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7월 순교자 기원 미사 루카 9,23-26; ’18/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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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07-07 ㅣ No.3585

7월 순교자 기원 미사 루카 9,23-26; ’18/07/07

 

 

 

오늘 7월 첫 토요일 기원미사는순교자 기원미사로 드립니다. 이번 7 20일에는 우리 본당에서 기념하고 있는 성 원귀임 마리아님께서 서소문 밖 처형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성녀가 탄신하신 날이나 장소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순교하신 일자와 장소는 비교적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성녀가 순교의 월계관을 쓰고 하늘나라에서 탄신하게 된 이 서소문 순교 성지와 순교자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서소문 밖은 조선시대 임금의 궁성이 있는 한양의 공식 처형지였습니다. 유교 경전인 오경 중 하나인 "예기(禮記)"에서 "형장은 사직단 우측에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따라, 경복궁에서 바라볼 때 사직단 우측문밖이 서소문이었기 때문에 광희문 즉 남소문과 함께 도성 안의 시신을 밖으로 운반할 수 있는 시구문 역할을 했습니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 이래 서소문 밖은 가장 중요한 신앙의 증거터인 순교터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서소문 밖 순교자들은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끌려가 1차로 문초를 당하거나 형벌을 받고 형조나 의금부로 이송되어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 다음 지금의 광화문 사거리 동쪽 서린동에 있던 형조의 옥인 전옥서에 갇혀 있다가 사령들에 의해 끌려 나와 형장으로 향했습니다. 달레 신부님(Claude Dharles Daller; 1829~1878)의 『한국 천주교회사』에서는 서소문 밖 처형장에서 처형당하신 순교자들의 모습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처형이 결정된 신자들은 옥에서 끌려 나와 수레 한가운데 세워진 십자가에 매달렸다. 십자가의 높이는 여섯 자 정도로, 신자들은 양팔과 머리칼만 잡아 매인 채 발은 발판 위에 놓여지게 된다. 수레가 광화문통을 옆으로 지나 서소문에 이르면 그 다음은 가파른 비탈길이다. 이때 사령들은 신자의 발이 놓여 있는 발판을 빼내고 소를 채찍질하여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달리게 하였다. 수레는 무섭게 흔들리고 신자의 몸은 머리칼과 팔만이 십자가에 매달린 채 고통을 받게 된다. 형장에 이르면 옷을 벗기고 꿇어 앉힌 뒤 턱밑에 나무토막을 받쳐 놓고 목을 잘랐다."

 

서소문 밖에서의 순교사는 대략 세 단계로 나누어집니다.

첫 단계는 신유박해 때, 정조 사후 어린 순조의 수렴청정을 한 정순왕후 김씨와 벽파가 남인 시파를 배척하기 위해 일으킨 최초의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였습니다. 대부분의 초기 교회 지도자들이 순교하고, 살아남은 신도들은 심산유곡으로 숨어들어 천주교 신앙의 전국적 확산과 서민 사회롤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1801 2 26일 첫 순교자가 서소문 밖에서 탄생하였습니다. 한국 교회의 반석인 이승훈 베드로와 명도회의 초대 회장인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등 6명이 순교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뒤에는 여회장 강완숙 골롬바 등 남녀 신자 9명이 순교하였고, 10월과 11월에는 '백서' 사건과 관련하여 황사영 알렉시오, 현계흠 플로로, 황심 토마스 등 5명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서소문 밖 만초천의 백사장에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진 뒤에야 신유박해는 막을 내렸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기해박해 때로, 시파인 안동 김씨와 벽파인 풍양 조씨 사이의 당파 갈등이 박해의 직접적인 원인이며 1839년 한해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 박해로 참수 순교한 신자는 전국적으로 70, 옥중에서 죽은 신자는 60여명에 이릅니다. 기해박해 순교자 70위가 시성(諡聖)되었습니다. 서소문 순교 성지에서는 1839 4 12일 성 남명혁 다미아노 등 5명과 오랫동안 옥에 갇혀 있던 성 김아기 아가타 등 4명이 참수형을 받았습니다. 이어 6월 이후에도 계속 순교자가 탄생하였으며, 720일 우리 본당 출신이신 성 원귀임 마리아를 비롯하여 성 이광렬 요한, 성 김장금 안나, 성 김노사 로사, 성 이매임 데레사, 성 이영희 막달레나, 성 김성임 마르타 및 성 김누시아 루치아 총 8분이 순교하셨습니다. 8 15일에는 성 정하상 바오로와 유진길 아우구스티노님이 이곳에서 참수되었습니다. 이때 조선 교회의 지도자요 밀사 역할을 하던 정하상은 미리 체포될 것을 예상하고 상재상서’(上帝相書)를 작성하여 품 안에 지니고 있었는데, 이를 조정 관리들이 발견해 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천주교가 진교(眞敎)'라는 호교론이 알려지게 되었으나, 박해로 눈이 먼 그들은 이를 무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기해박해 때의 처형은 11 24일에 성 정정혜 엘리사벳 등 7명이 순교의 화관을 받은 뒤에야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처형은 설날 대목장을 처형으로 망칠 수 없다는 칠패시장 상인의 하소연으로 당고개에서 시행되었습니다.

 

세 번째 병인박해 때, 18661월 중국에서 서양인들을 사형에 처한다는 사신들의 보고를 듣고, 집권 안동 김씨 세력이 서양인과 천주교도들을 처형하라는 압박을 대원군에게 가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대표적인 인물은 남종삼 성인과 전장운 성인 등입니다. 전국적으로 가해진 한국 천주교 역사상 최대의 박해임에도 이곳에서 순교한 신자가 적은 이유는,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신자들을 체포하거나 투옥하고 처형했기 때문이며, 병인양요의 영향으로 한양의 천주교도 처형이 지금의 절두산인 잠두봉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기록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이름 모를 숨은 꽃’(은화)들이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의 영광을 바쳤습니다.

 

서소문 순교성지는 이상과 같이 1801년 신유박해와 1839년 기해박해,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앙인들이 온갖 고통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희광이의 칼 아래 스러져가며 하느님을 증언한 거룩한 땅입니다. 1984 5 6일 시성된 103위의 성인 중 44분이 서소문에서 생명을 바치며 하느님을 증언했으며, 신유박해 때 순교하신 스물다섯 분의 순교자들과 1819년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하신 것으로 추정되는 조숙 베드로, 권천례 데레사 동정 순교자 부부가 복자로 시복되신 한국 천주교회 최대의 순교 성지입니다.

 

새남터가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비롯한 성직자들의 순교터였다면 서소문 순교성지는 주님과 교회를 위해 온 힘을 다하고 끝내 목숨까지 바친 평신도들의 용맹과 신앙의 결단이 찬연히 빛나는 순교터입니다.

 

우리는 붉은 순교와 백색의 순교와 녹색 순교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세계 교회사에서 바라 보듯이, 주님의 뒤를 따라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 피로 신앙을 증거했던 붉은 순교 시대는 종교의 자유가 선언되면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면서 온 몸을 다 바쳐 자신을 봉헌하던 백색의 순교가 이어졌습니다. 세상을 떠나 은둔하고 순례하면서 주님을 따르고자 했던 백색의 순교 시대에는 수많은 기도자들과 영성가들 및 선교사들이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그 후 주님의 복음을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면서, 평범한 일상에서 주님의 신비를 재현하고 주님의 나라를 이루는 녹색의 순교 시대가 펼쳐졌습니다.

 

오늘 우리 본당 관할지에서 사신 성녀 원귀임 마리아 탄신 200주년을 기념하면서, 주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을 우리 생명의 말씀으로 삼고 그 말씀을 실현하며 진리의 길을 걸어나감으로써, 오늘 이 시대에 순교정신을 되살려야 하겠습니다.

 

성녀라면 오늘 우리가 다니는 이 수색 성당에서 어떻게 기도했을까? 몇 시 미사를 드리며, 어디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어떤 기도를 바치셨을까?

 

성녀라면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동네에서 무엇을 하면서 사셨을까? 몇 시에 일어나 이웃 사람들과 무엇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셨을까? 누구를 방문하여, 누구와 함께 수다를 떨고, 누구와 함께 식사와 차를 마시며,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사셨을까?

 

오늘 내가 앞으로 200년 후에 성인 성녀가 되어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오늘 내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오늘 내가 최우선적으로 만나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해야 할 일은 무엇이어야 할지 생각해 보고 마침내 실현하며, 우리도 성인 성녀의 길을 한 걸음씩 걸어나갑시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지혜 3,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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