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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것은 마음? 혹은 심장(염통)? 969_토미즘학습 1032_heart 969_토미즘학습 [번역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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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1 ㅣ No.1595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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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찬미 예수님!

 

 

 

 

입문 게시자 주 1: "특정 개념들 사이에 존재할 수도 있는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tionality)"을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자 단어 "心" 글자에 대하여 어릴 적에 우리가 "마음 심" 이라고 외웠던 것은,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순수한 우리말 단어인 "마음"이 의미하는 바를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에 우리의 신체의 장기인 심장(心臟)을 나타내는 상형 문자인 "心" 글자를, "마음" 이라는 단어 대신에, 사용하기 위하여서였지, 그 역을 위하여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즉, 한자 단어 "心" 글자에 대하여 어릴 적에 우리가 "마음 심" 이라고 외웠던 것은, 우리의 신체의 장기인 심장(心臟)을 나타내는 상형 문자인 "心" 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와 이 자구적 의미에 근거한, "한 가운데" 등의, 여러 파생 의미들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에, 한자 단어 "心" 글자 대신에, 순수한 우리말 단어인 "마음"을 사용하고자 함이 결코 아니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달리 말하여, "心(심장)" 이라는 상형 문자는, 이미 우리들의 기억에 주입된 "마음 심" 이라는 방향성을 가지는 한 개의 연상(an association)의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마음" 을 연상하게 하나, 그러나, 역으로, "마음" 이라는 순수한 우리말 단어는, 이 단어가 나타내는 개념/의미의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心(심장)" 을 연상하게 하지 못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지금 지적한 바에 관하여서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마음" 과 "심장"에 대한 설명들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꼭 읽도록 하십시오.

 

다른 한편으로, 차용 번역 용어들인 "심장(heart)" 과 "마음(mind)" 사이에, 우리말로의 번역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원 단어들 "heart" 와 "mind" 이 나타내는 개념들 사이의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ionality)을, 우리말로의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 과정에서 충실하게 보존하여 전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차용 번역 용어들이 아닌 우리말 단어들인 "심장" 과 "마음"에 대하여 이미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은 "이들 우리말 단어들이 나타내는 개념들 사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tionality)"을 우선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는, 어느 특정 언어에 종속되는 문제가 아니고, 언어 이전에 언어를 통하여 전달될 대상들인, 논리(logic)의 단계에 있는개념들 사이 존재하는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tionality)에 관한 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차용 번역 용어들인 "심장(心臟, heart)""마음(mind)" 의 차이점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 모두를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heart.htm <----- 필독 권고

(이상, 입문 게시자 주 1 끝)

 

질문 1: 뛰는 것은 마음인지요, 아니면 심장(염통)인지요? 

 

1. 들어가면서

질문 1에서, 우선적으로, 차용 번역 용어로서 사용되기 이전의 "뛰다" 라는 우리말 단어의 의미와 용례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뛰다" 라는 동사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발췌 시작)

뛰다

 

「동사」

[1]
「1」있던 자리로부터 몸을 높이 솟구쳐 오르다.
¶ 제자리에서 높이 뛰다.
「2」맥박이나 심장 따위가 벌떡벌떡 움직이다.
¶ 춘향이를 본 이 도령의 가슴이 뛰었다./급하게 뛰어왔더니 심장이 벌떡벌떡 뛴다./명훈은 그 봉투를 받자 지금까지의 시비는 깨끗이 잊히고 세차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문열, 변경≫
「3」값이나 가치 따위가 갑자기 오르다.
¶ 1년 만에 물가가 두 배로 뛰었다./전국의 땅값이 엄청나게 뛰었다./날마다 뛰는 물가를 잡을 정책이 필요하다.
「4」((주로 ‘펄펄’, ‘팔팔’, ‘펄쩍’, ‘팔짝’ 등과 함께 쓰여))대단한 기세를 나타내다.
¶ 그게 될 법이나 한 얘기냐고 펄쩍 뛰었다./그렇게 펄펄 뛰며 화를 낼 것까지는 없잖아!/상길이 억울하다는 듯 팔짝팔짝 뛰는 것을 홍이는 덜미를 잡듯 밖으로 떠밀어 내고 문을 닫아 버린다.≪박경리, 토지≫
[2]【…으로】

물방울, 흙 따위가 힘을 받아서 세차게 솟아올랐다가 흩어지다.
¶ 다이너마이트가 터지자 사방으로 파편이 뛰었다.
[3]【…을】

「1」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일정한 거리에 가서 내리다.
¶ 도랑을 뛰어 건넜다.
「2」그네를 타고 발을 굴러 공중에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다.
¶ 그네를 뛰다.
「3」널에 올라 발을 굴러 공중으로 오르내리다.
¶ 널을 뛰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 제2항에서의 설명과 함께, 심장 혹은 가슴뛴다는 예문들은 있어도, 마음뛴다는 예문은 전혀 없습니다.

 

질문 1에 대한 답변: 따라서, 번역된 어떤 표현이 아니라, 평소에 사용하는 순수한 우리말 표현으로서, "심장뛴다" 라는 표현은 자주 사용되지만, 그러나, 평소에 사용하는 순수한 우리말 표현으로서, "마음뛴다"는 표현은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2-1. 질문 2: "마음뛴다" 라는 순수한 우리말 표현은 왜 거의 사용되지 않을까요?

 

질문 2에 대한 답변: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마음" 이라는 명사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우선적으로, 아래에 나열된 항들 어디에도, 순수한 우리말 단어인, 마음이 한자 단어인 심장(心臟, 염통)을 나타낸다는 설명 자체가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발췌 시작)

마음

 

「명사」

「1」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 마음이 좋다/아내는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많이 아는 사람보다는 마음이 어진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2」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 몸은 멀리 있어 마음으로나마 입학을 축하한다./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다.
「3」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 안 좋은 일을 마음에 담아 두면 병이 된다./너무 욕심내지 말고 마음을 비워라./친구에게만은 마음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모두 털어놓고 싶었다.
「4」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가지는 관심.
¶ 마음을 떠보다/오늘은 날이 추워 도서관에 갈 마음이 없다./그는 이번 일은 꼭 이루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나는 너의 호탕한 성격이 마음에 든다./하루 종일 백화점을 돌아다녀 봐도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아이가 공부에는 마음이 없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렸다.
「5」사람이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심리나 심성의 바탕.
¶ 네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결혼해라./그는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6」이성이나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호의(好意)의 감정.
¶ 너 저 사람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7」사람이 어떤 일을 생각하는 힘.
¶ 마음을 집중해서 공부해라.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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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은 "새 번역 성경"일러두기 제3항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우리말은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상, 발췌 끝).

 

그런데, 바로 위에서 확인하였듯이, 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마음" 이라는 명사에 대한 설명들 어디에도, 순수한 우리말 단어인, 마음이 한자 단어인 심장(心臟, 염통)을 나타낸다는 설명 자체가 없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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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아래의 일곱 개의 나열들 중에서 어떠한 의미로 이 "마음" 이라는 명사가 사용될 때에, 혹시라도 "마음뛴다" 라는 표현이 우리말 어법상 적절할 수 있겠는지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아래에 나열된 어떠한 경우도 "마음뛴다" 라는 표현에 적절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면, 다음의 일곱 개의 문장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히 말씀드려, 왜냐하면 "마음뛴다" 에서 마음 대신에 위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일곱 개의 설명들 각각을 대입하였을 때에, 이들 설명들 각각이, 형이하학적 어떤 실물이 아니라, 어떤 추상적인 개념(an abstract concept)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대입의 결과로 얻게 된 각 문장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표현이 되기 때문입니다:

 

(1)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이 뛴다(벌떡 벌떡 움직인다).

(2)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가 뛴다(벌떡 벌떡 움직인다).

(3)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가 뛴다(벌떡 벌떡 움직인다).

(4)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가지는 관심이 뛴다(벌떡 벌떡 움직인다).

(5) 사람이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심리나 심성의 바탕이 뛴다(벌떡 벌떡 움직인다).

(6) 이성이나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호의(好意)의 감정이 뛴다(벌떡 벌떡 움직인다).

(7) 사람이 어떤 일을 생각하는 힘이 뛴다(벌떡 벌떡 움직인다).

 

게시자 주 2-1:

(1)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알기에, 적어도 기원전 10세기경에 이르면 그 사용 예가 있는 고고학 유물이 발견되는 고대의 언어인 히브리어 언어 체계 자체에는 추상적 개념(abstractions)들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없으며, 그리하여 히브리어 언어 체계 안에서 어떤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고자 할 때에는, [자연법(the natural law)의 범주 안에 있는] 형이하학적 용어(physical terms)들로 묘사하여,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하는 문장(word-picture)을 사용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디[표상(表象) 언어(figurative language)].

 

참고 자료: http://scans.library.utoronto.ca/pdf/7/42/figurativelangua00grin/figurativelangua00grin.pdf

 

예를 들어, 추상적인 개념(abstraction)을 나타내는 단어인 "mind" 에 대응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구약 성경 본문에 없고, 그러나 그리스어로 남아있는 신약 성경 본문 중에 그리스어 단어 "nous" [주: 이 단어는 라틴어로 "mens" 로 번역되고, 그리고 영어로 "mind" 로 번역됨]가 사용되고 있다고 알고 있으며,

 

참고 자료 1: St. Joseph 판 NAB(New American Bible)의 부록으로 제공되는 Bible Dictionary"mind" 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 없는데, 이것은 이 단어의 기원(origin)이 히브리어가 아니라는 의미임.

참고 자료 2: Modern Catholic Dictionary"mind" 라는 단어에 다음의 대한 설명은 너무나 간단함: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m/m206.htm

참고 자료 3: http://www.studylight.org/dictionaries/hbd/view.cgi?n=4326 [Holman Bible Dictionary: mind]

참고 자료 4: http://www.newadvent.org/cathen/14153a.htm [영어 가톨릭 대사전: soul]

참고 자료 5: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5_mind.htm 

 

바로 이 "mind" 라는 단어는, 다음의 글의 제4항에 안내된,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에 의한 "mind"정의(definition)에 따라, 위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마음"에, 즉, 위의 설명에서, - 「3」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 에, 대응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32_mind_Aristotle.htm <----- 필독 권고

 

여기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mind""마음" 으로 번역한 것은, 바로 아래의 제(6)항에 안내된 바를 따른 것입니다.

 

(2) 특히, 위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마음" 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뿐만이 아니라, 그리스어 어원이 "nous" 로 알려진 영어 단어 "mind" 에 대한 설명도 또한, 이들 단어들이 나타내는 개념들 모두가 "자연법(the natural law)"의 범주 안에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3) 특히, 위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마음" 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뿐만이 아니라, 그리스어 어원이 "nous" 로 알려진 영어 단어 "mind" 에 대한 설명도 또한, 이들 단어들이 나타내는 개념들 모두가 인간의 삶 혹은 죽음(life or death)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추상적 개념임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4) 성경의 구약 및 신약 본문 전체에 걸쳐, 때로는 초자연적인 그 무엇(what is supernatural)을 표상적으로(figuratively) 나타내는, 영어로 "heart"로 번역되는 용어를, 우리말 한자 단어 "심장" 으로 직역 번역(le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혹시라도 만약에,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서, 이 용어가, 심지어 표상(表象)적으로(figuratively)도 아니고, 비유적으로(metaphorically) 나타내는 바가 항상 "마음" 일 것이라고 번역자가 임의적으로 판단하여, "마음"으로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을 하였던 것이라면, 이것은 진실로 번역 오류라 아니할 수 없는데, 이는, 바로 위의 제(2)항에서 이미 지적하였듯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마음" 이라는 우리말 단어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마음" 이라는 순수한 우리말 단어가 오로지 "자연법(the natural law)"의 범주 안에 있는 추상적 개념들만을 나타내는 단어일 뿐임을 우리가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성경 본문의 우리말 번역에 있어, 특정한 성경 용어 A 가, 표상적으로(figuratively) 사용됨으로써 초자연적인 그 무엇(what is supernatural) 자체를 나타내는 용어이거나, 혹은 이 초자연적 그 무엇을 표상적으로(figuratively) 서술하는 과정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일 경우에, A 를 우리말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여 그 자구적 의미/어의(literal sense)를 글자 그대로 보존하면서 전달하지 않고, 대신에, 만약에 번역자 고유의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A 가, 자신이 생각하기에 B 라는, 특히 A 와는 어원 혹은 어근(root)이 전혀 다른, 어떤 단어가 나타내고 있는 바를, 심지어 표상(表象)적으로(figuratively)도 아니고,  비유적으로(metaphorically) 나타낸다고 확신에 찬 추정(presumption)을 하여, A 를, B 에 등가인, 해당 지역 언어 B' 로 번역하였다면, 이러한 행위는 분명한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의 행위이며,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의역 번역 행위는,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입장뿐 만이 아니라 자연법에 의거하여 생각을 하더라도, 지역 언어로의 번역 과정에서도 반드시 보존되어야 하는 번역 대본인 성경 본문의 전후 문맥 안에 있어서의 해당 표상(figure)을 망가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명백한 번역 오류의 한 종류임에 반드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바로 위에서 지금 말씀드린 한 개의 문장(one statement)에서, A 에다 heart 를 대입하고, B 에다 mind 를 대입하고, 그리고 B' 에다 마음 을 대입하여 다시 읽도록 하십시오.

 

특히 이 때에, 성경 본문에서 사용되는 단어들 중에서 어떤 단어 A 가 특정한 초자연적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이거나 혹은 이 특정한 초자연적 개념을 나타내는 데에 특별히 사용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단어인지에 대한 최종 판단과 이들 용어들의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적 의미 혹은 정의(definition)는, 반드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내려지거나 혹은 수용될 경우여야 함을 또한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85,86,88,93,100,109-118,119항).

 

(6) 다른 한편으로, 우리말 번역과 관련하여, 다음의 국내의 철학계 제공의 자료["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철학문헌정보센터" 제공의 "토픽맵에 기초한 디지털 지식 자원 구축" 이라는 제목의 논문, 2004년]에 의하면, 표준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로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ii) "soul""영혼" 으로, 그리고
(iii) "spirit" "정신" 으로,
(이상, 발췌 끝) 
번역할 것을 제시하고 있음. 
(이상, 게시자 주 2-1 끝)

 

2-2. 질문 3: 그헣다면, 혹시라도 "새 번역 성경" 본문 중에서, "심장(염통)뛴다" 로 번역된 번역문은 있는지요? 만약에 있다면, 이 번역문에 대응하는 표현으로서, 예를 들어, NAB(New American Bible)에 있는 영어 표현은 무엇인지요?

 

질문 3에 대한 답변: 예, 있습니다.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여, 예레미야서 4,19를 꼭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대응하는 영어 표현은 "heart beats" 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32_heart_beats.htm <----- 필독 권고

 

2-3. 질문 4: "heart beats" 라는 영어 표현은 가톨릭 교회의 보편 교도권에 의하여 사용되고 있는 표현인지요?

 

질문 4에 대한 답변: 예 그렇습니다. 교황청 홈페이지에 대한 다음의 구글 검색 결과들을 클릭하여 직접 확인하십시오: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구글 검색 결과 with "beats" "heart" site:vatican.va]

 

또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구글 검색 결과 with "beats" "mind" site:vatican.va]

 

또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구글 검색 결과 with "beating" "heart" site:vatican.va]

 

3.

3-1. 질문 5; 심지어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표현되는 "beating heart(뛰고 있는 심장)" 의 어근의 의미인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 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은 있기나 한지요?

 

질문 5에 대한 답변: 예, 있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기르침과 바로 이 교황님에 의하여 공표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의 유관 항들의 가르침들을 차분히 읽으면서 묵상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4.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3-1:
(1) 성경 본문 중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에는 크게, (i) 시대와 장소에 무관하게, 인간들이 경험을 하면 알게 되는 자연법(natural law)에 속하는 개념들, 즉. 자연적 개념(natural concepts)들을 나타내는 용어들, 그리고 (ii) 인간들이 아무리 경험을 하더라도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소위 말하는, 계시법(the revealed law)에 속하는 개념들, 즉, 하느님께서 구약의 예언자들,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예수님의 직계 제자들과 성 바오로로 등을 통하여 가르쳐 주시는 개념들, 즉, 초자연적 개념(supernatural concepts)들을 나타내는 용어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2) 그리고 초자연적 개념들을 나타내는 용어들과 이들 초자연적 개념들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되는 일부 용어들은, 자연법에 근거한 개념들을 나타내는 용어들에 대한 세속의 설명을 주로 다루고 있는, 세속의 사전들에 주어진 설명들에만 의존하여서는 결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고,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수용된 해당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우선적으로 의존하여야만,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다른 한편으로, 가톨릭 보편 교회의 핵심 문헌들을 지역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예를 들어,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초자연적 개념들을 나타내는 용어들과 이들 초자연적 개념들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되는 일부 용어들이, 지금까지처럼, 상당한 경우들에 있어 단순히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이 임의적으로 선택되어 사용되기만 한다면, 즉, 지금까지처럼, 상당한 경우들에 있어 우리말로 번역되기 이전의 용어들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서 이미 수용한 정의(definitions)들또한 함께 전달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가 "지중해 지역 문화권"에 전혀 속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어라는 지역 언어으로의 번역 과정에 있어, 지중해 지역의 언어들 그리고 영어(English)와는 달리, 해당 용어의 어근(root)도 전혀 보존될 수 없는 "한문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더구나, 설상가상으로, 약 7할 이상의 상당수의 우리말 명사와 형용사들이 한자 단어들의 차용(借用)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독자들이 부지불식간에 거의 무의식의 상태에서 이들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에 사용된 한자들을, 세속의 국어 사전, 한자 자전 등에 의존하여 자구 해석까지 행하게 되므로, 특히 바로 위의 제(2)항에서 말씀드린 바가, 필연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점에 반드시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4) "heart(심장, 염통)" 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는, 초자연적 개념들을 나타내는 용어들과 이들 초자연적 개념들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되는 일부 용어들 중의 한 개이므로, 질문 5에 대한 답변에 안내된 글에서 이 용어의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적 정의(definition)와 이 용어가 나타내는 개념의 역할에 대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서술된 바를 고찰한 것입니다.

 

(5) 특히 "the human heart" 라는 표현은, 바로 이 표현에 있어서의 heart가 결코 어떤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지 않고, 신체의 장기로서 각자가 지니고 있는 "인간의 심장" 그 자체를 나타내고 있는데, 우리말로 번역된 새 번역 성경 본문과 우리말본 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우리말본 가톨릭 보편 교회의 핵심 문헌들에서 이 표현을 "인간의 마음" 으로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을 한 것은 정말 잘못되었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예를 들어 다음의 글[제목: 예수 성심 공경의 근거는 성경 / 예수님과 마리아의 심장들 쪽으로 공경 이유는?]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96.htm <----- 필독 권고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 표현인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 이, 예수 성심(the Sacred Heart of Jesus) 공경마리아의 무염 심장(the Immaculate Heart of Mary) 공경들 모두가 성경에 근거하고 있음을 성경을 읽는 독자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연상할(associate) 수 있게 해 줌과는 달리, 이러한 연상(association)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마음" 이라는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은 정말 잘못되었다는 생각입니다.

 

(6) 예를 들어, 영어권 혹은 지중해 지역의 특정 대학교로 유학을 가서 가톨릭 신학을 더 깊이있게 학습하여 신학 박사 학위(Ph.D.)도 받고자 할 때에, "heart" 가 때로는 "심장" 으로 번역되고 때로는 "마음" 으로 번역된 그리고 "mind""마음" 혹은 "마음" 이라는 우리말 단어와 때로는 동의어인 "정신" 으로 번역된, 우리말로 번역된 새 번역 성경과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핵심 문헌들에 근거하여 대단히 열심히 학습을 한 분일수록(the more), 한문 문화권 밖에 위치한, 영어권 혹은 지중해 지역의 가톨릭 신학 전공 교수들 혹은 대학원생들과 "heart" 혹은 "mind"직접적으로 관련시켜 생각하게 되는(directly associated) 어떤 주제(a topic)에 대하여 사적인 자리에서 서로 대화와 토론을 하거나, 혹은 세미나 등의 공적인 자리에 참가하여 토론을 할 때에, 어떠한 문제가 더욱 더 더 심각하게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the more) 한 번쯤 생각은 해 보셨는지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하더라도, (i) 가끔은 우리말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이 되지 않은 새 번역 성경과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핵심 문헌들에만 오로지 근거하고 의존하여 마련된 바를, (ii) 해당 지역 언어로 충실하게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여, (iii) 해당 지역의 언어로 발표를 하면, 그 쪽 지역의 가톨릭 신학 전공 교수들 혹은 대학원생들이 해당 지역, 즉, 영어권 혹은 지중해 지역의 언어로 번역된 가톨릭 교회의 핵심 문헌들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와 내용적으로 충돌하는 내용인 줄도 모르면서 발표자가 발표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아마도 대화의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없다거나 혹은 심지어 오류(error)라는 지적들을 여기 저기에서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어권 혹은 지중해 지역에서 설사 자신의 신학 박사 논문 지도 교수가 정해졌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신학 박사 학위 논문의 초안(draft)을, (i) 가끔은 우리말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이 되지 않은 새 번역 성경과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핵심 문헌들에만 오로지 근거하고 의존하여 우리말 문장으로 작성을 한 후에, (ii) 해당 지역, 즉, 영어권 혹은 지중해 지역의 언어로 충실하게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여, (iii) 해당 지역 출신의 가톨릭 신학 전공인 자신의 신학 박사 학위 지도 교수에게 제출을 하면, 여러분들 생각에, 어떠한 일이 발생할 것 같은지요?

 

그리고 영어권 혹은 지중해 지역에서의 유학 생활 중에 지금 말씀드린 바에 해당하는 혹은 유사한 경험을 한 분들도 이미 더러 계실 줄로 생각됩니다. 특히, 예를 들어, 가톨릭 신학 분야뿐만이 아니라, 인문학, 경제학 등의 비이공학 분야들에서 이러한 문제가 과거에 더러 발생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3-2. 질문 6: 그렇다면, NAB(New American Bible) 본문 중에서 "heart" 로 번역된 표현이, 새 번역 성경의 본문 중에서 "심장" 이 아닌 다른 차용(借用) 번역 용어로 번역된 경우들이 있는지요?

 

질문 6에 대한 답변: 예, 더러 있습니다. NAB(New American Bible) 본문 중에서 "heart" 로 번역된 표현이, 새 번역 성경의 본문 중에서, "심장" 이 아닌 다른 차용(借用) 번역 용어, "마음" 으로 번역된 경우들을 구체적으로 찾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는, 다음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32.htm <----- 필독 권고

 

4.

이번 항에서는 세속의 여러 사전들에 실린, 유관 단어들에 대한 설명들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1.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심(心)" 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발췌 시작)

심(心) 

명사」

「1」죽에 곡식 가루를 잘게 뭉치어 넣은 덩이. 팥죽의 새알심 따위를 이른다.
「2」종기 따위의 상처 난 구멍에다 약을 발라 찔러 넣는 헝겊이나 종잇조각.
¶ 의사가 시범으로 관통한 총구멍에서 피 묻은 심을 빼고, 소독한 심을 서리서리 한없이 집어넣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3」나무의 고갱이.
「4」무 따위의 뿌리 속에 섞인 질긴 줄기.
「5」양복저고리의 어깨나 깃 따위에 빳빳하게 하려고 특별히 넣은 헝겊.
¶ 양복 깃에 심을 넣다.
「6」속에 있는 물건. 연필심 따위를 이른다.
¶ 심이 굵다./심이 진한 연필을 샀다.
「7」촛불의 심지.
¶ 심이 다 타들어 갔다.
「8」『천문』=심성02(心星).
「9」『천문』=심수02(心宿).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4-1: 위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설명에는, 예를 들어, 다음의 네이버 제공의 한자 사전과는 달리심(心)이라는 단어가 "심장(염통, heart)"을 말한다는 설명이 전혀 주어져 있지 않음에 주목합니다:

 

출처: http://hanja.naver.com/hanja?q=%E5%BF%83 <----- 꼭 클릭하여 직접 확인하십시오.

 

4-2.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접미사 "-심(心)" 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발췌 시작)

-심(心)

 

「접사」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마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경쟁심/노파심/동정심/애국심/자존심/허영심.

(이상, 발췌 끝)

 

4-3.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심장(心臟)" 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발췌 시작)

심장(心臟)

 

「명사」

「1」『의학』주기적인 수축에 의하여 혈액을 몸 전체로 보내는, 순환 계통의 중심적인 근육 기관. 어류는 1심방 1심실, 양서류는 2심방 1심실, 조류와 포유류는 2심방 2심실이다. 사람의 경우에는 가슴안에서 중앙보다 왼쪽에 있고, 주먹보다 약간 큰 근육질 덩어리로 원뿔형의 주머니 모양을 하고 있다. ≒염통01.
¶ 심장이 멈추다/심장의 박동이 고르지 못하다/총으로 그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2」사물의 중심이 되는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엔진은 자동차의 심장이다./신문사의 심장인 윤전기 소리가 그치고 보니 백여 명이나 되는 종업원들은 숨이 끊긴 사람의 팔다리처럼….≪심훈, 영원의 미소≫
「3」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심장이 끓다/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은 심장에 못을 박은 듯 남아 있으나….≪박경리, 원주 통신≫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4-3: 따라서, 우리는 다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 바로 이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에 근거하어, 우리말 명사로서 심장(心臟)은, (i) 신체의 장기인 염통을 말할 경우도 있고, 혹은 (ii) 사물의 중심이 되는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경우도 있고, 혹은 (iii)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경우도 있으므로, 영어로 "heart" 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를 누군가가, (i) 이 아닌 다른 경우들만으로 오로지 생각하여, "마음" 으로 거의 기계적으로 번역을 하였다면, 그러한 번역에 번역 오류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마음"이라는 단어가 오로지 자연적 개념(naturarl concept)들 만을 나타낸다고 위의 게시자 주2-1에서 이미 말씀드렸는데, 마찬가지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설명에 의하면, "심장(心臟)" 이라는 단어도 또한 자연적 개념(naturarl concept)들만을 오로지 나타냄을 알 수 있습니다.

 

5.

5-1. 그런데, 각 개인에게 있어, 삶 혹은 죽음(life or death)이 갈라지는 것은 당사자의 심장(心臟, heart)이 계속 뛰고 있느냐 아니면 멈추느냐에 달려있으므로, 가장 소중한 신체의 기관/장기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분명한 진실, 즉, 진리인 사실일 것입니다. 즉, 자연법적으로 각 개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기관/장기는 심장(心臟, heart)임에 틀림없습니다.

 

질문 7: 그런데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혹시라도 형이하학적 세상(the physical world)에 속하는 각 개인을 직접 접촉하신다면, 여러분들 생각에 각자의 신체의 어느 부분일 것 같은지요?

 

질문 7에 대한 답변: 많이 부족한 죄인의 생각에, 틀림없이 삶 혹은 죽음(life or death)이 갈라지는 일이 바로 거기에서 발생하는 각자의 가장 소중한 기관/장기인 심장(心臟, heart)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의 심장(心臟, heart)을 만들어 주시고 그리고 뛰도록 허락하시어, 그리하여 그 결과 형이하학생명(physical life)을 허락하신 분이신 창조주이신 하느님만이 또한 당신 마음대로 우리 각자의 심장(心臟, heart)을 멈출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93항에 발췌된 트리엔트 공의회 문헌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002항은, 하느님께서 사람의 심장(心臟)(man's heart)접촉하신다는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63항은, 하느님의 모습으로서 우리가 관계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심장(心臟, heart)만남의 장소(the place of encounter)[즉, 접촉점(the point of contact)]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바로 이 가르침은 하느님과 우리 각자의 접촉점(the point of contact) 혹은 만남의 징소가 각자의 심장(心臟, heart)임을 또한 포함합니다.

 

그런데, 사실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므로, 하느님께서 우리들 각자와 접촉하실 때에, 하느님과의 통공(communion, communio)이라는 특별한 접촉인 세례가 한 번이면 충분하듯이, 굳이 한 군데 이상의 접촉점이 필요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서 인간의 심장(心臟, heart) 이외의 신체의 다른 부분을 하느님께서 직접 접촉하신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따라서, 바로 이러한 고찰들에 근거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작용하심에 있어, 각자의 심장(心臟, heart) 접촉하심이 충분하다 결론을 도출합니다.

 

5-2. 성 바오로(St. Paul)로마서 2,14-15에서 자연법(the natural law)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 안에 새겨져 있다고 가르치고, 그리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는 자신의 저술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IIae, q94, a6에서,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의 가르침에서 말하는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 안에 새겨진 법은 자연법(the natural law)을 말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072항자연법인 십계명(the Decalogue)이 [자연법적으로, 즉, 우리 각자가 창조될 때에] 바로 이 당신과의 만남의 장소인 각자의 심장(心臟, heart)에 새겨진다고 가르칩니다.

 

다른 한편으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65항은 인간의 다수의 정(情, passions)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정(情)(the most fundamental passion)이, 선한 것(the good)들에 의하여 일어나게 되는 사랑(love)이라고 가르치면서, 사랑(love)자신에게 결여된 선(the absent good)을 향하는 한 개의 욕망(a desire)그것을 획득함에 대한 희망(hope)을 야기시킨다고(causes) 가르칩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25항행복(happiness)을 향하는 우리의 [지연적] 욕망(desire)을 하느님께서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 안에 이미 앉히셨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18항은 참행복(the Beatitudes, 진복팔단, 마태오 복음서 5장)들은 행복을 향하는 자연적 욕망(the natural desire)에 화답한다고 가르치면서(*)이 자연적 욕망신성한 원천(the divine origin)에 기인한다고, 즉, 하느님께서, 이 자연적 욕망을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당신께로 사람을 잡아 당기기 위하여, 이 자연적 욕망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 안에 [자연법적으로, 즉, 우리 각자가 창조될 때에] 이미 앉히셨다고, 가르칩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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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은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색인에서 발췌한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18항, 1721항, 1725항, 그리고 제1818항들을 함께 읽도록 하라: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index/g.htm

(발췌 시작)
God's actions toward men placing in the human heart the desire for happiness, 1718, 1721, 1725, 1818

 

행복을 향하는 욕망(desire)을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에 가져다 놓으신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의 행동(actions)들: 1718, 1721, 1725, 1818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이상, 내용 추가 끝]

 

따라서, 바로 지금 고찰한 성 바오로, 성 아우구스티노, 그리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들과 이들 가르침들에 이어지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가르침들에 의하여, 인간의 다수의 정(passions)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정(情)(the most fundamental passion)이며,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선한 것(the good)들에 의하여 일어나게 되는 사랑(love)이라는 자연적 욕망(natural desire)[즉, 자연법(the natual law)에 기인하는 욕망]이 하느님 당신 자신에 의하여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 안에 [자연법적으로, 즉, 우리 각자가 창조될 때에] 이미 앉히어져 있음을 우리는, 연역적 추론에 의하여, 결론으로 도출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다수의 정(情, passions)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정(情)(the most fundamental passion)이며,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선한 것(the good)들에 의하여 일어나게 되는 사랑(love)이라는 자연적 욕망(natural desire)[즉, 자연법(the natual law)에 기인하는 욕망]이 하느님 당신 자신에 의하여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 안에 [자연법적으로, 즉, 우리 각자가 창조될 때에] 이미 앉히어져 있다는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 이 또한 "사랑(love)의 상징/표상(表象)(the enblem of love)" 으로서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왔다는 생각입니다.

 

특히(in particular),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7항은 무한한 선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향하는 욕망(the desire for God)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에 [자연법적으로, 즉, 우리 각자가 창조될 때에] 새겨져 있다고 가르치는데, 바로 이 욕망이 다름 아닌,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행복은 하느님에 대한 지복직관(the vision of God)이기 때문에, 무한한 선 그 자체이신 하느님에 의하여 일어나게 되는 하느님을 향하는 사랑(love)이라는 자연적 욕망(natural desire)[즉, 자연법(the natual law)에 기인하는 욕망]을 말함을 우리는, 연역적 추론에 의하여, 결론으로 도출합니다.

 

이상, 하느님을 향하는 사랑(love)이라는 자연적 욕망(natural desire)[즉, 자연법(the natual law)에 기인하는 욕망]이, 인간의 신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관/장기인,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에 [자연법적으로, 즉, 우리 각자가 창조될 때에] 새겨져 있음을 가르치는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을, 신뢰할 수 있는 그 구체적인 출처/근거와 함께, 고찰하였습니다.

 

5-3. 질문 8: 아담과 하와의 원죄(the original sin)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를 당신의 영원한 생명(the eternal life)으로 부르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혹시라도 당신의 이 부르심(소명)에 화답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당신께서 특별한 도움들을 주시고자 한다면, 바로 그 특별한 도움은 어디에 제공될까요?

 

질문 8에 대한 답변: 우리 각자의 가장 소중한 기관/장기이면서 또한 우리 각자를 인격적으로 대하여 주시는 당신과의 만남의 장소(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63항)인, 각자의 심장(心臟, heart)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33항은 위로자이신 성령 하느님께서 회심(conversion)과 회개(repentance)를 위한 은총(grace)[당신의 우의적 도움(favor)이라는 특별한 도움]인간의 심장(心臟(the human heart)에 베푸신다고 가르칩니다.

 

5-4.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 그 자구적 의미가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 영어로 "heart" 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는, 예를 들어, 위의 질문 5에 대한 답변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그리하여, 은총(grace)이라는 초자연적 사물(supernatural thing)의 열매인애덕[charity, caritas, agape(아가페)], 즉, 하느님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love)의 고유한(proper) 수용체(receptacle)이므로(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853항 참조), 이 용어는 바로 이 애덕이라는 초자연적 개념을 나타내는 문장에서 거의 반드시 또한 직접 관련지워지면서 언급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용어입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라도, 영어로 "heart" 로 번역되는 용어는, 반드시 "심장(心臟)"으로 번역되어 그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가 정확하게 보존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지역 언어로 번역이 되더라도 각 개인과 하느님과의 접촉점[the point of contact, 즉, 만남의 장소(the place of encounter)]은 각 개인에게 가장 소중한 장기/기관인 "심장(心臟, heart)"인 것이지(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93항, 제2563항), 유독 우리나라 가톨릭 교회에서만, 예를 들어, 인간의 신체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분명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는 그리고 삶 혹은 죽음(life or death)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마음(mind)" 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5-5. 그 기원이 히브리어이면서 또한 구약 성경 용어인, "heart" 로 번역되는 표현을 그 자구적 의미가 보존될 수 있도록 충실하게 "심장(心臟)"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는 대신에, 지금처럼 추상적 개념만을 나타내는, 특히 그 어원이 "heart"의 어원과 전혀 다른, "마음(mind)" 으로 획일적으로 번역을 하게 되면, 이러한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은, 그 자구적 의미가 우리의 신체의 한 부분을 나타내는 바로 이 성경 용어 "heart(심장)"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에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전통적으로 연상시켜 왔던, 영적 의미(spiritual seses)들로의 연상(association)의 근거라는 의미의 "한 개의 초자연적 기능(a supernatural function)"을 수행함을,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상실당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므로(causes), 번역 오류라는 것입니다.

 

6.

이번 글은 다음의 문장들로 끝맺고자 합니다:

 

형이상학적으로,

이해의 원리(principle of understanding)인 마음(the mind)

그 본질이 생명(life)의 원리인 인간의 영혼(the human soul)의 힘이고,

이 영혼은 생명의 원리인 뛰고 있는 심장(the beating heart)을 지니고 있으며,(*)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바로 뛰고 있는 심장(the beating heart)직접 접촉하시어 

나를 항상 알고 계신다.
(시편 139,23)

 

-----
(*) 게시자 주: 1256-1259년에 저술되었다고 알려진,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저술[제목: Questiones Disputatae de Veritate (Disputed Questions on Truth)]인 다음의 문헌의 제10장을 보라:
http://dhspriory.org/thomas/QDdeVer.htm [목차]

http://dhspriory.org/thomas/QDdeVer10.htm [10, mind (라틴어 원문 및 영어본)]

http://dhspriory.org/thomas/english/QDdeVer10.htm [10. the mind (영어본)]

 

그리고 다음을 또한 보라:

Summa Theologica. Ia IIae, q73, a2

St. John Paul II

-----

 

그리하여 우리가 하느님 쪽으로 다가갈 때에,

 

Credere Deum(信天主) 
영(spirit)의 수용체
 인간의 영혼(human soul)에 의하여
동의와 함께 받아들여지고,

 

Credere Deo(信賴天主)
말(word)의 수용체 마음/지성(the intellect)에 의하여

동의와 함께 받아들여지며,

 

그러고 나서

Credere in Deum(信仰天主)
행위(act)의 주체 "바로 뛰고 있는 심장"/의지(the will)에 의하여

동의와 함께 받아들여지게 된다.

 

     끝으로, 혹시라도 누군가가 "자신이 사용하는 "마음" 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가 영어로 "heart(심장)" 에 자구적으로(literally) 및 등가로(equivalently) 대응한다" 라고 말하면, 다음과 같이 답변하십시오:

 

"아닙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마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 우리말 단어 "마음"은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 "mind"[어원: 그리스 단어 "nous"(라틴어 단어 "mens")]에 대응합니다. 그리고 "영혼(soul)" 의 힘(power)인 "마음(mind)" 보다 "영혼(soul)" 의 더 깊은 안쪽에 "형이하학적 용어(physical term)인 심장(heart)[이 나타내는 추상적 개념들]"이 있습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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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heart" "pope Francis" site:vatican.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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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현재까지 약2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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