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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 성녀 마리아막달레나 영명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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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홍 [clemenskim] 쪽지 캡슐

2016-07-22 ㅣ No.7936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는 복음서에서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 8,2)로 묘사되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마지막까지 십자가 곁을 지켰으며(요한 19,25), 저녁때가 되어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요셉이란 이가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예수님의 시신을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실 때도 그 맞은쪽에 있었고(마태 27,61),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몇몇 여인과 함께 무덤으로 달려가 그리스도의 시신이 없음을 발견했으며(루카 24,3), 무덤 밖 동산에서 슬피 울고 있을 때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는 부활하신 스승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할 사명을 받고 제자들에게 가서 그 소식을 전하였다(요한 20,11-18).

   복음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또 다른 마리아로는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루카 7,36-50)와 성녀 마르타(Martha, 7월 29일)의 동생인 베타니아의 마리아, 그리고 클레오파(Cleophas)의 아내 마리아(4월 9일)가 있다. 이 중에서 죄 많은 여자와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동일 인물인지 성경에 분명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방 교회 전통에서 오래 전부터, 특히 교황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604년) 이후로는 위의 두 마리아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동일한 인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서방 교회 전승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여인으로서 통회와 관상의 이상적인 모델로 여겨왔다. 실제 많은 예술가들이 이런 모습의 성녀를 그림으로 많이 표현해왔다.

   로마 순교록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예수님 부활의 첫 증인인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인물로 보고 있다. 중세 시대에 있었던 세 명의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사도 성 요한(Joannes)과 약혼한 사이로 나오기도 한다. 또 성령 강림 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사도와 함께 에페수스(Ephesus)로 가서 전교하다가 그곳에 묻혔다고 전해온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오빠인 성 라자루스와 동료들과 함께 배를 타고 표류하다가 프랑스 남서부 지방에 도착해 마르세유(Marseilles)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 때 순교했다고도 한다.

   2016년 6월 3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예수 부활의 첫 목격자인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의무 기념일을 축일로 승격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경신성사성 차관 아서 로시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단히 사랑했고, 아울러 그분에게 사랑받은 이 여성의 중요성이 자비의 희년에 새롭게 조명되길 바란다.”며 “이 결정은 여성의 존엄성과 새로운 복음화, 그리고 하느님 자비의 위대함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라고 밝혔다. 이어 “성녀는 특히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 소식을 알림으로써 그들이 용기를 내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도록 했다”며 “새로운 복음화의 여정을 걷는 교회는 성녀의 이런 특별한 역할에 주목하고 전례를 통해 공경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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