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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욕편정 자체가 죄일까요? 792_ [교리용어_사욕편정] [과성은혜] [과자연적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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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115.208.*]

2012-05-01 ㅣ No.1196


질문: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유혹을 자주 느낍니다.

이러한 감각적 느낌을 가질 때마다, 가톨릭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보아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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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게시자 주: 이 글은, 평소의 저의 글들에서처럼, 이 글의 게시자인 필자 개인의 개인적 견해/의견/주장을 말씀드리는 글이 아니라, 가톨릭 보편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는 대단히 신뢰할 수 있는 영문 자료들을 찾아, 여전히 그 벽이 높은 문화 장벽 혹은 언어 장벽 때문에, 오로지 국내의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그리고 내용 전달의 효율성 및 정확성을 위하여, 필요시에는 게시자가 마련한 우리말로의 직역 번역문의 추가와 함께, 전달해 드리는 글입니다. 그리고 지금 말씀 드린 바는, 이 글 중에서 대단히 충실하게 제시되고 있는 출처/근거들을 확인하면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이 글의 독자들께서,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신학적 특정 주제에 대하여, 자신 고유의 견해/의견/주장과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을 스스로 비교/검토하고 또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도록 제공해 드리는, 신뢰할 수 있는 자료성 글이지, 이 글의 독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마련된 글이 결코 아닙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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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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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2월 17일]

(*) 번역자 주: 현재까지 국내의 가톨리계에서 사용중인, 영어로 "concupiscence"로 번역되는 라틴어 단어 "concupiscentia"의 번역 용어인 "慾偏情"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를 클릭한 후에, 제2-2-4항제2-2-5항반드시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5.htm <----- 필독 권고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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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면서

[간략한 요약 답변]
주신 질문은, 신학적으로, 그러한 유혹을 포함하는, 번역 용어인,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 사욕)으로 불리는 바"가 "죄(sin)"인가 혹은 아닌가? 하는 신학적 질문에 포함됩니다.

이에 대한 간략한 요약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죄(sin)"란, 당사자의 자유 의지(free will)가 개입하여, 하느님의 법에 반하는 어떤 것을 하느님의 법에 반함을 알면서도 생각, 말, 혹은 행동으로 행하였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를 들어, 설사 하느님의 법에 반하는 어떤 행위라고 하더라도 행위자가 이 점을 모르고 행한 잘못은, 하느님의 법에 맞서 거스르는 행위자 자신의 자유 의지의 개입이 없으므로, 이후에 행위자가 그 잘못을 인지하게 될 때까지는, 여전히 죄가 아닙니다. 여기를 클릭하여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용어사전에 주어진 "죄(sin)"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읽으십시오.

(2) 만약에, 번역 용어인, "사욕편정" 그 자체가 "대죄(mortal sin)"이라면, 고해성사를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3) 그렇지 않다면, 고해성사를 반드시 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리고 "소죄(venial sin)"는 미사에 참례함으로써 하느님의 용서를 받습니다].

(4) 다른 한편으로, 가톨릭 보편 교회는, 번역 용어인, "사욕편정(사욕/욕정, 偏情, concupiscence)"으로 불리는 바를 "죄(sin)"라고 가르치지 않고, "[윤리적] 악으로 기울어지는 성향(an inclination to evil)"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5항(<--- 클릭하십시오)] 이라고 정의하며(define), 그리고 성전(사도전승, Tradition)"죄로 기울어지는 성향(an inclination to sin)"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64항(<--- 클릭하십시오)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26항(<--- 클릭하십시오)] 으로 불러 왔는데 [주: 죄(sin)는 악(evil)이나, 그러나 그 역은 항상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윤리적 악(moral evil)은 죄입니다], 바로 이렇게 부르는 것 자체가 "사욕(사욕편정, 偏情, concupiscence)" 그 자체는 죄가 아님을 또한 의미합니다.

유의 사항 한 개: 그러나 16세기 초반에 나타났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년)를 시작으로 하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을, 즉 "악으로 기울어지는 성향" "원죄(original sin)"로 불리는 "죄(sin)"동일시하였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6항(<--- 클릭하십시오)].

국내의 일부 가톨릭 신자들(여기에는 개신교로부터 가톨릭으로 개종한 분들 포함)도 개신교측의 신자들처럼, 교리 지식의 부족 때문에"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인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을 어떤 "죄(a sin)"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이 결코 아닙니다.

영어가 가능한 분들께서는, 여기를 클릭하면, 사욕편정이 죄가 아니라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가르침을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클릭한 후에 제5항의 마지막 부분을 읽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이 트리엔트 공의회의 선포를 요약하여 언급하고 있는,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concupiscence(사욕편정)"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클릭한 후에 마지막 부분을 읽도록 하십시오.

(5) 그러나, 사욕(사욕편정, 偏情, concupiscence)에 윤리적 악(moral evil)의 방향으로 당사자의 자신 고유의 자유 의지(free will)가 개입하여 동의(consent)를 함으로써, 비로소 한 개의 죄(a sin)가 성립됩니다.

이것은 또한,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64항(<---클릭하십시오)
에서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6) 따라서, "사욕(사욕편정), 즉 죄(sin)/악(evil)으로 기울어지는 성향" 그 자체는 "소죄((venial sin)"도 아니므로, 고해성사를 반드시 보아야 할 필요/의무가 없습니다.

(7) 여기를 클릭하면,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의 부재, 즉 사욕부재(不在, integrity)"가 원죄의 결과, 비록 사람들이 세례성사를 받고 그리고 고해성사를 보더라도 그리하여 하느님의 입양된 자녀들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여전히 상실당한 상태에 있는 것들인, 과자연적(過自然的) 선물(prenatural gifts)들,과성적(過性的) 선물들, 즉 과성은혜過性恩惠)]들 중의 하나임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클릭한 후에 제7-2항을 읽도록 하십시오.

(8) 여기를 클릭하면, 영어로 "integrity"로 번역되는 라틴어 신학적 용어인 "integritas"정의(definition)를 읽을 수 있습니다. 클릭한 후에, 제3항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번역자 주"를 읽도록 하십시오.

(9)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대사전에 주어진 사욕편정에 대한 설명은,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오류입니다.

주의 사항 한 개: 혹시라도, 가톨릭 교회의 세례를 받고자 하는 의향이 있으신 분이 마땅히 할 수 있는, 그리고 마땅히 하여야 하는, 위와 같은 종류의 "심각한(?) 질문"에 대하여, "그럼요! 고해성사를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라고 당당히(?) 답변하는 것은, 얼핀 듣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하나, 그러나 사실은,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근거하지 않고 답변자 개인의 추측/판단에 근거한 대단히 잘못된 답변이며, 더 나아가,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유일한 교회인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 전반에 대하여, 질문자측에서 피상적 단계에서부터 이미 심각한 오해/억측을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기에, 그리하여, 한 명의 입교자를 놓칠뿐만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다수의 입교 의향이 있는 분들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에, 정말로 대단히 곤란한 잘못된 답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잘못 인지된 바를 바로 잡는 것은 대단히 힘들고 또 많은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서는, 지금부터는, 가톨릭 신앙에 관심이 있는 지인으로부터 자신에게 위의 질문이 주어졌을 때에, 절대로 "그렇게" 답변하지 마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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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이하는, 여전히 작성 중이며, 위의 질문에 대한 간략한 답변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여기까지만 읽더라도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지금부터는, 지금 전달해드린 "간략한 답변"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CCCC) 제77항의 가르침입니다:

출처: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I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연중 제10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76. 원죄(original sin)가 무엇인지요?
CCC 404, 419

모든 인간들이 그 안에서 태어나게 되는 원죄는 원래의 거룩함과 의로움(original holiness and justice)을 상실당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 죄는 우리에 의하여 ‘범해진(committed)’ 죄가 아니라 ‘감염된(contracted)’ 죄이며, 그리고 이 죄는 어떤 인격적 행위(a personal act)가 아니라 출생의 상태(a state of birth)를 말합니다. 모든 인간들의 원래의 단일성(original unity) 때문에, 이 죄는 ‘모방(imitation)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번식(propagation)에 의하여’ 아담의 후손들에게 전달됩니다. 이 전달은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신비(a mystery)로 남아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ot_10_c40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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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CC 77. 다른 어떠한 결과들이 원죄로부터 비롯되는지요?
CCC 405-409, 418

원죄의 결과로 인간의 본성(human nature, 인성)은, 완전히 타락됨 없이, 그 본성적 힘(its natural powers)들에 있어 상처가 나게 됩니다(is wounded). 인간의 본성은 무지(ignorance)에,  고통(suffering)에, 그리고 죽음의 지배(dominion)에 복종하게 되며 그리고 죄를 향하여 기울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성향은 사욕편정[concupiscence, 偏情](*)이라고 불립니다(엮은이 번역).

(*): ‘사욕편정[concupiscence, concupiscentia, 偏情]’ 용어는 다음의 설명을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oncupiscence.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ot_10_c40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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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77항에서, "사욕편정"이란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질문: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 즉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 자체가 "죄(sin)"일까요?

답변: 아닙니다.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은 "죄"와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 즉 사욕(慾)]"을 동일시하지 않아 왔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2월 24일]

사욕편정(concupiscence, 偏情) 그 자체는 죄가 아니라는 언급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있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짝수해 연중 제6주간 화요일 제1독서(야고보 1,12-18)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에 포함되어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6_tue.htm <----- 필독 권유

[이상, 내용 추가 끝].

유의 사항 한 개: 그러나 16세기 초반에 나타났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년)를 시작으로 하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을, 즉 "악으로 기울어지는 성향" "원죄(original sin)"로 불리는 "죄(sin)"동일시하였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6항(<---클릭하십시오)].

국내의 일부 가톨릭 신자들(여기에는 개신교로부터 가톨릭으로 개종한 분들 포함)도 개신교측의 신자들처럼, 교리 지식의 부족 때문에"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인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을 어떤 "죄(a sin)"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이 결코 아닙니다.

2.
2-1.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으로 불리는 개념과 "죄(sin)"로 불리는 개념 사이의 신학적 차이점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그리하여 구분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죄(sin)"의 정의(definition)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CCCC 392. 무엇이 죄입니까?
CCC 1849-1851, 1871-1872

“영원한 하느님의 법(Law)에 반하는 말, 행위, 혹은 욕망(desire)”이 죄입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죄(sin)는 하느님의 사랑(love)(*)에 불순종하여 하느님께 맞서는 거스르는 행위(offense)입니다. 죄는 인간의 본성을 해치며 인간의 연대성(human solidarity)을 손상시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수난(passion)에서 죄의 심각성을 완전히 드러내셨으며 그리고 당신의 자비로써 죄를 이기셨습니다(overcame)(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heart_c1849.htm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ot_9_c184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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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하느님의 사랑"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글에 있으니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8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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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of Hippo, 354-430년)는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원죄(original sin)"를 동일시하는 개신교측의 주장이 처음 제기된 16세기 초반보다 무려 천백 년(1,100년) 이상의 이전의 시기에 "죄(sin)"의 정의(definition)를 이미 위와 같이 하였으며, 바로 이 정의를 가톨릭 보편 교회는 수용해 왔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수용하고 있습니다.

위의 성경공부 해설서의 가해 연중 제12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에서 발췌

CCCC 393. 다양한 죄들이 있는지요?
CCC 1852-1853, 1873

많은 종류의 죄들이 있습니다. 죄들은 그 대상(object)에 따라 아니면 그들이 어기는(violate) 덕(virtues)들 혹은 계명(commandments)들에 따라 구분될 수 있습니다. 죄들은 하느님, 이웃, 혹은 죄를 범하는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죄들은 생각의 죄들, 말의 죄들, 행동의 죄들, 혹은 태만(omission)의 죄들로 또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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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CC 394. 죄들은 그 심각함에 따라 어떻게 구분되는지요?
CCC 1854

대죄(mortal sin, 죽을 죄, 즉 그냥 놔두면 죽음을 초래하는 죄)와 소죄(venial sin, 가벼운 죄) 사이에 구분이 있게 됩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2_c185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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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성경공부 해설서의 가해 연중 제13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에서 발췌

CCCC 395. 사람이 대죄를 범하는 경우는 언제입니까?
CCC 1855-1861, 1874

사람이 대죄(mortal sin)를 범하는 경우는, 중대한 사안(grave matter), 충분한 인지(full knowledge), 그리고 의지가 개입된 동의(deliberate consent), 이들 세 가지 요소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을 때입니다. 대죄는 우리 안에 있는 애덕(charity)을 파괴하고, 우리로부터 성화은총(sanctifying grace)을 빼앗으며, 그리고, 만약에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지옥(hell)이라는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대죄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세례성사고해성사를 통하여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3_c185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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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CC 396. 언제 사람이 소죄(venial sin)를 짓게 되는지요?
CCC 1862-1864, 1875

사람이, 대죄와는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소죄를 범하는 경우는, 개입된 사안이 덜 심각하거나, 심지어 그것이 중대하다 하더라도, 충분한 인지 혹은 완전한 동의가 결여되어 있을 때입니다. 소죄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깨뜨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소죄는 애덕(charity)을 약화시키며 세상 재화(created goods, 창조된 재화)들에 대한 질서가 결핍된 애착(disordered affection)을 드러냅니다. 소죄는 덕(virtues)들의 실천과 윤리적 선(good)의 실행에 있어 영혼의 전진(progress)을 방해합니다. 소죄는 정화하는 잠벌(暫罰, poena temporalis, temporal punishment,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일시적인 형벌)을 마땅히 받을 만합니다(merits)(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3_c1862.htm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이상 발췌문들로부터, 특히 가톨릭 보편 교회가 가르치는 죄(sin)정의(definition)

“영원한 하느님의 법(Law)에 반하는 말, 행위, 혹은 욕망(desire)" (성 아우구스티노)

임을 학습하였으며, 그리고 죄들의 종류들 등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반한다" 함은, 죄를 범하는 자의 자유의지의 개입을 또한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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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두 번째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항들 중에서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에 대한 언급이 있는 항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글자들에 색칠을 하고 굵게 한 것은 글쓴이가 한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의 용어 번역 오류/미숙들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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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이러한 용어 번역 오류/미숙이 발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초자연적 선물(supernaural gifts)들"로 불리는 신학적 개념과 신학적으로 구분되는 또다른 신학적 개념인, "prenatural gifts(과자연적 선물들, 즉 과성적 선물들, 즉 과성은혜들)"로 불리는 신학적 개념이, 최근에 이르기까지 국내 가톨릭계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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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두 신학적 개념들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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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 The "mastery" over the world that God offered man from the beginning was realized above all within man himself: mastery of self. The first man was unimpaired and ordered in his whole being because he was free from the triple concupiscence that subjugates him to the pleasures of the senses, covetousness for earthly goods, and self-assertion, contrary to the dictates of r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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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77항에서 "concupiscence(사욕편정)" 을 "욕망"으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미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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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 Although it is proper to each individual, original sin does not have the character of a personal fault in any of Adam's descendants. It is a deprivation of original holiness and justice, but human nature has not been totally corrupted: it is wounded in the natural powers proper to it; subject to ignorance, suffering and the dominion of death; and inclined to sin - an inclination to evil that is called "concupiscence". Baptism, by imparting the life of Christ's grace, erases original sin and turns a man back towards God, but the consequences for nature, weakened and inclined to evil, persist in man and summon him to spiritual ba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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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5항에서 "concupiscence(사욕편정)" 을 "욕망"으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미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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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The Church's teaching on the transmission of original sin was articulated more precisely in the fifth century, especially under the impulse of St. Augustine's reflections against Pelagianism, and in the sixteenth century, in opposition to the Protestant Reformation. Pelagius held that man could, by the natural power of free will and without the necessary help of God's grace, lead a morally good life; he thus reduced the influence of Adam's fault to bad example. the first Protestant reformers, on the contrary, taught that original sin has radically perverted man and destroyed his freedom; they identified the sin inherited by each man with the tendency to evil (concupiscentia), which would be insurmountable. the Church pronounced on the meaning of the data of Revelation on original sin especially at the second Council of Orange (529) and at the Council of Trent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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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6항에서 "concupiscence(사욕편정)" 을 "욕망"으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미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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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As a result of original sin, human nature is weakened in its powers, subject to ignorance, suffering and the domination of death, and inclined to sin (this inclination is called "concupisc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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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18항에서 "concupiscence(사욕편정)" 을 "욕망"으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미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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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 "When we made our first profession of faith while receiving the holy Baptism that cleansed us, the forgiveness we received then was so full and complete that there remained in us absolutely nothing left to efface, neither original sin nor offenses committed by our own will, nor was there left any penalty to suffer in order to expiate them.... Yet the grace of Baptism delivers no one from all the weakness of nature. On the contrary, we must still combat the movements of concupiscence that never cease leading us into evil."
 
1264 Yet certain temporal consequences of sin remain in the baptized, such as suffering, illness, death, and such frailties inherent in life as weaknesses of character, and so on, as well as an inclination to sin that Tradition calls concupiscence, or metaphorically, "the tinder for sin" (fomes peccati); since concupiscence "is left for us to wrestle with, it cannot harm those who do not consent but manfully resist it by the grace of Jesus Christ."(*) Indeed, "an athlete is not crowned unless he competes according to the ru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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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1888년에 공포된 다음의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을 또한 참고하라 [트리엔트 공의회(Conc. Trid.), sess. v, can.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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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6 Conversion to Christ, the new birth of Baptism, the gift of the Holy Spirit and the Body and Blood of Christ received as food have made us "holy and without blemish," just as the Church herself, the Bride of Christ, is "holy and without blemish." Nevertheless the new life received in Christian initiation has not abolished the frailty and weakness of human nature, nor the inclination to sin that tradition calls concupiscence, which remains in the baptized such that with the help of the grace of Christ they may prove themselves in the struggle of Christian life. This is the struggle of conversion directed toward holiness and eternal life to which the Lord never ceases to call us.

1869 Thus sin makes men accomplices of one another and causes concupiscence, violence, and injustice to reign among them. Sins give rise to social situations and institutions that are contrary to the divine goodness. "Structures of sin" are the expression and effect of personal sins. They lead their victims to do evil in their turn. In an analogous sense, they constitute a "social 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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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869항에서 "concupiscence(사욕편정)" 을 "욕망"으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미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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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According to Christian tradition, the Law is holy, spiritual, and good, yet still imperfect. Like a tutor it shows what must be done, but does not of itself give the strength, the grace of the Spirit, to fulfill it. Because of sin, which it cannot remove, it remains a law of bondage. According to St. Paul, its special function is to denounce and disclose sin, which constitutes a "law of concupiscence" in the human heart. However, the Law remains the first stage on the way to the kingdom. It prepares and disposes the chosen people and each Christian for conversion and faith in the Savior God. It provides a teaching which endures for ever, like the Word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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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63항에서 "a law of concupiscence" 을, "사욕편정의 법"으로 번역하는 대신에, "욕망의 법"으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미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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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4 St. John distinguishes three kinds of covetousness or concupiscence: lust of the flesh, lust of the eyes, and pride of life. In the Catholic catechetical tradition, the ninth commandment forbids carnal concupiscence; the tenth forbids coveting another's go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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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14항에서 "covetousness"를, "[자신의 소유가 아닌 사물들에 대한] 탐욕(貪慾)"으로 번역하는 대신에, "사욕"으로 번역한 것, 그리고 "concupiscence(사욕편정)"을 "욕망"으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미숙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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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5 Etymologically, "concupiscence" can refer to any intense form of human desire. Christian theology has given it a particular meaning: the movement of the sensitive appetite contrary to the operation of the human reason. the apostle St. Paul identifies it with the rebellion of the "flesh" against the "spirit." Concupiscence stems from the disobedience of the first sin. It unsettles man's moral faculties and, without being in itself an offense, inclines man to commit s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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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15항에서 "concupiscence(사욕편정)" 을 "탐욕(貪慾)"으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미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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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0 Baptism confers on its recipient the grace of purification from all sins. But the baptized must continue to struggle against concupiscence of the flesh and disordered desires. With God's grace he will prevail

- by the virtue and gift of chastity, for chastity lets us love with upright and undivided heart;

- by purity of intention which consists in seeking the true end of man: with simplicity of vision, the baptized person seeks to find and to fulfill God's will in everything;

- by purity of vision, external and internal; by discipline of feelings and imagination; by refusing all complicity in impure thoughts that incline us to turn aside from the path of God's commandments: "Appearance arouses yearning in fools";

- by prayer:

I thought that continence arose from one's own powers, which I did not recognize in myself. I was foolish enough not to know . . . that no one can be continent unless you grant it. For you would surely have granted it if my inner groaning had reached your ears and I with firm faith had cast my cares o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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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20항에서 "concupiscence of the flesh"을 "육에 기인하는 사욕편정" 대신에 "육체의 탐욕"으로 번역한 것, 그리고 "disordered desires"를, 예를 들어, "질서가 결핍된 욕망들" 대신에, "부당한 욕망"이라고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미숙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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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9 The ninth commandment warns against lust or carnal concupisc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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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29항에서 "lust"를, "음욕"으로 번역하는 대신에, "육체의 욕망"으로 번역한 것, 그리고 "carnal concupiscence" 을, "육에 기인하는 사욕편정" 대신에, "욕망"으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미숙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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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4 The tenth commandment unfolds and completes the ninth, which is concerned with concupiscence of the flesh. It forbids coveting the goods of another, as the root of theft, robbery, and fraud, which the seventh commandment forbids. "Lust of the eyes" leads to the violence and injustice forbidden by the fifth commandment. Avarice, like fornication, originates in the idolatry prohibited by the first three prescriptions of the Law. The tenth commandment concerns the intentions of the heart; with the ninth, it summarizes all the precepts of the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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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34항에서 "concupiscence of the flesh"을, "육에 기인하는 사욕편정"으로 번역하는 대신에, "육체의 욕망"으로 번역한 것, "lust of the eyes"를, "눈들에 기인하는 음욕"으로 번역하는 대신에, "눈의 욕망"으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미숙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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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가톨릭 교회의 교부들의 전승(patrimony)에 근거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고유의 윤리 신학에 속한다는 생각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유

이 글에 이어지는 글인, 가톨릭 윤리 신학의 핵심 개념들 중의 한 개인, 그리고 그 용어 정의(definition)에 있어,

예를 들어, 한문 문화권 고유의 유학(Confusianism)칠정[七情, seven passions of of joy(, 희, 기쁨), anger(, 노, 노여움/분노), sorrow(哀, 애, 슬픔/후회/뉘우침), fear(, 구, 두려움), love(愛, 애, 사랑), hate(惡, 오, 미움/증오) and desire(欲, 욕, 욕망, 욕심)(*)]에서 말하는, 정(情)동일한 개념으로 파악이 되고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에서 가르치고 있는, 그리고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62항-1775항들에서 가르치고 있는,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전승(patrimony) "정(情, passion)"의 개념과 이 개념의 하위 개념들을 전달해 드리는 첫 번째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3월 24일 성 목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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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1) 다음에 있는 국내에서 사용중인 영어 사전들에 주어진 "칠정(七情)"에 대한 설명에서, 이 영어 단어 lust(음욕) 에 대응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error)이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이미 한문 문화권에서 에 여섯 가지가 있다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2) 그런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소장 중인, 1958년에 초판 발행된, 민중서관의 1972년 10월 민중서관 대표의 서문이 있는, "엣센스 한영 사전(Essence Koean-English Dictionary)"의 제1487쪽에 주어진 "칠정(七情)"에 대한 설명에서, 이 영어 단어 lust에 대응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바로 이 잘못된 설명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1910년부터 35년간 일제 강점을 겪고 나서 해방 이후에 국내에서 출판된 대다수의 영한 사전들과 한영 사전들이, 영일(英日, English-Japanese) 사전들과 일영(日英, Japanese-English) 사전들을 번역 대본으로 삼아, 이들 일본인들을 위한 사전들에서 일본어 단어들을 단순히 우리말 단어들로 바꾸어 출판되었던 것이, 그 주된 이유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심각한 문제 한 개는, 해방을 맞이 한 것이 이제 7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바로 위의 제(1)항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대한히 심각한 번역 오류가, 국내에서 현재 사용 중인 한영 사전들과 영한 사전들에 그대로 실려있다는 점이다.
 
(3)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바로 위의 제1항에서 지적한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는,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있는 ,요즈음의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일본 사전에는 없는 번역 오류이다:
 
 
(4) 중국과 우리나라 가톨릭계의 지역 언어본 성경 본문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핵심 문헌들에서 사용 중인 윤리 신학 분야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이, 문화 장벽과 언어 장벽 때문에, "한문 문화권" 안 쪽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여 왔고 그리하여 그 결과 이들 용어들 사이의 상호 관계들이 "한문 문화권" 내에서 체계적으로 설명되어 오지 못하게 된 주된 교회사적 이유에 대하여, 2015년 8월 초 이후에 이르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처음으로 알게 된 바는 별도의 글을 작성하여 국내의 교우님들께 보고를 드릴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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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16년 3월 24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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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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