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및 기사모음

평화방송 TV 전성우 PD의 바티칸 현장 취재기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22 ㅣ No.266

평화방송 TV 전성우 PD의 바티칸 현장 취재기

환호하는 사람들 보며 하느님 현존 뜨겁게 느껴



평화방송 TV 전성우(이냐시오) PD가 새 교황 선출 순간부터 교황직 시작 미사까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누비며 역사의 현장을 기록했다. 전 PD가 현장에서 보내온 교황 선출 취재기를 싣는다.




하베무스 파팜! 새 교황님이 나셨다.

교황직 시작 미사가 봉헌된 19일. 새벽 4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도착하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자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이곳저곳에 아르헨티나 국기가 눈에 띈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가득하다.

미사 시작 1시간 전, 교황님이 방탄 유리도 없는 무개차를 타고 광장으로 모습을 드러내셨다.

마치 본당 신부님이 미사 시작 전 성당 앞에서 신자들에게 인사하듯이 교황님은 광장 곳곳을 둘러보시며 인사를 하고 눈을 맞추셨다. 손을 흔드는 모습이 연세에 비해 힘이 넘치는 느낌이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교황님과 눈을 맞추며 그분과 하나임을, 교회와 하나임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교황님이 누군가를 발견하고 놀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차를 세우셨다.

교황님이 향한 곳에는 장애인이 있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교황님과 눈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이었다. 그에게 달려간 교황님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강복을 주셨다. 소탈하고 친근한 교황님이다. '아! 저분이 우리의 교황님이시다. 우리의 위로자, 우리의 아버지….'

미사는 엄숙했다. 묵상하고 기도하는 교황님 모습에서 수도자의 향이 묻어났다.

로마 주교가 베드로 사도직을 시작하면서 로마교구는 잃었던 아버지를 찾았고, 세계 교회는 가난과 겸손ㆍ일치와 친교라는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하느님의 현존을 새롭게 느꼈다.


하느님 사랑 안에 이뤄진 모두의 축제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 시대 교회의 가장 적합한 일꾼으로 뽑은 추기경들, 비가 내리는 으슬으슬한 날씨에 저려오는 다리에도 불구하고 흰 연기를 기다린 우리 형제 자매들을 회상하니 모든 것은 하느님 사랑 안에서 이뤄진다는 깨달음이 온다.

교황이 선출된 후 성 베드로 광장은 말 그대로 전 세계인이 함께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스페인과 폴란드에서 온 순례단이 광장이 떠나가라 구호를 외치며 기쁨을 표현했다. 다정하게 손잡은 노부부, 젊은 연인, 친구 혹은 가족끼리 삼삼오오 모인 이들이 즐거움에 가득 차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겨웠다.

전 세계 언론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바티칸은 프레스센터를 운영했는데 발급한 프레스 카드만 6000장에 가까웠다. 프레스센터는 몸 하나 들어갈 공간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다. 고개를 돌리기도 쉽지 않아 덕분에 교황선출 청원미사에서는 외국 취재진 체취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검은 연기가 흰 연기로 바뀌는 순간

현지 시각으로 13일 오후 7시 10분. 시스티나 성당 굴뚝 위로 흰 연기가 힘차게 피어오른 순간은 잊지 못한다. 검은 연기 속에 조금씩 흰 연기가 섞이다 이내 완전히 하얀 연기로 덮이자, 광장에 모인 10만여 명 인파의 짧은 탄식은 이내 커다란 환성으로 바뀌었다. 성 베드로 성당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환호성과 함께 손뼉을 치며 서로 얼싸 안았다.

검은 연기가 흰 연기로 바뀌는 모습은 마치 어둠을 뚫고 빛이 세상을 밝히는 느낌이었다. 새 교황님 탄생이 이 세상의 모든 인류, 특히 어둠 속에 갈 길을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ㆍ희망의 빛이 될 것을 예고하는 듯했다.

사실 콘클라베가 시작된 12일부터 내가 한 일은 성 베드로 광장에 나가서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을 뚫어져라 보는 것뿐이었다. 추운 날씨에 비는 계속 내리고 사람도 많아 '내가 왜 이렇게 온종일 굴뚝만 쳐다보고 있나'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흰 연기가 나오자, 우리가 인생에서 하느님을 만나려면 간절히 바라고 기다려야 함을 뒤늦게 깨달았다.

정적을 뚫고 일제히 귀를 쫑긋 세운 10만 인파에게 들려온 이름은 바로 '카디널 베르골료'. 새 교황님 이름이 발표되는 순간,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던 BBC 기자가 "What?(뭐라고?)"이라고 되물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던 아르헨티나의 베르골료 추기경이었고 새 교황 프란치스코였다. 그 이름이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전역에 울려퍼지는 순간 정적은 일제히 환호성으로 바뀌었고 그때부터 모두 '비바 파파'(교황 만세)와 '프란치스코'를 함께 외쳤다. 현장에 있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동이었다.

 
세상 곳곳에서 축제 이어가야

아르헨티나의 베르골료 추기경이 선출됐다는 소식에 순간 남미에서 온 사람들은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됐다.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사진을 같이 찍으려 하는 등 축제 현장이었다. 광장에는 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의 모든 인종이 다 모였다. 첫 투표 때부터 내리던 비는 새 교황이 선출된 후 거짓말처럼 멈췄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로마교구 사제들과 작별 인사를 하면서 "이 교회는 나의 것도 아니고 여러분의 것도 아니고 그분의 것"이라고 하셨다. 새 교황을 만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 환호를 들으며 하느님은 과연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교회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뜨겁게 느꼈다.

하느님의 교회, 이곳 바티칸에서 새 교황님의 선출을 초조하게, 때론 지루하게 기다리면서 확인한 것은 바로 하느님의 교회에 내가 있고 나와 같은 10만 명의 인파와 전 세계 12억 신자들이 형제 자매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진리인 하느님의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하느님의 현존을 짜릿하게 느낀 잔치는 이제 끝났다. 우리가 세상 곳곳에 파견되어 그 잔치를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새롭게 시작이다. 자, 다시 시작이다.



▲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13일 한 순례자가 '교황님 만세'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새 교황 탄생을 기뻐하고 있다. [바티칸시티=CNS]

[평화신문, 2013년 3월 24일]


692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