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2015년 3월 세나뚜스 지도신부님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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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5-05-21 ㅣ No.235

 

성 요셉 성월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님


잘 아시다시피 3월은 성 요셉 성월입니다.


요셉 성인은 예수님의 양부이시고 성가정을 이룬 성모님의 배필이십니다. 과거에는 성 요셉을 많이 공경한 것 같은데 요즈음에는 많이 잊힌 것 같습니다. 성 요셉은 한국 천주교회의 공동 주보성인이십니다. 많은 분들이 한국 천주교회의 주보성인을 성모님으로 알고 있는데 요셉 성인도 한국 천주교회의 주보성인이십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교회는 북경교구에 속해 있었습니다. 선교사 없이 평신도로부터 시작되었고 이것이 교황청에 알려졌으며, 나중에 사제 파견을 요청해서 작년에 시성되신 북경교구의 주문모 신부님이 조선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북경교구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자연적으로 북경교구에 속하게 되었고 북경교구의 주보성인인 성 요셉 성인을 조선 교구의 주보성인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 2대 교구장이신 앵베르 주교께서 1838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조선교구의 주보성인으로 모시겠다고 교황청에 청합니다. 이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께서 1841년에 오랫동안 조선교구가 북경교구에 속해있으면서 요셉 성인을 주보성인으로 모셔왔기 때문에 요셉 성인과 함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공동 주보성인으로 정해주셨습니다. 명동 성당도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인데 요셉 성인께 바쳐진 성당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요셉 성인의 역할을 보면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나게 하신 그분의 믿음과 순종을 이야기합니다만 그것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신 분이 요셉 성인이십니다. 당연히 내칠 수 있었던 마리아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아내로 맞아들였고, 헤로데가 어린 아이들을 죽이려 하니까 성모님과 어린 예수님을 모시고 이집트에 피난하셨다가, 때가 되자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요셉 성인은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가정을 돌보시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것처럼 한 알의 밀알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썩었기 때문에 결실을 맺게 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밀알 하나가 떨어져 썩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지만 썩으면 많은 열매를 낸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양부이신 요셉 성인의 삶에도 맞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썩는 밀알의 역할을 하실 수 있으셨던 것도 양부이신 요셉 성인의 그런 모습을 보고 그렇게 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셉 성인은 모든 가장의 모범이시고 더 나아가 평신도들의 모범이라고 봅니다. 가정에서 자기를 내세우기보다는 가족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놓는 하나의 작은 밀알이 되어 썩는 삶을 살아갈 때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요즘 세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가정 안에서도 자기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자기의 정체성이나 자기 계발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기 계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다고 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지 생각을 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만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셉 성인이나 모든 성인들의 모습을 보면 뚜렷한 자기의식이 있었음에도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낮추는, 주연이 아니라 드러내지 않는 조연의 역할을 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는데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다 주연이 되려고만 하지 조연이 될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의 희생을 꺼려하는 그런 풍토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셉 성인의 성월을 보내면서 우리 역시 그분을 본받아 작은 밀알이 되어 썩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뒤에서 뒷바라지 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그런 은총을 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마태오 복음에는 요셉 성인이 말을 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꿈에서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은 즉시 행동으로 옮기셨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분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하느님을 따르시는 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은 말은 많은데, 그 말에 따른 행동은 점점 더 적어지는 것 같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자기가 실행하지 않으면 말의 신뢰성이 없어집니다.


요셉 성인의 모습을 보면서 말도 중요하지만 그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희생,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과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행동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했던 요셉 성인의 자세를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그런 은총을 내려주시길 빌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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