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죄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라는 말씀은? - 요한 8,1-11 [_자비] #<다사순5주일복음> #<가사순5주월복음> #<나사순5주월복음> mercy 1039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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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2 ㅣ No.670


게시자 주
: 다음은 필자가 집필 중인 저서 [제목: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사순 제5주일 복음 말씀의 입문 및 해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무한한 자비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듯 싶어 올려 드립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3월 1일]

질문: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 하셨다.....

이 구절에서 전 예수님이 무엇을  쓰셨는지 ..`.또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 하는데 ..
정말 궁금합니다...뭐라고 쓰셨는지,,,율법학자들은 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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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찬미 예수님!

질문자께서 발췌한 요한 복음서 8,6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다해 사순 제5주일 복음 말씀(요한 8,1-11) 그리고 가해 및 나해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요한 8,1-11)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주신 질문을 포함하여, 예수님의 그러한 행동이 어떤 의미를 포함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이해를 하고자 한다면,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이 제시하고 있듯이, 시야/폭을 넓혀서, 요한 복음서 8,1-11에 대하여 학습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복음: 요한 8,1-11


     오늘, 우리가 부활 시기(Easter season)로 들어가기 위하여 준비함에 따라,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에 대하여 상기하게 된다. 이 자비는 예수님을 통하여 선포되었으며 그리고 간음을 하였던 여자에게 베풀어졌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조용한 말씀으로써 뭇 남성들을 대적하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이렇게 단 한마디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용서해 주시는 사랑을 선포하시고 또 고발자들의 죄 많음에 대적하신다.

     우리 모두는 죄를 지어 왔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은 정의롭다는 노여움 때문에 다른 이에게 욕설을 퍼붓기 보다는, 당신의 거룩한 자비(Mercy)에 대하여 크게 감사를 드리는 상태에서 주님께로 향하여야 한다. 오늘의 독서를 구성하는 구절은, 기원 후 약 3세기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초기 사본들에 빠져있었으나, 그러나 이 구절은,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ent, 1545-1563년)에서 [그리고, 비록 이들 두 종교회의(council)가 공의회(ecumenical council)는 아니었으나, 신약성경의 목록을 정의한 힙포 종교회의(Council of Hippo, 393년)와 이들이 영감에 의하여 저술되었음을 선언한 카르타고 종교회의(Council of Carthage, 397년)에서도 그러하였을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하는 바인데], 교도권(Magisterium)이 성경의 정경(canon)을 정의하였을 때에, 라틴어 불가타 성경(Vulgate)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구절이 정경적이며(canonical) 또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던 것으로 받아들인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Saint Augustine of Hippo, 354-430년)는, 이 구절에 대한 의심들이 일어나게 되었던 이유가, 이 구절이 예수님께서 자비심을 너무 많이 베푸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일부 엄격주의자(rigorists)들이 이 구절이 도덕적 규범(moral rules)의 해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 따라서 그 결과, 필경자(copyists)들이 자신들의 사본(manuscripts)에서 이 구절을 삭제하였던 것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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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이 언급의 구체적인 출처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요한 복음서 8,1-11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에 주어져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lent_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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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이 장소는 예루살렘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키드론 골짜기(Kidron Valley)는 이 장소를 성전(Temple)이 위치해 있었던 산(Mount Moriah)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즉 키드론 골짜기를 가운데에 두고서 이 골짜기의 서쪽에는 성전이 위치해 있었던 산(Temple Mount)이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에는 올리브 산(Mount of Olives)가 위치하고 있다).(**) 비록 요한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삶(Jesus' life)에 있어 상당히 이른 시기에 이 독서(reading)가 배치되어 있기는 하나, 수난 주간(Passion Week)에 대한 공관 복음서(the synoptic gospel) 기록들은 예수님께서 낮 동안에는 예루살렘에서 가르치셨으나 신변 안전을 위하여 밤에는 이 도시를 떠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이 장소는 기도를 위한 자리였는데, 자신의 큰 아들인 압살롬(Absalom)이 반란을 일으켰던 때인 힘든 기간 동안에 다윗(David)은 거기로 가서 하느님을 흠숭하였으며(adore)(2 사무엘 15,32), 또한 거기에서 예언자 에제키엘(Ezekiel)은 성전으로 들어가시는 주님(Yahweh)의 영광에 대하여 묵상하였다(contemplate)(에제키엘 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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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아래에 있는 지도들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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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신명기 22,23에는 간음(adultery)을 범한 약혼한 처녀(betrothed virgin)는 돌로 칠 것(stoning)을 포고하고(decrees) 있으나, 그러나 간음한 아내의 경우에 있어 레위기 20,10과 신명기 22,22에는 처형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 없이 죽음이라고 규정하고(prescribe) 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요한 복음서 18,31은, 유대인들의 율법이 사형(death penalty)을 요구하는 경우들에 있어, 유대인들로부터 사형을 집행할 권한을 로마 군대가 박탈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 12,13-17에서 세금으로 내는 돈을 두고서 판 함정에서와 유사하게, 당신의 반대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모세 율법과 로마의 권위 중 하나를 거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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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그들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상대방이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왜곡된 질문을 의도적/작위적으로 만들어 던져 상대방으로 하여금 대답들 하게끔 유혹하는 자들, 즉, "가장 간교한 자들"에 속한다는 생각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39.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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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성경에 있어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무엇인가를 쓰셨다고 말해지는 단 하나의 구절이다. 초기 교회 시절의 교부(patristic authors)들은 예수님께서 다음의 예레미야 17,13을 인용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였다: “이스라엘의 희망이신 주님 당신을 저버린 자는 누구나 수치를 당하고 당신에게서 돌아선 자는 땅에 새겨지리이다. 그들이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을 버린 탓입니다.” 아니면 예수님께서, 앞 절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단지 땅바닥에 그냥 심심풀이로 그림을 그리신 것일 뿐일 것이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문제의 성격상, 예수님께서는 이 경우를 단순히 법적인 문제로 다룰 것을 거부하시고, 대신에 실용적으로 다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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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질문 자체에 사악한 의도가 담겨있는 이 가장 간교한 자들의 악의에 찬 딜레마[dilemma, 양도논법(兩刀論法)]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자비를 드러내기 위하여, 선의에 찬 딜레마[dilemma, 양도논법(兩刀論法)]로 바꾸어, 다음과 같이 그들에게 되돌려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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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사형감(capital)인 경우에 있어, 피고인(the accused)에 반하는 증인들(witnesses)들은 형을 집행하는 데 있어 그 시작을 주도할 수 있었다(신명기 17,7). 예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심판하는 자리에 앉을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그들 각자의 고유한 양심이 확신을 하고 있는지 혹은 아닌지의 여부를 우선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하셨다. 으레,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경우들에서 그들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음을 분명하게 하셨다. 만약에 그들이 첫 돌들을 던져 로마 군대에 체포되었더라면, 그들은 당신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는 변명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노인들은 현명하기에, 그들이 던졌던 함정이 그들에게로 되돌려져 이제 자신들이 다음과 같은 딜레마[dilemma, 양도논법(兩刀論法)]에 놓이게 된 것을 깨닫게 된다: 만약에 그들이 그녀에게 돌을 던지면 자신들 이외의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전가할 수 없게 되어 로마 군대에 해명하는 책임을 져야 하고; 또 만약에 돌을 던지지 않으면, 모세 율법을 거부하였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신들의 고발을 강행하는(press forward with) 대신에, 한 남자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수단(means)으로 한 여자의 수모(humiliation)를 이용하려고 시도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하여 아마도 부끄러움을 느꼈던지, 그들은 뒤로 물러선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고발자들이 다 떠나고 난 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그들 사이에 줄을 서 있지(ranked) 않으심을 분명히 하신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이 이야기의 교훈은, 죄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아니면 하느님께서 죄를 벌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죄로부터 돌아서려고 하는 죄인에게 자비를 뻗어 베풀어 주신다는(extends) 데에 있다. 당신께서는 죄인이 아니라 죄를 단죄하기(condemns)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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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Temple Mount 사진

 

원 출처: http://www.katapi.org.uk/images/Churches/TempleMountToday.jpg 

 

 

Kidron Valley를 중심으로 한 지도

 
  

지도 설명: 예루살렘 지역의 등고선 지형도 (등고선(Contour)간 간격은 10m).

 

지도의 윗쪽이 북쪽 방향이다. 올리브 산(Mount of Olives)은 오른 쪽 끝에 있고, 시온 산(Mount Zion)은 왼쪽 끝에 있다. 모리아 산(Mount Moriah)은 다윗의 도시 (City of David)의 남쪽 끝 부분에서 긴 산등성이로 솟아올라 현재의 신전 산(Temple Mount)을 지나, 지도의 윗부분에 위치한, 옛 도시(Old City)의 북쪽 벽들 바깥에 이르러 가장 높아진다.

 

출처: http://www.templemount.org/theories.html


.....

 

이상, 본문 내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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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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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에 대한 단상
 
작성자   박광용(parkky44)  쪽지 번  호   109788
 
작성일   2007-04-12 오전 9:04:08 조회수   47 추천수   3
 
'너희들 중에서 죄 없는 자가 먼저 (죄인에게) 돌을 던져라’ 하는 복음 말씀은
바로... '십자가를 통한 구원(=義化)',
 곧 '하느님의 자비가(만이) 이 세상의 죄인들을 구한다'는 말씀의 전조이시겠지요.

하지만
 간음한 여자를 끌어다가 예수 앞에 세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당시 사회공동체 법으로 쓰인 모세 율법과, 로마 만민법이 서로 충돌하는 부분을 이용하여
어떤 경우라도, 예수님을 고소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려 했다고 생각됩니다.
모세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라고 하면, 로마법을 어기게 될 것이고
로마법대로 법정에 넘기라고 하면, 모세 율법을 어기게 될 것이므로...

그러니 '죄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하는 복음 말씀은
신명기의 ‘2사람 이상의 증인(고발자=의인)’이 먼저 돌을 던져야 단죄가 성립된다는 규정을 상기시킴으로써,
하느님의 율법을 인간공동체의 법으로 타락시켜서는 안됨을 이해시키는 동시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이런 하느님의 율법을 악용(오용)한 사회적 함정에 대해서
성자 예수님께서 준엄한 (하느님을 빙자하여 저질러지는 범죄에 대한) 시비 판결을 내리셨다고 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씀이 너무나 엉뚱하게도... ‘죄지은 사람이라도 ......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등등
이른바 '양비론(兩非論)'을 합리화하는 데에 즐겨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하느님의 자비’라는 말씀을 사회공동체 문제에 끌어넣어서 타락시켜 버리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법을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잘도 타락시키기도 하는 우리네 인간들이라서... 세상살다가... 이렇게든 저렇게든 늘상 겪는 사태들이기는 하지만...
 

성경 말씀도 제대로 해석 못하면서,

‘하느님의 자비’법을 '양비론(兩非論)'을 합리화시키는 데다 끌어넣어서 타락시키면 안됩니다.


우리네들은
어떤 법(法理)을 써서
어떤 공동체를 만들려 하고 있을까요?
<3월 24일 주일복음을 주제로 성체조배 중에 얻은 생각입니다.>
인간 개개인의 정(情理)을 관리하는 정법(情法)을 타락시키면... 떼법 천지가 되고,

인간공동체의 도덕(道理)을 관리하는 사회법(社會法)을 타락시키면... 신분계급법 천지가 되고,

하늘의 시비 판결(天理=生理[天以生物爲心])을 말하는 자비법(慈悲法)을 타락시키면... 무법(無法) 천지가 됩니다.
 
 
소순태 (2007/04/12) : 전례력으로 다해 사순 제 5 주일의 복음 말씀인 요한 8:1-11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죄인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대한 참 좋은 비유,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 중에서 오직 요한 복음서에만 언급되어 있는 이 비유의 내용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할 것을 촉구하는 글을 올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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