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8주일(가해) 마태 22,1-14; ’23/10/15

인쇄

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9-30 ㅣ No.5541

연중 제28주일(가해) 마태 22,1-14; ’23/10/15

 

  

 

 

 

 

어떤 분들에게 성당에 오시게 된 동기에 대해 물으면 여러 경우의 답이 나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유언으로 남겨서, 천주교 신자와 결혼하려고 했더니 배우자 될 사람이 성당에 다녀야 한다고 해서, 자식이 첫 영성체를 하면서 어버이도 성당에 같이 다니기를 하도 원해서, 천주교 신자들이 부모님이나 집안 어르신의 장례를 잘 치러주는 모습을 보고, 마땅히 잘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 늙어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믿고 따르고 함께할 사람 하나 얻고 싶어서, 막상 무슨 일이 생기거나 어려울 때 함께할 사람이 없어서, 누군가의 삶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여서, 평화를 얻기 위해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 등등…….

 

그런데 어떤 연유와 경로로 성당에 오게 되었든지 간에, 오는 사람은 자기가 원해서 왔다고 할지라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께서 여러 가지 경로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사람을 부르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에게 맞는 적절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방법과 경로와 연유들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면서 주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왜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셔서 아무런 아쉬움이나 어려움이 없으신 하느님이 우리를 필요로 하실까? 주 하느님 혼자서도 존재하는, 그 자체로서 아무런 결핍이나 허전함 없이 풍요하고 충만하실 텐데, 왜 우리를 부르실까? 우리는 여기서 주 하느님이 철학적인 개념이거나 자연 체계나 시스템이 아니며, 범접하거나 통교할 수도 없는, 인간세계와는 전혀 다른 별도의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본성상으로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 무한하고 충만한 사랑이 넘쳐흘러, 또 다른 유한한 존재를 창조하게 되고, 주 하느님께서 창조한 피조물들을 불러, 주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고자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사랑이 경계선을 긋고, 이웃과 격리하여 독립되기 시작하면, 이미 사랑이 더 이상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삶의 신비를 하나 또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할 때, 우리는 한 식구가 되고, 그 사랑이신 하느님과 하나 되어 행복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경계하고 선을 긋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평온케 하는 사랑을 손상하게 되며, 그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심어주신 주 하느님과 그만큼 멀어지게 되며, 또 그에 따라 우리의 삶은 그만큼 부자유스럽게 되어 거북하고 불편하여 힘겨워진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첫 범죄, 원죄로 자신이 누리던 에덴동산의 행복을 자승자박으로 손실하게 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서로를 개방하고 나누느냐 하는, 사랑의 질에 따라, 너와 나의 인격을 드높이게 되고, 그 인격적인 관계가, 주 하느님 안에서 그만큼 밀접히 일치하게 되고, 그에 따라 내 삶의 평화와 행복의 질이 드높여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에 손님들을 부른 임금의 비유를 드십니다. 임금은 혼인잔치에 사람들을 부르지만, 많은 사람이 그 초대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잔치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마태 22,5) 그러자 임금은 그들을 벌하고,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8-9)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주 하느님의 잔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한 분들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누군가의 강권에 의해, 체면상 억지로 안 오면 안 될 것 같아서, 예의상 와 주신 분들이실 수도 있습니다. 어떤 연유에서든지, 여러분께서는 여러 신자분의 권유와 여러분 생의 여러 경로와 방법을 통해 이 잔치에 오셨습니다. 그런 점은 여기 처음 오신 여러분들이나, 여기 앉아 있는 우리 모두 다 똑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저러한 이유와 서로 다른 계기가 있기는 하겠지만, 주 하느님께서 여러 경로와 여러 방법을 통해 섭리하시고 안배하시는 부르심에 따라 주 대전에 이렇게 모여들었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을 믿고 고백하며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 미사라고 부르는 주님의 잔치는 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의 은총을 스스로 확인하고 그에 감사드리며, 우리에게 그런 축복과 은총을 내려주신 주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잔치입니다. 그리고 이 잔치에서 더 큰 우리 인생의 축복과 은총을 받고 평화와 안녕을 누리는 잔치입니다.

 

이 잔치를 통해 우리는 주 하느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아 새 사람이 되고, 주 하느님에게서 받은 은총과 축복으로 충만해져서, 주 하느님을 믿는 새 사람으로서의 길을 걸어갑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앞으로 미래의 우리 인생의 길에 탄탄대로를 열어주시고, 아무런 고통과 슬픔이 없게 해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쁘거나 슬프거나 힘겨울 때,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기뻐하시고, 우리와 함께 울어주시며, 우리와 함께 힘겨워하시면서, 우리가 다시 일어나실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이렇게 불어넣어 주시는 새 생명의 힘으로, 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사랑과 위로 속에서 평안하게 살도록 해주며, 또 다시 어렵고 힘겨워진다고 하더라도, 오늘의 사랑과 위로를 바탕삼아 꿋꿋이 살게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성령의 은총으로 새로워진 우리는, 우리의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바탕으로, 어제의 우리처럼 어딘지 모르게 힘겹고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이웃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갑니다. 그래서 어제의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과 축복으로 오늘을 마련해 주신, 주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얼마나 크고 충만한 것인지 알리고, 그 형제자매도 주 예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살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에는 비록 보잘것없은 사람이었지만, 차츰 주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충만해지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주 예수님의 은총과 축복을 나누게 됨으로써, “혼인 예복을 입”(11)고 주 대전에 다다르게 됩니다. 마침내 우리는 부르심을 받고 응답하여, 주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평화와 행복을 충만히 누리며 선택된 이들”(14)의 대열에 섭니다.

 

여러분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주 하느님께서 펼쳐주시고 나눠주시는 이 사랑의 전례와 새로운 생명의 잔치를 편안히 받아들이시고, 기꺼이 참여하여 참 평화와 안녕을 누리기를 빕니다. 여러분에게 들려주시고 선사해 주시는 주 하느님 사랑의 말씀과 새 생명이, 여러분을 구원의 기쁨 속으로 신속하고 막힘 없이 안아가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필리 4,19)

 

 

----------------------------------------

 

연중 제28주일 꽃꽂이

https://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id=193530&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9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