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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2년 만의 비유럽권 교황 탄생, 그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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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22 ㅣ No.82

1282년 만의 비유럽권 교황 탄생, 그 의미는?

지구 끝까지 가서 찾은 '보편교회 수장'



새 교황을 뽑는 추기경 비밀회의를 일컫는 콘클라베는 이상한(?) 선거다. 선거라면 으레 있게 마련인 유력 후보와 공약, 선거운동이 없다.

언론마다 사전에 물망에 오르는 후보를 꼽아보지만 사실 맞춘 적은 거의 없다. 분명한 게 있다면 투표에 참여한 추기경들(115명) 가운데 누군가 한 명은 '눈물의 방(Room of Tears)'이라는 곳을 통과해 대중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 뿐이다.

눈물의 방이란 새로 선출될 교황이 착용할 예복을 대ㆍ중ㆍ소 사이즈별로 놓아둔 제의실이다. 교황직의 중압감 때문에 거기서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기진해 쓰러진 교황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눈물의 방' 통과한 비유럽권 교황
 
13일 저녁, 새 교황 프란치스코가 전 세계 신문방송사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의 이름 앞에 '청빈한 목자' '예수회 출신 첫 교황' '1282년 만의 비유럽권 교황'이라는 수식어가 즉시 달렸다. 이 가운데 '1282년 만의 비유럽권 교황'은 여러 각도에서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한 수식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선출 당일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유머 섞인 어조로 "형제 추기경들이 로마 주교를 뽑으려고 지구 끝까지(남반구에서도 아래에 있는 아르헨티나) 간 것 같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추기경들은 그동안 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 로마 주교이자 베드로 후계자인 교황을 뽑았다. 731년 시리아 출신 그레고리오 3세 교황이 선출된 적이 있으나, 시리아도 한때 로마제국 울타리 안에 있었다.

따라서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교황 탄생은 교회 역사에서 '대사건'이다. 4세기 이후 북반구(유럽과 북미)에 고정돼 있던 그리스도교의 무게중심이 남반구(라틴아메리카ㆍ아시아ㆍ아프리카)로 이동하는 종교지형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자 수로만 따지면 무게 중심은 이미 남반구로 이동했다. 전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 가운데 유럽 신자는 24%이다. 북미까지 합치면 30% 정도 된다. 반면 남반구 신자는 70%이다. 라틴아메리카만 하더라도 41%인 4억 8000여 명에 달한다.

미국 종교사학자 필립 젠키스는 저서 「신의 미래」에서 "머지않아 '백인 그리스도교인'이라는 말은 '스웨던 불교인'처럼 어색한 말로 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1900년에 유럽에 전 세계 그리스도교 인구의 3분의 2가 살았지만 지금은 4분의 1 미만이고, 2050년까지 이 비율은 5분의 1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다. 지난 1세기 동안 그리스도교 세계의 무게중심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를 향해 줄기차게 남쪽으로 내려왔다. 우리가 만약 '전형적인' 현대 그리스도교인을 떠올린다면 나이지리아의 어느 마을이나 브라질 빈민가에 사는 한 여성을 그려야 마땅하다."(19~20쪽)

이번 콘클라베를 앞두고 가톨릭이 진정한 세계 종교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새 교황은 남반구, 특히 신자 수가 가장 많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전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 복음화국 사무총장 데스몬드 드 수자 신부는 △ 북반구 교회는 성직자 성추문으로 도덕적 권위가 실추되고 △ 남미 신자 수가 가장 많고 △ 새 복음화는 북반구뿐 아니라 온 인류를 겨냥해야 하기에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추기경들이 이 같은 종교지형 변화를 의식하고 투표에 참여했다고 말할 수 없다. 선거인 추기경 115명 가운데 유럽과 북미 출신이 64%인 74명이었다. 라틴아메리카 추기경은 19명이었다. 추기경들은 오로지 교회와 인류사회의 선익을 위한 참 목자를 보내달라고 성령께 청하면서 투표에 임했다. 이 또한 지역과 정파에 따라 표가 갈리는 세속사회 선거와 콘클라베가 다른 점이다.

그럼에도 비유럽권 교황 탄생은 서구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교회는 늙어가고 있다. "유럽은 그리스도교이고, 그리스도교는 유럽이다"는 명제는 16세기 과학혁명 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이성과 과학이 세상의 중심이던 하느님을 변방으로 밀어냈다. 유럽은 이 지구상에서 세속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된 대륙이다.


새로운 복음화 중단 없을 것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유럽인들을 '유산을 탕진한 상속인'에 비유한 바 있다.

"유럽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기억과 유산의 상실은 일종의 실질적 불가지론과 종교적 무관심을 동반한다. 이렇게 하여 많은 유럽인들은 역사가 그들에게 맡긴 세습 자산을 탕진해 버린 상속인들처럼 영적 뿌리 없이 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ㆍㆍㆍ 천천히 꾸준하게 세속화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상징들이 단순히 과거 흔적이 될 위험이 있다."(2003년 교황권고 「유럽교회」 7항)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유럽에 새로운 신앙의 숨을 불어넣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교황명을 유럽 수호 성인 베네딕토(480?~550?)로 정한 그는 '유럽의 교황'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유럽의 새로운 봄을 재촉했다. 재임 중 심혈을 기울인 새로운 복음화(New Evangelization)는 탈그리스도교화 현상이 심각한 서구사회에 새로운 열정, 방법, 표현으로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한 것이다.

교황이 바뀌었다고 새로운 복음화 노력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곧 선임자의 새로운 복음화 여정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해 비전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이탈리아계 이주민 가정 출신이다. 또 교황청 경신성사성ㆍ수도회성ㆍ가정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는 제1세계와 제3세계 교회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교황 탄생은 그리스도교 무게중심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3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빈민가에 사는 안젤라씨가 베르골료 추기경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하며 새 교황 탄생을 기뻐하고 있다.

[평화신문, 2013년 3월 24일,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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