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오늘) 다해 그리스도 왕 대축일, 이스라엘,다윗 두 집안들 왕이 된 다윗 [성경공부] 869_tran KH_errors

인쇄

. [122.128.41.*]

2010-11-21 ㅣ No.981

 
+ 찬미 예수님
 
오늘은 다해 연중 제34주일이며, 다해 전례력상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클릭하십시오) 다해-I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다해 그리스도와 대축일 해설 전문입니다.
 
-------------------- 
 

그리스도 왕 대축일〔다해〕
 

♣참고:이 글 중에 밑줄이 그어진 성경 구절이 나오면, 학습자들이 그 구절을 찾아 읽을 것을 권장한다.
 

입문
 
     1926년에 비오 11세(Pius XI) 교황에 의하여 제정된 이 축일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권(dominion)을 자각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하여 그리고 민족들 사이의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10월의 제일 마지막 주일에 경축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에(*) 이 축일은 대림시기(Advent) 이전인 전례력(Liturgical Year)의 제일 마지막 주일로 옮겨졌는데, 이 날에 인류는, 축성된 성체(Blessed Sacrament) 앞에서 바치게 되는 하나의 기도인, 예수 성심 호칭 기도(Litany of the Sacred Heart)를 통하여 성심께 봉헌된다(consecrated).
 
     이 축일은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심을 전적으로 비세속적인(non-worldly) 방식으로 경축한다. 예수님께서는 성부에 의하여 기쁨(gladness)이라는 기름으로써 영원한 대사제(Eternal Priest)와 만국의 왕(Universal King)으로 기름 부어졌다. 영원한 대사제로서 당신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십자가(Cross)라는 제대 위에서 봉헌하셨으며 이 한 번의 완전한 평화의 희생 제물로써, 인류를 속량(贖良)하셨다(redeemed). 만국의 왕으로서 당신께서는, 당신께서 진리와 생명의 나라,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 정의, 사랑, 그리고 평화의 나라를 전지전능하신 성부께 봉헌할(present), 모든 피조물에 대한 통치권(dominion)을 선포하신다.(**)
 
-----
(*)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4월 10일]
더 정확하게 말하면, "1969년에 개정된 전례력의 첫 적용 시점인 1970년부터" 이다. 다음의 글들을 참조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enc/Feast_of_Christ_the_King.htm
 
그리고 이 근거는, 1981년 1월 21일자 교황청 경신성사성(Sacred Congregation for the Sacraments and Divine Worship) 문헌인 다음의 글[제목: General Introduction to the Lectionary (Second Edition)]제103항이다:

[이상, 내용 추가 끝]


(**) 여기서 말하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 "정의, 사랑, 그리고 평화의 나라"는 모두, 강생하신 성자이신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 강림일 이후로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하게 하셨으며 지속적으로 자라고 있는, 그러나 예수 재림 이후에 완성될, 그리하여 성부께 봉헌될, "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 즉 "하느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말한다.
----- 
 

제1독서 - 2사무엘 5,1-3 450)
 
     사무엘 1서와 2서의 주된 목적은 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의 기초(foundation) 및 다윗 왕과 그의 가계(line)에 왕권(throne)이 자리 잡는 것에 대한 역사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 사건들의 연대기에 있어, 판관기에 묘사된 사건들은 사무엘서들에 설명된 사건들에 곧바로 앞선다. 판관기(book of Judges)의 끝 부분에서, 백성은 왕정제(monarchy)를 내부의 투쟁과 정치적, 사회적 혼란의 상황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유일한 방식으로서 이해하였다. 밖으로는 적들이 필리스티아 부족(the philistine) 하나로 줄어들었는데, 이들은 지중해 해변 지역을 따라 자리 잡게 되었으나, 이들은 매우 강력하고 또 확장주의자들이라서 그 결과 이스라엘의 생존 자체가 대단히 위험하게 되었기에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힘들을 합치는 것이 실제로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451)
 
     판관들 중의 최후의 판관으로 간주되고 있는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선택되었던 사람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사울(Saul)을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세우는 데에 사무엘을 사용하셨다. 이러한 사울의 선택과 관련된 모든 것은, 이 선택으로부터 결과로서 발생하는 이후의 사건들에서처럼,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백성과 함께 계심을 보여주며, 그리고 당신께서는 그들을 새로운 정치적 및 군사적 단계들에 데려다 줄 것이다. [노아(Noah)의 자손이며, 함(Ham)의 자손인(1역대 1,4-12), 이집트로부터 유래한] 필리스티아인(Philistines)들은, 비록 완전한 통제 하에 놓인 것은 아니지만, 패배를 한다. [롯(Lot)과 그의 작은딸과의 근친상간의 결과였던 압몬(Ammon)의 후손인(창세기 19,38)] 암몬 자손(Ammonites)들, [롯(Lot)과 그의 맏딸과의 근친상간의 결과였던 모압(Moab)의 후손인(창세기 19,37)] 모압의 자손(Moabites)들, [에사우(Esau)의 후손인(창세기 제36장)] 에돔의 자손(Edomites)들, 그리고 [솀(Shem)의 후손인(창세기 10,22)] 아람인(Aramites)들처럼, 그들은 이스라엘에 공물을 바치는 속국(tributaries)이 되었다. 이러한 전체 군사 행동(campaign)은, 심지어 티로(Tyre)의 임금도 그의 속국이 되었던, 다윗(David)의 통치 기간 중에 종결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트랜스요르단 지역[Transjordan, 즉 요르단 강 건너 동쪽 지역으로 사해(Dead Sea) 동쪽 지역도 포함] 모두가 다윗의 지배를 받게 됨에 있다.452)
 
-----
450) 오늘의 제1독서와 같은 독서는 또한 1역대기 11,1-5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제1독서(2사무엘 5,1-3)에 대한 다음의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king.htm
 
 
451) 당시의 상황에 대한 추가 설명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가해-I 사순 제4주일 제1독서 입문에 있으니 참고하라.
452) 다음의 지도들 및 자료를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EmpireDavidSolHR.htm (다윗 왕국, 기원전 1000-925년)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israel_first_century.htm (이 지도에서 Transjordan 지명을 클릭하면 이 지역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fiatlux2000/history_Transjordan.htm
-----
 
     오늘을 위한 우리의 제1독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다윗에 대한 기름부음이다. 다윗은 30세였으며 그리고 40년 동안 통치하였다(1열왕 2,11).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헤브론(Hebron)은, 예루살렘 남쪽 약 32킬로미터(20마일)에 위치한, 유다의 구릉 지대(hill country)에 있는 도시이다.
 
다윗에게 몰려가서
 
다윗은 7년 전에 이미 유다(Judah)의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다(2사무엘 2,4).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들은 계약(covenant)을 맺었다. 이것은, 선서를 동반하는, 그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단결시키는 성스러운 약속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생기를 되찾게 하는 연고(a refreshing ointment)로서 기름의 사용은 고대 사회에 있어 대단히 일반적이었다.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a sacred rite)으로서 기름부음의 기원과 정확한 상징성(symbolism)은 이스라엘 안에서 찾을 수가 없다. 한 사람 혹은 물건에 기름부음의 목적이 그 사람 혹은 그 물건을 성스럽게 하는 것이었음은 틀림없다. 이 기름부음은 사제들, 만남의 천막(the tent of meeting), 계약의 궤(the ark), 이 천막의 가구, 그리고 임금들에게 행하여졌다. 사울(1사무엘 10,1), 다윗(David)(1사무엘 16,13), 그리고 예후(Jehu)(1열왕 19,16)는 예언자에 의하여 기름부어졌으며, 그리고 솔로몬(1열왕 1,39)은 사제에 의하여 기름부어졌는데, 아마도 성스러운 예언자 혹은 사제가 이 예식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그 직접적인 결과로 이 두 개의 왕국들은 더 큰 덩어리로 합치지(coalesce) 않았으며, 구분되는 자주적인 나라들로 남아있었다: 다윗은, (기원전 931년에 솔로몬의 죽음 바로 뒤에) 결국에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으로 떨어져 나가는, 이 2개의 부분을 가진 왕국(2-fold kingdom)을 통치하였던 것이다.453)
 
-----
453) ‘이스라엘’과 ‘유다’의 구분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 이해를 위하여, 다음의 요약을 참고하라:
  
   (1) 이스라엘(즉 야곱)의 12아들들의 자손들이 모세의 지도력 하에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 3개월 후에 시나이 산(Mount Sinai)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이들은 아직은 영토를 가지지 못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Israel)’로 불린다.
 
   (2) 약 40년간의 광야에서의 생활 후에, 여호수아의 지도력 하에 가나안 땅을 차지하여 영토를 확보한 이후에 형성된, ‘이스라엘’로 불리는 나라(Nation Israel)는 12지파로 이루어진 느슨한 형태의 일종의 연방 국가(confederacy)였다. [본 해설서 시리즈의 다해-I 사순 제4주일 제1독서(여호수아 5,9ㄱ-10-22) 본문 및 해설, 그리고 나해-II 연중 제21주일 제1독서(여호수아 24,1-2ㄱ.15-17.18ㄴ) 본문 및 해설을 참고하라]. 
 
   (3) 판관기(book of Judges)의 끝 부분에서, 이 나라의 백성은 왕정제(monarchy)를 내부의 투쟁과 정치적, 사회적 혼란의 상황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유일한 방식으로서 이해하였다. 밖으로는 적들이 필리스티아 부족(the Philistine) 하나로 줄어들었는데, 이들은 지중해 해변 지역을 따라 자리 잡게 되었으나, 이들은 매우 강력하고 또 확장주의자들이라서 그 결과 이스라엘의 생존 자체가 대단히 위험하게 되었기에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힘들을 합치는 것이 실제로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의 제1독서 입문).

   (4) 비록 사무엘이 이 백성의 요구에 따라 왕을 세우는 것이 결과적으로 하느님을 배척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반대하였으나,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왕의 권한을 분명하게 알려주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사울(Saul)이 길갈(Gilgal)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왕으로 기름 부어졌다(1사무엘 11,14-15). 그러나 나중에 사울이 하느님께 순명하지 않았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를 거부하셨으며 그리고 유다 지파에 속하는 다윗에게 기름을 부을 것을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사무엘에 의하여 기름이 부어진 나이 어린 양치기였던 다윗이 필리스티아인이며 거인인 골리앗을 무릿매질을 하여 죽였는데(1사무엘 제17장), 이 사건으로 인하여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으며, 사울은, 자신의 시기(jealousy) 때문에,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기에 다윗은 사울의 추적으로부터 도망을 가야 하였다. [본 해설서 시리즈의 가해-I 사순 제4주일 제1독서(1사무엘 16,1ㄴ.6-7.10-13) 입문 및 본문 해설과 다해-I 연중 제7주일 제1독서 (1사무엘 26,2.7-9.12-13.22-23)을 참고하라].
 
   (5) 사울이 죽고 난 후에 유다 지파에 속하는 다윗은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헤브론으로 올라갔으며, 유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집안의 임금으로 세웠다(2사무엘 2,1-7). 즉, 다윗이 ‘유다의 임금’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사울 군대의 장수인 아브네르(Abner)가 사울의 아들인 이스 보셋(Ishbaal)을, 길앗(Gilead)과 아스르족(the Ashurites)과 이즈르엘(Jezreel), 에프라임(Ephraim)과 벤야민(Benjamin)과 나머지 이스라엘(the rest of Israel)의 임금, 즉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NAB 2사무엘 2,8-11).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자손들로 이루어진 느슨한 형태의 연방 국가인 ‘이스라엘’은, 바로 이 시점부터, (i) 남쪽의 ‘유다(유다 집안)’와, (ii)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들로 이루어진 북쪽의 ‘이스라엘(사울 집안)’로, 서서히 구분되어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유다’와 ‘이스라엘’의 구분을, 예를 들어, 시편 114,1-2에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야곱 집안이 이상한 말을 하는 민족을 떠나올 때 유다는 그분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왕국이 되었네.” 라고 노래하고 있다].

   (6) 약 7년 뒤에, 아브네르가 살해된 뒤에(2사무엘 3,26-39), 이스라엘의 임금인 이스 보셋도 또한 낮잠을 자다가 살해된다(2사무엘 4,5-12) 이렇게 사울 집안은 갈수록 약해지고 다윗 집안은 갈수록 강해지는 상황 이후에 오늘의 제1독서에서처럼, 이미 ‘유다의 임금(유다 집안의 임금)’인 다윗이 또한 ‘이스라엘의 임금(사울 집안의 임금)’으로 기름 부어졌다. 그 직접적인 결과로 이 두 개의 왕국들은 더 큰 덩어리로 합치지(coalesce) 않았으며, 구분되는 자주적인 나라들로 남아있었다. 다윗은, (기원전 931년에 솔로몬의 죽음 바로 뒤에)
결국에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으로 떨어져 나가는, 이 2개의 부분을 가진 왕국(2-fold kingdom)을 통치하였던 것이다.
 
   (7) 다윗은 이런 과정을 거쳐 ‘유다 집안’의 임금 및 ‘사울 집안’의 임금이 되고 난 후에, 자신의 통치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의 12지파들로 구성된 느슨한 형태의 일종의 연방 국가를 통치하였던 사울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예루살렘 땅에 살고 있던 여부스족과 전쟁을 하여 예루살렘을 점령하여(2사무엘 5,6-12) 예루살렘을, 기존의 이스라엘의 12지파들과는 분리된, 자신의 왕정(royal court) 전용의 영역으로 만들고, 그리고 계약의 궤를 또한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에(2사무엘 6,1-19),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정의를 심리하고 집행함으로써(NAB 2사무엘 8,15), 다윗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이스라엘의 12지파들에 대한 자신의 중앙 집권적 왕권을 대폭 강화하였다.

   (8) 다음의 자료들을 또한 참고하라:
   참고 자료 1: http://ch.catholic.or.kr/pundang/4/fiatlux2000/history_Tribe_of_Judah.htm
   참고 자료 2: http://ch.catholic.or.kr/pundang/4/fiatlux2000/history_Josephus_ant_7.htm 
-----
 

제2독서 - 콜로새 1,12-20 454)
 
     바오로의 시기에 콜로새(Colossae)는 소 아시아(Asia Minor)에, 리쿠스 강(Lycus river)의 계곡에 있는, 피르기아(Phrygia)로 불리는 지역에 위치한, 작은 도시였다. 같은 계곡 안에, 북동쪽으로 11.4킬로미터(9마일) 정도에, 위치한 것은 라오디케이아(Laodicea)였으며, 그리고 북쪽으로 19.2킬로미터(12마일) 정도에 위치한 것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였다. 이 전체 지역은 근대의 터키(modern day Kurkey)의 일부분이다.455) 오늘날 콜로새의 유물들 모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약간의 옛터(ruins)들이다.
 
-----
454) 오늘의 제2독서는 다해 연중 제15주일 제2독서(콜로새 1,15-20)을 포함한다.
455) 본 해설서의 다해 연중 제15주일 본문 해설의 마지막에 있는 ‘신약 성경 소아시아의 도시들’ 지도를 참고하고, 다음의 성 바오로의 두 번째 선교 여행 지도 및 바오로의 발자취에 따른 성지순례 안내를 또한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MedActsEps2.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footsteps_of_Paul.htm
-----
 
     비록 셀레우키드 왕조(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 ‘대왕’(Antiochus III ‘The Great’, 통치기간: 기원전 223-187년)이456) 2,000 유다인 가족들을 바빌로니아(Babylonia)로부터 리디아와 프리기아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하였다고 요세푸스(Flavius Jesophus, 37-101년)가 우리에게 말하기는 하나,457) 이 도시의, 그리고 사실은 전체 지역의, 대부분의 거주자들은 이방인(Gentiles)들이었다. 사도행전 2,10은 프리기아의 주민들이, 예루살렘에서 성령 강림일(Pentecost)에 베드로의 연설(Peter's address)을 들었던, 유다인들 사이에 있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바오로 자신은 콜로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설립자가 아니었다. 에페소에서 바오로에 의하여 개종을 하게 되었던, 에파프라스(Epaphras)가 콜로새에, 그리고 아마도 또한 라오디케이아 및 히에라폴리스에, 신앙(the faith, 믿음)을 가져왔다(콜로새 1,7).
 
     그가 로마에서 투옥되어 있었던 동안에(기원후 61-63년), 에파프라스가 바오로를 방문하였는데 그는 일부 지역 교사들의 위험한 교리적 성향들에 대하여 보고하였다. 이런 가르침들은 유다주의와 다신교(pagan) 둘 다의 영향들의 산물이었다. 그들의 근거는 어떤 천사적 존재(angelic beings)들이 인간의 일들, 그리고 심지어 모든 창조물(creation)들을 통제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달래기(appease) 위하여 이들 초 존재(super beings)들 및 이들의 작용들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이미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이런 종류의 믿음(belief, 신념)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과 우주 사이의 수많은 중개자(mediators)들 중의 한 분으로서, 심지어 이들 중개자들 중의 가장 힘이 센 분으로서 생각된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지위(position)를 위태롭게 하였다.458) 바로오는 이러한 오류들에 강력하게 맞서야만 하였으며 그리고 우주에 대한 그리스도의 유일한 지위와 전능하시고 (정도, 강도, 혹은 이해력에 있어) 위대하신 역할(all-powerful cosmic role)을 분명하게 지적하여야만 하였다. 
 
-----
446)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 ‘대왕’(Antiochus III ‘The Great’)에 관하여서는 본 해설서의 다해 연중 제32주일 제1독서(2마카베오 7,1-2.9-14)의 입문 및 각주를 참고하라.
457) 요세푸스의 언급과 관련하여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자료들을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fiatlux2000/Jews_in_Babylonia.htm
458) 믿음(faith, 신앙)과 믿음(belief, 신념)의 차이점은 본 해설서의 연중 제21주일 복음 말씀(루카 복음서 13,22-30) 해설의 각주를 참고하라.
-----
 
     믿음(beliefs, 신념)들을 결합하여 해결하기 위한(to combine and resolve) 이 시도에 있어 유다주의의 영향은 제시된 날들, 절기(seasons)들, 할례, 그리고 다른 유다주의의 관습들을 준수하는 데에 대한 언급들에서 분명하다. 유다주의의 어떤 집단들에 있어 천사들의 중개자 신분(mediatorship) 및 힘(power)에 대한 강력한 믿음(belief, 신념)이 있었다.
 
     바오로는 우주에 대한 당신의 역할에 있어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충분하심(all-sufficiency)을 지적함으로써 이러한 위험한 성향들에 반격하여야(counter) 하였다. 그는 신성의 충만(the fullness of the godhead)이 다수의 매개물(intermediaries)들에 의하여 공유하게 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여야 하였으며, 그리고 하느님의 충만하심과 하느님의 힘 모두는 그리스도 당신 자신께 있음을 지적하여야 하였다.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죽으심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주를 통제한다고 생각되어졌던,  모든 힘들에 대하여 승리를 하셨다.459)
 
-----
459) 성삼위의 제2 위격인 성자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글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다해-I 예수 성탄 대축일(낮) 복음 말씀(요한 복음서 1,1-18)의 제1절에 대한 각주에 있으니 참고하라.
-----
 
[형제 여러분] 12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늘(heaven, 즉, 천당)에 기인하는 상속(inheritance)에 함께 참여하라(로마 8,17). 상속은 하나의 가족 특권이지, 종들과 노예들을 위한 어떤 혜택이 아니다.
 
“왜 그는 이것을 상속이라고 부를까? 어느 누구도 자신 고유의 성취들에 의하여 이 나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 오로지 하나의 상속으로서 오히려 행운(good fortune)의 결과임을 보이기 위함이기에, 따라서 참으로 이것은 여기서 꼭 같은 원리(principle)이다. 이는 어느 누구도 이 나라에 합당할 정도로 헤아려질 만큼 착한 삶을 유지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이 전부는 당신의 자유로운 선물이기 때문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aint John Chrysostom, 392년경), Homilies on Colossians 2].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여기서 ‘어둠’은 죄의 상태에서 악마(the devil)에 대한 사람의 노예 상태를 말한다.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그 주도권은 성부이신 하느님과 함께 있다 - 당신께서는 우리를 구하셨으며, 우리를 데려오셨다. 옛날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바빌론 유수(the captivity)로부터 이미 해방되었다.
 
여기서 ‘아드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말한다.460)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그리스도께서 참 자유를 이미 가져오셨기에, 콜로새인들은 ‘물질 세계에 있는 결과들에 영향을 끼치는 능력이 있는 초자연적 힘들(higher powers)’ 어느 것도 달랠(propitiate, appease) 필요가 전혀 없다.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세례에 의한 결합(baptismal union with Christ)의 결과이다.
이 독서의 나머지 부분은, 아마도 전례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을, 초기의 그리스도교 찬미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창세기 1,26은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이신(주: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일부)] 성삼위의 제2위격이신, 성자이신,461) 유일하신 새 아담만이 성부의 완전한 모습과 같으시며 - (선행구속의 결과로 원죄로부터 제외되셨던 성모님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피조물들로서 아담과 하와가 범한 원죄의 결과인) 죄의 얼룩(stain)을 몸에 지니고 있다.
 
-----
460) (i) ‘그리스도의 나라(kingdom of Christ)’가, 예수 재림의 날까지 죽은 자들의 일부 영혼을 위한 상태/장소인 ‘하늘(heaven, 즉, 천당)’이 아닌, 이 지상의 가톨릭 교회 안에 있는 ‘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 즉 ‘하느님의 나라(kingdom of God)’이며, 그리고 (ii) 이 ‘하늘 나라’가 예수 재림 시에 완성될 ‘가톨릭 교회’임에 대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일반 알현 강론 말씀들 모음(본 해설서의 부록으로도 제공하고 있음) 및 엮은이의 졸글들은 다음에 있으니 필히 읽어보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4.htm

461) (1) ‘하느님의 외 아드님’이신 성자(the Son of God)의 정체성(identity)/정의(definition)에 대한 엮은이의 졸글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다해-I 예수 성탄 대축일(낮) 복음 말씀(요한 복음서 1,1-14) 제1절의 각주에 있으니 참고하라.

   (2)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구절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있는 구절이다. 다음은 미사 중에, 사도신경 대신에, 니케아-콘스탄티노폴 신경을 고백할 것을 권고하는 교황청 경신성사성에서 2002년에 발행한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Institutio Generals Missalis, 2002년)’의 내용 가운데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간추려 2004년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중앙협의회에서 발행한 ‘간추린 미사 전례 지침(2004년)’에 실린 ‘신경(Credo, Creed)’ 관련 내용이다:
 
   신경: 주일과 대축일에 신경을 외운다. 이때에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신에 ‘사도신경(Apostle's Creed)’을 외우는 것은 좋지 않다. 신경은 회중이 교대로 또는 함께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사실, (i) 미국 천주교회 표준 영문 전례 예식서인 ‘Missal, The Order of Mass in English’ 제13쪽에는 다음과 같은 빨갛게 인쇄된 설명(rubrics)이 있다: “In the celebration of Masses with Children, the Apostles’ Creed may be said after the homily.”[어린이들과 함께하는 미사들의 경축에 있어, 강론 후에 사도 신경이 외워질 수 있을 것이다(엮은이 번역)]. (ii) 그러나 우리말 ‘미사 통상문’의 제11쪽에는 다음과 같은 빨갛게 인쇄된 설명이 있다: “때에 따라서는 사도신경을 외울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 두 빨간색의 설명(rubrics)들이 왜 같은 설명이 아닌지에 대하여서는 아직까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
   참고 자료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ck/summary_gi_of_roman_missal_22.htm
   참고 자료 2: Missal: The Order of Mass in English, 1997, Pangæus Press.

   (3) 성모님께서 선행구속의 결과로 원죄로부터 제외되신 것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교의(dogma, 즉 믿을 교리)는 본 해설서 시리즈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 입문을 참고하라.
-----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여기서 ‘모든 피조물의 맏이’란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수장권(supremacy), 권한(authority), 힘(power)의 지위를 말한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안에서 우주가 창조되었던, 일치와 조화의 중심인, 바로 그 장소이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심지어 이 세상을 통제한다고 생각되었던 [왕권(thrones), 주권(dominions), 권세(principalities), 권력(powers) 등의] 비 가시적인 천사적 존재(angelic beings)들마저도 유일한 하느님의 거룩한 지혜(the Wisdom of God, 즉 성자)를 통하여 창조되었다.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우주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목표(goal)와 완성(perfection)을 발견한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복음서 1,3). 이 ‘모든 것(all)’으로부터 어떤 것도 제외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가시적이거나 혹은 비가시적이거나, 감지할 수 있거나(sensible) 혹은 이해할 수 있거나(intelligible), 어떠한 시혜(dispensation)를 위한 일시적이거나 혹은 영원하거나 간에, 당신을 통하여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분이 바로 성부이시다. 이들을 당신께서는, 당신의 생각(thought)으로부터 갈라져 나간(were separated) 천사들 혹은 어떤 힘들을 통하여, 창조하지 않으셨다.” [성 이레네오(Saint Irenaeus, 180-199년 사이), Against Heresies 22,1].
 
17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이 표현은 선 존재(prior existence)의 의미, 혹은 선 존재에 대한 중요성의 의미로, 혹은 이들 둘 다의 의미로 이해 될 수 있다.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응집력 있는 우주의 힘으로서의 거룩한 지혜(Wisdom)에 대한 언급이다(지혜서 1,7을 보라).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바오로에게 있어, ‘머리(head)’는 권한과 활력의 원리(principles of authority and vitality)들을 나타낸다. 여기서, 활력은 생명과 성장의 원천을 뜻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몸에 대한 머리의 관계라는 그리스적 개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주적 집단(the cosmic body)의 머리이실 뿐만이 아니라, 당신께서는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이신데, 천상과 지상의 것들이 당신 안에서 함께 살아가나, 그러나 예를 들어, 만약에 몸 전체가 그 머리를 빼앗긴다면, 즉 그 창조주로부터 분리된다면, 하나의 미친(insane) 그리고 헛된(empty) 무질서(chaos)가 존재할 것이다.” [(히브리서를 제외한) 사도 바오로의 전체 서간에 대한 (익명) 주석자(The Ambrosiaster, 366-384년 사이), Commentaries on Letter to the Colossians].
 
그분은 시작이시며

교회는 새로운 시작인, 새 창조이다(갈라티아 6,15; 2코린토 5,17).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스도 당신 고유의 부활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의 부활의 원인(cause)이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9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충만함에 대한 개념은 구약 성경에서 발견된다(이사야 6,3).  하느님의 충만하심, 즉 당신의 현존, 신성, 그리고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교회와 함께 나누시며, 교회는 결국에(in turn)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준다. 이 강조는 하느님의 내재성(God's immanence)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초월적인) 하느님의 힘의 우주 법칙적 영향(cosmic effect)에 있다.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느님을 향하여 회복되어야만 한다(로마 8,19-23). 이것은, 사람에게 있어 죄 때문에,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에 있어 죄를 통한 일치와 조화의 상실에 의한, 멀어짐(alienation)의 상태를 뜻한다. 널리 보급된 유다인들의 믿음(belief, 신념)은 이 세상이 사람의 죄를 통하여 세상을 지배하는 힘들에 의한 속박으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천사적 힘(angelic powers)들을, 믿는 이들에 대한 이들의 통제력을 제거함으로써, 정복하셨다(overcame).
 
복음 - 루카 23,35-43
 
우리는 이제 예루살렘과 당신의 수난을 향한 그리스도의 여정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형에 처해지신다.
 
35 백성들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성 루카는 침묵하면서 바라보고 서 있었던 사람들을 예수님을 계속 비웃었던 자들로부터 분명하게 구분한다. 그들이 보고 있는 바에 의하여 고무되어(inspired), 이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자신들의 거부를 회개할 것이다. 복음사가 루카는 예수님께 지금 일어나고 있는 바를 묘사하기 위하여 시편 22,8-9을 인용하고 있다.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이 비웃음(taunt)은 사실이다.
 
선택된 이라면
 
이 비웃음도 또한 사실이다.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이 표현은 ‘자신을 구원하라’는 비웃음의 후렴(refrain)이 된다. 이들 비웃음들은 광야에서 예수님의 유혹을 상기시킨다 -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음으로써가 아니라 붙잡고 있음으로써, 구하라는 유혹을 받고 있다. 예수님을 구할 바는 자비로운 하느님이신 성부에 대한 당신의 믿음(faith)인데, 성부께서는 당신을 죽은 이들로부터 부활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를 죽은 이들로부터 부활하게 하실 것이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여기서 ‘신 포도주(sour wine)’로 번역한 표현을 NAB에서는 ‘wine(포도주)’로 번역하였다. 이 군사들의 행위들은 시편 69,22와 일치한다. 요한 복음서 19,30은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첫 번째 파스카(Passover)에서 자신들의 집의 문설주(doorposts)들과 상인방(lintel)에 어린 양의 피를 뿌리고자 사용하였던 바인] 우슬초(hyssop) 가지에 매단 해면(a sponge)으로부터 이 신 포도주를 마시셨으며 그리고 그런 다음에 ‘다 이루어졌다’ 라고 말씀하셨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무엇이 이루어졌는가? 인류를 속량하시는 임무가 아닌데, 이는 당신께서는 여전히 부활하셔야 하며 그리고 다음의 것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하늘(heaven)로 올라가셔야만 하셨기 때문이다: 이루어졌던 바는 바로, 최후의 만찬 중에 중단되어졌던 전례인, 파스카 전례의 네 번째 잔이었다. 루카 복음서 22,18은 세 번째 잔을 마신 후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kingdom of God)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462)
 
-----
462) (1) 성령 강림일에, ‘전투 교회’ 혹은 ‘투쟁 교회’로 불리는, ‘지상 교회’의 탄생과 함께 ‘하느님의 나라’, 즉 ‘하늘 나라’가 가톨릭 교회 안에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이 나라가 예수 재림의 날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 다음은 1987년 12월 30일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회칙인 "사회적 관심(SOLLICITUDO REI SOCIALIS)" 제48항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이 회칙에서 교황님께서는, 1992년에 보편 교회에 의하여 초판 방행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816항에서처럼, 하느님의 나라(Kingdom of God)가 성찬례 안에서 우리들 가운데에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또한 이 가르침은, 영성체가 없는 곳에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현존하게 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가르침은, 아버지의 나라(Kingdom of the Father)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 가운데에 이미 현존하게 되어 왔다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48. 하느님의 나라(Kingdom of God)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희생 제사인, 성체성사의 경축 안에서 현존하게 된다. 바로 이 경축 안에서 땅과 인간 손들에 의한 일의 열매들, 즉 빵과 포도주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고 마리아의 아드님이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로, 신비롭게, 그러나 실제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성령의 힘 그리고 미사 집전자의 말들의 힘을 통하여 변화하는데,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의 나라(Kingdom of the Father)가 우리들 가운데에 이미 현존하게 되어 왔다(엮은이 번역).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6.htm (위 회칙의 영문 및 우리말 전문)
   참고 자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1.htm (또한 필독 권유).

   (3) (i) ‘그리스도의 나라(kingdom of Christ)’가, 예수 재림의 날까지 죽은 자들의 일부 영혼을 위한 상태/장소인 ‘하늘(heaven, 즉, 천당)’이 아닌, 이 지상의 가톨릭 교회 안에 있는 ‘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 즉 ‘하느님의 나라(kingdom of God)’이며, 그리고 (ii) 이 ‘하늘 나라’가 예수 재림 시에 완성될 ‘가톨릭 교회’임에 대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일반 알현 강론 말씀들 모음 및 엮은이의 졸글들은 다음에 있으니 필히 읽어보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4.htm
-----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이 표현은 또한 사실이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이 예수님에 대하여 조롱하는 자(mockers)들의 입술에 놓여진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성경에 있어 유일한 임종 회심(臨終回心, deathbed conversion)이다. 이 죄수는 죽어가는 예수님께서 진실로 임금님이시며 그리고 임금만이 베풀 수 있는 용서와 자비를 베푸실 수 있으시다는 깊은 믿음(faith, 신앙)을 가지고 있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여기서 ‘오늘’은 성 금요일(Good Friday)을 말한다. 요한 복음서 20,17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라고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말씀하신다. 따라서 만약에 예수님께서 아직 하늘에 가시지 않으셨으며 그리고 지옥(hell)으로부터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다면, 당신께서는 (그리고 이 회개하는 도둑은) 어디에 계셨을까? 바로 이 구절이 성경에 있어 연옥(purgatory)이 함축적으로(implicitly) 이해될 수 있는 장소의 한 예(an example)이다.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낙원(Paradise)’이라는 단어는 (기원전 6-3세기의) 고대 페르시아어(Old Persian)로부터 유래하였는데, 벽으로 둘러싸인(walled) 정원(garden) 혹은 공원(park)을 뜻한다. 이것은 에덴 동산(Garden of Eden)을 상기하게 한다(창세기 2,15). 이후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속량 신비로 하늘의 문(the gates of heaven)들을 여신 이후에] 이 낙원은 의로운 자들의 영원한 거주지(eternal abide of the just)를 뜻하였다.463)
 
-----
463) 이것은 St. Joseph판 NAB의 Bible Dictionary에 주어진 설명이다. 본 해설서 시리즈의 부활절 일요일 3분 복음/교리 묵상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집(CCCC) 제135항을 또한 참고하라. 또한 '낙원(paradise)'이라는 단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의 영어 가톨릭 용어사전의 설명을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r_paradise.htm
-----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433.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적 삶이 복음의 선포에 왜 필수적인지요?
CCC 2044-2046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삶들이 주님이신 예수님께 순응하게 되기에(is conformed to),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이들을 참 하느님에 대한 믿음(faith)으로 끌어들여(draw), 교회를 점진적으로 키워 나가고(build up), 이 세상에 복음의 정신을 불어넣어(inform), 그리하여 하느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를 재촉합니다(엮은이 번역).
 
(*):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이란 곧 ‘하느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를 말한다(LG 5).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본 해설서의 (i) 다해-II 연중 제10주일 제2독서(갈라티아 1,11-19) 해설의 각주, (ii) 다해-II 연중 제14일 복음 말씀(루카 10,1-12.17-20) 해설의 각주, (iii) 다해-II 연중 제17주일 복음 말씀(루카 복음서 11,1-13) 해설의 각주, (iv) 다해-II 연중 제30주일 제2독서(2티모테오 4,6-8.16-18) 해설의 각주, 그리고 (v) 다해-II 그리스도 왕 대축일 복음 말씀(루카 복음서 23,35-43) 해설의 각주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그리고 이 주제로 접근함에 있어, 다음의 엮은이의 졸글들 및 이 책의 부록으로도 제공 중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교리 교육용 일반 알현 강론 말씀들을 작성된 순서대로 읽는 것도 또한 괜찮을 것이다: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king_c2044.htm
 
CCCC 598. (주님의 기도의) 끝 부분의 아멘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CCC 2855-2856, 2865
“‘주님의 기도’의 끝 부분에서, 여러분은 ‘아멘(Amen)’을 말하는데 그 결과 ‘그대로 이루어지소서(so be it)’를 뜻하는 이 표현으로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던, 이 기도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것들을 정식으로 찬성하고 확인합니다(ratify).”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Saint Cyril of Jerusalem)](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king_c2855.htm
__________

주: 해설서 본문의 오류수정 및 내용보강 자료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서 제공될 예정이오니 본문 학습에 앞서 꼭 확인 바랍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update/c_king.htm
 
 

<참고 1 : 가톨릭 교회 교리서 발행에 대한 간략한 안내>
 
마르틴 루터의 종교분열(schism) 시도로 소집된 트리엔트 공의회(1543-1563년) 이후, 이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566년에 가톨릭 보편 교회가 최초로 발행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영어로는 보통 Catechism of Trent 혹은 Tridentine Catechism of the Holy Catholic Church라고 불림)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교회 일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1983년에 가톨릭 교회 주교단의 요청에 의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CCC)]를 개정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하여, 1992년에 개정 초판이 나왔고 그 이후 수정 및 보완을 거쳐 1997년에 가서 비로소 라틴어 확정본이 발간됨.
 
참고자료1 :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 가톨릭 교회 교리서[1997년 영문판(2nd Edition)]
           http://ch.catholic.or.kr/pundang/4/va1997ccc.htm
참고자료2 :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 라틴어 정본 및 중요 자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va1997ccc_index.htm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2005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하여 발행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집[Compendium: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CCCC)]을 또한 접할 수 있으며, 이 요약집의 영문본은 다음의 주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va2005cccc.htm
 
참고자료3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제공 가톨릭 교회 교리서(우리말)
            http://ch.catholic.or.kr/pundang/4/1997ccc.htm
 
 
<참고 2: 양질의 가톨릭 교회 관련 영문 자료들 제공 사이트 안내>
 
 
지금 읽고 계신 우리말로 된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시리즈는 2005년 5월 15일자로 이 홈페이지의 개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 홈페이지의 개설 이후 2년 정도의 준비과정을 거친 후에, 하나의 과제(project)로서 결국에 엮은이의 집중 집필 과정(즉, 번역, 수정, 내용 보강 및 자료들의 인터넷 출처 확보 포함)을 거쳐, 이 세상에 구체적으로 그 첫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공지 사항>
 
이 책 본문의 오류정정 및 내용보강 자료들은, 이 책의 제11쪽에 각주로서 자세히 안내해 드린 바와 같이, 각 주일/축일 해설서의 마지막 주석에 있는 인터넷 주소에서 제공할 예정이오니 학습 시작 전에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미 출판된 ‘해설서 가-I’의 경우에 있어서도 본문의 오류수정 및 내용보강 자료들도 인터넷을 통하여 제공될 것인데, 이를 위한 인터넷 주소들은 위의 ‘참고자료4’에 안내되어 있습니다.
 


2,070 3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