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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로 3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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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석 [saavedra] 쪽지 캡슐

2004-06-06 ㅣ No.4605

가톨릭 굿뉴스가 보다 새로워졌습니다.   또 그만큼 본당 홈페이지나, 신자분들의 관심도도 역시 높아졌음을 반가와 합니다.   이제 짧지만, 본격적인 선교사 생활을 나눌까 합니다.   정말 그때를 생각하면, 신앙의 여유로움과 말씀의 풍요로움 속에서 지냈던 시간들이 기쁨으로 새로워 집니다.   집과 고향을 떠나 지내는 모든 사람들이 고향의 정과 사랑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Ⅳ. 칠레 푸에르또 사베드라에서

 

   처음에 나는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골롬반도 받아들여서 도시 외곽에 새로 형성된 빈민층이 많은 성당에 가게 되었다.  이곳에서 1년 3개월을 지냈다.  이 성당은 다른 동료가 3년을 지냈기에, 나머지 시간을 지낸 남쪽 푸에르또 사베드라에서(Puerto Saavedra)의 삶을 정리하고자 한다.
   짧은 시간을 선교사로 지내면서, 도시와 시골에서 지낼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수도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11시간 정도 내려가면 조용한 바닷가 옆에 자리잡은 작고 예쁜 푸에르토 사베드라라는 골롬반이 활동하는 성당에 가게된다.  이곳에서 떠나기 전까지 1년 2개월 지냈다.   비와 바람, 석양이 매일 강과 바다, 호수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작은 어촌 마을이다.

 

   ⅰ. 지역사정

 

   사베드라는 칠레 원주민인 마푸체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150여년전에 카푸친 선교사들이 전교를 한곳으로 골롬반이 맡은지는 거의 20여년이 된다.  인구는 만오천정도 된다.  작은 가게들과 식당들이 있고, 여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즐겨찾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크기는 서울시보다 작은 것 같다.  마을중간에 성당이 자리잡고 있고, 공소는 34개 정도를 가지고 있다. 
   보통 목요일이나 금요일부터 공소들로 주일미사를 나간다.  원주민들이 약 80%를 차지한다.  대부분은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나, 그들 나름대로의 전통과 언어를 보존하고 있다. 주일미사 참여율은 약 3-4%정도 된다. 그러나 공소 주보성인 축일이나, 대축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찾아온다.  본당에는 보통 100여명이 주일미사에 참석하고, 공소들은 공소책임자나 교리교사가 열심히 활동하는 공소들과 그렇지 않은곳과 차이가 난다.   큰 공소 한두개는 40-50여명의 신자들이 오지만, 그렇지 않은곳은 십여명, 혹은 그 이하의 사람들이 모일때도 굉장히 많다.   신자들은 대부분 고기잡이와 감자농사를 주로한다.  동네를 벗어나면 모두가 비포장 길이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면 다니는 사람도 버스도 없다.   버스를 놓치면 보통 두어시간은 걸어서 간다.
 
   본당에서만 매주일 10시 미사 한 대가 있고, 각 공소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달에 한번 정도 미사를 한다.  사제는 나를 포함해서 3명이 있다.  많을때는 4명도 있었지만, 대부분 3명이 지냈다.  운좋겠도 유일한 골롬반 한국인 신부님이 본당신부로 있어서 생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수녀2명과 지원자 2명, 그리고 평신도 선교사인 피지 아가씨 2명, 사무원 1명, 식복사 1명, 관리인 1명이 성당을 구성한다.  평신도 선교사들은 섬에 있는 한 공소 옆에 집을 얻어 생활하고, 주일저녁이면 본당으로 와서 하루를 쉬고 돌아간다.

 

   ⅱ. 사제관 생활


   동네에서 유일한 3층집이 사제관이다. 나는 3층 뾰족방에서 지냈다.  바람과 비가 많은 지역이라, 방에서 보이는 바다와 큰 나무가 언제나 내 벗이 되어주었다.  남태평양으로 날마다 떨어지는 태양도 멋있었다.  평일미사는 없다.  성모성월인 11월에만 한달간 평일미사가 있었다. 미사는 돌아가면서 주례를 한다.  보통 평일에는 신자들이 성당에 오지를 않는다.  성모성월에도 노인들 몇 분만 미사에 온다. 
   식사는 식복사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점심만 준비한다.  아침, 저녁은 각자 알아서 챙겨먹는다.  대부분은 비슷한 시간에 빵이나, 먹다남은 음식으로 식사를 한다.  평일미사가 없어 일찍 일어나지는 않는다.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책을 보거나, T.V를 보면서 점심을 기다린다.  점심을 먹고, 성당옆 방파제에서 달리기로 운동을 한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틈틈이 계속해서 스페인어 공부를 한다.  저녁은 또 각자, 혹은 같이 준비해서 먹는다.  산티아고 한인 신자들이 한달에 한번 라면과 김치를 보내주어서 가끔 한국식으로 밥과 국을 준비해 먹는다. 
   평일에는 회합과 모임이 많다.  사제회의, 수녀.평신도들과 회의, 한달에 한번 교구사제 전체모임, 이것은 1박2일이다.  주교님은 카푸친이다.  교구내 카푸친 수도사제들이 많이 활동한다.  교구신부는 60여명이 되고, 본당은 30개가 조금 못된다.   교구사제 중 30%는 외국인 선교사이다.  독일과 유럽에서 온 카푸친들과 선교사들이 많다.  신학생은 3개 교구가 합쳐서 하나의 신학교를 갖고 있는데, 신학생들은 10여명이 되는 것 같다.   교구사제들은 서로 친밀하다.   가끔 사제들과 축구를 하면, 난 언제나 국가대표 선수다.  교구에 한 10여개국 사제들이 활동한다.

   밤에는 주로  T.V시청을 한다.  위성방송이 있어, 영어방송과 스포츠, 영화를 주로 본다.  포도주나 삐스코(포도로 만든 칠레의 소주, 굉장히 좋은 술이지만, 값은 싼 편이다)로 동료들과 간단히 마실때도 많다.  평일에는 주로 강론준비를 한다.  그리고 칠레 수녀님에게 문법과 표현을 수정받는다.  성당을 찾는 사람들도 자주 만난다.  대부분은 한끼 먹을 것을 구하러 오는 것이다.  빵을 나누고, 재미로 잡은 물고기가 그들에게는 일용할 양식이다. 
   사제관 식사메뉴는 그리 다양하지 않지만, 푸짐히 먹을 수 있다.  생활비가 적지않아서, 먹고 싶은 것은 슈퍼마켓에서 과일과 빵, 음료수 등을 사다가 먹는다.  간혹 1시간정도 나가서 큰 도시에 있는 대형슈퍼마켓에서 생활용품을 많이 사올때도 있다.  주유소는 없어서, 30킬로 떨어진 옆 마을에서 주유한다. 차는 세대가 있다.  차가 없으면 움직일수가 없다.  두 대는 크고, 하나는 작다. 큰차는 4륜구동이다. 겨울인 우기철에 공소미사를 가자면, 반드시 필요하다.  본당에서 가까운 공소도 있지만, 먼곳은 차로 40-50분 가야한다. 
  
   사제관은 두명의 한국인과 한명의 미국인 신부가 있다.  대화는 스페인어로 주로 한다.  생활의 큰 불편함은 없었다.  사베드라는 강과 바다가 만나고, 호수가 있어서, 바닷가 주민들은 낚시와 농사로 생활한다.  대부분은 감자농사와 야채를 심는다.   생활수준은 매우 가난하다.  집도 형편없다.  작고 허름한 나무 판자집에서 많은 식구들이 생활한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일하러 나간다.  매우 가난하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가난을 의식하지 못하고, 행복하게 산다. 
   우리는 골롬반에서 매달 용돈으로 120달러를 받는다.  그리고 일년에 한번 휴가비로 1000달러를 받는다.  생활하기에 적은돈은 아니지만, 넉넉하게 쓰지는 못했다. 그래도 좋은 것은 1년에 휴가가 한달이라는 것이다.  혼자서 청바지에 가방하나 매고 한달동안 아르헨티나를 다녔던 기억은 아직도 신기하고 새롭기만 하다.  새삼 이과수 폭포의 웅장함이 기억된다.

 

   ⅲ. 성무활동

 

   미사표에 의해 각자가 골고루 미사를 담당한다.  평일에는 매주 수요일 수녀원 미사가 있고, 가끔 선교사들만 미사를 한다.  그 외의 기도는 각자가 알아서 한다.  주말에 공소 미사를 가면 보통 두 곳을 방문하여 미사를 한다.  아침에 나가면 해질녁에 들어오게 된다.  미사는 대부분이 11시와 오후 2시에 있다.  식사는 공동체에서 준비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제관에서 떠날 때 빵과 음료수를 준비해서 산길이나 물가 중간에서 먹는다.  가끔 귀한 사발면과 빵, 커피를 모두 준비한 점심은 행복하다.
   공소들은 마을 단위나, 지형상으로 구분된다.  모두가 걸어온다.  가면서 만나면 짐칸에 타고 간다.  매우 시골스럽다. 공소들은 허술하지만, 그래도 대부분 작은 공간들을 가지고 있다.  몇몇 공소는 건물이 없어 학교나 마을회관을 빌려서 사용한다.  한달에 한번이지만, 그리고 대부분 세례를 받았지만, 미사에 오는 신자는 극히 소수이다. 
  
   30분 정도 기다리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이다.  처음에는 그 기다림이 힘들었지만, 갈수록 기다리면서 자연도 보고, 먼저 온 신자들과 대화도 하고 이것저것 묻고 답하면서,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다림이 되었다.   동네 축구시합이 있으면, 아무도 안 올 때도 있다.  또 두 세명의 신자보다, 그들이 데려온 개들이 더 많을 때가 있다.  그래도 신부라고 모두들 존경과 예의를 갖춘다.  미사 후 나누는 딱딱한 빵 한조각과 콜라한잔이 정겹다. 그들이 싸주는 감자와 다양한 채소들은 선교사들만이 갖는 행복이다.  공소 열쇠를 갖은 자매가 도시에 나가면 공소 밖에서 야외미사를 한다.  비가 오면 더 오래 기다리고, 더 적은 신자와 미사를 한다.  미사후에는 필요한 가정방문이나 축복을 위해 방문한다.  그들은 사제가 방문하는 것을 누구나 좋아한다.  사제가 뿌리는 성수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믿는다.  

   3주에 한번씩 주일날 본당미사를 하게 되면, 미사후에는 더 없이 한가하다.  봉성체가 없으면 미사한번으로 주일이 끝이다.   모두가 사제들을 좋아하지만, 개인적인 친분을 쌓기에는 1년이 짧은 시간이다.  공소미사를 하고 돌아오면 조금 힘들고 지치기는 어디나 똑같다. 
   골롬반 신부님들이 여러방면으로 신앙적인 열심을 가르치고, 다양한 방법으로 성사생활을 권장하며 신앙을 함양시키기위해 애썼지만, 문화적 차이인지 그리 쉽지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이 믿는 방식이 우리와 다르지만, 신앙은 나름대로 자리잡은 것 같다.  문화적인 종교라고 하면 어떨까 한다.   마치 우리안에 도교적인 생활습관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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