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성당 게시판

휴거...??

인쇄

글라라 [kbs001] 쪽지 캡슐

1999-11-05 ㅣ No.862

경쟁시대

 

나는 두명의 아들을 가족으로 거느리고 있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까지 녀석들은 그런 대로 가족들과의 유대감을 간직하고 있었다.

 

개성과 창의력도 두드러진 편이었다.  그러나 녀석들이 중학교를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다방면에서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우선 가족들과의 유대감이

 

현저하게 와해 되고 있었다. 학교와 독서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현저하게 늘어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어쩌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생긴다

 

하더라도 녀석들끼리 전자오락에 몰두해서 부모와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나는 녀석들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전자오락이라도 익히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녀석들이 등교하고 나면 손가락에 물집이 생길 때까지 전자오락에

 

몰두했다. 그러나 전자오락은 내가 오락실을 드나들던 시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져 있었다. 나는 사력을 다해서 굳어진 손가락들을 분주히 움직여

 

보았지만 언제나 1분도 버티지 못하고 게임오버 판정을 받기 일쑤였다. 석 달이라는

 

시간이 경과해서야 간신히 녀석들과 맞붙어 2:1정도의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손가락마다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하나의 프로그램을

 

마스터하여 녀석들과 게임을 할 수 있는 실력을 획득했을 무렵쯤에는 언제나 다른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나를 녀석들에게서 소외시키고 있었다. 녀석들은 기특하게도

 

효심을 발휘하여 내가 마스터한 프로그램으로 게임을 같이 해주기는 하지만 별반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나는 그 정도의 시간이라도

 

녀석들과 정서를 같이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녀석들이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 정도의 여유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녀석들은 아침 7시 30분에 집을 나가 새벽 2시에나 집으로 들어왔다. 녀석들은

 

날이 갈수록 입시에 대한 강박관념에 찌들어 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파김치가 되어 책가방을 내던지기가 바쁘게 잠에 곯아떨어져 버렸다.

 

이제 가정은 녀석들에게 하숙집 이상의 구실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부모들도 하숙집 주인 이상의 구실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날마다 교육방송에 채널을 맞추고 여러 과목들을

 

시청해 보기 시작했다. 참고서들이나 문제집들도 눈여겨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는 녀석들이 교육을 통해 진리를 터득하고 보다 이 세상을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학교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감은 무참히

 

몰수되고 말았다. 입시를 위해서 실시되는 교육 어디에서도 진리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거기에는 진리를 위장한 현상의 거품들만 부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입시를 위한 교육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기 위해서 살아간다. 진리를 탐구하는 목적도 그에 상반되지는

 

않는다. 진리는 마음으로써 깨달아지는 것이지 머리로써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타인이

 

발견한 이론과 법칙과 공식들을 머릿속에 복제하는 능력으로 과연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까. 행복도 마찬가지다. 머리로써는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내 자식들이 얼마나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는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단언하게 되었다.

 

어떤 문제지로도 너희들의 우수성을 측정할 수가 없다. 학교 성적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해라.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부터 가지도록 해라. 학교에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좋다.

 

나는 녀석들이 학교에 가기 싫은 눈치를 보이면 담임에게 독감 때문에 아이를 쉬게

 

해야겠다는 전화를 건 다음 가족들을 데리고 바다로 도망쳐 버리곤 했다. 그래도

 

녀석들의 성적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서적으로 매우 안정된 상태를

 

보이면서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청소년으로 성장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녀석들이

 

다소 근심어린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버지가 가르치시는 방식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 아무래도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을까요.

 

나는 녀석들에게 말해 주었다.

 

너희들이 진실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만물을 남보다 사랑하는 경쟁에서만

 

뒤떨어지지 않으면 된다.  나머지 경쟁에서는 선수가 되려고 노력하지 말고,

 

심판이 되려고 노력해라.

 

 

이 외수님의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중에서

 

 

 

학교가 붕괴되고 있다는 매스컴의 보도...

 

교육제도가 만들어낸 대대적 실패작 아닐까요?

 

입시지옥으로 부터의 휴거를 기다리며 봉신(글라라)

 



37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