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 13주간 토요일 7/7 (새 판단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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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07-07 ㅣ No.3584

연중 제 13주간 토요일 7/7 (새 판단 기준)

수색 예수성심 성당 박재성 시몬 부제님 강론

독서 : 아모 9,11-15

복음 : 마태 9,14-17

 

우리들의 판단 기준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먼저 자신의 지식에 있고, 다음에는 자신의 경험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것을 말하다가, 막히면 내가 해 봤는데라면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내가 기준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마태 9,14)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당신네들은 왜 하지 않냐는 불평이 느껴집니다. ‘나는 잘 하는데 넌 왜 하지 않니?’라는 비판을 하는 것은 판단의 기준이 자신에게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요한의 제자들은 단식을 지켰고, 율법학자들을 율법을 열심히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태 9,17)라고 말씀하십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죠. 단식과 율법에 따른 행동을 지킴으로써 그들은 하느님께 예를 다하려 했으나, 그러한 행동은 예수님께서 밝히시는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단식은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어주고 멍에를 풀어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는 것,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누어 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 주며 제 골육을 마르는 체 하지 않는 것(이사 58,5-7)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고 하면서 이웃을 옥좨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따르면서도 이웃을 억압에서 풀어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여전히 단식할 것을 권고합니다. 특히,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는 의무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식은 그저 하루 한 끼를 굶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여는 것, 생활양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말합니다.

 

단식도 그렇고, 판단의 기준도 그렇고 우리는 예수님을 그 기준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처럼 단식은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께 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실천은 내 삶의 기준을 하느님께 돌리도록 도와줍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태 9,1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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