 교회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이 말은 원래 ‘부름을 받은 무리’ 즉 세상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모인 무리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신약의 개념으로 말하면 교회란 무엇보다도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신봉하는 이들이 모인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죄에 대한 용서를 받기 위해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들로써 양육되어 영원한 생명을 보존하길 원한다. 또한 사랑의 일치 안에서 복음을 증언하고 복음에 따라 봉사하기 위해 축성된 이들의 공동체가 교회인 것이다.
 
교회가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으로 성립되었다면, 교회는 어떤 특정인이 특별한 이념을 가지고 설립한 특정단체가 아니다. 교회의 기원은 언제나 하느님께 기인한다. 그러므로 초세기부터 교회의 기원을 삼위일체께 두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교회헌장, 4항)가 인용하는 바와 같이 성 치쁘리아노 교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에 바탕을 두고 모인 백성’을 교회라 천명하였다. 성부께서는 백성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성자께서는 그들을 살아있는 당신의 몸으로 축성하시고, 성령께선 유일한 친교 속으로 그들을 모으신다. 이렇게 교회의 기원을 생각해 볼 때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특히 사리사욕을 목적으로 교회를 이응하려는 이들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회를 이 지상에 세우신 분은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기초삼아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당신 자신은 주춧돌이 되셨다(‘모퉁잇돌과 머릿돌’ 에페 2,20 참조).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당신의 교회를 시작하셨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가 확연한 모습으로 드러난 것은 최후의 만찬(루가 22,7-20)과 십자가(요한 19,25-35)와 부활(요한 20,19-23)과 성령강림(사도 2,1-4)이었다.
 
최후의 만찬 때에 당신이 흘리신 피는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라고 주께서 말씀하심으로, 옛 계약으로 구약의 백성이 탄생하였듯이, 새로운 계약으로 신약의 백성이 탄생하게 되었다. 또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왔다는 성서구절(요한 19,34)을 해석하면서,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열린 옆구리에서 교회가 나왔음을 말하였다. “하와가 잠든 아담의 옆구리에서 뽑은 갈빗대 하나로 만들어졌듯이 교회도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꿰뚫린 심장에서 태어났다”(성 암브로시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쏟아져 나온 물과 피는 사실 교회를 이루고 성장시키는 가장 큰 두 성사를 말한다.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백성이 되며 성체성사로 양육되기에, 이 두 성사는 교회를 이루는 기둥이 되는 성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교회가 나왔다고 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께선 당신의 생명에 인류를 합일시키길 원하셨고, 이를 이루기 위해 먼저 한 백성을 선택하여 뽑으셨다. 마침내 성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 오셔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심으로써 모든 인류가 하느님 백성의 무리에 들게 된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맺으신 새로운 계약, 당신의 피로 맺으신 이 신약은 혈육을 가리지 않고 유다인과 이방인 가운데서 부르신 백성을 성령 안에서 하나로 규합하여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한다”(9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이러한 설명은 성서 전반에 흐르는 사상이다. 성서 전반을 살펴보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을 위해 하느님께 봉사하도록 특별한 백성을 선택하셨다. 신약성서는 ‘선택된 백성, 왕다운 사제, 거룩한 민족, 하느님이 차지한 백성’이란 구약성서의 개념들을 교회에 적응시키기 위해 구약성서에서 그런 개념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 왕다운 제관들, 거룩한 겨레, 그분이 차지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두움에서 당신의 놀라운 빛으로 여러분을 부르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1베드 2,9, 출애 19,5-6; 이사 43,20-21 참조).
 
그러므로 구약의 백성이 옛 계약으로 체결되었듯이 신약의 백성이 새 계약으로 체결된다. 구약의 백성이든 신약의 백성이든 모두 다 전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의지를 중재하도록 선택되었다. 여기서 우린 새롭게 교회에 주어진 소명을 말할 수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구원의 희소식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기 위해 결코 고립된 자세, 폐쇄된 자세를 가져서는 안된다. 모든 인류와 연대성을 가지면서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교회 자신을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역할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세상의 빛과 소금의 구실을 하여야 한다.
 
하느님 백성으로 자신의 본질을 규정하는 교회가 자신이 지닌 사명을 다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희소식으로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백성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한 14,6)라고 말씀하신 주께서 “인자도 봉사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하고 또한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속전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습니다.”(마태 20,28)라고 하심으로써 하느님 백성인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셨다. 이 길을 사랑하고 따르는 것이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삶이고 하느님 나라 건설의 역군이 되는 것이다.
 
인류의 양심이 침몰하고 있는 이 시대에 참되고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과연 누구일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신약성서가 교회의 표상으로 말하는 개념들(하느님의 백성, 건물, 포도나무)은 그 나름대로 모두가 중요하다. 특히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진 개념이 ‘그리스도의 몸’(로마 12,4 이하; 1고린 12,12-27; 에페 1,22 이하)이라는 표상이다. 이 개념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이들 사이의 긴밀한 유기적 관계와 신도공동체의 일치를 강조한다. 동시에 이 개념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강생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근본적으로 중요하게 다루며 또한 자신의 몸과 피인 성체성사의 현존을 통하여 항상 그리스도인의 생활 안에 살아계심을 강조한다.
 
구원의 결실들은 사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취되었다. 다시 말해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새로워지고 새로이 설정된 친교와 인간 상호간의 친교와 인류와 모든 창조계의 친교는 다름 아닌 구원의 결실이며, 이러한 구원의 결실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의 신비로 성취되었고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이러한 구원의 결실을 교회 안에서 연장하시고 확장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 자신의 연장과 확장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성사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한다.
 
분명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신 대로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받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한 몸, 즉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그러나 한 몸에는 여러 지체가 제각기 자신의 일을 하면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마찬가지다. 같은 세례와 같은 빵을 떼는 교회의 구성원들은 다양성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봉사하고, 하느님의 창조적인 말씀의 운반자가 됨으로써 하느님을 현존케 한다. 다양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을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일치시켜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누구나 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은 교회에 필요한 모든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자기없이는 교회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는 오만에 빠진 자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교회를 병들게 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릅니다”(요한 6,56).
 
 
하성호 / 대구 가톨릭 대학교 교수 · 신부
 
[경향잡지, 199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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