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성당 게시판

수색성당의 지나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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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경 [sapiencia] 쪽지 캡슐

2005-08-28 ㅣ No.2358

수색동천주교회

위치: 은평구 증산동 221-1

천주교 수색교회(주임신부님 유종만 바오로)의 역사는 1957년 1월 19일 행주본당의 주임신부였던 임충신(마티아)신부가 서대문구 은평출장소 관내 수색동 123-3번지(지금의 장로교회옆 자리)로 본당을 옮기고 수색본당으로 명칭을 변경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성당부지로 매입한 한옥이 여러채 였는데, 그 중 본채 한 채만 남겨두고 다 철거하였으며, 본채 내부를 수리하여 성전을 신설하였다.

 

매입한 부지는 424,6평, 건평 285평으로 성당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당시 관할은구역은 수색동, 증산동, 상암동, 신사동, 북가좌동, 남가좌동, 응암동 , 성산동 등 서울 지역과 덕은리, 향동리, 현천리, 능곡, 화전 등 경기지역의 일부였다.

 

 

행주에서 수색으로 본당을 이전 한 후 임충 신부님의 노력으로 1965년에는 신자수가 당시로는 큰 숫자인 1000여명에 이르렀다. 본당전교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수녀회의 홍바드리시아 수녀가 부임하였다.

 

 

행주성당은 수색동으로 옮겨 온 후 서울 교구에서 사목자의 발영을 내지 않음으로 자연히 공소로 격하되어 수색성당의 관할하에 놓이게 되었다.

 

 

수색성당의 관할 하의 공소는 행주공소와 고택골공소 두 곳이었다.

 

 

이후 계속하여 신자수가 급증하자 1968년에는 응암동성당을, 1971년에는 가좌동 성당을, 1983년에는 능곡성당을 1998년에는 신사동일부를 2000년에는 성산2동 성당을

 

분리시켰다.

 

 

 

 

제 12대 본당 주임신부였던 김윤상 신부는 새로 성전을 건립하고자 1970년 8월 모 학교 소유의 전답(대지 424.6평)을 매입 성전 착공 1년 후인 1971년 8월 12일에 대지 424.6평, 건평 232평의 단층 건물에 성모몽소승천 축일에 축성식을 올리고,  낙성식을 가졌다.

 

그리고 '예수성심' 주보로 개칭하였다.

 이후 지속적인 교세확장과 신자수 증가로 새 성전건립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김창훈바오로신부의 지휘아래 새성전건립에 착수하여 1990년 5월 26일 김수환추기경을 모시고 봉헌 미사를 가졌다.

 이로써 대지 425평에 건평 906평의 웅장한 선전을 갖게 되었다.

 

 이 밖에도 천주교 수색교회는 1871년 10월 성모회 발족을 시작으로 1974년 어머니성가대 발족, 1977년 울뜨레아회발족, 1982년 1월 정의의 거울 꾸리아, 1992년 10월 자모회 발족, 1996년 9월 천사의 모후 꾸리아 였다.

 2005년 1월 31일 현재 총 신자수는 5816명이고, 남자신자는 243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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