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완벽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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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5-05-26 ㅣ No.442

 

제주도에 처음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밭농사를 지을 때였다. 들녘엔 온통 울퉁불퉁한 화산석투성이였다. 농사짓기에 딱 알맞겠다 싶은 곳도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온통 돌투성이였다. 사람들은 그 돌로 밭둑을 쌓기 시작했다.

매사에 아주 꼼꼼하기로 소문난 김씨도 돌로 담을 쌓았다. 성격 그대로 아주 빈틈없이 바람 한 점 새지 않도록 견고하게 담을 쌓았다. '이정도면 아마 무너지지 않고 백년은 갈 거야.' 김씨는 돌담을 두르려보며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돌담은 단 하루도 못 돼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리 심하지도 않은 바람에 무너진 것이다.

김씨는 야트막하게 담을 다시 쌓아보았다. 그래도 담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김씨는 실망하지 않고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다시 담을 쌓았다. 이번에는 돌을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구멍이 숭숭 나도록 만들어 쌓았다. 그러자 바람이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담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담은 겉으로 보기엔 누가 재채기라도 하면 곧 무너녀버릴 것 같았지만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았다. 먼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구멍 사이로 자유롭게 드나들기만 할 뿐이었다.

"너무 완벽하면 무너지는군. 좀 허술한 구석이 있어야 해." 김씨는 밭두렁에 앉아 중얼거렸다. 유채꽃이 그 말을 듣고 바람에 흔들거렸다. 유채꽃은 바람에 온몸을 내맡겨야 꺽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정호승, <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드립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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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요.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하면 숨이 막힙니다. 뭔가 비어있는 구석이 있어야 숨이 통하지요. 너무 엉성해도 안 되겠지만, 너무 빽빽해도 곤란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알고도 모르는 척, 웬만한 실수는 덮어두는 것이 우리 삶에 숨통을 트이게 만듭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예수님께서는 매사에 철저하고 완벽하려고 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보다는 부족함과 잘못이 많았던 죄인들을 가까이 하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자신이 너무 빈 틈이 많은 것 같다고 자책하지 말아야겠지요. 나의 빈틈이 다른 사람에게는 숨통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다른 이들의 빈틈을 나무라고 책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그 빈틈 때문에 나와 다른 이가 숨을 쉬니까요. 사람이나 사회나 너무 꽉 차기 보다는 여유가 좀 있어서 널널했으면 좋겠습니다. /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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