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림동약현성당 게시판

너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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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pious] 쪽지 캡슐

2003-05-17 ㅣ No.1385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위의 시인은 같은 시집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시로 연탄에 대한 애정을 뜨겁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학교에 가는 길에 가끔 연탄재를 보곤 합니다. 학교 근처의 어느 고기집에서 연탄에 고기를 구워먹게 하고 있어서 길가에 내버린 연탄재를 볼 수 있게 된것이지요.

아직도 연탄을 저렇게 쓰는 곳이 있구나 라는 단순한 발견에서부터 시작되 다 타버린 연탄재를 어떻게 처리할까라는 환경적인 고민과 함께 이렇게 시적인 사고로까지 연결되버린 고마운 경험이었습니다. 이젠 추억이 되버린 시꺼먼 연탄과 허연 연탄재.

 

그렇게 뜨겁게 타오르고, 산산이 부서져 뿌려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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