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부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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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신부 [jpatrick] 쪽지 캡슐

2000-01-29 ㅣ No.30

부산의 겨울바다를 보고

 

친구의 서품식을 핑계삼아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수요일에 내려가서 금요일에 올라왔죠. 사실 부산에는 별로 가볼 일이 없었습니다. 이번이 꼭 세번째입니다. 처음 간게 고2 때였습니다. 그 때 자갈치 시장에서 처음으로 회도 먹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용두타워(지금은 부산타워인가요?)에도 올라가 보았습니다. 타워에서 바라본 부산은 길고 좁게 뻗은 도시로 기억납니다.

 

두번째 방문이 꼭 1년전입니다. 어제 사제서품을 받은 친구가 부제서품을 받을 때였죠. 그리고 이번에 세번째로 갔습니다. 늘 여름이면 뉴스에서 해운대 해수욕장 이야기를 듣곤했는데, 그래서 이참에 한 번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해운대에서 하룻밤, 광안리에서 또 하루밤, 바닷가의 경치를 보면서 아침을 맞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해운대가 상상했던 것만큼 그리 크지는 않더군요. 뉴스에서 백만이 모였느니 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무지 큰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였습니다. 이런 곳에 그 많은 사람이 모이면 그야말로 목욕탕이 따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제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해변은 참 깨끗하고 좋았습니다.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더군요.

 

U턴없는 길 위에서

 

목요일 답사차 남천 성당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작년에 왔을 때는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산 지리에 대해 전혀 아는 것도 없고 해서, 다음날 사제 서품식에 늦지 않기 위해 미리 장소를 확인하고 근처에 숙소를 잡으려고 물어물어 성당을 찾았습니다. 거의 1시간을 헤매다가 성당을 찾았습니다. 아 부산의 교통상황, 참 서울만큼 어렵더군요. 교통 표지판보고 갔다가는 절대 못찾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성당을 찾으니 다소 안심이 됐습니다. 마침 부제서품식이 끝났는지 차댈 곳도 없고 하도 복잡해서 숙소로 삼을 곳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단순하게 성당을 중심으로 직진을 하다가 적당한 곳이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완전히 길을 잘못들어섰습니다. 가도가도 복잡한 길뿐이고, 이 길이 아닌데 하면서도 다시 되돌리려 해도 돌릴 곳이 없었습니다. 길도 모르는데, 유턴할 곳도 거의 없다는 것이 정말 속상하더군요. 그렇다고 방향을 바꾸자니 그 다음이 수습이 안되고 더욱 꼬일 것 같고... 결국 한참을 가다가 방향을 바꿔 또 물어물어 성당을 찾았습니다. 새로 시작한 셈이죠. 그렇게 성당을 찾고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직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안리 해수욕장 표지판을 보게 되었죠. 작년에 머물렀던 곳인데, 그곳이 가장 가깝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숙소를 정하고 차를 두고 자유롭게 이곳저곳 구경을 했습니다.

 

길을 한 번 잘못들고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 길도 어딘지 모르는 찾선 길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고 늘 앞으로만 갈 수도 없고, 적당한 곳에서 방향을 잘 잡아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돌아가야 할 때도 있는데.... 또 어떤 때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되돌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유턴이라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 인생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상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지요? 시간은 늘 앞으로만 가니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유턴이 안된다면 돌고돌아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튼 유턴 없는 인생인 만큼 한번의 선택을 더욱 소중하게 또 신중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수리 5형제가 만나서

 

드디어 친구의 서품식 날이 밝아왔습니다. 제 친구 중에는 신부가 참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어려서부터 같이 지낸 시흥동 친구들을 말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같은 성당에서 같은 학교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미 4명이 서울교구 소속 사제로 서품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그 친구(김두유)가 함흥교구 소속으로 사제서품을 받아 드디어 독수리 5형제(?) 모두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학교로 치면 전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지요. 아무튼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늦게 서품을 받았지만, 그래도 앞으로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갈 친구 신부가 탄생해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또 모처럼 다섯 명이 다같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것도 감격적이었습니다. 내일은 첫미사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이렇게 23일의 부산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서 풍납동 성당에서 김대영 신부와 하루를 보내고 오늘 오전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역시 집이 좋긴 좋군요. 이글을 읽는 분들께서도 늦게나마 사제의 길로 들어선, 그리고 부산교구장님 말씀처럼 통일되면 총알같이 북한으로 달려갈 제 친구를 위해서 기도중에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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