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성당 게시판

자유... 속박... 몸부림...

인쇄

글라라 [kbs001] 쪽지 캡슐

1999-11-05 ㅣ No.860

이번엔...

 

이외수님이 젊은 시절...

 

유신체제에서 격었던 얘기입니다...

 

추천 좀 해줘요잉~ 재밌으면...

 

^^;

 

 

 

스님과 학생과 군인과 노예와 죄수들은 머리를 짧게 자른다. 왜 그럴까.

 

자유를 속박하기 위해서다.

 

단발령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 뭐하는 사람인데 머리가 그 모양이야.

 

어느날 나는 거리에서 가위를 든 경찰관에게 적발되었다.

 

대학생 하나가 이미 그 경찰관의 가위에 머리를 삭발당했고 곁에서 그의

 

애인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어깨를 들먹거리며 울고 있었다.

 

경찰관의 가위가 내게는 총보다 잔인한 흉기처럼 보였다.

 

나는 머리를 자르기 위해 가위를 들이미는 경찰관의 손을 완강한 태도로

 

저지시켰다. 순간적으로 경찰관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깎으려는 쪽과 깢지 않으려는 쪽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동안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규정이 어떻게 됩니까.

 

내가 물었다.

 

옆머리는 귀를 덥지 말아야 되고 뒷머리는 상의 칼라를 덥지 말아야 되는거야.

 

당신은 확연히 규정위반이야.

 

경찰관의 대답이었다.

 

가위를 저한테 주십시오.

 

내가 말했다.

 

당신 손으로 직접 깎을 건가.

 

너무 저항이 강력했기 때문에 경찰관도 구경꾼들 앞에서 잠시 난처한 입장이었는데

 

본인의 손으로 깎겠다면 말리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가위가 내게로 내밀어지고 있었다.

 

옆머리는 귀를 덥지 말아야 한다니까 귀를 자르면 되고,

 

뒷머리는 상의 칼라를 덥지 말아야 한다니까 상의 칼라를 자르면 되겠지요.

 

이런 개떡 같은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아요.

 

그 가위 이리 주세요. 하지만 귀를 자르고 나면 내게 무슨 일을 저지르게 될지는

 

나 자신도 장담할 수 없어요.

 

나는 단호한 어조로 가위를 달라고 경찰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구경꾼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큰일을 낼 사람이로구만.

 

마음이 약한 경찰관인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대수롭지도 않은 일로 유혈사태가 발생해서 일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는지, 경찰관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더니 구경꾼들 사이를 비집고

 

황망히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머리를 길러서 특별히 이득 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장발은

 

예술가 티를 내기 위한 소치가 아니라 자연인이 되고 싶다는 일종의 표현이며,

 

지독한 가난 속에서 나를 지탱하는 의지의 표상이었다.

 

세수를 안하고 목욕을 안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거리잠을

 

많이 자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머리를 삭발할 때가 있다. 세수를 하고 목욕을 할 때가 있다.

 

바로 소설을 쓸 때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 식구들 이외에는 내가 삭발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나는 두문불출하고 누구와도 만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에 별로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소질이 없는 사람이 소질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쓰려면 당연히 다름 사람보다 몇 배나

 

많은 시간을 고통으로 뒤척여야 한다.

 

특히 나는 소설이 독자들의 머릿속에 어떤 의미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영혼에

 

어떤 울림을 남겨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도 쓸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가를 절감한다.

 

수시로 포기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만약 백발이 되어 기력이 떨어지면 성능 좋은 바리깡이나 하나 사들고 시골로 내려갈

 

생각이다. 내려가서 양지바른 마당에 의자를 놓고 동네 아이들의 머리나 깎아 줄

 

생각이다.

 

그러면 왠지 행복해 질 것 같다.

 

이외수 님의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중에서

 

 

글쎄요... 내 자유를 위해 나는 얼마나 노력했었나 하는 반성이 됩니다... 봉신(글라라)

 

 



49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