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천막편지-"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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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준 [praxis] 쪽지 캡슐

2009-07-07 ㅣ No.9877

신부님의 용산천막편지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루카 10, 36)

 

미안한 마음이 발걸음을 용산으로 향하게 한다. 나는 과연 이분들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 매일의 미사에서 이웃을 형제라고 부르면서 과연 얼마나 용산 참사로 희생된 분들을, 그 억울한 죽음에 통곡하는 유가족들을 형제로 생각하며 살았는가? 생각할수록 미안한 마음뿐이다. 죽어가는 이웃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 사제와 레위인의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닌가? 그저 하루 천막에서 묵을 뿐인데, 고맙다는 유가족들의 말씀에 미안함이 더 커진다. 잠깐 곁에 있어 드리는 것 외에, 같이 미사를 드리는 것 외에 해 드리는 것이 없어, 미안함이 부끄러움이 된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스승님,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한 돌들이고 얼마나 장엄한 건물들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 웅장한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마르 13, 1-2)

 

용산 참사현장 뒤에 높다란 빌딩이 사람이 죽어간 이곳을 궁상맞은 곳이라고 비웃듯 웅장하게 서있다. 권력과 자본은 서민들의 삶의 터전인 이곳을 ‘싸그리’ 짓뭉개버리고 화려한 자본의 성전을 지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가족들이 오순도순 가꾸던 소박한 꿈이 파괴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이라도 달라는 울부짖음은 콧방귀만 뀔 뿐이다. 제발 우리 소리에 듣는 시늉이라도 해 달라고 망루를 세우고 외치던 몸짓은 처절한 죽음으로 답할 뿐이다. 얼마나 더 높고, 얼마나 더 화려한 자본의 성전을 지으려고 이리도 모질게 구는 것일까? 자본의 화려함에 취한 이들에겐 하늘의 소리라는 백성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화려함에 취해 그 안의 사람을 보지 못하는 탐욕의 끝은 멸망뿐이라 경고하시는 예수님의 외침도 이들에게는 웃긴 소리일 뿐이다. 예루살렘을 보며 한탄하시던 예수님께서 지금 이 도시를 보면 뭐라고 하실까?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마태 23, 26)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며 재래시장을 찾고 떡볶이를 먹는다. 그런데 서민들이 죽어간 이 기막힌 참상에는 눈과 귀를 닫고 있다. 흐르라고 있는 강에 보를 막는단다. 그러면서 강 살리기라고 한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명박산성을 쌓고 광장을 경찰버스로 둘러싼다.

 

흘러야할 것이 막히고 소통이 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문제가 생긴다. 혈관이 줄어들어 피가 잘 통하지 않으면 언젠가 혈관이 터진다. 그런데 터지는 곳은 제일 약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결국 죽어가는 것은 힘없고 빽없는 이들. 작은 혈관이 터지기 시작하면 결국 온 몸이 마비되게 마련이다. 하느님과 사람이 통하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통하는 하느님 나라를 이루고자 하셨던 스승 예수께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을 벗이라 부르며 함께하셨던 이유, 그렇게 약한 자들이 죽어가는 곳에서는 하느님 나라가 결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리라.

 

‘개발’ 이라는 명목 하에 사람들이 죽었다. 개발이란 발전을 의미한다. 그런데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죽었다. 이게 발전인가? 천막에 용산구청장의 이름으로 보내온 계고장이 붙어 있다. 천막 등이 “주민 보행 불편 및 도시미관을 해치고 있으니” 철거하란다. ‘주민’ 바로 이곳에서 수십 년을 살아오다 쫓겨난 이들, 죽어간 이들, 가족의 죽음에 억장이 무너진 이들, 그래서 천막을 친 이들은, 그들을 위해 작은 천막을 친 이들은 ‘주민’에 포함이 안 되는 걸까? ‘도시미관’ 겉만 아름다우면 되는 건가? 사람이 죽어가든 말든.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 33)

 

권력과 거대 자본이 하는 일인데 어쩔 수 있냐고 말한다. 아무리 싸워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마귀 들렸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셨던 예수님께서, 사랑을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다고 말씀하신다. 당신이 세상을 이겼다고, 그러기에 용기를 내라고. 유가족 분들이 부디 용기 잃지 않으시길 기도한다.

 

 

 

 

 

 

천막기도에 동참하신 광주교구 신부님들. 왼쪽 위부터 장승용, 최종훈, 이요한, 안호석, 이준,

김태균, 홍진석, 이영선, 양요섭, 장승용, 김희성, 박홍기, 이건 신부님.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는 광주교구 신부님들.

 

 

광주교구 신부님들이 용산 4구역 곳곳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이곳은 지난 5월 29일 용역들이 미사를 집전 중이던 이강서 신부님을 끌어내 미사를 중단시키고 욕설과 협박을 일삼은 곳입니다.

 

 

 

학살의 진상도 책임자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공사가 강행되고 있습니다.

진실을 묻어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나승구, 문정현, 한지수 신부님. 한지수 신부님은 이날 신자들과 함께 참사 현장을 찾으셨습니다.

 

 

청주교구 오창성당 최인섭 신부님과 신자들 32명이 참사 현장을 둘러보았습니다.

 

 

분당의 한 시민이 월악산 황토밭 감자 두 박스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저녁식사 시간

 

 

까리따스 수녀회에서 세 분의 수녀님이 합동분향소를 찾아 기도를 올렸습니다.

 

 

의정부1동 성당 정석현 신부님과 신자들이 방문했습니다. 유가족들에게 쌀 30Kg도 전달하셨습니다.

 

 

한국순교복자수도회의 한 수녀님께서 과일과 수박 등 먹거리를 전달하셨습니다.

수박을 일일이 썰어오신 정성에 모두들 감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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