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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五餠二魚(루카 9,11ㄴ-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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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06-23 ㅣ No.166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五餠二魚(루카 9,11ㄴ-17)

 

살렘 임금 멜키체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한다. (창세14,18-20)
그 무렵 18 살렘 임금 멜키체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다.
19 그는 아브람에게 축복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아브람은 복을 받으리라.
20 적들을 그대 손에 넘겨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아브람은 그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빵을 먹고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1코린 11,23-26)
형제 여러분, 23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복하시고 떼어 나누어 주시어 오천 명의 장정을 먹이신다. (루카 9,11ㄴ-17)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11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을 고쳐 주셨다.
12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
13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제자들은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4 사실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대충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게 하여라.”
15 제자들이 그렇게 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
16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1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제1독서 (창세14,18-20) 

 

"그 무렵 살렘 임금 멜키체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다."  (18)

 

'살렘 임금'으로 번역된 '멜레크 살렘'(mellek shallem)에서 '살렘'은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살렘에 그분의 초막이, 시온에 그분의 거처가 마련되었네." (시편76,3) '살렘'은 '예루살렘'의 예스런 명칭인데, 살렘 임금 멜키체덱은 당연히 당시 예루살렘을 다스리던 통치자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본문의 '살렘' 지명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로 보지 않는다. '살렘'(샬렘) '화친하다', '배상하다'(탈출22,6)로 번역된 동사 '샬람'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서 살렘 임금을 '화친하기 위해 나아온 임금', '항복하고 배상하는 임금' 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문맥상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살렘 임금 멜키체덱은 패자의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 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아브라함을 축복하며, 또한 아브라함도 그에게 전리품의 일부를 바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멜키체덱이 가져온 빵과 포도주는 아브라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아브라함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와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선물로 볼 수 있다.

 

'멜키체덱이'로 번역된 '우말르키 체디크'(umallki tsedeq)에서 '멜키체덱'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말르키''멜레크'(mellek; 임금,왕)와 1인칭 어미가 합쳐진 말로 보며, '체데크'를 신(神)의 이름으로 여겨 '나의 임금은 체데크신(神)'으로 보는 견해이다.

 

둘째는 '마르키'를 신(神)의 이름으로 여기고, '체데크'를 문자적 의미인 '정의'(正義)로 보아서 '마르키신(神)은 정의로우시다'로 번역하는 것이다.

셋째로 두 단어를 모두 문자적으로 번역하여 '나의 임금은 정의로우시며'라고 보는 견해이다.

 

이 가운데 첫째와 둘째 견해를 취하면, 멜키체덱은 가나안의 우상을 섬기는 사제가 된다.

그러나 본문에 이어지는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다'라는 내용을 볼 때 이 두 견해를 도저히 취할 수가 없다.

따라서 세번 째 견해가 합당할 수 있으며, 이것은 그의 정의로운 성격을 잘 대변하는 이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 번역된 '코헨 레엘 엘르욘'(kohen leel ellyon)에서 '지극히 높으신'으로 번역된 '엘르욘'은 '오르다'(창세49,4 ; 신명5,5)란 의미가 있는 '알라'(alla)에서 유래하며 '가장 으뜸됨','가장 존귀함'(2역대7,21; 시편89,28; 에제42,5) 이란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 단어가 본문에서처럼 하느님께 대해 사용될 때 다른 존재와는 완전히 구분되는 하느님의 절대적인 초월성과 탁월성을 보여준다(시편7,18; 57,3).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하느님과 견줄 존재가 아무도 없음을 알고, 오직 하느님만을 유일신으로 섬겨야 한다.

 

"그래서 당신의 이름 주님이심을  당신 홀로 온 세상에 지극히 높으신 분이심을  그들이 깨닫게 하소서." (시편83,19)

 

한편 성경에서 740회 등장하는 '코헨'(사제)이란 단어가 본절에 처음 나온다. 인간들에 대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대변자 역할을 하는 예언자와 달리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중보자) 역할을 하는 사제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은 탈출기 28장에 비로소 나온다.

 

즉 모세의 형인 레위 지파 아론의 후손들 이스라엘의 사제로 임명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 등장하는 멜키체덱은 이방인이며 아론과도 전혀 관계가 없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키체덱은 당시 사람들을 대표해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던 자인만큼은 분명하다.

 

이러한 멜키체덱은 임금이며 동시에 사제로서 장차 오시게 될 만왕의 왕이시며 완전한 사제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시편110,4 ; 히브7,1-17).

'정의의 임금'(멜키체덱의 뜻)이며 '평화의 임금'(살렘 임금의 뜻)으로서  멜키체덱은 이상적인 신정정치(神政政治)의 통치자로서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아론의 계통이 아니고 시작도 끝도 없는 사제로서의 멜키체덱은 영원한 중재자(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사제인 멜키체덱을 등장시킴으로써 이천 년 이후에나 이 땅에 오시게 될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게 하셨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모든 성경이 태초부터 계시며 영원히 인간의 중재자(중보자)가 되실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영원히 사시기 때문에 영구한 사제직을 지니십니다.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며 그들을 위해 밀어 주십니다."  (히브7,24.25)

 

"아브람은 그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 (창세14,20ㄷ)

 

성경에 처음 나오는 십일조(十一租)에 대한 기록이다. 십일조 규정은 모세에 의해 명문화되었지만(레위27,30-33)본절에 나오는 것처럼 그 이전에도 이미 시행되고 있었다.

 

이브라함이 전리품 가운데 십분의 일('마아세르'; maaser ; a tenth; tithe)멜키체덱에게 준 것은 멜키체덱을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로 인정한 것이며, 동시에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이긴 것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서 하느님께 드린 십일조는 아브라함 자신의 모든 소유는 물론, 자기 자신도 만왕의 왕이신 하느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신앙의 성숙한 고백인 것이다.

"주님 것이라네.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시편24,1)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 안에서의 연대와 나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생명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사랑으로 병든 이들을 고쳐주십니다(9,11). 말씀도 행동도 모두 하느님을 건네주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모두 내어주시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곁에는 열두 제자들도 있었지만 예수님을 찾아온 군중들도 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제자들은 군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예수님께 그 책임을 떠넘깁니다. 날이 저물고, 황량한 곳이라는 이유로(9,12) 그들은 군중을 돌려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시라고 청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빵이요 영원한 거처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장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해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제안한 방법들을 보면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도 그분의 신원에 대한 이해도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도 이처럼 날이 저물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벌판처럼 여겨지는 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생명이신 주님을 두고 어디로 달려갔으며 내가 믿는 신앙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손을 내밀긴 했으나 오히려 고통스런 현실을 회피하고 그분께 짐을 떠넘겨버리지 않았는지 성찰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해결책을 청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9,13) 하십니다. 이 말씀은 생명의 빵으로 오신 자신을 건네주셨듯이 제자들도 스스로를 남김없이 내어주라는 것입니다. 곧 사랑의 동기로 각자에게 정의로운 분배를 실천하라는 말씀이지요. 얼마나 많은 것을 나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전부를 나누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하고 말씀드립니다. 그들은 자신을, 지금까지 당신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생명을,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예수님을 ‘지금 여기서’ 내어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금 여기에 예수님과 군중과 자신들이 함께 있고,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외적인 수단과 물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연대와 일치의 정신이었습니다. 어떻게 연대하여 이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갈지를 고민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군중을 분리시킨 채 자신들 밖의 힘에 의존한 것이지요.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당신의 몸과 피를 건네시며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25)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그분의 죽음을 넘어선 생명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이웃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나의 존재 전부를 지금 여기서 나눔으로써 분배 정의를 실현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끌어안고 연대함으로써 모두가 배부르게 되는, 곧 생명을 호흡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오늘도 기꺼이 서로를 나누고 어떤 역경과 시련 중에도 사랑의 연대를 이룰 수 있도록 힘쓰는 복된 날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에 대한 공경을 표하는 우리다운 태도일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교회는 이날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체성사를 특별히 기념하고 그 신비를 묵상하는 날로 지냅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전례 안에서 기념해 왔던 육화의 신비 전체와 삼위일체의 신비까지도 바로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성혈 대축일의 의미 안에 함축되어 있고, 오늘 그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이야말로 하느님 사랑과 구원 의지의 가장 탁월한 표현이요 그 구체적인 실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으로 제시하시면서, 당신의 살을 우리의 양식으로, 당신의 피를 우리의 음료로 내어 주십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창조주요 주재자이신 분이 스스로 인간의 수준으로 낮추신 겸손과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하신 수난과 고통, 부활을 통하여 이룩하신 승리까지도 모조리 우리에게 내어 놓으실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당신 안에 갖고 계신 삼위일체의 신비까지도 우리와 함께 나누고자 하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성체와 성혈을 모심으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며, 온전한 일치 속에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정말 기쁘고 감사한 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사랑의 배고픔과 목마름이 온전히 채워지는 신비를 경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것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우리의 가장 소중한 능력 가운데 하나임을 되새기며,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진 우리는 이제 그 사랑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고, 우리의 이웃들과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부속가 <성체 송가: 21절부터 시작해서 짧게 할 수도 있다.>

1. 찬양하라 시온이여, 목자시며 인도자신, 구세주를 찬양하라.
2. 정성다해 찬양하라, 찬양하고 찬양해도, 우리능력 부족하다.
3. 생명주는 천상양식, 모두함께 기념하며, 오늘특히 찬송하라.
4. 거룩하온 만찬때에, 열두제자 받아모신, 그빵임이 틀림없다.
5. 우렁차고 유쾌하게, 기쁜노래 함께불러, 용약하며 찬양하라.

6. 성대하다 이날축일, 성체성사 제정하심, 기념하는 날이로다.
7. 새임금님 베푼잔치, 새파스카 새법으로, 낡은예식 끝내도다.
8. 새것와서 옛것쫓고, 예표가고 진리오니, 어둠대신 빛이온다.
9. 그리스도 명하시니, 만찬때에 하신대로, 기념하며 거행한다.
10. 거룩하신 말씀따라, 빵과술을 축성하여, 구원위해 봉헌한다.

11. 모든교우 믿는교리, 빵이변해 성체되고, 술이변해 성혈된다.
12. 물질세계 넘어서니, 감각으로 알수없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13. 빵과술의 형상안에, 표징들로 드러나는, 놀랄신비 감춰있네.
14. 살은음식 피는음료, 두가지의 형상안에, 그리스도 온전하다.
15. 나뉨없고 갈림없어, 온전하신 주예수님, 모든이가 모시도다.

16. 한사람도 천사람도, 같은주님 모시어도, 무궁무진 끝이없네.
17. 선인악인 모시지만, 운명만은 서로달라, 삶과죽음 갈라진다.
18. 악인죽고 선인사니, 함께먹은 사람운명, 다르고도 다르도다.
19. 나뉜성체 조각마다, 온전하게 주예수님, 계시옴을 의심마라.
20. 겉모습은 쪼개져도, 가리키는 실체만은, 손상없이 그대로다.

21. 천사의빵 길손음식, 자녀들의 참된음식, 개에게는 주지마라.
22. 이사악과 파스카양, 선조들이 먹은만나, 이성사의 예표로다.
23. 참된음식 착한목자, 주예수님 저희에게, 크신자비 베푸소서.
     저희먹여 기르시고, 생명의땅 이끄시어, 영생행복 보이소서.
24. 전지전능 주예수님, 이세상에 죽을인생, 저세상에 들이시어,
     하늘시민 되게하고, 주님밥상 함께앉는, 상속자로 만드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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