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평의회[Con] 2007년 7월 훈화

인쇄

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07-09-07 ㅣ No.56

 

Allocucio - July,  2007

베데 맥그레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자



프랭크 더프와 레지오의 교본

레지오의 전체 영적인 생활을 담아내는 한 문장을 찾는다면  방금 읽은 영적 독서에서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은 성모마리아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프랭크 더프는 이 문장을 쓰면서 그의 영적인 생활의 심오한 특징들 중의 하나를 드러내면서 레지오에 바라는 이상적인 것을 그는 먼저 실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성모님의 정신을, 그중에서도 성모님의 겸손과 더 나아가 성모님의 믿음을 가지려고 열망하는 한편 성모님의 마음가짐, 신념, 열정, 그리고 모성애적 사명을 깊이 나누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만약 자신이 성모님을 닮을 수만 있다면 완전하게 예수님과 예수님을 통하여 삼위일체에 빠져 들 수 있으리라고 그의 온 정신과 마음과 힘을 다하여 굳게 믿었습니다. 그의 성모님께 대한 사랑은 단지 훌륭한  이론이나 생각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실제적인 도구였습니다. 또한 그의 성모님께 대한 헌신은 성스러운 사업과 사도직 사명에 대한 부름에 대답하는 힘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레지오에 바치는 비밀, 즉 성모님의 비밀인 것입니다.


그가 성모님을 진정으로 알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와의 만남입니다.  이미 알겠지만  그는 몽포르의 ‘성모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이라는 책을 큰 감동 없이 몇 번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친한 친구의 요청으로 다시 한 번 읽으며 그는 갑자기 이 작은 책자에서 성모님에 대해 몽포르가 말하는 모든 일이 절대적으로 진실하다는 확고한 믿음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이 신비의 체험은 1920년경 레지오를 창설하기 바로 전에 발생하였으며  그 후 60여년을 성모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을 알고자 공부하고, 기도하며,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의 기본적인 통찰력을 실천하고, 보급하면서 지냈습니다. 1947년에 그는 ‘몽포르의 길’이라는 팸플릿을 썼는데 이 책에서 몽포르의 기본적인 정신을 서정적인 표현은 줄이고 간결한 글체로 씀으로서 모든 레지오 단원들과 현대의 모든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마리아의 정신과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레지오의 교본에 담고자 하였습니다. 아마도 몽포르의 책과  교본과의 서로 다른 점을 찾으려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외적으로 나타난 그의 일생과 연대만 보고 몇 가지의 획기적인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평상적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본은  프랭크 더프의 모든 면을 풀어 줍니다.  외적으로는 온화하고, 쾌활하며, 열심히 일하고, 다정다감한 면 뒤에 있는 그의 정신적인 진정한 모습을 우리는 교본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교본은 프랭크 더프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십 년간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지인들은 그가 매우 성실하고 고결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말할 때 그는  가장 깊고 힘들게 얻은 그의 영적인 생활의 믿음을 이야기 하곤 하였습니다.

이것이 아마 성모님께 대한 이해와 사랑에 대한 진실일 것입니다.


우리는 아마 앞으로도 창설자이신 프랭크 더프의 성모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의 이론과 생활에 대하여 자주 접하게 되겠지만 그의 글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여 마무리를 지으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성서에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도록 마련하신 상징은  ‘신비스런 몸’ 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통해 성모님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의 어머니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속죄로 절정을 이루어 모든 것이 이루어 진 때에 우리 주님 자신이 직접 우리에게 선포하신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성모님과 그의 아이들의 친밀한 관계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다른 예를 들어 본다면, 의미는 있으나 아직은 완전히 적합하지는 않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생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기는 영혼이며, 그의 어머니는 성모마리아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젖을 먹는 아기보다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특수하게 예로 들었겠습니까? 그 이유는 몽포르가 교회 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영혼과 마리아의 관계의 밀착은  품에 안겨 젖을 먹는 아기로는 충분히 나타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품의 아기는 물론 넓게 보면  어머니에게 의존해 있지만 완전히 속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아기는 어머니를 떠나서도 그 자신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숨 쉬는 공기도 어머니로부터 받지 않고 영양도 어머니 몸으로부터 받지는 않습니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어머니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떠나거나, 죽거나 할 경우라도 아기의 생명은  그대로 이어집니다. 더욱이 특수한 경우를 상정해 본다면 어쩌면 어머니가 있을 때보다도 없을 때가 더 나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영혼이 세례를 통하여 다시 태어난 그날부터 일생의 마지막까지-설사 백년이 흐른 뒤라도-성모님이 안계시면 어떤 은총의 한 가지라도 그 영혼에게 도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헌신적으로 성모님의 신성한 작업을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그녀는 신성한 은총인 생명의 피를 받아 영혼에게 줍니다.  그 피는 아주 작은 한 방울이라도, 바꾸어 말해서 아주 작은 은총이라도 성모님의 마음을 통하지 않고는 ‘신비스런 몸’으로 우리에게 닥아 오지 못 할 것입니다. 얼마나 축복받는 완전한 의존의 모습입니까!  아기는 하느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완전하게 그 어머니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태어나지 않은 아기는 우리 마음속에서 신성한 은총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역할을 이해하는 좋은 상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도 성모님의 진정한 모습을 나타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다자란 우리 성인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태중에 있음이 가장 자유스러운 것처럼 성모님께 가깝고 친밀하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프랭크 더프는 성모님께 대한 관계를 훌륭한 단계까지 이루며 사셨고, 또한 우리 레지오 단원들에게 그 길을 터놓아 주셨습니다.


 




71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