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晩年을 산다(1) 노인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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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atinus] 쪽지 캡슐

2006-04-06 ㅣ No.5040

 

晩年을 산다(1)

                                                  노인으로 산다는 것

 

  “너도 늙어봐라”는 말을 들은 게 어제 같은데 어느덧 길고도 짧은 75 년이라는 세월도 한바탕 꿈인 양, 푸른 하늘에 아득한 꿈을 걸고 아름다운 별빛에 감동하며 소슬바람 결에 생을 구가하는 사이에 그 많던 세월은 손안에 가득히 쥔 모래알이 빠져 나가듯 빠져나가고 빈 손바닥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람은 청년시절에는 육체로 살고 장년시절에는 지혜로 지성으로 살며 노년이 되면 다음 세계로 가기 위한 그 마음으로 산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새롭다. 늙는다는 것은 내가 원해서도 아니고 기피할 수 있음도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계절이 차례로 바뀌듯 자연의 순서요 창조의 원리이니 거기 신비하고 오묘한 섭리가 內在함을 느낀다.

 

  따라서 노년에 이르면 이 오묘한 “또 하나의 세계”에 대하여 민감해지는 것이다. 그것을 迷妄이라고 말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하늘에 닿는다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아무래도 그것은 따라잡고 싶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큰 그것. 크나 큰 세계. 그 큰 세계가 우리들의 일상생활 가운데로 속삭여오는 희미한 소리 없는 그 소리,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삶이 바로 노년의 인생이 아니겠는가.

  <늙음>이란, 눈에 쉬 보이지 않는 것, 귀로 쉬 들리지 않는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이 기울어 가는 나이 이다.

  

  평생을 두고 다가서고 다가서던 그분과의 거리가 날로 좁혀지고 그 목소리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면 노년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되고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나 그때는 마주 뵈오리(성가 46장)>라고 부르는 성가로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노년의 고독이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출발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두 번 인생을 살 수 없음을, 이 나이만큼 실감하는 때는 없다.


  한편 나이를 먹는 功德 또한 아름다운 것이다.

  그 하나는 대체로 남의 잘못을 용납하고 너그러워진다. 자신도 과거 생활에서 수많은 잘못을 거듭해 왔기에 다른 사람들이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사람은 역시! 하는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도 같았는데, 하는 생각으로 상대를 비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성난 표정을 지울 때가 있어도 속마음은 그게 아니다.

  또 하나는 살아가는데 참으로 가치 있는 것과 덧없는 것을 구별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청장년시절에는 아무래도 눈앞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차례차례로 친구와 친지가 이 세상을 떠나고 생의 덧없음이 구구절절 사무쳐 오고 보면 표면적인 화려함이 아니고 참으로 자기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나는 사람이 둔해서인지 근년에 와서야 겨우 조금씩이나마 노년을 享受하는 심경이 되어가나 보다. 이것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활용해서 하느님에게 “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시편 51:12) 기도하면서 마음을 맑히고 기쁨을 즐기며 힘든 일은 사양하고 이 사회 가운데서 남에게 짐이 되지 않고 기피되지 않는 노인의 역할을 하다가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짐해 본다. 젊은 시절 멀리했던 漢學이며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진 것도 노년의 덕분이리라.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성전에 자주 올라가고 싶어진다. 세상을 떠난 뒤에 사람들이 설령 몰려와서 바치는 연도가 있다고 가정할지라도, 아무리 성인의 통공을 믿는다 할지라도 내가 살아생전에 하느님 성전에서 미사로 기도하고 말씀드리는 은혜와 어찌 비교가 되랴 싶다.


여기서 하계동 성당 어르신들과 그 자녀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 하계동 본당 어르신들의 신앙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해드리기 위하여 이 미카엘 본당신부님께서 소매 걷고 나서셨다는 사실이다. 지난 대림 첫 주일 교중미사에 중에 밝히신 신부님의 첫 본당사목방침에서 어르신들의 풍요로운 노후신앙생활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본당사목의 중요과제로 삼으신다고 발표하셨는데 서울대교구 어느 본당의 사목방침에 이런 항목이 있었던가 싶었다.


  갈 곳 마땅하지 않고 뒷전으로 밀려나기 쉬운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신앙을 이야기하고 친교를 나누고 본당 어른으로서 본당부흥에 대한 관심도 피력하시고, 하고자 하시는 역할이 있으면 가능한의 봉사활동도 하시고, 아무튼 어르신들이 본당을 통하여 더욱 풍요롭고 유익한 노년을 누릴 수 있으시다면 기회든 장소든 아낌없이 배려하고 싶으시다는 신부님의 의지가 다시 확인되는 <어르신 신앙생활활성화를 위한 준비모임>이 지난 4월 2일 성당지하 세영방에서 열렸다.

  

  노인들끼리 모이는 2차 모임은 4월 23일 11시 미사 후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데 어르신들께서 자진해서 많이 참석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신부님의 뒷받침을 힘입어 우리 노인들의 역할과 자리매김을 스스로 다져나갈 수 있으면 또 하나의 하계동본당 경사가 될 것으로 믿어진다. 어르신들을 모신 가정에서도 적극적 협조가 있으시기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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