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교회음악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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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재 [musecom1] 쪽지 캡슐

2002-09-04 ㅣ No.650

길진않지만 15년이 훌쩍 넘어버린 세월 동안을 성가대 지휘자 활동을 하면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은

언제나 특송선곡에 관한 문제 입니다.

 

저의 고등학교때 은사님은 불교음악 작곡가 이셨습니다.

그분은 국악을 작곡하셨고 그분이 작곡한 거의 모든 찬불가는 국악풍의 음악이었죠.

아니 비단 그분의 음악뿐 아니라 찬불가의 대부분은 국악이 바탕을 이룹니다.

 

개신교에서는 루터 이후의 음악들을 다루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은 모두 화성음악 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톨릭 성가대는 너무나 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해야 합니다.

그레고리오 성가, 다성음악, 화성음악 그리고 국악풍의 성가...

심지어 제가 꽤 오랜기간을 지휘했던 모 성가대에서는 단원분들이 제게 가요를 가르쳐 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요즘도 때때로 복음성가(그중에서도 클래식보다는 가요에 가까운 노래)를 가져와 가르쳐 달라는

단원분들이 계셔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음악을 제가 싫어 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죠.

 

몇년전까지 아버지 성가대를 지휘했었습니다.

비록 새벽미사를 담당하는 성가대 였지만 모두 열심이 셨고 저는 그분들에게 그레고리오 성가를 주로 가르쳤습니다.

몇년동안 꾸준히 연습한 덕에 2개월에 한번 정도는 성음악 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미사라는 특성상 미사참례하는 신자의 대부분이 연로하신 분들이었고

이분들께는 옛날의 향수를 되살릴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인지 반응은 꽤 좋은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뿐이었습니다.

본당의 성가대들이 발표회를 하는 자리가 생겨 그레고리오 성가를 불러보았지만

박수도 제일 적었고 결과적으로 실패였습니다.

물론 그레고리오 성가를 특별히 좋아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분들은 대부분 성음악과 관련된 봉사를 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젊은 신자분들에게는 그레고리오성가는 매우 생소하고 졸린 음악이며 또한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를 가진 음악일 뿐입니다.

 

또 7년전 쯤인가 교중미사 성가대를 지휘하고 있을때 브르크너의 아베마리아를 특송으로 부른 적이 있습니다.

그당시에는 제가 다성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였기 때문에 많은 특송을 다성음악으로 선곡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귀에 들려온 소리는 (신부님)성가가 너무 어렵고 재미없다. (단원)성가가 너무 어렵고 재미없다.

(신자)성가가 너무 어렵고 재미없다. 이렇게 한결 같았습니다.

 

우리 성음악 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레고리오 성가, 그리고 다성음악은 우리 가톨릭의 전통이며 자랑이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성가를 계속 계승 발전 시켜야 한다.

 

그리고 단원들에게 네우마 기보를 가르치고 선법을 공부하게 하고...

 

올해 들어 저는 특송으로 그레고리오 성가, 다성음악, 라틴어 가사의 성가등을 단 한곡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불렀던 특송곡은 모두 신작성가, 개신교에서 들여온 성가등으로 채웠습니다.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특송이 있던 날은 언제나 특송이 매우 좋았다는 인사말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미사 특송후 신자분들께서 자발적으로 박수를 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휘자의 욕심으로는 그레고리오 성가도 해보고 싶고 다성음악도 해보고 싶고

또 국악성가도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분명 또다시 부족한 인원의 단원(가톨릭의 성가대 치고 단원비율이 충분히 맞고 인원이 충분한 성가대는

거의 없는 듯 합니다.)으로 쩔쩔매며 이런 음악을 하겠다고 우기고 있을겁니다.

 

몇년전 우연히 들은 FM방송에서 남미 어느 국가의 미사곡이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가사는 라틴어로 되어 있었지만 멜로디, 악기 편성은 완벽하게 자기들만의 음악이었습니다.

미사의 모든 성가가 이런식으로 자신들만의 음악으로 이루어 진다고 설명까지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성음악의 토착화 이겠지요.

 

저는 요즘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가 미사때 특송을 부르는 이유는 신자분들이 이 특송을 듣고 감흥을 받아 그분들의 영성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일겁니다.

그렇다면 그분들이 쉽게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음악, 그 분들의 귀에 익숙한 음악들만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반면에 그레고리오 성가, 다성음악은 어쩌면 그 몇배의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대다수의 신자분들이 그 참맛을 모르시기 때문에 처음에 다소 생소한 것일 겁니다.

보다 많이 이런 성가를 불러 그분들이 성음악의 참맛을 알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토착화는 매우 중요한 우리 카톨릭의 과제중 하나 입니다.

국악풍의 성가를 제대로 부르려면 국악을 알아야 합니다.

우선 나 자신과 성가대가 우리의 국악을 더 많이 공부하고 국악성가들을 보급하는 것이

한국 가톨릭 성가대의 과제가 아닐까요?

 

이런 고민들이 항상 저를 따라 다닙니다.

일주일에 두번(평일 한번, 주일 한번)만나는 성가대들에게 이 모두를 이루자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가지도 제대로 이룩해내기 어려운 일일 겁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타락한 지휘자로 있습니다.

가능하면 화려해 보이고 부르기는 쉬운 성가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개신교에서 들어온 성가이면 어떻습니까?

어짜피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 일진데.

다만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여호와를 야훼로 가사만 고치면 될 일입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언제나 죄지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군요.

 

차라리 한 지구의 성당중 00성당 성가대는 그레고리오 전문,

00성당 성가대는 다성음악 전문

뭐 이렇게 나누어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결코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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