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

처음으로 연도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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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bkkim] 쪽지 캡슐

2000-02-11 ㅣ No.1180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오후가 되어서 포근한 햇살이 비추니 이제 겨울볕 보다는 봄볕에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춥다는 말을 많이도 했는데 이제 언제 그랬느냐는 듯 따뜻한 봄이 저만치 어디 쯤에서 천천히 오는 중이겠지요. 어제 저희 레지오 팀의 요한형제님이 연도에 참석하겠느냐고 연락을 주셨어요. 대흥동 본당으로 분가하기 전에 활동하던 신수동의 레지오 단장님의 부친께서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제가 냉담기간을 갖기 전에도 단체활동은 하지 않았기에 저로서는 일면식도 없었지만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라는 말에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서 다른 팀들의 연도가 끝나기를 한참이나 기다리다가 들어가서 좁은 방에 불편하게 앉아서 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애잔하면서도 절제된 듯 간결한 곡조를 따라서 기도하는 내내 제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손녀일 것으로 짐작되는 예닐곱살짜리 여자아이가 이미 익힌 모양인지 동요를 부르듯 목청껏 따라하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의 의미를 얼마나 깊이 알아서 기도문을 모두 느낄까 싶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밖에 없다는 듯 열심인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저라고 해서 돌아가신 영혼을 위해서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저 역시 그 영혼을 하느님께서 받아 주실 때에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알아 주시리라 믿을 뿐이겠지요. 제가 어릴 때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장례식 때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하느님를 만나게 되기 전이었던 그때는 부모님도 다른 가족들도 모두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셨지요. 하지만 어제 연도 때에는 얼마나 고생스럽고 멀고 추운 길을 갈지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뵈러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렇게 두려운 느낌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많은 영혼들이 땅에서의 가족들과의 끈을 놓고 하느님께 올라갈 터이고 누구나 맞이하게 될 순서이지요. 하지만 저는 다시 부질없는 것에 매달려 겸손함을 잊고 교만하게 지내게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도 드릴 때에 죽은 영혼들을 위하는 일은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제는 겸손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두서없는 장문을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김보경로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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