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바다에서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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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옥 [yimariaogi] 쪽지 캡슐

2008-07-25 ㅣ No.8103



    더 깊은 눈물 속으로 - 이외수
      흐린 날 바다에 나가보면 비로소 내 가슴에 박혀 있는 모난 돌들이 보인다 결국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고 흩날리는 물보라에 날개 적시며 갈매기 한 마리 지워진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파도는 목놓아 울부짖는데 시간이 거대한 시체로 백사장에 누워 있다 부끄럽다 나는 왜 하찮은 일에도 쓰라린 상처를 입고 막다른 골목에서 쓰러져 울었던가 그만 잊어야겠다 지나간 날들은 비록 억울하고 비참했지만 이제 뒤돌아보지 말아야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 거대한 바다에는 분명 내가 흘린 눈물도 몇 방울 그때의 순수한 아픔 그대로 간직되어 있나니 이런 날은 견딜 수 없는 몸살로 출렁거리나니 그만 잊어야겠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우리들의 인연은 아직 다 하지 않았는데 죽은 시간이 헤체되고 있다 더 깊은 눈물 속으로 더 깊은 눈물 속으로 그대의 모습도 헤체되고 있다

       

       

          짜디짠 소금물로 내 안에 출렁이는 나의 하느님 오늘은 바다에 누워 푸르디푸른 교향곡을 들려주시는 하느님 당신을 보면 내가 살고 싶습니다 당신을 보면 내가 죽고 싶습니다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당신을 맛보게 하는 일이 하도 어려워 살아갈수록 나의 기도는 소금맛을 잃어갑니다 필요할 때만 찾아 쓰고 이내 잊어버리는 찬장 속의 소금쯤으로나 당신을 생각하는 많은 이들 사이에서 나의 노래는 종종 희망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제발 안 보이는 깊은 곳으로만 가라앉아 계시지 말고 더욱 짜디짠 사랑의 바다로 일어서십시오 이 세상을 희망의 소금물로 출렁이십시오. 바다에서 쓴 편지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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