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중운동 서명

생명에 대한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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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Leinad] 쪽지 캡슐

1999-03-04 ㅣ No.55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시고,

모든 피조물에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거부하고 생명의 소중한 의미를 망각한 채

죄를 짓고 스스로 죽음의 나락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씻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찾아주시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마저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목숨을 넘어서는

생명의 큰 가치를 다시 우리에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살리시는 하느님입니다.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해내시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질 때,

우리들의 죽음은 종말이 아닌 생명의 새로운 단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죽음은 영원한 종말일 뿐입니다.

 

사형은 선의 승리와 악의 패배가 아닙니다.

한 개인에 대한 완전한 포기, 악의 최종적 승리일 뿐입니다.

그 당사자가 더 이상 생명에 다가설 수 없도록

완전히 기회를 박탈해 버리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동이 때에 따라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원죄를 안고 태어난 인간이기에

완전히 선한 사람도, 완전히 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원죄가 나 자신으로부터 기인한 죄가 아니듯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많은 죄악들도

온전히 나 자신 속에서 싹터나온 나만의 죄악은 아닙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이 시대의 죄악이며,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책임져야 할 죄악입니다.

 

모두의 책임을 뒤집어 쓴 한 개인의 죽음,

그러하기에 사형은 또 다른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세상의 죄를 대신하는 속죄의 죽음입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이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징벌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경각심입니다.

사형수는 단지 다른 이들의 경각심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형은 정의의 집행일 수 없으며,

단지 지배와 군림의 상징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법은 세상의 법과 다릅니다.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의 죽음으로써 세상의 권력을 꺾으시고,

사랑과 포용의 힘으로 지배와 군림이라는 세상의 악을 누르십니다.

 

글의 마지막에서 고백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 주님의 기도를 그렇게 많이 읊조려 보았어도

여전히 잘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입니다.

주님의 기도에 있는 여러 가지 청원들 속에

단 하나 끼어있는 우리들 자신에 대한 요구이지만,

어쩌면 그것이 그렇게도 힘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공동체의 삶 속에 항상 함께하시는 성령님께서

함께 용서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길로 끊임없이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어

모두가 함께 하루 빨리 하느님 나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대전에서, 김민수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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