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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의 과제: 시대 요청하는 화해 현장 찾아 복음선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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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26 ㅣ No.84

[새 교황 프란치스코] 새 교황의 과제

시대 요청하는 화해 현장 찾아 복음선포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을 이루고 있는 우리가 모두 서로 사랑하고 하나의 찬미가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찬미하며 서로 교류할 때에 우리는 교회의 근본 소명에 부응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959항)

교황은 지상에서 가장 무거운 십자가를 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 수없이 부침과 영욕을 거듭해온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되돌려 창조 때의 온전한 모습을 회복하도록 지상의 여정을 이끌어가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위상으로 인해 교황은 하느님과 인간, 하느님과 세상, 인간과 인간 간의 화해를 중재하는 ‘화해의 사도’로 불려왔다. 하느님, 이웃, 창조계 전체와 화해를 이뤄나가는 일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할 때, 화해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한에서만 화해의 교회라고 할 때, 교황이 진 십자가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중하다.

온갖 불목과 불신, 불신앙으로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상처를 입은 교회가 참 화해에 이르기까지 새 교황이 걸어갈 길이 멀게만 보이는 것 또한 현실이다. 역사 속에서 교회는 참다운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부터 끊임없는 회개를 밑거름으로 한 화해에 도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새 천년기 들어 두 번째 지상의 대리자로 뽑힌 프란치스코 교황의 앞길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십자가가 가로놓여 있는 모습이다. 새 교황이 걸어가야 할 화해의 길을 되새겨본다.


■ 세상과의 화해

지난 4일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이 교황 선출을 위한 첫 전체회의를 열었을 때 묵상거리로 받아든 주제는 ‘이 시대에 교회가 직면한 문제점들과 새 교황 선출에 요구되는 신중한 분별력’이었다. 달리 말해 새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대로 이 시대가 요청하는 화해의 현장을 찾아 새롭게 복음을 선포해야 할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 새로운 교황의 눈에 무엇보다 선명하게 부각되는 화해의 현장은 세상과의 불화, 단절로 인해 끊임없이 파생되는 문제들이 있는 곳이다.

끊임없는 자기 파괴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세속주의,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는 상대주의, 생명과 인권 등 인간존엄성 문제, 가정과 혼인 등 전통적 가치관의 혼란 문제 등은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는 가톨릭교회를 둘러싼 이러한 암울한 현실들은 새 교황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절대적 복음의 진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대주의가 갈수록 교회 안팎에서 맹위를 떨치면서 그리스도적 가치가 다른 세속적 가치들 속에서 희석되고 있는 현실은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교회 입장에서 이런 시대적 조류는 거대한 역풍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근대 들어 역대 교황들은 서구사회가 겪는 신앙 위기의 원인이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의 영향이라고 보고, ‘새로운 봄’을 재촉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해왔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임기 중 ‘새로운 복음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한 이유도 이런 시대 상황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시대 조류와 교회를 둘러싼 현실에 대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렇게 진단한 바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전에 신에게 고대했던 것을 모두 제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과학적 지성 체계는 신앙 문제를 태곳적 일이나 신화적인 것, 또는 지나가 버린 문명에나 속하는 것으로 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종교, 적어도 그리스도교는 과거 유물로 취급된다.”(대담집 「신앙의 빛」 208쪽)

따라서 세속과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문제들을 앞두고 새 교황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역점을 둔 새로운 복음화 과제에 새롭게 다가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 대륙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세상의 흐름들은 새 교황이 맞닥뜨린 현실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유럽의 세속화를 비롯해 아프리카 대륙의 빈곤, 아메리카 대륙의 성적 방종, 남미와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웃종교와의 경쟁 등 각 지역들이 안고 있는 문제의 상이함은 어느 한 지역, 한 계층의 교황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교황의 존재가 필요함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한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도 갈라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종교간 대화도 새 교황이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교황에 오른 후 처음으로 집전한 미사에서 이를 교황직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종교간 화해와 평화가 인류 평화의 가늠자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교황의 몫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 교회 안에서의 화해

일치의 강화

새 교황에게는 각 대륙 다양한 신자들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일치를 다져나가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가 주어져 있다.

현대 들어 다양한 가치관과 이념들이 범람하면서 지역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지역교회와 지역교회들 사이, 교황청과 지역교회들 간에도 적잖은 파열음이 노정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 교황 선출 준비회의에서도 여러 추기경들이 이 문제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지역교회의 자율성과 주교단 단체성이 더 존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일었다. 이 같은 현실은 교황청과 지역교회 간 유기적인 소통의 부재, 교황을 필두로 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의 불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 여성사제 서품 문제를 비롯해 사제 독신제, 피임 등 현실에서 첨예하게 부닥치는 수많은 문제들은 원활한 소통이 전제되지 않고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난제들이니만큼 새 교황의 대처가 주목된다.

이와 함께 교회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교회 쇄신 문제는 새 교황이 되짚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지역교회를 비롯해 본당 사목구는 물론이고 일선 사목 현장 등에서 비등하고 있는 쇄신의 목소리는 대체로 관료주의화의 길을 걷고 있는 교회의 현재에서 비롯된 바가 적지 않다. 관료주의로 인한 병폐가 교회를 심각하게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는 비판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관료주의로 인해 오염된 뿌리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교황청 내부의 개혁 문제도 같은 선상에서 거론된다. 근래 들어 교황청을 둘러싼 잡음으로 갖은 억측과 비난이 난무하면서 교황청 내부 개혁은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여 시대의 징표에 적극 부응한다는 측면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부각되며 교회 쇄신의 시금석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느새 교회 곳곳에 깊이 침투해 그리스도인들 간의 참다운 화해를 가로막고 있는 관료주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친교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을 개인주의와 세속주의 등에 젖게 해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다양한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의 위기로 드러나는 이러한 현실의 이면에 있는 ‘예수님을 머리로서가 아니라 몸으로 만나는 체험’의 부재는 새 교황이 반드시 타개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이처럼 새 교황 앞에는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온갖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다양한 신자들을 하나의 가톨릭 신앙에 통합시켜 나가야 하는 십자가가 새 교황에게 주어져 있다.

하지만 교황직을 이은 첫해 새 교황이 무엇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핵심 열쇳말은 ‘신앙의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선포로 지난해 10월 11일 개막해 올해 11월 24일까지 이어지는 신앙의 해를 통해 새 교황은 오늘날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전반을 새롭게 돌아봐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이 모든 문제를 지고 가야 할 교회는 한없이 낮아져야 하고 그 길의 맨 앞에 새 교황 프란치스코가 있다.

[가톨릭신문, 2013년 3월 24일, 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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