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감옥에 있는 영들 과 그들 - 1베드로 3,19-20 -연옥교리 근거 [성경공부] [감옥] [연옥] 617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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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ㅣ No.950

[내용 추가 일자: 2018년 4월 10일]

[번역 오류] [영어로 "heaven(s)" 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아무리 빠르더라도, 1584년경에 한문 문화권 내의 천주교회 안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천당"이, [영어로 "the kingdom of heaven" 으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1635년경에 한문 문화권 내의 천주교회 안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천국(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 의 옛말이라는 주장은 크게 잘못된 주장입니다. 
 
2015년 8월 이전까지, 이 "천주교 용어사전"에 주어진 설명에 따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천국" = "천당", 즉, "천당"은 곧 "천국"을 말하고, 또 "천국"은 곧 "천당"을 말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러나 이것이 크게 잘못된 것임을 2015년 8월에 들어와 처음 알게 되었기에, 바로잡습니다. 이를 위하여,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즉, 지금 읽고 계신 글]과 이 글에서 그 접속 주소를 밝히면서 읽으실 것을 요청하는 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다음은, 가톨릭 대사전, 전례사전, 천주교 용어사전에 주어진 "천국""천당"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에 대한 설명들인데,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차용 번역 용어인 "천국"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출처를 구체적으로 확인한 결과, 오류(error)의 글들입니다.
 
이 설명들에서, 마태오 복음서에서 "천국"은 "하늘 나라"를 말하므로 오류가 아니나, 그러나 나머지 문맥 안에서 "천당(heaven)"으로 반드시 말해져야 하는 바가 "천국"으로 말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커다란 오류입니다. 영어로 "heaven"으로 번역되는 표현은 반드시 "천당" 혹은 "하늘"로 교체하여 읽도록 하십시오:
 
따라서, 국내의 개신교측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 "kingdom of heaven(하늘 나라)"로 번역되는 표현에 대단히 충실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입니다. 

오늘 날짜로, 바로 위에서 지적한 오류를 아래의 본문 중에서 바로잡았습니다.
[이상, 2018년 4월 10일자 내용 추가 끝]
 
 
게시자 주: "의인(의로운 자)"의 반대말은 "악인(악한 자)"이 아니라, "의롭지 않은 자"입니다. 따라서, 본인이 하느님 보실 때에 "의인(의로운 자)"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이 글을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연옥(Purgatory)"이 필요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께서는 이 글과 이 글 안에서 링크 설정된 글들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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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 질문:
 

다음은 베드로1서 3, 19-20 입니다:

 

그리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시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로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질문 1:

이 구절에서 "그들은" 이란 순종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개신교 성경에도 그렇게 나와있지만 원전은 그렇지 않고 타락한 천사라고 하는 주장이 있는데요...

          

어떤 것이 맞나요? 위 구절은 연옥설을 뒷받침하기도 하는데.....궁금합니다

 

질문 2:

베드로 전서 3장 19절 말씀에서

감옥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요?  궁금합니다.

(공동번역성서에서 『갇혀 있는 영혼들』이 갇혀있는 곳 : prison)은

천국인지요? 연옥인지요? 아니면 고성소인지요? 

 

새번역성경 베드로 전서 3장 19절

그리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시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공동번역성서 베드로 전서 3장 19절

이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In it he also went to preach to the spirits in prison,

(New American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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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우선, 베드로 1서 3,19-20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나해 사순 제1주일 제2독서(1베드로 3,18-22)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퍼오신 개신교 신자의 풀이는, 사도 신경에서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승(Sheol, Hades)" 에 가셨던 것을 부인하기 위하여 이런 저런 소리를 엮은 것 같으며, 따라서, 결국에 자매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인 "연옥 교리"를 부인하기 위하여 이런 저런 주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2.

사도 신경의 한 구절에 대한 중요한 성경 근거인 1베드로 3,19에 대한 질문을 주셨기에, 저의 졸저서인 "성경공부 해설서 나해-I" 사순 제1주일 제2독서(1베드로 3,18-22)의 해설 전문(각주 포함)을 묵상꺼리로 제공해 드립니다. 질문 2에 대한 답변이 주어져 있습니다:

 

(발췌 시작) 

제2독서 - 1베드로 3,18-22

 

     베드로의 첫 번째 편지는 소아시아라는 넓은 지역 전역에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백성에게 64년경에 써서 보내졌다. 이 편지는 어떤 특정인 혹은 회중에게 보내진 것이 아니다. 이들 하느님의 백성은 이방인 출신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이 지역은 유다인 지역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또 유다인들에 의하여 많이 정착이 된(settled) 것으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편지는, 그들이 세례에 의하여 입문하게 되었던 이들 그리스도인들을 새로운 삶 안에서 위로하고 굳건하게 하기(strengthen) 위하여, 성 베드로에 의하여 로마에서 보내졌다. 이들이 부닥치고 있던 경멸(disparagement), 고통(suffering), 그리고 박해(persecution)는,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1베드로 4,14) 그들을 매도하고(revile) 학대하는 다신교 이웃(pagan neighbors)들로부터 유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선택된 겨레이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1베드로 2,9)임을 고려하면서, 성 베드로는 그들이 그들의 소명(calling)에 충실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쓴다.

 

     오늘 우리의 독서에서, 성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들의 세례의 효력에 대하여 상기시키고 있으며, 그들은 이제 하느님과의 계약의 표시를 그들의 영혼에 지니고 있다.   

 

18 사실 그리스도께서도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의 삶(earthly life)을 사셨으나 십자가라는 제대 위에서의 당신의 희생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늘(heaven, 천당)이 열릴 수 있게 되었으며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인류의 죄들을 위한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 우리의 죄들이 용서받고(forgiven) 또 잊혀지는(forgotten)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당신의 이 세상의 삶과 대조적으로, 부활에서, 예수님께서는 pneuma(숨결, 영)이 되셨다. 당신께서는 성부의 영광에 의하여 부활하게 되셨으며 그리고, 당신께서 다른 이들을 거룩한 삶(divine life)으로 이끌 수 있도록 하는, 권능을 가지게 되셨다. 예수님의 이 세상에서의 삶과 거룩한 삶을 대조하는 것(contrasting)은 로마서와 티모테오 1서에서 또한 사용되는 하나의 방식(tool)이다(로마 8,34; 1티모테오 3,16).

 

19 그리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시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서 감옥에 있는 영들이란 죽은 자들의 거처(abode)인 저승(sheol)(hades, purgatory)에 있는 영혼들로서, 하늘(heaven, 천당)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하늘(heaven, 천당)이 닫혀있었기에 들어갈 수 없었던 모든 영혼들을 말한다. 1세기의 바리사이이며 역사학자인 요세푸스(Josephus)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저승의 설명을 제공한다:

 

“이제, 의로운 자(the righteous)와 의롭지 않은 자(the unrighteous)들이(*) 가게 되어 있는, 저승(Hades)에 대하여 ... 이 세상의 빛이 빛나지 않는, 반듯하게 지어지지 않은 지하의 영역에 있는 장소  ... 이 영역은 영혼들의 관리(custody)를 위한 장소로서 할당이 되어 있는데, 거기에 천사들이 그들에 대한 관리자들로서 임명되어 있으며, 이들 천사들은 그들에게, 각자의 행동과 처신에 합당한, 하느님에 의한 한시적인 벌들을 나누어 준다. ... 이 장소는 하느님에 의하여 이미 정해져 있는(afore determined) 날을 위하여 마련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단 한 개의 정의로운 판결(sentence)이 모든 사람들에게 마땅히(deservedly) 내려질 것인데, 이는 의롭지 않은 자(the unjust)들과 하느님께 불순명해 온 자들에게는(**) ... 영원히 지속되는 벌이 ... 선고될 시기이며, 이와 반면에 의로운 자(the just)들은 썩지 않고 또 결코 사라지지 않는 왕국을 얻게 될 시기이기 때문이다. 의로운 자들은 지금 실제로 저승(Hades)에 갇혀 있으나, 그러나 의롭지 않은 자(the unjust)들이 갇힌 곳과 같은 장소가 아닌 곳에 갇혀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Flavius Josephus, 70년), Discourse to the Greeks Concerning Hades, 1-2].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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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당시의 유다인들의 배타적인 선민 사상에 비추어 볼 때에, 유다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의하여 저술된 이 책에서, "의로운 자들(the righteous, 즉 the just)"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말하고, "의롭지 않은 자들(the unrighteous, 즉 the unjust)"은 이방인(Gentiles)들을 말할 것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글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634.htm <----- 필독 권고

 

(**) 번역자 주: "하느님께 불순명해 온 자들"은 "사악한 자들(the wicked)"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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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내용 추가 끝]

 

비록 오늘의 복음 말씀이 당신께서 이들 영혼들에게 ‘설교하러(preach)’ 가셨다고 말하고 있으나, 당신께서 이미 승리하셨음을 ‘선언하셨다(announced)’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인데, 이는 이미 하늘(heaven, 천당)을 열어버린 희생 제물을 당신께서 이미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앙의 선조(patriarchs)들과 예언자들이 당신의 구속 임무(redeeming mission)에 대하여 익히 알게 하기 위하여, 저승(hades)에 내려가셨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208-212년 사이), The Soul 55,2].

 

20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외경(apocryphal) 기록인] 토마스 복음서(Gospel of Thomas) 제19장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손으로 아담(Adam)을 잡으셨으며 나머지 성인들 모두는 손을 맞잡았으며 당신과 함께 낙원(paradise, 즉, 천당)에 올라가셨는데, 거기서 그들은 에녹(Enoch), 엘리야(Elijah), 그리고 선한 도둑(the good thief, 루카 복음서 23,39-43)을 만났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커다란 배(large ship, 船)’를 나타내는 한자(Chinese character)가 ‘여덟 명의 사람들(eight souls)’을 나타내는 한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흥미롭다.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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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船(large ship) = 舟(boat, 나무를 파서 만든 배) + 八(eight) + 口(number of persons, 인구), 여기서 괄호 안은 각 한자의 의미이다.
참고자료 1: 漢韓大字典, 민중서림 출판, 1981년.
참고자료 2:
http://ch.catholic.or.kr/pundang/4/enc/large_ship.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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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성 베드로가 세례와 노아의 탈출(Noah's escape) 양자를 어떻게 비교하는지에 주목하라. 대홍수는 세례의 전형(prototype)이었다.

 

“대홍수의 물은 세례의 한 예형(a type)인데, 이는, 마치 세례가 악한 영(evil spirits)들을 쫓아내고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귀의하는 자들을 구하는(saves)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 물이 [윤리적으로] 악한 자들을 벌하였고 또 [윤리적으로] 선한 자들을 구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례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고, 우리가 얼마나 이것을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준다.” [안드레아(Andreas, 7세기경), Catena].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세례는 단순히 몸을 씻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리고 계약을 따르기 위하여 우리는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여야 한다.

 

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데,

 

영광의 자리. 또한 시편 110,1에 대한 암시이다.

 

그분께 천사들과 권력들과 권능들이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천사들 위에 당신의 거룩한 자리를 되찾으셨다(regained). 히브리서 1,13; 2,2를 보라.

(이상, 발췌 끝).

 

3.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의 가르침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에 주어진, 1베드로 3,19-20에 대한 (영어) 해설(우리말 번역 포함)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말 번역은 필자가 한 것이며, 질문 1에 대한 답변질문 2에 대한 답변이 주어져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1.htm

(발췌 시작)

19-20. "In which", that is, in the spirit. The ambiguity of the original text (referred to in the previous note) continues, so it is possible to understand the "in which" in the three ways outlined. Some take it as meaning that Christ went to preach to the spirits in prison "with his soul", separated from his body; for some he went "in his glorious condition", which is not incompatible with the resurrection in the strict sense happening afterwards.

 

19-20. "거기에(in which)", 즉, 그 영에게. (직전의 주석에서 언급하였던) 원 본문의 애매모호함(ambiguity)이 계속되기에, 따라서 윤곽이 그려진 이 세 방식들 안에서 "거기에(in which)" 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어떤 이들은, 당신의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당신의 영혼과 함께" 감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설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가셨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 있어는 당신께서, 나중에 발생하는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의 부활과 양립할 수 없는(incompatible) 것이 아닌, "당신의 영광스러운 상태로" 가셨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을 받아들입니다. 

In any event, these verses are one of the clear references in the New Testament to our Lord descending into hell (cf. also Mt 12:38-41; Acts 2:24-36; Rom 10:6-7; Eph 4:8-9; Rev 1:18). After dying on the cross, Jesus Christ went to bring his message of salvation "to the spirits in prison": many Fathers and commentators are inclined to the view that this is a reference to the just of the Old Testament who, not being able to enter heaven until the Redemption took place, were kept in the bosom of Abraham, which is also called the "limbo" of the just (cf. "St Pius V Catechism", I, 6, 1-6).

 

여하튼 간에, 이들 절들은 신약 성경에 있어 우리의 주님께서 저승[hell(영어), sheol(히브리어), hades(그리스어)]으로 내려가셨음에 대한 분명한 언급들 중의 하나입니다(*)(또한 마태오 12,38-41; 사도행전 2,24-36; 로마 10,6-7; 에페소 4,8-9; 요한 묵시로 1,18을 참조하라).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구원의 메시지를 가져다 주시기 위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셨는데, 수 많은 교부들과 주석자들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속량(the Redemption, 구속)이 발생할 때까지 하늘(heaven)로 들어갈 수 없었던, 또한 의로운 자들의 "고성소(limbo, 림보)"로도 불리는, 아브라함의 품(the bosom of Abraham) 안에 머물렀던, 구약 성경의 의로운 자들에 대한 언급이라는 견해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성 비오 5세 교리서(St Pius V Catechism)", I, 6, 1-6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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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1) 1베드로 3,19ㄱ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은, 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TOB)의 1베드로 3,19에 대한 주석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데, 이 주석은 이 구절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해석과는 대단히 동떨어진 주석이다:

 

("주석 성경"의 1베드로 3,19ㄱ에 대한 주석 발췌 시작)
"감옥에 있는 영들"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유다교 전통에서 질이 가장 나쁜 죄인으로 간주되는, 노아 시대 사람들의 영혼이다. 둘째,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여겨지던 타락한 천사들이다.
(이상 발췌 끝)

(2) 위의 "주석 성경"의 1베드로 3,19ㄱ에 대한 주석이 얼마만큼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해석과  동떨어져 있는지는, 우선적으로, 예를 들어, 1859년판 Haydock's Catholic Bible  Commentary에 주어진 1베드로 3,19에 대한 다음의 주석을 참고하라:

 

출처: http://haydock1859.tripod.com/id267.html 

(발췌 시작)
Ver. 19. In which (to wit, soul or spirit) also he came, and preached to those spirits who were in prison.  The true and common interpretation of this place seems to be, that the soul of Christ, after the separation from  the body and before the resurrection, descended to a place in the interior parts of the earth, called hell in that  which we call the apostles' creed, (sometimes called Abraham's bosom, sometimes Limbus Patrum [Limbo of the Fathers], a place where were detained all the souls of the patriarchs, prophets, and just men, as it were in  prison) and preached to these spirits in this prison; i.e. brought them this happy news, that he who was their  Redeemer was now come to be their deliverer, and that at his glorious ascension they should enter with him into heaven, where none could enter before our Redeemer, who opened as it were heaven's gates. Among these  were many who had been formerly at first incredulous in the time of Noe[Noah], who would not take warning from his preparing and building the ark, but it may be reasonably supposed that many of them repented of their  sins when they saw the danger approaching, and before they perished by the waters of the deluge, so that they  died at least not guilty of eternal damnation; because, though they were sinners, yet they worshipped the true  God, for we do not find any proofs of idolatry before the deluge. These then, and all the souls of the just, Christ  descended to free from their captivity, from their prison, and to lead them at his ascension triumphant with him  into heaven. The Church of England cannot quarrel with this exposition, which seems altogether conformable  to the third of their thirty-nine articles, which at present runs thus: "As Christ died for us, and was buried, so also  it is to be believed that he went down into hell." It is thus expressed in the articles under queen Elizabeth, in the  year 1562; and in the articles put out ten years before, in the year 1552, in the fourth year of king Edward the  sixth, the words were: "that the body of Christ lay in the grave until his resurrection, but the spirit which he gave  up was with the spirits which were detained in prison, or in hell, and preached to them, as the place in St. Peter  testifieth." Dr. Pearson on the fifth article of the creed, writes thus: "There is nothing which the Fathers agree in more, than as to a local and real descent of the soul of Christ into the infernal parts, unto the habitation of the  souls departed....This was the general opinion of the Church, as may appear by the testimonies of those ancient  writers, who lived successively and wrote in several ages, and delivered this exposition in such express terms as  are not capable of any other interpretation." Thus Dr. Pearson. He cites the Fathers. See the edition, in the year  1683, p. 237. (Witham) 

 

--- Prison. See here a proof of a third place, or middle state of souls: for these spirits in prison, to whom Christ went to preach after his death, were not in heaven, nor yet in the hell of the damned;  because heaven is no prison, and Christ did not go to preach to the damned. (Challoner) 

 

----- 감옥. 여기서 영혼들의 어떤 세 번째 장소, 혹은 중간 상태에 대한 한 개의 증거를 보라: 이는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 후에 설교하기(preach) 위하여 가셨던, 감옥에 있는 이들 영들은 하늘에 있지 않았으며, 그리고 단죄받은 자들의 지옥에도 있지 않았기 때문인데, 왜냐하면 하늘은 결코 감옥이 아니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단죄받은 자들을 설교하기 위하여 가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Challoner) 

--- St. Augustine, in his  99th epistle, confesses that this text is replete with difficulties. This he declares is clear, beyond all doubt, that  Jesus Christ descended in soul after his death into the regions below, and concludes with these words: Quis ergo  nisi infidelis negaverit fuisse apud inferos Christum? In this prison souls would not be detained unless they were  indebted to divine justice, nor would salvation be preached to them unless they were in a state that was capable  of receiving salvation.

(이상, 발췌 끝)
 

 

(3) 더 나아가, 신약 성경의 경전들이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확정된 4세기 말경보다 훨씬 이전인 시기에 2세기에, 즉, 아직까지 "신약 성경"으로 불리는 책이 등장하기 훨씬 전인 초기 교회 시절에, "1 베드로 3,19"에 대한 성 이레네오(St. Irenaeus, 교부, 주교, 기원후 130/140-202년경)(*) 및 다른 교부들의 사도 전승에 근거한 해석은, 이후에, 사도 신경"의 본문이 "정식화되는(be formulated) 과정"에서, "사도 신경(세례 신경)"의 본문 중에 "저승에 가시어"라는 구절의 삽입을 초래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다음의 설명을 읽도록 하라:

출처 1: http://www.newadvent.org/cathen/01629a.htm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20.htm [출처 1의 우리말 번역문]

(발췌 시작)
Rufinus (c. 400) explicitly states that the words descended into hell were not in the Roman Creed, but existed in that of Aquileia. They are also in some Greek Creeds and in that of St. Jerome, lately recovered by Morin. It was no doubt a remembrance of 1 Peter 3:19, as interpreted by Irenaeus and others, which caused their insertion. 

루피노(Rufinus, 400년경)는(*) 저승에 가시어 라는 단어들이 로마 신경(Roman Creed)에 있지 않았으나, 그러나 아퀼레이아(Aquileia) 신경에 존재하였다고 분명하게 서술합니다. 이 단어들은 또한 일부 그리스어 신경들에 그리고, 모린(Morin)에 의하여 최근에 찾아내어진, 성 예로니모(St. Jerome)의 신경에 또한 있습니다. [사도 신경에] 그들의 삽입을 야기시켰던 것이 바로, 이레네오(Irenaeus)와 다른 이들에 의하여 해석되었듯이, 1베드로 3,19에 대한 한 개의 상기(a remembrance)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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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성 이레네오(St. Irenaeus)와 루피노(Rufinus)가 서방 교회(즉, 라틴 교회)의 교부(Fathers of the Church)들임은 다음의 글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2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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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4) 그리고 1992년에 초판 발행되었으며 그리고 1997년에 라틴어 정본이 공포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사도 신경" 본문 중의 "저승에 가시어" 소 제목 아래에 주어진,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32항에서 바로 이 1베드로 3,18-19를 인용하고 있음에 또한 주목하라.

 

(5) 1베드로 3,19에 대한 성 이레네오의 해석 때문에 "저승에 가시어"라는 표현이 "사도 신경(세례 신경)"이 정식화 되는 과정에서 삽입되게 되었다"는 것은, 유다인들의 죽은 이들에 대한 기도 관습 (2마카베오서  12,45)을 잘 알고 있었을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이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권위에 의거하여, 1베드로 3,19에 대한 해석에 직접 개입하여 그 구절의 의미를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로 현실태화하는(actualize) 과정이 먼저 진행되었음을 뜻한다. 사도전승 및 사도계승에 근거하는 이러한 가톨릭 교회 교도권의 개입은,  "특히 신약 성경 자체가 가톨릭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공인되기 전인 초기 교회의 시기에도 지속되었던  사도 전승"을 포함하는 가톨릭 교회의 전승(tradition)의 한 부분이기에, 결국에, 기록되지  않은 사도 전승, 즉 성전(Sacred Tradition)에 근거하는 가톨릭 교회의 전승(tradition)이,  예수님의 공생활 시기에 유다인들에게 알려져 있었던 "저승(Sheol, Hades, Hell)"의 한  부분인 "연옥(Purgatory)"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교리적 이해에 있어, 사도 전승에 근거하여  공인된 신약 성경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장소의  개념으로서의 "연옥"이 "저승"에 있음에 대하여, 특히 초기 교회 시절의, 그리스도교  신자들로 하여금 입교시에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세례시의 교리 교육의 방식으로  직접적으로 개입하였음을 입증하고 있는데, 연옥의 존재에 대한 바로 이러한 인지를  근거로 하여 진행되었던, "가톨릭 교회의 연옥 교리"에 대한 이해 과정에 있어서의  그 다음 단계를,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31항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교회의 전승(the tradition of the Church)은, 성경의 특정 본문들로의 언급에  의거하여, 정화하는 불(a cleansing fire)에 대하여 말한다(1코린토 3,15; 1베드로 1,7 참조).

(6) 이렇게 "가톨릭 교회의 연옥 교리"에 대한 이해에 있어, 사도 전승에 의거하는 가톨릭 교회의 전승의 고유한 교리 교육의 역할을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31항에서 먼저 언급한 후에, 바로 이어지는 항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32항의 첫 문장은 연옥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죽은 이들에 대한 기도  관습에 또한 근거되어 있다고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다음과  같이 성경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죽은 이들에 대한 기도 관습에 근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2마카베오서  12,45)
.

 

(7) 따라서, 가톨릭 교회의 연옥 교리는, 

 

(i) 유다인들의 죽은 이들에 대한 기도 관습 (2마카베오서  12,45; Kaddish),

 

(ii) 1베드로 3,19, 그리고

(iii) "가장 오래된 로마 교리서"라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4항에서 불리고 있는, 초기 
교회 시절의 교리서인 "사도 신경(세례 신경)",

이들 셋 다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연옥"에 대한 가르침에 있어 그 주제인 "연옥""장소" 개념으로서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 우선적으로 인지되어야 하는데, 바로 이 시점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 교리서"로 불리는 "사도 신경(세례 신경)"  "저승에 가시어" 구절이, 구약 시대의 전통 안에서, "아브라함의 품"뿐 만이 아니라, "연옥"또한 "저승"에 존재하고 있음을 이성적으로 추론(reasoning)할 수 있게 하는, "사도 신경" 본문 중의 유일한 직접적 근거 구절임에 주목하라. 그리고 이들 세 근거들은  또한 당연히 모두 가톨릭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공인된 성경 구절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  가톨릭 교회의 역사에 있어 가장 오래 전에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에 의하여 연옥 교리의  근거들로서 수용된 구절들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32항에서 비록 간접 인용되고 있기는  하나, 장소 개념으로서의 "연옥"이 "저승에 존재함"을 또한 이성적으로 추론할 수 있게  해 주는, 신약 성경의 1베드로 3,19 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32항에서 본문 중에서  발췌 인용되고 있는, 구약 성경의  2마카베오 12,45이다. 

 

(8) 다른 한편으로, 유다 백과사전에 주어진 구약 성경 시절의 유다교측의  "purgatory(연옥)"에 대한 설명은 다음에 있는데, 특히 이 설명의 마지막 부분에 오리제네스(Origen, 184-254년), 락탄티오(Lactantius240-320년), 예로니모(Jerome, 343-420년) 등의 그리스도교 교부들이 "정화하는 불(ignis purgatorius)"이라는 개념을 한 개의 교의(a dogma)로 발전시켰고, 그리고 테르툴리아노(Tertullian160-223년), 아우구스티노(Augustine, 354-430년),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Gregory I540-604년) 등에 의하여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한 기도문들과 봉헌들이 제정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교 교회에, 유다교 회당에서 카디쉬(Kaddish)에 대응하는,  죽은 이들을 위한 미사가 생겼다고 설명하고 있:
http://www.jewishencyclopedia.com/articles/12446-purgatory

 

(9) 그러므로 우리는 가톨릭 교회의 연옥 교리가, 유다교의 유산을 이어받은 성경 구절들에 대한 초기 교회 시절의 교부들의 해석을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수용한 것임을 확실하게 인지하여야 할 것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1베드로 3,19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은 이 구절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도권의 전통적 해석과 대단히  동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베드로 3,19에 대한 "주석 성경"의 현재의 주석은  반드시 수정되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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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ference to the contemporaries of Noah is probably explained by the fact that, for the Jews of the time, those people (along with the people of Sodom and Gomorrah: cf. Mt 24:36-39; Lk 17:26-30) were the classic inveterate sinners. By bringing in this reference St Peter is teaching that the Redemption embraces all men: even the contemporaries of Noah, if they repented, could have attained salvation through the merits of Christ.

 

노아(Noah)의 동시대인들에 대한 언급은 아마도, 당시의 유다인들에게, 이들 사람들은 [소돔(Sodom)고모라IGomorrah)의 사람들과 함께: 마태오 복음서 24,36-39; 루카 복음서 17,26-30을 참조하라] 전형적인 완강한 죄인들이었다는 사실에 의하여, 설명될 것입니다. 이러한 언급을 가지고 들어옴으로써 성 베드로(St Peter)는 그리스도의 속량(the Redemption)이 모든 사람들을 껴안음(embraces)을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노아의 동시대인들마저도, 만약에 그들이 회개하였더라면, 그리스도의 공로(merits)들을 통하여 구원을 획득할(attain) 수 있었을 것이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4. 끝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죄인들에게 연옥은 구원(Salvation)의 필요조건입니다" 제목의 졸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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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1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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