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사순 제2주일] 타볼화산 사건 (마태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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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0-03-08 ㅣ No.200

 

2020년 3월 8일 주일

[사순 제2주일타볼화산 사건 (마태 17,1-9)

 

   

1독서<아브라함을 하느님 백성의 아버지로 부르시다.(창세12,1-4)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너에게 복을 내리며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화답송 시편 33(32),4-5.18-19.20과 22(◎ 22 참조)

◎ 주님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자애를 베푸소서.

○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보라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주님은 우리 도움우리 방패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주님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

 

2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어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2티모 1,8-10)

사랑하는 그대여, 8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10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복음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마태 17,1-9)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하나는 모세께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

 

 

사순 제2주일 제1독서 (창세12,1-4ㄱ)

 

그무렵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1)

 

'주님께서~말씀하셨다'에 해당하는 '와요메르 예흐와'(wayomer yehwa)로 시작하는 본문은 아브람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부르심을 받고 역사(歷史)의 전면에 등장하는 장면을 보도한다.

이것은 역사의 전면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인간 아브람이지만그 배후에는 주님의 역사(役事)하심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본문이 '그 무렵(그러자그리고주님께서 말씀하셨다'로 번역되는 '와요메르'(wayomer)로 시작되는 것은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주로 말씀으로 이루어짐을 보여 준다.

 

'(너는)~가거라'에 해당하는 '레크 레카'(lek leka)에서 '레크'(lek; go)는 '걷다'라는 뜻이 있는 '할라크'(hallak)의 2인칭 단수 명령형이다

그리고 '레카'(leka)는 전치사 ''(le)와 2인칭 단수 어미가 붙은 형태로서 '너에 대해서는'(as for you) 또는 '너에 관한 한' (as far as you are concerned)으로 번역될 수 있다.

 

여기서 '레크'(lek)라는 2인칭 단수 명령형 그 자체가 '너는 가거라'라는 의미가 있는데다시 '너에 대해서는(관해서는)' 이라는 뜻이 있는 '레카'(leka)를 덧붙인 것은 '가거라'는 하느님의 명령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아브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며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아브람을 대신하여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아브람이 버리고 떠나야 할 것으로 명시된 세 개의 단어인 '메아르체카'(meartseka), '밈몰라드테카'(mimmolladtheka), '밉베트아비카'(mibbethabika) 앞에는 모두 철저한 분리를 나타내는 전치사 ''(min)이 붙어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당신 자신에게서 스스로 나오는 반면에 인간의 거룩함은 하느님을 향한 지향으로 세속과 이기와의 철저한 구분에서 시작됨을 알려준다.

 

또한 거룩한 당신의 백성을 구별하여 세우시려는 하느님의 의지가 이미 아브람이라는 칼데아 사람을 세상에서 철저히 분리시키는 일에 예표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람이 떠날 대상이 고향친족아버지의 집등 삼중으로 표기된 것은 결국 과거의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아브람이 이러한 것들을 과감히 버리도록 하느님께서 강력하게 요구하셨음을 의미한다.

루카 복음 14장 33절에서 예수님께서도 "이와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한편, '네 고향'으로 번역된 '메아르체카'(meartseka)는 '너의 땅으로부터'라는 뜻이다이 말이 다른 두 가지 즉 친족과 아버지의 집보다 앞에 나온 것은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궁극적으로 인도해 가실 곳이 바로 약속의 '가나안이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최초의 요구로 ''을 떠날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이것은 옛 삶과 새로운 삶의 구별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새 출발과 더불어 가나안의 약속이 다스리는 삶의 영역으로 향하는 실질적인 삶을 강하게 명령하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있을 거처를 미리 마련해 놓으시고 기존의 것에 안주하지 말고 떠날 것을 요구하신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6절에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친족'으로 번역된 '몰레데트'(molledeth)는 '낳다'(창세4,18), '태어나다'(고헬렛7,1)로 번역되는 '얄라드'(yalld)에서 유래하여 '한 조상으로부터 태어난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느님께서 이러한 '친족'이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신 것은 당시 하란에는 아브람의 형제 나호르의 가족들이 살았기 때문이다 (창세24,10; 28,10).

 

아마도 나호르 가족은 테라 일행이 칼데아 우르를 떠난 후(창세11,31) 바로 뒤이어 하란으로 이주하여 계속 그곳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치안 유지가 잘 되지 않았던 고대 사회는 오늘날보다 친족의 중요성이 더 컸다따라서 친족이 많은 자는 유력한 자로 여겨졌으며특별한 일이 없는 한 친족은 모여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친척 뿐만 아니라 보다 가까운 혈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집조차 떠나라고 명령하신다.

이것은 하느님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큰 희생의 요구이다.

 

이제 하느님꼐서는 '고향'이라는 넓은 영역에서 '친족'이라는 중간 영역으로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고 너의 아버지의 집으로부터'에 해당하는 '우밉베트 아비카'(umibbeth abika) 즉 가장 작은 영역으로아브람이 떠나야 할 곳을 점점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아브람은 그의 고향즉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을 떠나는 지역적 이동을 해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친족을 떠나는 공동체로부터의 이동을 해야만 하고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마저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브람에게 주어진 부르심의 내용은 당시 친지와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있었던 고대 유목민에게 있어서는 결코 따르기에 쉬운 것이 아니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사실에 대해 "믿음으로써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히브11,8)라고 계시하고 있다.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여기서 '너에게 보여줄'로 번역된 '아르에카'(areka)는 '라아'(raah; '보다') 동사의 사역형 미완료형에 2인칭 어미가 붙은 형태로서 '내가 너로 하여금 보게 할혹은 '내가 너에게 보여줄'이라는 뜻이다따라서 아직 아브람에게는 구체적인 목적지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본문에서 아브람이 가야할 곳의 지명이 막연하게 하느님께서 보여주실 '그 땅'('하아레츠'; haarets)으로만 표기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셨으나 실상 그가 가야할 곳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지가 이미 선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하아레츠'(haarets)라는 '그 땅'에 붙은 정관사 ''(ha; '')에 의해서 확인된다즉 '어떤 땅'이 아니라 바로 '그 땅가나안을 하느님께서는 생각하시고 아브람에게 명령하시고 계신 것이다.

아브람이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하느님의 확신에 찬 명령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2020년 3월 8일 사순 제2주일

리스도와 짝하여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들어가야지요.

 

 제2독서 묵상 (2티모1,9-10)

9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구원은 선행 행실로 받는 것도 아니고 악한 행실 때문에 못 받는 것도 아닙니다구원은 하느님의 뜻에 따른 은총이라 하십니다하느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에페3,7)

 

9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창조 이전에 이미 그리스로를 통한 구원을 예비하셨습니다그 의미는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 열심히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는 뜻입니다,

 

(에페1,4-5)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인간의 그 자기 의로움이 아닌 흠도 티도 없는 그리스도의 피 곧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그 피로 씻겨야 흠 없는 의인이 됩니다.

 

(로마2,13 3,21 24-25) 13 율법을 듣는 이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가 아니라율법을 실천하는 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성경이)증언하는 것입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10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죄의 삯이 죽음입니다예수님께서 그 죗값의 죽음을 십자가의 대속그 당신의 죽음으로 폐지하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의 그 십자가로 영원한 죽음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그 소식이 복음생명(구원)의 말씀입니다.

 

(로마6,23)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하느님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로마5,21) 이는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통해 하느님의 은사은총인 영원한 생명을곧 십자가의 대속을 깨닫게 되었고 박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섬기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예수님 안에있는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의로움을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하느님 나라의 의로움 그 당신의 뜻창조 이전에 예비하셨던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진리로 받아들여 그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하늘의 의로움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길그 의로움은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구원의 진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사64,4-5) 4 당신께서는 의로운 일을 즐겨 하는 이들을, *당신의 길을 걸으며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그러나 저희는 죄를 지었고 당신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당신의 길 위에서 저희가 늘 구원을 받았건만 이제 저희는 모두 부정한 자처럼 되었고 저희의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들도 모두 개짐(똥걸래)과 같습니다저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어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성경 말씀을 참 진리의 하느님의 길십자가의 대속 그 복음을 진리로 알아먹고 마셔야 창조 이전에 예비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나라에 들어갑니다.

♡ 아멘 -*^^*- 

 

 

 

    사순 제2주일 복음 (마태17,1~9)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해졌다." (2)

"He was transfigured before them, his face shone like the sun and his clothes became white as light."

 

여기서 '모습이 변하셨는데'로 번역된 '메타모르포오'(metamorphoo)는 '~속에','~와 더불어'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메타'(meta)와 '형성하다', '모습을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모르포오'(morphoo)가 결합된 합성어로 '모습이 바뀌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모르포오'의 명사형이며 '모습'(마르16,12; form)으로 번역되는 '모르페'(morphe)는 단순히 외형적인 '모습'(필리2,7)을 가리키는 '스케마'(schema)와는 구별되는 단어로서 내면으로부터 진행되는 영적인 변화(2코린3,18; 로마12,2)뿐 아니라 외적으로 나타나도록 내적 성질이 변화되는 것까지 나타내는 단어이다(탈출34,29).

 

이런 것을 종합할 때비록 외형적으로는 불완전한 육신을 입으셨으나 내면적으로는 전혀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이때 그 죄없는 내면의 거룩한 본질적 영광이 외부로까지 드러났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야말로 전혀 죄의 오염됨이 없는 거룩한 신적(神的본질을 지니신 분이시며모든 이들이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야 되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또한 '그들 앞에서'변하셨다는 것은 이 사건이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배려였음을 알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가 메시아이심을 확신하도록또한 확신가운데 제자의 길을 걷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다이들은 후에 자신이 이때 보았던 예수님의 영광이 강생(육화; Incarnatio)이전에 그가 가지셨던 신적 영광임을 알게 되었다(요한 1,14; 17,5; 필리2,6~7).

 

그 다음 예수님께로부터 나온 영광의 광채를 생생히 느낄 수 있게 묘사하였다즉 '태양'(hellios; 헬리오스)과도 같은 강렬한 빛이 얼굴에서 빛나며몸 전체에서 나옴으로 그 옷을 투과하여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거룩한 신성(神性)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만일 ''(헬리오스)와 ''(포스; phos)보다 더 밝은 대상이 있었다면복음서 저자들은 그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루카는 그 의복이 희어져 광채가 난 것으로(루카 9,29), 마르코는 그 옷이 광채가 나와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더 이상 희게 할 수 없을 만큼그토록 새하얗게 빛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마르9,3).

예수님의 광채는 모세의 얼굴에서 빛났던 광채와 비교할 때 그 정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탈출34,29~35).

 

모세는 얼굴에서 광채가 났었으나 이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가까이 뵘으로써 얼굴에 투영된 것에 불과한 것으로서 얼굴을 수건으로 덮었을 때 그 빛은 가리워졌다.

그러나 에수님의 광채는 예수님의 몸 자체에서 빛났던 영광의 광채로서 두터운 겉옷을 투과할 뿐 아니라 투과한 그 빛이 겉옷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새하얗게 보이게 할 정도로 강렬하였다.

 

그런데루카 복음의 병행 구절은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된 시기가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였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루카9,29). 루카가 특별히 이러한 사실을 기록한 것은 마태오나 마르코가 타볼산에서 신적(神的)인 모습을 나타내신 구체적인 이유에 촛점을 맞춘 것에 비해루카는 예수님께서 완전한 신()이시자 사람으로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되심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추정된다.

 

루카는 다른 공관 복음에 비해 기도의 신학을 전개한다예수님께서 타볼산에 오르신 것도 기도하시는 데 목적이 있고 (went up the mountain to pray), 거룩한 변모도 기도하시는 중에 (While he was praying his face changed in appearance and his clothing became dazzling white)이루어짐을 계시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심을 드러내시는 동시에우리 자신도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고거룩하신 하느님의 신적 본성에 참여하길 원한다면기도하라는 강력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느님과 일치하고 친교를 나누며 초자연적 사랑과 은총과 빛을 받아 하느님처럼 거룩하게 되는 길이 기도 뿐이며우리도 예수님처럼 죄없는 상태에서 기도할 때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시요 전구자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가 성부 하느님께 전달되고동시에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내려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우리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시고 목적이신 하느님을 공경하고 섬기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이 땅에서 성부 하느님을 공경하고 섬기는 방법이 무엇인가기도 밖에 더 있는가요한복음 4장 24절에는 영이신 하느님을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된다고 계시되어 있다.

그래서 오상의 성(비오 사제는 억지로라도마지못해서라도의지적으로 기도하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가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해야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 땅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유일한 방법이며스스로의 힘으로 자력 구원이 불가능한 인간이 대죄가 없는 은총 지위에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초자연적 사랑(은총)을 받지 못하면인간 본성(本性)을 초월하는 초성(超性)생활이 불가능하고 구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대의 많은 크리스챤들은 기도도 하지 않고 성경도 보지 않으며겨우 주일 미사만 간신히 형식적으로 지킨다.

 

이 시대는 너무나 초자연(超自然)과 영적(靈的)인 세계와 차원을 고의적으로 부인하고심판과 영원한 생명(복락)과 지옥벌을 믿지 않으며언젠가 없어질 현세와 육()의 사정에만 매몰되어 사는 이들이 너무나 많기에 하느님께서는 기도를 질적(質的)으로 뿐만 아니라 양적(量的)으로도 많이 바치시길 원하신다.

구원받고 싶다면첫째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하고둘째로 반드시 기도해야만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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