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2동성당 게시판

은총이며 신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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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경순 [veronicam] 쪽지 캡슐

2004-02-10 ㅣ No.3007

월요일 삼우미사까지 끝내고 저녁에 3구역 교우들과 그외 여러분들이 방문해주셔서

연도까지 바쳐주셨습니다.

뭐라고 감사의 말을 드려야하는지....정말 언어의 한계를 느낍니다.

12월 5일 진단을 받고 딱 두달 병과 함께 살다가 남편은 떠났습니다.

 

이제와 생각하니 데려가신 것은 제가 동의하지 않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시간표를 짜시면서 남편과 저, 아이들 모두를 가엾이 여기시며

가장 사랑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시간표를 짜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단을 내려준 국립의료원 의사가 제 친구였고 그 친구는 아주 따뜻하지만 이성적으로 환자에게 현상태를 설명해줬습니다. 그리고 네식구를 병실에 남겨두고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오늘만 울께.....’하고 제가 엉엉 울자 남편은 저를 위로했습니다.

’당신은 강하니까 잘 할 수 있을 거야. 나도 치료를 받을 수 있을 때 까지 잘해볼께.

그런데 식구들에게 너무 해놓고 가는 것이 없어서 미안해’

 

국립의료원을 퇴원하고 토요일과 주일을 집에서 보내고 월요일 성모병원에 입원하기로 했습니다.

주일 .....혹 마지막이면 어쩌나.....해서 디지털 카메라로 가족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리고 2달은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투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병원 탁자를 고상과 성모상, 그리고 탁자보로 마치 제대를 꾸미는 것처럼 정성껏 차려주신

스테파노, 아니타 부부...당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정말 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A-4용지에 간절한 기도와 사랑을 적어주신 이종필 스테파노형제님..남편이 그 편지를 머리맡에 두고 가끔씩 미소를 띄며 읽었답니다.

끝까지 성모님께 의탁하라고 귀한 묵주를 주신 오 프란치스꼬 형제님과 그 자당님

7구역 연세 높으신 형제님들이 오실 때에는 얼마나 송구스러웠던지요...그리고 저희가 속한 3구역 식구들, 다른 환자들이 부러워할만큼 많이 오시어 기도와 위로를 하셨던 본당 교우들....

고마운 마음이 들면 요셉은 자주 울었습니다.

아프다고 할 때마다 저는

’여자들이 아이낳을 때는 이것보다 훨씬 아파요.’라고 했더니 요셉은

’나는 매일 애낳은 놈인가봐....아니 매일 애 낳는 척 하는 놈인가봐.’해서 같이

웃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입원이 되던 날(2월2일 월요일) 아침, 남편은

’나, 아무래도 죽을 것 같아...’라고 했습니다.

저는 일부러 무심한 목소리로..

’나쁜 경우엔 그럴 수도 있을거에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했더니

’응....’

’그럼 정신 맑을 때 아이들이나 오는 분들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 많이 해요.’했더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 즈음엔 하도 먹으려고 하지 않아서 뒤에서 안고 성모송 10번에 한숟갈씩 먹이면

얼마는 받아먹더군요. 작은 아이와 제가 환자가 진통제 자주 요구하는 것에 야단을 하니까,

’나, 꾀병부리는 거 아니야, 정말 아파서 그래....’하고 아이에게 말하더랍니다.

 

그렇게 빨리 갈 줄 알았으면 그냥 주사놔줄 걸 그...랬....어...요.

저는 제 친구가 석달 내지 여섯달...그러나 석달도 안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항암주사 독이 빠지면 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더 희망쪽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이 되는 날 오후까지도 저는 그날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호흡이 힘들어해서 의사를 불렀더니 아이들한테 연락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때도 환자가 힘이 드니 옆에서 용기주라는 정도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윽고 일인실로 옮기고 심전도 그래프기계도 들어왔습니다.

시간은 이윽고 2시 30분이 넘어갔습니다.

저는 그렇게 한 주일, 혹은 한달도 남은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에게,’저렇게 고생하면 큰일이다, 힘들어서....’

조금있다가 마치 그말듣고 토라져서 등돌리는 사람처럼 심전도가 멈췄습니다.

 

큰 아이가 무척 많이 울었습니다.

하느라고 했지만 엄마나 동생만큼은 못했다는 자책이 들어서인가 봅니다.

저는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지는 생각도 못했는데 아주 볕바르고 풍광이 좋은 곳에 안치하게 됐습니다.

장례미사도 저희 네식구가 세례받은 곳에서 아이들에게 첫 영성체해주신 신부님과

본당 신부님, 그리고 세분신부님께서 함께 집전해주셔서 식구들 남기고 간 사람도

기뻐했을 것입니다.

 

입관 예절시 저는 조그맣게 말했습니다.

’나를 용서하십시오, 나도 당신을 용서합니다.’

 

사는 동안 서로를 힘들게한 것이 많았습니다.  병으로 2달 누워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고 겸손해졌으며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시간도 많았으며

서로를 가엾게 생각하는 시간도 허락됐습니다.

그리고 대부가 되었는데 오래 함께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된 두분의 대자

스테파노, 토마스씨에게도 미안하게 생각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몇십년 동안 못만났던 사람들과도 만나게 됐으며

천주교 예절에 대해 잘 모르던 시댁 식구들도 많이 감동했고 그 아름다움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으며

새삼 좋은 기억을 갖게 된 것에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태했던 신앙에 대해 아이들 스스로가 저에게 약속해준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또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가장 감사한 것은 본당에서의 신앙생활을 남편은 정말 기뻐했고 즐거워했습니다.

방에다 본당 관련 서류를 쌓아놓은 것을 보고 제가 가끔,

’사목 연구실’이라고 간판 달라고 놀리면 웃기만 했습니다.

다른 교우들은 남편이 본당을 위해 봉사했다고 말씀하시지만 제가 보기엔

스스로가 아주 행복해하면서 즐거워했기 때문에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론 학교 후배가 되시지만 우리 신부님을 참 좋아했습니다.

(존경받으시는 신부님은 많으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정말 좋아하게 되는 신부님은 그보다

적으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좋아했다’고 써봅니다.)

 

아이들 개학때 까지 시간을 넉넉히 주시어 회사일, 개인적인 일을 정리하면서 정말

하느님의 시간표에 대해 감사하게 됩니다.

끝으로 이런 이야기를 올려봅니다.

소식을 들으신 한 신부님께서 당신 꿈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날 새벽 꿈을 꾸셨는데 저희 가족이라고 생각되는 네 사람이 벚꽃핀 여의도에서 꽃구경하듯이 환한 얼굴로 꽃나무 사이로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저희 식구들을 모르시는 분입니다. ’그 시간에 가셨나.....’하고 혼자말을 하셨습니다. 그것도  신비로운 위로가 되었습니다.

 

어제 연도를 마친 요세피나씨도 꿈을 꿨다고 합니다.

묘소 같은 곳에서 남편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논술 지도...같은 것을 하고 계시더랍니다.

 

아직 제 꿈에는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저는 중얼 거렸습니다.

forgive me, as i forgive you..if you pleased....but you must do....

(나를 용서하십시오,나도 당신을 용서합니다,. 꼭 그래야만 합니다.)

 

회장님을 비롯해 많은 수고를 하신 연령회원님들....첫날 부터 음식 대접과 마련에 수고하셨던 자매님들

끊이지 않고 연도바쳐주신 많은 교우들, 식사도 하지 않고 돌아가셔서 무척 죄송했습니다.

성무에 바쁘심에도 세상떠난 영혼을 위해 조문해주신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아름다운 장례미사를 봉헌하게 해주신 성가대 여러분,입원시에 몇번씩 방문하셔서 기도해주신 교우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은 내가 또 다른 이를 사랑하며

주님 안에서 즐겁게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상중이어서 말과 행동을 자제해야 함에도 감사의 말씀이 너무 늦어서는 안되겠기에

이렇게 두서없는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댁내에 경조사가 있으실 때 과문하고 우둔하여 혹 제가 모르고 도리를 못할 경우가 생길까 걱정됩니다.

꼭 알려주시어 부족함이 없도록 깨우쳐주시기 바랍니다.

 

깊은 절을 올립니다.

 

 

 

맹경순 veronica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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