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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과 평화 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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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동성당 [chang4] 쪽지 캡슐

2012-01-21 ㅣ No.5165

제11-1과 평화 증진

 

♥ 말씀과 함께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 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 에페2,14 -

 

♥ 기도 : 오소서, 성령님, 저희 가운데 오소서 해돋이부터 해넘이까지 저희 마음을 다스리시니 온 세상이 주님의 그늘 안에서 활동하고 주님 손길 안에서 쉼을 얻나이다. 오소서, 성령님. 저희 가운데 오소서. 성령께서는 저희를 사랑으로 묶어 주시고 그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시니 저희와 함께 걸으시고 저희와 함께 나누시며 저희와 함께 노래하여 주소서. 아멘.

 

♥ 사례 :

평화를 위한 사도, 교황 요한 23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남겨 주셨고, 평화를 가져 오셨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들 마음에서 제거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모든 인간을 진리와 정의와 형제적 사랑의 증인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의 의지가 상호 사랑의 고리를 깨는 장벽들을 극복하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며, 다른 이들이 끼친 손해를 용서하도록 마음의 불을 밝혀 주실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힘과 은혜로 지상의 모든 사람은 다시 형제들로 화해할 것이며 그들 안에 그토록 갈망하는 평화가 꽃피게 되고, 그 평화는 항상 인간들에 마음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지상의 평화 170-171항) "요한 23세 교황께서는 평화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23세께서는 평화의 필수 조건들을 인간정신의 네 가지 요구인 진리, 정의, 사랑, 자유로 규정하셨습니다.”(요한바오로 2세, 2003년 세 평화의 날 담화문). 오늘날 평화는 사람들이 가장 갈구하는 것이면서도 가장 멀고 먼 과제처럼 보인다.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 곁을 떠나면서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것이기도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희생하심으로써 다시 인간에게 회복 시켜 주신 선물이기도 하다. 일흔일곱이라는 고령의 나이에 교황으로 선출된 요한23세는 회칙 [지상의 평화]를 통하여 이른바 '평화의 네 기둥‘ 을 제시하며 이를 토대로 모든 민족들의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인간의 현실을 볼 때, 분명히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 인류의 평화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고 확신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평화가 결코 법적, 정치적, 경제적인 면의 구조나 장치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의 무수한 평화의 행위로 축적된 지혜와 경험에서 온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평화의 하느님 그런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요한 23세 교황의 가르침은 평화가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염원인 오늘날 더욱더 생생한 명력을 갖고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1901년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신학생 3명이 로마의 아폴레나레 신학교에서 공부하려고 봇짐을 들고 로마 역에 도착하였다. "안젤로 론칼리라는 학생인가요? 따라오십시오. 방을 안내해 드리죠." 안젤로가 간 곳은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한 골방이었다. 손바닥만 한 창이 나 있었는데 그것조차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여기서는 공기와 햇빛도 배급제인가보죠?" 이 재기 발랄한 론칼리는 마침내 사제가 되어 바티칸 대성전 성 베드로 무덤 곁에서 첫 미사를 드리고 이렇게 일기에 썼다. "나는 존경을 사려고 사제가 된 것이 아니다. 돈을 벌거나 안락과 명성과 쾌락 때문도 아니다. 그랬다가는 불행해지고 말 것이다. 나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자 사제가 된 것이다. "

1904년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동시에 사제로 수품된 그는 이듬해 베르가모의 데데스키 주교의 비서로 임명되어 1914년 주교가 사망할 때까지 머물렀다. 그리고 1915년 5월부터 1918년까지는 군복무를 하게 된다. 1921년에 베네딕토 15세 교황은 그를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의 이탈리아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이후 교황청 외교관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25년 아레오폴리스 명의 주교로 임명되어 주교품을 받아 불가리아 감목 대리로 파견되었다.1935년 대주교가 된 뒤 1944년까지 그리스와 터키 주재 교황 사절로 활동하고 그 뒤에는 프랑스 주재 교황 대사로 활동하면서 1952년부터는 교황청의 유네스코 파견 상임 참관인으로도 활동하였다.1953년에는 추기경으로 서임되어 베네치아총대주교로 임명되었다.

추기경으로 서임된 론칼리는 첫 부임지인 베네치아에 도착하자마자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의 집을 찾아가고, 고아원과 학교와 병원을 방문하였다. 발걸음을 멈추어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노 젖는 뱃사공들의 뚝심을 칭찬하고, 바구니를 이고 모퉁이를 돌아오는 늙은 아낙네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한편 추기경으로는 처음으로 베네치아 항구에서 가장 큰 노동자 집결지인 마르게라와 메스트레논을 방문하였다. 추기경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요즘 세상은 뭔가 질식할 듯한 공기에 짓눌려 있습니다. 그것을 정화하십시오.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으십시오."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 론칼리 추기경이 1958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요한교황은 시대의 징표를 읽는 눈이 밝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태도의 변화였다. 비오 12세 교황이 온 이탈리아에 내렸던 엄명이 아직까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때였다. 고백소에서 사제는 모든 고백자에게 공산당에 가담 하였는지 물어보아야 했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사죄를 거절하여야 했던 것이다. 요한 23세 교황은 나중에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제시하였듯이, 마르크스의 유물론 이데올로기가 오류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오류를 저지른 인간 또한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흠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존중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뜻밖의 행동을 취하였다. 모스크바로 갈 예정이었던 이탈리아 공산당 서기장 토글리아티에게 사람을 보내어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에게 권하여 교황인 자기에게 80회 생일 축전을 보내게 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이 부탁은 즉시 이루어졌고, 세계는 깜짝 놀랐다. 요한교황은 세계적인 갈등과 냉전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키려면 뭔가 교회의 변화가 필요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결국 요한교황은 1959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을 공고하였다. 이 공의회는 갈라져 나간 공동체들과 일치를 모색하려는 것으로, "성령의 갑작스런 이끄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현대 세계에 교회가 적응할 수 있도록 쇄신되어야함을 역설하였다. 교리 논쟁보다는 사목적 대안을 마련하려는 것이었는데, 공의회 개회사에서 교황은 "교회의 가르침이란 박물관의 보물처럼 보존하여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탐구하고 해석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이제 교회는 교사로서 가르치고 단죄하기보다 측은지심을 갖고 어머니다운모습을 가져야한다고 했다. 이제 모든 신자가 일치하고, 다른 모든 교회와 일치하고, 모든 종교와 일치하려는 희망을 가져야 했다. 심한 폭우가 쏟아지던 날, "예수님의 저 넓게 벌려진 팔이 내 교황직의 이상이었소. 겸손하고 소박한 교황직 말이오. 그러나 나는 내가 해 온 것으로 만족하오. 모든 이를 사랑하려고 힘썼고 모두에게 잘해 주려고 힘썼소."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신의 고통을 어린이와 병자와 노동자들을 위하여 바친 채, 1963년 6월 3일 19시 49분에 선종하였다. 한상봉, [지상의 몸 푼 말씀2]

 

♥ 말씀 :

"하느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나는 듣고자 하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당신께 충실한 이들에게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그들은 다시 우매함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시편 85[84],9).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평화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시편 저자는 이러한 말씀을 듣는다.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리라”(시편 85[84],11).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평화'(에페2,14)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증오의 벽을 허무셨고, 그들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셨다(에페 2,14-16참조).

 

♥ 우리의 실천

우리 일상에 스며든 폭력성을 없애고 화해와 용서를 실천하는 가운데 갈라진 형제와 남북 간의 일치와 통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다. 개인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 한다

□ 아침마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천천히 읽고 묵상한다.

□ 걸음걸이를 다소곳이 하여 거칠어지기 쉬운 마음을 다스린다.

□ 아이들에게 전쟁놀이나 무기류의 장난감을 사 주지 않는다.

□ 어떠한 명분을 가진 전쟁이든지 지지하지 않는다.

□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수시로 양심 성찰을 한다.

□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될 수 있는 대로 완력을 쓰지 않는다.

□ 시시때때로 나 자신과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화살기도를 바친다.

□ 가엾은 사람을 보면 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

□ 계층과 이념을 넘어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 북한 동포와 어린이들을 위한 모금 운동에 참여한다.

□ 명령-복종 등 내 생활 속에 군사 문화가 남아 있는지 성찰한다.

□ 아이들을 평화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시킨다.

□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부부는 한번쯤 메리지 엔카운트(ME)에 참여한다.

□ 아이고 어른이고 격투나 전쟁 관련 컴퓨터 게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 기회가 닿는 대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에 참석한다.

 

♥ 마무리 기도 : 하늘과 땅과 그 안에 깃들어 사는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 하느님, 저희에게 허락하신 생명과 은혜로이 채워 주신 소유와 저희가 서로 나누는 사랑을 축복하소서.

세상에 더 이상 굶주림이 없게 하시고 고통과 슬픔으로 아파하는 이웃이 없게 하시며 저희의 부질없는 욕심으로 파괴되는 자연이 없게 하소서. 사람들 사이에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온 세상을 평화롭게 하시고 그 안에서 저희가 주님을 찬양하며 일상을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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