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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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10-02 ㅣ No.3665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10/3

 

오늘 독서에서 욥은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이 너무나도 나약할 뿐만 아니라 주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청할 수도 그렇다고 어느 것 하나 요구할 수도 없는 실존적인 처지를 한소연합니다. 욥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은 인생이 고달프고 힘겹지만, 아무 말도 들어주지 않고 일체의 항변을 부정하며 하느님의 무결성과 완전성을 내세워 자책만을 인정하라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허망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그저 주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지엄하심 앞에서 뭐라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되내입니다. “그분께서 잡아채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누가 그분께 왜 그러십니까?’ 할 수 있겠나? 그런데 내가 어찌 그분께 답변할 수 있으며 그분께 대꾸할 말을 고를 수 있겠나? 내가 의롭다 하여도 답변할 말이 없어 내 고소인에게 자비를 구해야 할 것이네.”(9,12.14-1) 친구들의 몰인정과 다그침 속에서 심지어는 주 하느님께마저 인간적인 희망을 두지 못합니다. “내가 불러 그분께서 대답하신다 해도 내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리라고는 믿지 않네.”(1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해서 우리에게 아무것도 보상해 주실 수 없다는 것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보장해 주실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못박으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58) 오로지 주 예수님의 복음 선포가 최우선의 자리에 있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하십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60) 우리가 신경 쓰고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은 하느님 나라뿐이라고 제시하십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62)

 

우리의 모든 처지를 아시고 위로해주시는 주님께서 여기서는 왜 이리 각박하고 매몰차실까?

주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이렇게도 인간의 정과 인간의 현실적인 욕구를 다 뒤로 하라고 하시는가?

   그것은 주 예수님께서 선포하는 인간 구원을 위한 기쁜소식, 복음과 주 예수님께서 건설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시는 하느님 나라가 우리가 현실적으로 꿈꾸는 이상과 목표보다 우선하고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의 최종적인 목표를 다 합친 것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가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하느님 나라에는 우리의 꿈과 이상이 다 들어있다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다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투신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외치며 다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머물려고 모든 것을 해로운 쓰레기로 여기노라.”(필리 3,8-9 참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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