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성당 게시판

Re:윤종관 신부님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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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 [khubosco] 쪽지 캡슐

2004-08-25 ㅣ No.735

김현욱 돈보스코 교수님!

안녕하세요?

참으로 더운 날씨입니다.
어제 서산 지방의 기온이 섭씨 37도를 넘었다 하던데 
오늘도 이 염천의 맹위가 여전합니다. 

에어컨 없이 버텨보는 오기로 지냅니다만,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교수님’이라 호칭하여 글을 보냅니다만, 
혹 기분 언짢으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의원’이라 칭하는 것 보다는 아마 본래의 호칭은 
‘교수님’이셨으리라 믿고 이렇게 ‘교수님’ 호칭을 드립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교수님’ 호칭으로 글을 드리게 된 까닭은, 
요 며칠 간에 대전교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교수님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특별히 오늘 ‘중국은 
왜 역사 전쟁을 벌이는가?’를 읽고, 과연 정치외교학 ‘교수로서의
혜안과 애족의 열정’을 지니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치인이기 이전에 교수 즉, 학자이신 분에게 
저의 공감을 전해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러한 인사와 더불어 교수님의 ‘혜안과 
애족의 열정’이라는 말마디를 사용하였는데, 
‘학자적 양심의 혜안’이란 인류에게 
늘 예언적 위치의 깨우침이라 할 것이며, ‘
애족적 열정’이란 굳이 제가 ‘애국적 열정’이라는 단어를 
피해가면서 의도적으로 교수님의
의지 표명이리라 읽고 싶어서입니다. ‘

애국적’ 운운하는 말은 대개가 
정치적인 표현이기에 그렇습니다.

오늘의 ‘중국은 왜 역사 전쟁을 벌이는가?’라는 
교수님의 글은 앞서 며칠 전(8월 7일자) 자유게시판에 
올리신 ‘김대건 부제의 고향 중국 소팔가자 성당’과 
‘성모님이 전해 주시는 회개의 메시지’와는
달리 저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8월 7일자의 두 글은 교수님의 개인적 신심의 발로와 
그 나름의 교회내적 담론으로 읽어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만, 오늘 읽은 ‘중국은 
왜 역사 전쟁을 벌이는가?’라는 글은 우리 민족의
혼을 일깨우는 글이라 읽혀져서 저의 가슴이 뭉클합니다. 

작금의 우리 한국 사람들(남한 사람들)은 우리 자신이 
지금 어떠한 역사의 물결 위에 떠내려가고 있는가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저 역시 충청도 사람이지만 ‘신행정수도이전’이라는 
해괴한 짓거리를 양심적으로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한 나라의 수도란 그것이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감당해 내기 어려운 난제를 가진 도시권이라 하더라도,
거기서 ‘역사성’을 더 본질적인 요소로 보고
문제 해결을 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서울’은 어찌 됐건 우리의 서울입니다.
역사적으로 말입니다. 그 역사란 
과거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란 미래의 지평으로 향하여 볼 때 그것은 
‘살아있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것 즉 역사는 과거의 지평에서 보더라도 
현재를 볼 수 있는 시각에서 과거인 것입니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송두리째 싹둑 잘라내듯이 
미래만을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늘 생물(生物)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생물의 뿌리나 순을 잘라내는 몸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 진정 ‘역사철학’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서울’은 우리 역사의 서울로서
지켜져야 합니다. 독일은 통독 후 
왜 베를린으로 ‘환도’했습니까?

거기에 독일인들이, 지금 현재 살아있는 독일인들이, 
자기 역사를 지금의 살아 움직이는 역사로
살아가는 자존심이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일컬으신바 대로 ‘포스트 김정일’ 후의
어떠한 형태의 우리 민족 통일이 되든지 간에(흡수 통일이다, 

연방제 통일이다, 단일체제로의 통일이다 아니다 불문하고) 
일단은 한반도의 유일한 주권체제로의 민족통일의 그날에
그러면 수도를 어디에다 정할 것입니까? 

혹 우리가 우리의 단일체제(우월한 남한 주도의 자유민주 체제)로의 
통일을 이루는 날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때 가서 흡수된 북쪽의
우리 민족이 남쪽 사람들에게서 느낄 상대적 열등감의 
반작용으로 “충남 연기 공주가 어째서
우리 민족의 수도이냐?”라면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우긴다면 우리 남쪽에서는
사실상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 충남 연기 공주는 역사성이 없는 반면에 평양은 
고조선과 고구려 이래의 수도이잖습니까? 

그러나 한양 서울은(고려의 송도 인근을 포함해서) 
누가 뭐래도 한강 유역을 나라의 중심으로 삼아서 
현재에까지 천년 이상을 서울로 삼은 곳입니다. 

고조선과 고구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서울은 우리의 오늘에까지 이어진 가까운 천년의
역사를 말해주는 곳입니다. 

그리고 한강 수역(水域)은 우리의 한반도 
백두대간이 이루어주고 있는 수역 중에서 
가장 번영의 유역으로 형성된 풍수적 해석을 
할 수 있게 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지리학적(또는 풍수학적) 언급을 제가 이 글에서
다 피력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가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지금 여기저기 정맥 구간을 걸어보면서 몸으로도
직접 느끼는 바가 그것입니다. 

연기 공주의 금강 지류권에서는 민족적 웅대한 
자긍심이나 번영을 일깨울 수가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한 곳을 가지고 충청도의 표심이나 
얻을 정치적 술수를 두는 짓거리들을 저질러가며 
민족의 역사를 싹둑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른바 ‘동북공정’의 술수에 대한 고민이나 하겠습니까?

이젠 제 발로 고구려를 내주는 뒷걸음질을 해서
금강 지류권에 피신하고 있는 것이지요! 
거기에 해발 2백 미터짜리 전월산인가 뭔가 하는
야산을 주작(朱雀)으로 삼고 좌청룡 우백호 운운하면서
50만은 고사하고 30만도 채 마실 물이 없는 들판에
이른바 수도권의 지맥을 연장하려 하는 것이지요. 

사실상 서울에서 수원을 거쳐 천안까지는
이미 수도권이요 거기 들판들을 모두 도시권으로 
연장하여 연기 공주까지 아수라장의 광역화를 
획책하는 음모인 것입니다. 

그 음모에 멍청도(?) 지도자들(광역 및 기초 단체장들과 
내노라 하며 나서기 좋아하는 충청권 지도자들)이 박수치며 
살 때 만난 듯이 길길이 뛰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절에 참으로 절실하기는 앞서 
제가 언급한 양심적 학자의 혜안과 진정한 
애족적 열정의 외침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수님께 한 마디 쓴 소리로 묻고 싶습니다. 
교수님께서 “노태우 시절 박 모라는 자가 황태자로 
자처하여 천방지축 전횡을 일삼으며 
1992년 한중수교 외교전의 완패로 끝낸” 
그 비통하기 그지없는 굴욕의 최근 역사를 회고하셨는데, 
그 박 모라는 자는 본래 교수님께서 정치적으로 
섬기던 노태우 세력의 그 박철언이란 자가 아닙니까? 

그 시절로 치면 교수님의 국회 외교
위원장 시절 아닙니까? 제가 착각하고 있나요? 

그 시절에 김 교수님께서는 아니 김 의원님께서는
무얼 하셨습니까? 교수로서는 지금의 말씀을
하실 수 있으셨겠지만 정치인이었기에 
지금의 그 말씀을 못하셨겠지요?

그래서 저는 정치인들을 믿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정치로는 비전이 없습니다.

동북공정? 그거 학자들이 나서세요! 우리나라라는 곳은 
학자들이 진정 학자로서 살지 않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역사 학자들, 외교학자들, 정치학자들, 
특히 철학자들 다 어디 갔습니까?

김 교수님! 학자들의 연대를 결성하세요! 
그리고 부지런히 논문 발표하시고 세미나 하시고 
국제 포럼 여시고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세요! 
그리고 인류학과 역사학으로 고구려 문화를 
지금 남한에서 되살리세요! 아산에 가면 ‘
고구려 식당’이라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아마 10년가량도 더 된 시골의 시시한 식당입니다.
쌈밥과 된장찌개를 파는 식당입니다. 
순천향 대학교 옆길로 해서 외암리 민속촌 가는 
길 중간에 있습니다. 

제가 그 일대의 설화산과 망경산과 광덕산 
산줄기를 걷기 위해 자주 그 길을 지나다가
그 ‘고구려 식당’에서 밥을 사먹었습니다. 

저는 그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혹 고구려 시대에는 
이런 집에서 살았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그 ‘고구려 식당’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 고구려 식의 
문화 습속을 익히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고구려는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다. 
내가 지금 고구려 사람의 피가 흐르는 얼굴 아닌가?” 하면서 
고구려 문화의 진정한 계승민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옛적의 백제 땅에서 살지만 “
우리 할아버지가 혼인하다 보니 여기에 
처가살이하러 내려온 때문 아닌가?

아니면 고구려 왕실에서 삼한 땅으로 동생을
내려가 살라고 해서 오신 온조 대왕을 우리 할아버지가 
신하로서 따라와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요! 

하여튼 고구려 문화 습속을 되 발견하는
운동을 벌일 수 있도록 학자들께서 그 뿌리를 캐내보세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횡설수설 같이 길어졌습니다만,
저는 한 마디로 ‘정치에 기대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늘어놔 봤습니다. 

그래서 김 교수님께서 지니신 학자적 양심과 
그 혜안으로 진정 민족 역사에 대한 열정을
두루두루 지펴주시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 유념하시고 선선해질 때 쯤 해서
안면도에 한번 오세요. 소주 한 잔 대접 하겠습니다. 

계획하신 소팔가자 순례 잘 다녀오셔서 저의 맏형 
김대건 신부님의 체취를 저에게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2004. 8. 12(목) 오후에 안면도인간 윤종관 드림. 
김현욱 돈보스코 교수님!

안녕하세요?

참으로 더운 날씨입니다.
어제 서산 지방의 기온이 섭씨 37도를 넘었다 하던데 
오늘도 이 염천의 맹위가 여전합니다. 

에어컨 없이 버텨보는 오기로 지냅니다만,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교수님’이라 호칭하여 글을 보냅니다만, 
혹 기분 언짢으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의원’이라 칭하는 것 보다는 아마 본래의 호칭은 
‘교수님’이셨으리라 믿고 이렇게 ‘교수님’ 호칭을 드립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교수님’ 호칭으로 글을 드리게 된 까닭은, 
요 며칠 간에 대전교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교수님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특별히 오늘 ‘중국은 
왜 역사 전쟁을 벌이는가?’를 읽고, 과연 정치외교학 ‘교수로서의
혜안과 애족의 열정’을 지니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치인이기 이전에 교수 즉, 학자이신 분에게 
저의 공감을 전해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러한 인사와 더불어 교수님의 ‘혜안과 
애족의 열정’이라는 말마디를 사용하였는데, 
‘학자적 양심의 혜안’이란 인류에게 
늘 예언적 위치의 깨우침이라 할 것이며, ‘
애족적 열정’이란 굳이 제가 ‘애국적 열정’이라는 단어를 
피해가면서 의도적으로 교수님의
의지 표명이리라 읽고 싶어서입니다. ‘

애국적’ 운운하는 말은 대개가 
정치적인 표현이기에 그렇습니다.

오늘의 ‘중국은 왜 역사 전쟁을 벌이는가?’라는 
교수님의 글은 앞서 며칠 전(8월 7일자) 자유게시판에 
올리신 ‘김대건 부제의 고향 중국 소팔가자 성당’과 
‘성모님이 전해 주시는 회개의 메시지’와는
달리 저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8월 7일자의 두 글은 교수님의 개인적 신심의 발로와 
그 나름의 교회내적 담론으로 읽어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만, 오늘 읽은 ‘중국은 
왜 역사 전쟁을 벌이는가?’라는 글은 우리 민족의
혼을 일깨우는 글이라 읽혀져서 저의 가슴이 뭉클합니다. 

작금의 우리 한국 사람들(남한 사람들)은 우리 자신이 
지금 어떠한 역사의 물결 위에 떠내려가고 있는가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저 역시 충청도 사람이지만 ‘신행정수도이전’이라는 
해괴한 짓거리를 양심적으로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한 나라의 수도란 그것이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감당해 내기 어려운 난제를 가진 도시권이라 하더라도,
거기서 ‘역사성’을 더 본질적인 요소로 보고
문제 해결을 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서울’은 어찌 됐건 우리의 서울입니다.
역사적으로 말입니다. 그 역사란 
과거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란 미래의 지평으로 향하여 볼 때 그것은 
‘살아있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것 즉 역사는 과거의 지평에서 보더라도 
현재를 볼 수 있는 시각에서 과거인 것입니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송두리째 싹둑 잘라내듯이 
미래만을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늘 생물(生物)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생물의 뿌리나 순을 잘라내는 몸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 진정 ‘역사철학’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서울’은 우리 역사의 서울로서
지켜져야 합니다. 독일은 통독 후 
왜 베를린으로 ‘환도’했습니까?

거기에 독일인들이, 지금 현재 살아있는 독일인들이, 
자기 역사를 지금의 살아 움직이는 역사로
살아가는 자존심이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일컬으신바 대로 ‘포스트 김정일’ 후의
어떠한 형태의 우리 민족 통일이 되든지 간에(흡수 통일이다, 

연방제 통일이다, 단일체제로의 통일이다 아니다 불문하고) 
일단은 한반도의 유일한 주권체제로의 민족통일의 그날에
그러면 수도를 어디에다 정할 것입니까? 

혹 우리가 우리의 단일체제(우월한 남한 주도의 자유민주 체제)로의 
통일을 이루는 날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때 가서 흡수된 북쪽의
우리 민족이 남쪽 사람들에게서 느낄 상대적 열등감의 
반작용으로 “충남 연기 공주가 어째서
우리 민족의 수도이냐?”라면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우긴다면 우리 남쪽에서는
사실상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 충남 연기 공주는 역사성이 없는 반면에 평양은 
고조선과 고구려 이래의 수도이잖습니까? 

그러나 한양 서울은(고려의 송도 인근을 포함해서) 
누가 뭐래도 한강 유역을 나라의 중심으로 삼아서 
현재에까지 천년 이상을 서울로 삼은 곳입니다. 

고조선과 고구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서울은 우리의 오늘에까지 이어진 가까운 천년의
역사를 말해주는 곳입니다. 

그리고 한강 수역(水域)은 우리의 한반도 
백두대간이 이루어주고 있는 수역 중에서 
가장 번영의 유역으로 형성된 풍수적 해석을 
할 수 있게 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지리학적(또는 풍수학적) 언급을 제가 이 글에서
다 피력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가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지금 여기저기 정맥 구간을 걸어보면서 몸으로도
직접 느끼는 바가 그것입니다. 

연기 공주의 금강 지류권에서는 민족적 웅대한 
자긍심이나 번영을 일깨울 수가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한 곳을 가지고 충청도의 표심이나 
얻을 정치적 술수를 두는 짓거리들을 저질러가며 
민족의 역사를 싹둑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른바 ‘동북공정’의 술수에 대한 고민이나 하겠습니까?

이젠 제 발로 고구려를 내주는 뒷걸음질을 해서
금강 지류권에 피신하고 있는 것이지요! 
거기에 해발 2백 미터짜리 전월산인가 뭔가 하는
야산을 주작(朱雀)으로 삼고 좌청룡 우백호 운운하면서
50만은 고사하고 30만도 채 마실 물이 없는 들판에
이른바 수도권의 지맥을 연장하려 하는 것이지요. 

사실상 서울에서 수원을 거쳐 천안까지는
이미 수도권이요 거기 들판들을 모두 도시권으로 
연장하여 연기 공주까지 아수라장의 광역화를 
획책하는 음모인 것입니다. 

그 음모에 멍청도(?) 지도자들(광역 및 기초 단체장들과 
내노라 하며 나서기 좋아하는 충청권 지도자들)이 박수치며 
살 때 만난 듯이 길길이 뛰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절에 참으로 절실하기는 앞서 
제가 언급한 양심적 학자의 혜안과 진정한 
애족적 열정의 외침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수님께 한 마디 쓴 소리로 묻고 싶습니다. 
교수님께서 “노태우 시절 박 모라는 자가 황태자로 
자처하여 천방지축 전횡을 일삼으며 
1992년 한중수교 외교전의 완패로 끝낸” 
그 비통하기 그지없는 굴욕의 최근 역사를 회고하셨는데, 
그 박 모라는 자는 본래 교수님께서 정치적으로 
섬기던 노태우 세력의 그 박철언이란 자가 아닙니까? 

그 시절로 치면 교수님의 국회 외교
위원장 시절 아닙니까? 제가 착각하고 있나요? 

그 시절에 김 교수님께서는 아니 김 의원님께서는
무얼 하셨습니까? 교수로서는 지금의 말씀을
하실 수 있으셨겠지만 정치인이었기에 
지금의 그 말씀을 못하셨겠지요?

그래서 저는 정치인들을 믿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정치로는 비전이 없습니다.

동북공정? 그거 학자들이 나서세요! 우리나라라는 곳은 
학자들이 진정 학자로서 살지 않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역사 학자들, 외교학자들, 정치학자들, 
특히 철학자들 다 어디 갔습니까?

김 교수님! 학자들의 연대를 결성하세요! 
그리고 부지런히 논문 발표하시고 세미나 하시고 
국제 포럼 여시고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세요! 
그리고 인류학과 역사학으로 고구려 문화를 
지금 남한에서 되살리세요! 아산에 가면 ‘
고구려 식당’이라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아마 10년가량도 더 된 시골의 시시한 식당입니다.
쌈밥과 된장찌개를 파는 식당입니다. 
순천향 대학교 옆길로 해서 외암리 민속촌 가는 
길 중간에 있습니다. 

제가 그 일대의 설화산과 망경산과 광덕산 
산줄기를 걷기 위해 자주 그 길을 지나다가
그 ‘고구려 식당’에서 밥을 사먹었습니다. 

저는 그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혹 고구려 시대에는 
이런 집에서 살았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그 ‘고구려 식당’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 고구려 식의 
문화 습속을 익히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고구려는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다. 
내가 지금 고구려 사람의 피가 흐르는 얼굴 아닌가?” 하면서 
고구려 문화의 진정한 계승민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옛적의 백제 땅에서 살지만 “
우리 할아버지가 혼인하다 보니 여기에 
처가살이하러 내려온 때문 아닌가?

아니면 고구려 왕실에서 삼한 땅으로 동생을
내려가 살라고 해서 오신 온조 대왕을 우리 할아버지가 
신하로서 따라와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요! 

하여튼 고구려 문화 습속을 되 발견하는
운동을 벌일 수 있도록 학자들께서 그 뿌리를 캐내보세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횡설수설 같이 길어졌습니다만,
저는 한 마디로 ‘정치에 기대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늘어놔 봤습니다. 

그래서 김 교수님께서 지니신 학자적 양심과 
그 혜안으로 진정 민족 역사에 대한 열정을
두루두루 지펴주시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 유념하시고 선선해질 때 쯤 해서
안면도에 한번 오세요. 소주 한 잔 대접 하겠습니다. 

계획하신 소팔가자 순례 잘 다녀오셔서 저의 맏형 
김대건 신부님의 체취를 저에게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2004. 8. 12(목) 오후에 안면도인간 윤종관 드림. 

아바타 꾸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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