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연중 제22주일] 전통 .(마르 7,1-8.14-15.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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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8-09-02 ㅣ No.124

 

 

 [연중 제22주일] 전통 .(마르 7,1-8.14-15.21-23)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가 내리는 주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신명4,1-2.6-8)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무엇을 보태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된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주 너희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6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7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8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야고보 1,17-18.21ㄴ-22.27)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17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변동에 따른 그림자도 없습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21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22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27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며,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고 하신다.(마르 7,1-8.14-15.21-23)
그때에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1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연중 제22주일 제1독서 (신명4,1-2.6-8)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7)

 

원문은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ki ; 왜냐하면)로  시작한다. 이것은 본절에서 민족들이 이스라엘 안에 있는 하느님의 규정을 보고, 이스라엘을 위대한 민족으로  높이는 일이 나오는데, 본문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문장임을 보여준다.

 

한편, 의문 부사 '미'(mi ;  어디에 있느냐?) 이하의 본문을 번역하면,  '어떤 나라가 크길래 (우리가 외치는 모든 일에서) 그러신 것처럼, 하느님께서 그 나라에 가까이해 주셨는가?' 라고 할 수 있다.

 

새 성경을 비롯해서 영어 번역본은 본문에 두 번 나오는 '엘로힘'(ellohim)각각 '하느님'과 다른 '신'으로 분리해서 비교하고 있는데, 본문에서의 궁극적인 비교는 하느님과 다른 신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른 나라들이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이스라엘과 다른 이방 민족들과의 차이의 결정적 요인은, 바로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혜인 계약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께서 그들을 전적으로 사랑하셔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으며, 그들에게 가까이해 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며, 다른 민족 백성들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이스라엘 만큼 하느님의 은혜를 받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라고 번역된 '뻬콜 코르에누 엘라이우'(bekol qorenu ellaiu ; whenever we pray to him)에서, 전치사 '뻬'(be)를 시간의 의미로 번역했고, '모든' 이란 뜻의 '콜'(kol)과 합해진 '뻬콜'(bekol)을  '~할 때마다' 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 경우는 하느님의 가까이 하심이 기도하는 때만으로 국한된다. 뿐만 아니라 기도의 행위만 강조되고,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뻬콜'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모든 것 안에서' 이다. 이 말과 함께 '크게 외치다(부르다)' 란 뜻의 '카라'(qara)동사의 부정사형에, 복수 접미어가 붙은 '코르에누'(qorenu) '~에게' 란 뜻을 가진 방향 전치사 '엘'(el)단수 접미어가 붙은 '엘라이우'(ellaiu)가 합해져서, 본문은 '그를 향하여 우리가 외치는 모든 일에서'로 번역될 수 있다.

 

여기에는 기도의 행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상황, 곧 고통 속에서 외치는 것일지라도 모두 포함되며, 기도의 내용도 모든 일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실제로 출애굽 사건의 동기가 된 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이었다.(탈출3,7) 이 때의 소리는 기도의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든 삶의 정황 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을 잊고 살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저버리지 아니하셨고, 그들의 외치는 소리에 담긴 모든 일에 하느님께서 가까이해 주셨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가장 큰 배경이 될 수 있는 것은 출애굽 사건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이후에 광야를 거쳐 갈 때에도 자기들의 기도 소리 뿐만 아니라 불평과 원망의 탄식과 소리에까지 가까이해 주셨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기시킨 것이다.

 


 연중 제22주일 복음(마르7,1~8.14~15.21~23)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황,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20~23)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5장 18절에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란 표현이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인간의 악한 마음이 여러 행동에 투영되지만, 특히 언어 생활을 통해 드러남을 강조적으로 보여 준다.

 

마르코 복음 7장 21절'나쁜 생각들'을 뜻하는 '호이 디알로기스모이 호이 카코이' (hoi dialogismoi hoi kakoi; evil thoughts)7장 21절과 22절 전체의 주어이다.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6장 19절에서는 '나쁜 생각'을 따로 떼어 사람을 더럽히는  대표적 실체로서 말하기보다는, 단지 악한 요소 중에 하나로만 표현하는 차이점이 있다.

 

마르코 복음 7장 21절'디알로기스모이'(dialogismoi)의 기본형 '디알로기스모스' (dialogismos)'생각'이라는 뜻외에 '변론', '의논', '다툼' 등의 의미도 있다.

그리고 '나온다'로 번역된 '에크포류온타이'(ekporeuontai; come; proceed)는 원형 '에크포류오마이'(ekporeuomai)직설법 현재 동사로서 '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르코 복음 7장 21절과 22절에 나와 있는 나쁜 생각들이 인간의 역사가 끝나는 그날까지 늘 마음속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계속적으로 나쁜 생각이 흘러나오는 이유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인간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이다(예레17,9; 창세6,5참조).

 

결국 마르코 복음 7장 16절과 20절에서 말하는 사람을 더럽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what comes out of man)이란 바로 '나쁜 생각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나쁜 생각들' 마르코 복음 7장 21절과 22절에서 12가지 구체적인 것들로 나열되고 있다.

이 열두 가지는 원문 성경에서 모두 주격으로 사용되어 마르코 복음 7장 21절과 22절의 전체 주어인 '나쁜 생각들'을 열두 개의 항목으로 다시 풀어 주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열두 개의 항목십계명의 순서와 무관하게 나열하고 있는데,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이것을 재구성하면, '중상'에 해당하는 '플라스페미아'(blasphemia; blasphemy; slander; 신에 대한 불경, 모독, 독성, 죄받을 언동, 욕설, 명예 훼손)제2계명에, '살인', '악의', '시기', '교만', '어리석음'제5계명과 연관되고, '음란', '간음', '방탕'제6계명, '도둑질'제7계명, '사기'제8계명, '탐욕'제9~10계명에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십계명 가운데서 대인 관계를 규정한 7계명 중에서 부모와 관련된 제4계명만 빠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불륜'에 해당하는 '포르네이아이'(porneiai; fornications; sexual immorality)'포르네이아'(porneia)의 복수형인데, 결혼의 유무와 관계없이 행해지는 모든 종류의 성범죄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간음'이나 '방탕'과 비교해 볼 때 보다 폭넓은 의미에서의 성적 범죄 행위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성적 윤리를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간음'에 해당하는 '모이케이아이'(moicheiai; adulteries)'모이케이아' (moicheia)의 복수형인데, 일반적으로  결혼한 남녀가 자신의 아내나 남편이 아닌 사람과 성적 관계를 갖는 행위를 가리킨다(마태5,28참조).

'탐욕'에 해당하는 '플레오넥시아이'(pleoneksiai; greed) '플레오넥시아'(pleoneksia)의 복수형인데,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과도하게 이익을 얻으려는 욕망을 말한다.

 

여기서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이러한 과도한 욕망들이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날 때는 여러 가지 양상으로 표출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악의'에 해당하는 '포네리아이'(poneriai; malice; wickedness)의 단수형 '포네리아'(poneria)'노동', '아픔'을 뜻하는 '포노스'(pono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가 주는 모든 해악들을 가리킨다.

 

'시기'에 해당하는 '옵탈모스 포네로스'(opthalmos poneros; envy; an evil eye)'악한 눈'으로 직역되는데, 여기서 '악한 눈'이란 특별히 상대방을 경멸하는 눈짓 가운데 나타나는 오만함이나,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나타나는 시기와 질투 등을 가리킨다.

 

상대방이 잘되는 것을 보고서 자신의 우월함이 깎이는 것처럼 느끼는 열등 의식인 '질투'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어리석음'에 해당하는 '아프로쉬네'(aphrosyne; foolishness; folly)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지각없이 어떤 일에 대해 몰상식하고 도의에 어긋나며 무분별하게 행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말한다.

 

 

2015년 8월 30일 나해 연중 제22주일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이를 따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정·부정 규정 때문에 음식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폭탄선언을 하십니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이 말씀은, 악은 자기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근본적인 죄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아담은 하느님께서 금지하신 열매를 먹고는 책임을 미룹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 3,12). 이러한 핑계와 책임 전가는 우리를 유혹하는 가장 기본적인 죄가 아닐까요? 더욱이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을 피해 숨어 있었지요(창세 3,8 참조). 잘못을 저지르고는 하느님의 존재가 불편해졌기에 자신을 하느님으로부터 소외시킨 것입니다.
이후 카인은 동생 아벨을 질투한 나머지, 들로 데리고 나가 죽이고 맙니다(창세 4,1-8 참조). 이처럼 하느님과 신뢰가 무너지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도 무너집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소외시키게 됩니다.
죄를 극복하고 마음을 정화하려면 제2독서 말씀처럼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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