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4주일(나해) 마르 6,1-6; ’1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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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07-07 ㅣ No.3586

연중 제14주일(나해) 마르 6,1-6; ’18/07/08

수색 예수성심 성당 박재성 부제 강론 (자기중심적 사고)

 

 

 

찬미 예수님, 이번 한 주간도 주님의 사랑 안에 행복한 한 주간되시기 바랍니다.

신학교에는 텃밭이 있습니다. 관심 있는 신학생들 몇몇이 모여서 가꾸어 갑니다. 다들 초보이다 보니 씨앗을 심을지, 모종을 심을지 결정하는 것도, 물을 언제 줄 건지도 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희는 하나하나 물어보고 찾아가면서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몇 년 하다 보니 노하우 같은 게 생겼습니다. 저희가 가꾸는 식물 중에 포도나무가 있습니다.

 

하루는 포도나무 가지치기를 할 때였습니다. 동기 부제가 자신이 알아온 것이 있다면서 가지치기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던 저는 속으로 제가 아는 방법대로 하지 않으니 꿍~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공부한 정성이 있으니 동기의 방법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가지가 돋아나야 하는데 별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뭇잎이 자라나지 않고 있는 포도나무를 보면서, 다른 동료 연장자 신학생에게형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다 망했다면서 핀잔을 주었습니다. 시간이 계속 흘러도 가지에서 새 잎이 돋지 않자, 그 동기도 실망했는지 더 이상 나무 관리를 하지 않고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 포도밭에 가 보았더니 무성한 포도나무가 떡하니 있었습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기다렸다면, 그전에 내 방법만이 아니라 그 동기가 알아온 방법을 믿었다면, 포도나무도 포기하지 않지 않았을까하는 후회가 남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향 나자렛으로 가십니다. 그 곳 주민들은 내가 어릴 때 보았던 예수가 어떻게 많은 지식을 갖고, 기적도 베풀까 하며 의심하며 믿지를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경험에 갇혀서 현실을 외면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못마땅하게 여겼다”(마르 6,3)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생활을 하다보면 내 경험에서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이나 인물이 나타나면,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나보다 더 뛰어나다면 그 인정은 더욱 어렵습니다. 또한 이미 형성되어 있는 조직에 그가 들어오는 것이라면 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스템을 흔드는 것이기에 원래 있던 사람들은 그를 쫒아내고 싶어 합니다. 박힌 돌들은 굴러온 돌을 싫어합니다. 저도 스스로 완전하지도 않고 늘 배워야 한다고 머리로 생각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그렇지가 않은가 봅니다. 자신의 한계에 갇혀 있는 상태를자기중심이다라고 말합니다. 자기중심에 서서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지 않고, 잘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성경에서 나오는완고한 마음이 바로 이러한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것이 자기 모습이라 해도 인정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자기가 배척한 것이 아니라, 그의 방법보다 자기 방법이 더 나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둘 다 틀린 방법이 아니라면, 그의 방법을 받아주는 것이 그에게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는 경험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하느님을 증거하는 데 더 나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2코린 12,7)라고 말씀하십니다.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가슴 속에 따끔거림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바오로 사도가 말한 가시라면, 그 따끔거림이 느껴지는 대화를 잘 되새겨 보고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머리로는 인정하기 싫지만, 마음이 이미 인정하고 있을 때 그런 따끔거림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따끔거림은 하느님께서 나를 깨우는 방법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듯 나 자신이 자만하지 않도록 해주기 위한 사인입니다. 이 사인을 잘 알아듣게 된다면,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날 것이고, 그 한계에서 벗어나야 우리는 예수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돌아보면 제 한계에서 벗어나게끔 저를 도와주었던 많은 이들이 저에겐 예수님이었습니다. 복음에서 나자렛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그 때 저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포도나무를 가꿀 때, 그 동기가 어떤 면에서는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이끌어준 예수님의 사도였습니다. 제가 가진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드러나게 도와주었으니까요.

 

오늘 제 1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보내시며너는 그들에게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하고 말하여라. 그들이 듣든, 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에제 2,4)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지도 않는 말을 예언자는 계속 해 왔습니다. 이 말씀은 제 주위에도 계속 예언자를 보내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우리 주위에 자기 자신이라는 한계에 갇혀서 타인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지금도 계속 예수님께서는 우리 주위에서 나를 깨우기 위하여 예언자들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타인을 받아들일 때, 그 사람뿐 아니라 그 사람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본 것과 경험한 것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본 것과 경험해 본 것과 다르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아예 다른 것들은 발견하지도 못하고, 기대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늘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데, 우리는 언제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셨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지만, 우리는 시각과 관심과 경험세계의 주파수가 달라서 지나쳐 버립니다. 또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활동방식에 빠져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어떤 때는 아예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고, 지나쳐간 상황과 사건들 속에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활동하시는지를 되새겨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 지나간 한 주간을 주님께 감사드리러 미사에 참례한 오늘 이 순간에 잠시 되새겨 봅니다.

지난 한 주간동안 주님께서 언제 어떻게 나와 함께하셨는지?

지난 한 주간 주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셨는지?

지난 한 주간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해주셨는지?

오늘 내가 주님께 무엇을 감사드리고 있는지?

그리고 내일부터 나와 함께하고 계신 주님과 함께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갈 것인지?

 

 

 

(11시 미사 때)

오늘 우리 성당을 처음 찾아오신 예비신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이 여러분과 늘 함께하시는 주님을 여러분의 일상 안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끼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나날이 잔잔한 기쁨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신자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께 한 발짝 다가서는 예비 신자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오늘부터 수색 예수성심 성당 공동체에서 그리스도를 배우고, 또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 우리 공동체가 참여한다는 것은 참으로 뿌듯한 일입니다. 이 분들이 주 예수님을 알아 느끼고 사랑하게 되도록 기도하고, 배려하며, 지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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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일 꽃꽂이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70600&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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