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동성당 게시판

"가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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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 [chohun] 쪽지 캡슐

1999-12-06 ㅣ No.246

I am available....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것을 안다.

 

내딴에는 곧게 자란다고 생각 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꼬여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것 없는 꽂이 피어도

 

그 꽂 보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 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걸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를께 있다면

 

내가 볼래 부족한 나무라는걸 안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부족한 내게 그것도 기쁨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가죽 나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 도종환의 ’가죽나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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