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한가위 10/1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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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09-23 ㅣ No.4399

한가위 10/1 목요일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체험... “형제들은 하느님의 선물

 

오늘은 추석, 한가위입니다. 매년 이 날이 되면 특별히 더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부모님이 만들어 준 새 옷을 입고 지금과는 달리 조금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길가에 나가 친척 어른들을 맞으며 제사를 올렸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추석인지 명절인지 모르게 시끌벅적하게 지내왔던 과거와는 달리, 코로나 19로 말미암아 소박하고 단촐하게 주님 품 안에서 부모님과 조상님들의 은공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부모님과 조상님을 온전히 기리는 오붓한 오늘이 새삼 귀하고 값지게 다가옵니다.

 

제 자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강론을 준비하다가 문득 교황님께서 새로 펼쳐낼 형제애라는 글에 꽂혀 참으로 가족과 형제를 기리는 추석 한가위에 알맞은 글귀라고 여겨서 여기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이번에 발표하는 문헌의 주제는 형제애 그리고 사회적 우애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형제들이란 누구인가? 이에 대해 내밀하게 밝히는 성인의 대답을 그의 유언의 시작 부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유언에서 성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끄심으로 그가 역겨워 했던 나병환자들과의 만남 이후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형제들을 주셨지만 아무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가 거룩한 복음의 형태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형제들은 하느님의 선물과 같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기대하지 못했던 선물이었으며, 고통 없는 선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인이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도록 이끌었으며,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은 우리의 전리품이 아니며, 우리가 원하고 상상했던 모습도 아닐 수 있습니다. 형제들은 창조주의 살아있는 작품이며, 그분의 자유로 우리 각자에게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형제들은 주어지는 이들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택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형제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뿐입니다. 그들의 약함과 다양성까지도 말입니다. 그 차이 혹은 가끔은 불협화음은 결국 주님만이 조화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했던 것처럼 조화는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명확히 드러나고 그의 지상여정의 마지막 유언에서 확인되는 것이 형제애입니다. 성인에게 형제애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 사건이며 인생을 변화시킨 체험입니다. 이 사실과 함께, 그 출처이기 때문에 더 중요한 이 사실과 함께,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한 자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있어서 형제애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모두 형제들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공통된 사랑의 계획을 깨닫지 못하면 형제가 될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도 친형제자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벨을 죽인 이는 친형이었습니다. 카인은 자신의 눈을 닫아버린 미움 때문에 동생을 살해했고, 아버지의 사랑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동생조차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형제애정적인선물, 곧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형제애는 사랑을 통해 성장하고 커집니다. 그리고 언제나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형제들과의 관계는 ’, 친교의 차원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시작하는 길을 걷습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프란치스코 성인으로 하여금 그의 형제들과의 만남을 겪고 난 뒤 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나아가 그는 복음을 따라 사는 차원을 넘어 복음과 자신을 일치시켰으며 거룩한 복음이 지닌 그 형태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근본적인 방법으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살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애용하는 적절한 표현인 진정제 없는모습으로 살았습니다.

 

이탈리아의 주보 성인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다른 이를 자기 자신처럼 돌보는 것은 복음선포를 위한 길이며 특별한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한 형제가 고립된 상황에 놓여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모순이고, 증거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성인에게 있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커질수록 형제들을 향한 사랑도 커졌으며, 그 형제들의 얼굴에는 하느님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 안에서 사랑은 우주적 사랑으로 변합니다. 왜냐하면 형제애는 모든 피조물을 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태양을 형제로, 달을 자매로 불렀습니다. 8세기가 지난 지금, 이기주의가 불어나고 갖가지 형태의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세상은 형제애와 아버지의 사랑에 목마릅니다. 세상은 이것들을 끊임없이 찾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형제로 맞아들이고자 했던 아시시의 가난한 성자의 증언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며, 또 다른 한 명의 프란치스코(교황)와 함께 형제애의 길을 함께 걷자고 권합니다.

 

바티칸 뉴스/ Alessandro Gisotti / 번역 이재협 신부

(출처: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0-09/papa-enciclica-fraternita-francesco-assisi.html)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 명절의 고유명절인 추석 한가위를 맞아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가득하시길 바라며, 형제들과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추석 한가위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가득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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