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 - 탈출기 [성경공부_완고하게함] <홀연중16월1독서> 1032_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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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232.2.*]

2012-10-23 ㅣ No.1277


질문:

제가 아는 하느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시는 분입니다.

근데 왜 탈출기의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시나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구원 사업에 필요하시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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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찬미 예수님

1. 유관 기초 문헌들에 대한 조사

1-1.
우선적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새 번역 성경"의 구약 성경 본문 중에서, "마음을 완고하게" 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절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약 15개의 절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 그리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였다" 라는 표현에 대응하는 표현이, 각각 RSV(Revised Standard Version)에서는  "hardened the heart" 이고 그리고 NAB(New American Bible)에서는 "had made obstinate" 임은, 예를 들어,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가톨릭 교회 전례력에 있어 홀수해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제1독서(탈출기 14,5-18)의 RSVCE의 본문 제8절과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NAB의 해당 본문을 비교/검토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두 표현이 등가의 번역 표현들임은, 예를 들어, NAB 본문 및 각주들에 대한 다음의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용어 색인 정보를 들여다 봄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FAG.HTM

    6 obstinacy
   19 obstinate
    2 obstinately

즉, 다음은, 탈출기 4,21에 대한 NAB의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21] Make him obstinate: literally, "harden his heart." God permitted Pharaoh to be stubborn in his opposition to the departure of the Israelites. Cf Romans 9:17, 18.

1-3. 그리고 다음의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용어 색인 정보에 의하면, "obstinate"라는 단어가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2089항에서 단 두 번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FAG.HTM

    2 obstinate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_P7C.HTM

CCC 2089 Incredulity is the neglect of revealed truth or the willful refusal to assent to it. "Heresy is the obstinate post-baptismal denial of some truth which must be believed with divine and catholic faith, or it is likewise an obstinate doubt concerning the same; apostasy is the total repudiation of the Christian faith; schism is the refusal of submission to the Roman Pontiff or of communion with the members of the Church subject to him."

게시자 주: 위의 CCC 제2089항에서 주어진 "incredulity" 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에 의하면, "incredulity(무시/거절)"가, 여기를 클릭하면 그 정의(definition)를 읽을 수 있는, "unbelief(불신/회의)"에 포함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히 위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089항에서, 이단(heresy)에 대하여 정의할 때에 "obstinate(완고한)"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가진 형용사를 두 번씩이나 사용하고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2. (질문에 대한 답변 시작)

+ 찬미 예수님

2-1. 사람의 "자유 의지"를 말씀하셨는데, 바로 이 "자유 의지"와 관련하여,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든다"는 번역 표현의 신학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신학 대전, Ia IIae, q79, 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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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른 분의 답글:

이집트에 재앙이 내려질 때마다, 야훼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7,3; 9,12; 10,1.27; 14,4.8.17)하셨다는 말이 반복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게된다. 하느님이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면 왜 그를 벌하시는가? 정의롭지 못한 하느님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느님은 인간을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만일 누가 그 자유를 그릇되이 사용하여 악을 거듭 행한다면 갈수록 그의 마음은 완고해진다. 이렇게 마음이 굳어지는 것을 막지 않고 그대로 두셨다는 의미에서 ‘하느님이 고집을 부리게 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이다.(손희송 신부, 주님이 쓰시겠답니다, 55-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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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일 누가 그 자유를 그릇되이 사용하여 악을 거듭 행한다면 갈수록 그의 마음은 완고해진다. 이렇게 마음이 굳어지는 것을 막지 않고 그대로 두셨다는 의미에서 ‘하느님이 고집을 부리게 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이다.(손희송 신부, 주님이 쓰시겠답니다, 55-56쪽)]

<----- + 찬미 예수님! 제가 볼 때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Ia IIae, q79, a3" 에 근거하고 있는, 손희송 신부님의 가르침에 주목하도록 하십시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제2-4항에 있습니다.

2-3.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악의에 기인하는 성령 하느님에 대한 경멸의 죄""성령 모독죄"에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한 개가 "심장(heart)의 굳어짐" [주: "heart""마음"으로 번역한 것은 번역 미숙/오류입니다], 즉 "완고함(obstinacy)" 입니다.

"완고함" 이라는 용어의 신학적 정의(definition)는,

여기를 클릭한 후에, <----- 필독 권유

제4항을 읽도록 하십시오.

2-4. 하느님께서 "완고함" 혹은 "심장(heart)의 굳어짐"원인(cause)이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78.htm [신학대전여행, Ia IIae q79 죄의 외부적 원인들]

(발췌 시작)
3. God is called the cause of spiritual blindness and of hardness of heart, in the sense that he withdraws or withholds his grace from those in whom he finds an obstacle or block to the entry and effectiveness of such grace.

3. 하느님은, 당신께서, 당신의 은총을, 그들에게서 당신께서 그러한 은총의 들어감 혹은 은총의 효능에 대한 어떤 장애물 혹은 방해물을 발견하는 자들로부터, 물러나게 하거나(withdraw) 혹은 보류한다(withhold)는 의미에 있어영적 눈이 먼 상태(spiritual blindness)와 심장의 굳은 상태[hardness of heart, 심장의 완고함]의 원인(cause)이라고 불리십니다.
(이상, 발췌 끝).

2-5. (이 글의 결론)

따라서, 탈출기의 여러 구절들에서

"하느님께서 파로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신다" 함은,

다름이 아니라,

"파라오 안에서 은총의 들어감 혹은 은총의 효능에 대한 어떤 장애물 혹은 방해물을 발견한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을 파라오로부터 물러나게 하거나 혹은 보류하신다"

는 뜻입니다.

이것을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i) 파라오 안에서, 당신의 은총의 들어감 혹은 은총의 효능에 대한 장애물 혹은 방해물을, 즉 모세가 전달해 주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떠나게 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파라오가 반복적으로 자신의 자유의지와 함께 불순종하면서(disobedient) 거부하는(refuse)/거절하는(reject) 것을 발견한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을 파라오로부터 물러나게 하거나 혹은 보류하신 결과, 

(ii) 파라오의 심장(본심, heart)은 굳어지고 또 영적으로 눈이 멀어져, 차츰 중대한 악의(grevious malice)명백한 오류(flagrant error)에 빠지게 되어, 그리하여 드디어 이들의 탈출을 무력을 동원하여서까지 막으려고 하다가, 결국에

(iii)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게시자 주: 여기까지 읽고서,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한, 탈출기 7,3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을 읽으면, 이 주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발췌 시작)
파라오의 '완고함'은 앞으로 여러 번에 걸쳐 내려지는 '이집트의 재앙'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되풀이 된다. 사제계 본문에서 이 완고함의 원인은 주님이시다. 하느님의 절대적인 힘을 강조하는 이 신학적 소재는 재앙이 끝나는 11,10과 14,4에서 홍해를 건널 때 다시 등장한다.
(이상, 발췌 끝)
-----

(이 글의 결론)
전해 들은 "하느님의 말씀"
, 계속하여, 불순종과 함께, 의도적(willful) 거부/거절하는 자, 즉 계속하여 "무시/거절(incredulous)하는" 그리스도교 신자[주: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089항의 첫 번째 문장을 참조하라]는,

(i) 하느님의 은총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없게 되어,

(ii) 점차 심장(heart)은 굳어지고(즉, 완고해지고) 또 영적으로 눈이 멀어져,

(iii) 그리하여 점차 중대한 악의(grievous malice)명백한 오류(flagrant error)에 빠지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안으로 항상 잘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온 은총이 그 효능을 항상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혹시라도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는, 예를 들어, 걸림돌, 나쁜 표양(scandal, 스캔들) 등과 같은, 장애물 혹은 방해물을 제거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일상의 신앙 생활 전반에 걸쳐 대단히 중요함을,

이번의 글을 통하여 확인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결론 끝)

게시자 주:
이 글은, 탈출기에 있는 자구적 어의(의미)(literal sense)의 해당 구절들 위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에 체계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교의 신학(dogmatic theology) 및 윤리 신학(moral theology) 분야의 가르침들을 단계적으로 적용하여, 영성적 어의(spiritual sense)에 포함되는, 윤리적 어의(의미)(moral sense, 의미)신비적/종말론적 어의(의미)(anagogical/eschatological sense)를 이성적으로 추론한(reasoning) 글이었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바와 같은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 또한 따르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해석법으로 알고 있으며, 특히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9-119항들에서 분명하게 권고되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말씀드린 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제4항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6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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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에 소요된 시간: 약8시간 (자료 조사 및 우리말 번역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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