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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중국어본 성경들 및 만일략 등 용어들의 출처들 869_tran KH_errors 1653_cb 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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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4 ㅣ No.1653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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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1-1.

http://web.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518287&path=201407

 

1-2. 바로 위의 주소에서 언급되고 있는, 윤민구,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연구, 2014 국학자료원  에 대한 김학렬 신부님의 소견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www.chonjinam.org/client/press/viw.asp?p_idx=231&cpage=1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1-2:

(1)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신뢰할 수 있는 자료들에 대한 분석 작업에 근거하여 마련해 주신 것으로 생각되는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김학렬 신부님의 논문을,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이어지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을 읽기 전에, 꼭 여러 번 읽으실 것을 강력하게 요청드립니다.

 

(2) 본글은 김학렬 신부님의 논문에 이어지는 글로서, 예를 들어,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 중에서 언급되고 있는 若瑟(우리식 한자 발음: 약슬) 이라는 한자어에 대하여, 요즈음은 요셉(Joseph)으로 불리는 이름이, 과거에 중국에서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이 된 시점과  관련하여, 중국 남부 지역으로 선교사로 파견되셨던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장 바쎄(Jean Basset, 1662-1707년) 신부님에 의하여 아무리 늦게 잡더라도 일찌기 1700년대 초에若瑟(중국 발음: 류오세, Joseph)로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이 되었음은, 1704-1707년 사이에 장 바쎄(Jean Basset, 1662-1707년) 신부님에 의하여 번역된 것으로 널리 알려진, 다음에 있는 중국어본 마태오 복음서 제1장에서, 若瑟(중국 발음: 류오세, Joseph) 이라는 이름이 성모 마리아와 약혼하셨던 요셉 성인의 이름으로서 여러 번 사용되고 있음을 직접 확인함으로써, 구체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45-1707_장_바쎄/마태오_1.htm(#1) <---- 클릭하여 확인하십시오

 

따라서, 若瑟(중국 발음: 류오세, Joseph) 이라는 한자 이름이 개신교 용어가 아님을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래의 제2-2-3항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듯이, 개신교용 중국어본 성경은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에 의하여 1810대에 들어와 처음으로, 그것도, 장 바쎄(Jean Basset, 1662-1707년) 신부님의 신약 성경 번역본(마태오 복음서부터 히브리서 제1장까지)에 의존하여, 마련되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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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이것은 "로마본"에서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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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므로 이제 남은 유의미한 질문은, "Joseph(요셉)" 이 장 바쎄(Jean Basset, 1662-1707년) 신부님에 의하여 若瑟(중국 발음: 류오세, Joseph)처음으로/최초로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이 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장 바쎄(Jean Basset, 1662-1707년) 신부님이 중국의 남부 지역에서 선교 사명에 종사하신 시기 이전에, 이미 중국에 파견된 다수의 선임 가톨릭 선교사 신부님들에 의하여 (여기에는 마태오 리치 신부님도 당연히 포함됨), 중국어를 배우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한 여러 종류의 어학 사전들이 출판되었고, 그리고 장 바쎄(Jean Basset, 1662-1707년) 신부님께서도 중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이들 사전들에 의존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들 사전들 중에는,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이 직접적으로 관계되었을, 인명사전(人名事典)의 역할을 한 사전들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인데, 이는 성경 본문에는 다양한 고유명사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때에도, 음역(音譯, transliteration)과 관련하여 다들 잘 알고 계시듯이, 중국의 역사 안에서, (i) 중국의 북쪽 지역의 백화(白話, 중국에서 쓰이는 구어체 언어, 예를 들어, Mandarine)와 (ii) 중국의 남쪽 지역의 백화(白話, 중국에서 쓰이는 구어체 언어, 예를 들어, Cantonese)가, 이들 두 지역 출신의 두 명의 중국인들이, 한자 글자들의 사용 없이, 오로지 소리내어 말로써 하는 구두 대화만을 통하여서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0) 16-18세기에 중국에 파견되셨던 가톨릭 신부님들에 의하여 성경 본문 중의 특정한 동일한 고유명사가 중국어로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이 될 때에도 또한 마찬가지로, 지역에 따라 크게 둘로 구분하더라도, (i) 당시의 중국의 북쪽 지방에서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이 된 한자어와 (ii) 당시의 중국의 남쪽 지방에서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이 된 한자어가, 동일할 수 없었을 것임에 또한 유념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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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게시자 주: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있는 YouTube 를 청취하도록 하라:

https://www.youtube.com/watch?v=e73btaVo868

 

그런 다음에, 다음에 있는 중국 표준어(Mandarin, 북경 官話)와 크게 여섯 종류의 중국 방언들[Cantonese (廣州話, 廣府話), Hakka (客家話), Wu (吳語), Min (?語), Xiang (湘語), and Gan (?語)]에 대한 설명을 읽도록 하라:

http://www.chinalangu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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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음은 바로 위의 제(3)항에서 드린 질문에 대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중간 답변입니다: 1636년에, 소위 말하여, "제1독서"와 "복음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는 당시의 트리엔트 말씀 전례에 근거한 "가톨릭 교회의 주일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인, "성경직해(聖經直解)" 를 저술하셨던 포르투칼 출신의 예수회 소속 엠마누엘 주니오르 디아스(Emmanuel Junior Dias, 1574-1659년) 신부님의 다른 저서들의 이름들 중에는 "성약슬행실(聖若瑟行實)"(1647년) 그리고 "성약슬도문(聖若瑟禱文)" 등이 있으므로,(#2) , 벨기에 출신의 필립푸스 쿠플레(Philippus Coupiet, 1624-1692년)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된 "성약슬도문(聖若瑟禱文)" 이 있으므로,(#3) 그리고 요셉 앙리 프레마르(Joseph Henry Premare, 1666-1736년)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된 "성모정배성약슬전(聖母淨配聖若瑟傳)" 이 있기 때문에,(#4) 바로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영어로 "Joseph" 으로 번역되는 고유 명사가 장 바쎄(Jean Basset, 1662-1707년) 신부님에 의하여 "若瑟" 로 처음으로 번역된 것이 아님을 확인하였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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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게시자 주: 그 출처는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서양자 수녀), 제246쪽이다.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8월 9일]

그리고 또한 다음에 있는, 포르투칼 출신의 예수회 소속 엠마누엘 주니오르 디아스(Emmanuel Junior Dias, 1574-1659년) 신부님의 저서인, 1636년에 초간되었다고 알려진중국어본 "성경직해(聖經直解)"에 포함된 성경직해잡사지목록(聖經直解雜事之目錄, 즉, 성경직해 용어목록) 제27쪽에 "성약슬성인(聖若瑟聖人)"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으로 주어져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
성경직해_잡사지목록_N9006247_PDF_17_81.pdf

 

한문본 "성경직해" 전문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1636_천주강생성경직해.htm

[이상, 2015년 8월 9일자 내용 추가 끝]

 

(#3) 게시자 주: 그 출처는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서양자 수녀), 제315쪽이다.

 

(#4) 게시자 주: 그 출처는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서양자 수녀), 제340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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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른 한편으로, 1814년에 출판된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에 의하여 중국어본 개신교용 신약성경 마태오 1장에서, 영어로 "Joseph" 으로 번역되는 고유명사가, 장 바쎄(Jean Basset, 1662-1707년) 신부님의 마태오 복음서 제1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若瑟(약슬, 중국 발음: 류오세, Joseph)" 대신에, "若色弗(약색불)" 으로 교체(交替)되었음을 또한 확인하였는데, 이러한 교체(交替)의 이유가 바로 위의 제(4)항에서 말씀드린 "성경직해(聖經直解)" 를 저술하셨던 포르투칼 출신의 엠마누엘 주니오르 디아스(Emmanuel Junior Dias, 1574-1659년) 신부님의 다른 저서들 "성약슬행실(聖若瑟行實)"(1647년) 그리고 "성약슬도문(聖若瑟禱文)" 등을 중국의 개신교 신자들이 읽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작의적/작위적/의도적 행위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1814년에 출판된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에 의하여 중국어본 개신교용 신약성경 마태오 1장에서, 영어로 "Mary" 으로 번역되는 고유명사가, 장 바쎄(Jean Basset, 1662-1707년) 신부님의 마태오 복음서 제1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利?(리아)"(#5) 대신에, "利?(리아)" 으로 교체(交替)되었음을 또한 확인하였는데, 이러한 교체(交替)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보석을 나타내는 한자 낱글자인 "()"를 미천한 가축을 나타내는 한자 낱글자인 "()"로 교체(交替)한 것이, 혹시, 그리스도교 초기의 시절부터 리옹의 성 이레네오(St. Irenaeus, 2세기 초기 - 202년)에 의한 총괄복귀/총귀(recapitulatio, recapitulation)에 의하여 "새 하와(New Eve)" 로 불리어온 유일한 피조물인 성모님께 바치는, 천상 성인들께 바치는 "恭敬之禮(공경지례)" 중의 으뜸 공경을 말하는, 그리고 하느님께만 바치는 "欽崇之禮(흠숭지례)" 가 결코 아닌"cult of hyperdulia", 즉, "上敬之禮(상경지례)"(#6) 를 16세기에 등장한 개신교 측에서 거부하기 때문에, 이러한 한자 낱자의 의도적/작위적/작의적 교체(交替)가 진행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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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게시자 주: 다음의 한자 사전에 주어진 설명에 의하면, 글자는, 보석의 한 종류인, 마노(: 석영의 일종)을 의미한다: 

http://hanja.naver.com/hanja?q=%E7%91%AA

 

그리고 다음의 한자 사전에 주어진 "瑙(마노)"에 대한 설명도 또한 읽도록 하라: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12402800 

 

[내용 추가 일자: 2019년 7월 7일]

(#6) 게시자 주: (1) 중국 천주교회에서는,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한문 어법에 맞지 않는 "上敬之禮(상경지례)" 대신에, "超級敬禮"(초급경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http://www.apostles.tw/dict/m/dict32m/T587.htm 

http://www.apostles.tw/dict/m/dict32m/T556.htm 

"hyperdulia" "超級敬禮" 

 

(2)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cult of huperdulia", 즉, "上敬之禮(상경지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1979년 1월 10일자, 수요일 일반 알현 교리 교육 강론 말씀을 읽을 수 있다:

https://w2.vatican.va/content/john-paul-ii/en/audiences/1979/documents/hf_jp-ii_aud_19790110.html 

"hyperdulia" site:vatican.va 

[이상, 2019년 7월 7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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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개신교측의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에 의하여 1814년에 출판된 신약 성경의 마태오 복음서 제1장 일부인데, (i) 위의 제(2)항에 안내된 자료와 (ii) 바로 아래에 있는 자료를 정밀하게 비교/검토함으로써, 바로 이 항에서 지적하고 있는, 그리고 교리적으로 각기 다른 이유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에 파견되었던 개신교 측의 선교사로서 장 바쎄(Jean Basset, 1662-1707년) 신부님의 신약 성경 번역본(마태오 복음서부터 히브리서 제1장까지)에 의존하여 개신교 용도로 중국어본 성경을 최초로 번역한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의 신약 성경의 마태오 복음서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행하였졌던 두 개의 의도적/작위적/작의적 교체(交替)의 예(examples)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6) 바로 위의 제(5)항에서 함께 고찰한 바가 시사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로마 가톨릭 교회보다 훨씬 늦게, 즉, 빨라야 18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일본과 중국의 복음화(Evangelization)에 처음으로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고 알려진 개신교(Protestants) 측에서 개신교용 중국어본 성경 혹은 교리서 등을 마련할 때에, 일찌기 13세기경부터 중국의 여러 지역들에 와서 선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 활동을 해 오고 있었던 로마 가톨릭 교회의 다수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이 된 (i) 성경 본문의 일부분들과 (ii) 교리서, 그리고 (iii) 중국어 학습을 위한 여러 종류의 어학 사전들과 문법 사전 등을, 자신들의 용도에 맞게 필사하거나 혹은 인쇄하는 과정에서, 중국, 일본, 혹은 우리나라에 파견된 개신교 측의 선교사들이 글자 그대로 필사하거나 혹은 인쇄하지 않고,로마 가톨릭 신부님들에 의하여 중국 한자로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이 된 기존(旣存)의 일부 한자 고유명사들을,

 

(i) 예를 들어, 첫 번째 개신교용 중국어본 성경을 1823년에 초판 발행하였던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문어체로 번역된 한자 고유명사보다는 구어체를 더 선호하여, 즉, 자신이 파견된 중국, 일본, 혹은 우리나라의 특정 지역의 구어체 언어를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선교/복음화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이유 때문에,

 

(ii) 예를 들어, 일부 개신교 분파들 사이에서 대단히 민감하게 생각하는, "세례(洗禮)" 와 "침례(浸禮)" 라는 번역 용어들의 경우에서처럼, 혹은 

 

(iii), 예를 들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중국에 파견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올바르게 번역된 교리 용어 "慾偏情(욕편정)/慾(욕)" 이, 이후에 일본에서 "慾偏情(욕편정)/慾(욕)" 으로 교체되었고, 그리고 이 교체된 교리적으로 잘못된 번역 용어 "慾偏情(욕편정)/慾(욕)" 가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 쯤되면 우리나라 가톨릭계에 침투해 들어와 사용되기 시작한 것 처럼, 그러나 중국의 가톨릭계에서는 "慾偏情(욕편정)/慾(욕)" 라는 잘못된 번역 용어를, 올바르게 번역된 교리 용어 "慾偏情(욕편정)/慾(욕)"  대신에,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소속된 개신교 특정 분파의 용도에 적합하도록 의도적으로, 다른 한자 낱 글자들로 교체(交替)하는 작업이 진행된 구체적인 예(example) 한 개를 바로 위의 제(5)항에서 함께 고찰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1-2 끝)

 

2. 기초 자료 조사 

2-1.  

출처: http://resources.wycliffe.net/apps/stories/default.aspx?id=5179&pg=1&ml=eng&cl=eng

(발췌 시작)

History of Bible Translation in Chinese

중국에 있어 성경 번역의 역사

The Early Attempts

초기의 시도들

 

The earliest record of Bible translation in Chinese can be traced back to the 7th century, during the Tang Dynasty when the Nestorian Christians first came to China. According to the Nestorian Stele, a monument that documents the early years of Christianity in China, a Nestorian Christian missionary named Alopen arrived in Chang'an (the then-ancient capital, today known as Xi'an) during the period of the Tang Emperor Taizong. Alopen was the first Christian missionary to ever visit China. He found favor with Taizong and was granted permission to “translate the Scripture and build the church.” The Emperor himeself even learned about Christianity from Alopen in the privacy of his own home. The Stele also mentions the “Old Law” and “the 27 Books,” which implies that there were attempts to translate the Bible at that time. However, all these translations have disappeared.

 

중국에 있어 성경 번역의 가장 초기의 기록은, [그리스도교 이단인] 네스토리우스교(경교) 신자들이 처음 중국에 왔던 당나라 시대인,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중국에 있어 그리스도교 초기 시절를 기록한 한 개의 기념비인 경교 석비(Nestorian Stele)에 따르면, 당나라 황제 태종의 시기 동안에 (오늘날 시안(Xi'an)으로 알려진 그 당시의 고대 수도였던) 장안(Chang'an)에 Alopen 으로 불리었던 한 명의 경교 그리스도인 선교사가 도착하였습니다. Alopen 은 지금까지(ever) 중국을 방문한 첫 번째 그리스도교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태종의 총애를 받았고 그리하여 "성경 본문을 번역하고 그리고 교회를 짓기 위한" 허락이 윤허되었습니다. 이 황제 자신은 심지어 자신의 고유한 집에서 Alopen 으로부터 그리스도교에 관하여 배웠습니다. 이 석비는 또한 "옛 법(Old Law)" 와 "27권의 경전들" 언급하는데, 이것은 바로 그 시기에 성경을 번역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들 번역본들 모두는 사라졌습니다.

 

Thereafter, from the 13th to the 18th century, various other attempts were made to translate the Bible into Chinese. During the Yuan Dynasty, the Franciscans translated some Scriptures, yet this was in Mongolian, not in Chinese. In the time of the Ming Dynasty, Matteo Ricci, a Jesuit, came to China and did some translation work as well. Then during the Qing Dynasty, Jean Basset of Paris Foreign Missions translated almost the whole New Testament. That translation is known as “the Chinese Manuscript in the British Museum” since that’s where it is kept today. Louis De Poirot, another Jesuit, translated nearly all the books of the Bible into Chinese. That manuscript is preserved in the Beitang Library in Beijing. Although neither of these translations had a great impact on the people of China at that time, their value as references for future translations – including Morrison’s – was significant.

 

그 이후에, 13세기부더 18세기까지,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행하여졌습니다. 원나라 동안에,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은 일부 성경 본문들을 번역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만주어(Mongolian)로 였지, 중국어로가 아니었습니다. 명나라의 시기에, 예수회 회원인 마태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년)가 중국에 왔으며 그리고 또한 일부 번역 작업을 행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청나라 동안에,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장 바쎄(Jean Basset, 1662-1707년)는 신약 성경 전부를 거의 번역하였습니다. 바로 이 번역본은, 이 본이 오늘날 거기에 보존되어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the Chinese Manuscript in the British Museum(영국 박물관에 있는 중국어 사본)" 으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또다른 예수회 회원이었던, 루이 안토니오 드 푸아로(Louis Antoine de Poirot, 1735-1813, 1814?)는 성경의 경전들 거의 모두를 중국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바로 이 사본(#1)은 북경에 있는 베이탕 도서관(Beitang Library)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비록 이들 번역본들의 어떠한 것도 바로 그 시기에 중국의 백성에게 어떤 커다란 영향을 가지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의 번역본을 포함하는 - 미래의 번역본들을 위한 참조 서적들로서 그들의 가치는 현저하였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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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자 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는, 특히 이 발췌된 글의 저자가 중국인임을 고려할 때에, 바로 이 지적에 상당히 주목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즉, 이 언급은 상당히 유의미한데, 왜냐하면,
(i) 장 바쎄 신부님의 중국어본 신약 성경 본문 중의 음역 용어들 및 차용 번역 용어들과
(ii) 또한, 만주어로도 번역이 되었다고 알려진 [주: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서양자 수녀, 제401쪽], 루이 안토니오 푸아로 신부님의 중국어본 고신성경 본문 중의 음역 용어들 및 차용 번역 용어들,
(iii) 그리고 개신교측의 중국어본 성경 본문 중의 음역 용어들 및 차용 번역 용어들 

사이의 차이점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해 보아야 함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번역자 주:

(1) 바로 이 번역본이 "古新聖經(고신성경)" 이라고 불린다.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9월 10일]

그리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최근에 확인한, 바로 이 "古新聖經(고신성경)" 신약 성경은, 심지어, 번역자의 주해까지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음의 "古新聖經(고신성경)" 마태오 복음서를 살펴보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35-1813_안토니오_드_푸아로/고신성경_마태오복음서.htm

 

"고신성경, 신약" 전문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35-1813_안토니오_드_푸아로/고신성경_신약.htm 

 

(2) 바로 이 "古新聖經(고신성경)" 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 "萬日略(중국 발음: wanjihlüeh)(만일략)" 은, 많이 부족한 죄인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또한,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적응주의 원칙에 따르면서, "서학범", "직방외기", "만물진원", "리마두행실" 등을 포함하여, 많은 한역 저술들을 많이 남긴, 중국에 파견되었던 예수회 소속의 쥬리오 아레니 신부(Giulio Aleni, 1582-1649년)에 의하여 저술된 "천주강생언행기략", 권지1, 제1쪽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인데, 이 번역 용어는, "gospel" 과 등가인, 이탈리아어 "vangelo" 의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이라고 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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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게시자 주:

(#3-1)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라:

 

"萬日略" "gospel"

(발췌 시작)

Chinese Materials in the Jesuit Archives in Rome, 14th-20th ... - Google 도서 검색결과

https://books.google.co.kr/books?isbn=1317474791
Albert Chan - ‎2015 - History
The term wanjihlüeh 萬日略 is a transliteration of the Italian vangelo (gospel). The
introduction is followed by some directions for readers (five and onehalf folios) ...

 

wanjihlüeh 萬日略 이라는 용어는 이탈리아어 vangelo (gospel)[즉, evangelium] 의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입니다. [이하 우리말 번역 생략]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2) 바로 위의 제(#3-1)항에서 우리는, 중국에 파견되었던 예수회 소속의 신부들의 경우에, 영어로 "gospel" 로 번역되는 표현을 "萬日略(중국 발음: wanjihlüeh)(만일략)" 으로 음역(音譯)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에 파견되었던, 관할 지역이 중국의 남쪽 지역이었기 때문에 관할 지역이 북쪽 지역이었던 예수회 관할 지역과 동일하지 않았던,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선교사 신부였던 장 바쎄(Jean Basset, 1662-1707년)는, 자신의 신약 성경 번역에서, 영어로 "gospel" 로 번역되는 표현을 "福音(복음)" 으로 차용 번역하였음은, 다음의 자료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45-1715_장_바쎄/마태오_1.htm

 

(#3-3) 따라서, 이상 바로 위의 제(#3-1)항과 제(#3-2)항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우리는, 영어로 "gospel" 로 번역되는 표현에 있어, 비록 루이 안토니오 드 푸아로 신부(Louis Antoine de Poirot, 1735-1813, 1814?)에 의하여 마련된 "古新聖經(고신성경)" 이, 장 바쎄 신부(Jean Basset, 1662-1707년)의 신약 성경 번역본보다 적어도 68년 이후에 집필되었지만, 그러나 이렇게 상당한 시간적 경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회 소속의 루이 안토니오 드 푸아로 신부(Louis Antoine de Poirot, 1735-1813, 1814?)는,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적응주의 원칙을 반대하였던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장 바쎄 신부의 신약 성경 번역본에서 사용되고 있던 "福音(복음)" 이라는, 음역(音譯)이 아닌, 차용(借用) 번역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위의 제(2)항에서 이미 고찰하였듯이,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적응주의 원칙에 따르면서, "서학범", "직방외기", "만물진원", "리마두행실" 등을 포함하여, 많은 한역 저술들을 많이 남긴, 예수회 소속의 쥬리오 아레니 신부(Giulio Aleni, 1582-1649년)에 의하여 저술된 "천주강생언행기략"에서의 이탈리아어 음역(音譯) 용어인 "萬日略(중국 발음: wanjihlüeh)" 을 또한 사용하고 았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10월 21일]

(1)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를 클릭한 후에, 서문에 해당하는, 천주강생언행기략, 만일략경설의(권지1, 제1쪽) 첫 번째 각주를 보라. 만일략 = 호보(好報, 좋은 소식) 복음(福音) 임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천주강생언행기략_권1_0_만일략경설&조목_4-19.pdf

 

"천주강생언행기략" 전문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35_천주강생언행기략.htm  

  

(2) (중간 결론 1) 그리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장 바쎄 신부께서도, 1635년 에 초간된, 바로 위의 쥬리오 아레니 신부(Giulio Aleni, 1582-1649년)의 저서 "천주강생언행기략" 의 서문에 해당하는, 만일략경설의 첫 번째 각주(즉, 권지1, 제1쪽)에 주어진 용어 정의(definition)에 따라, 그러나 "만일략" 이라는 음역(音譯) 대신에, 또한 아레니 신부에 의하여 정의된(defined)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복음" 을, 자신의 중국어본 신약 성경 번역문에서 사용하였다는 생각이다.

 

(3) (중간 결론 2)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야소회문헌회편" DB에서 검색을 해 보면, "만일략", "복음" 이라는 용어들이 아레니 신부님의 동일한 저술인 "천주강생언행기략 에서 처음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까지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들 두 개의 용어들이 쥬리오 아레니 신부(Giulio Aleni, 1582-1649년)에 의하여 처음 정의되고 도입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이다:

http://ctext.org/wiki.pl?if=en&res=804348&searchu=%E7%A6%8F%E9%9F%B3

[이상, 2015년 10월 21일자 내용 추가 끝]

 

(#3-4) "古新聖經(고신성경)" 중의 "萬日略(중국 발음: wanjihlüeh)" 이라는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에서, 田 글자가, 各 글자의 왼쪽이 아니라, 各 글자 위에 놓여있는 한자 낱글자가 사용되었으나, 그러나 글을 작성하여 게시하기 위하여 사용하여야 하는 굿 뉴스 서버 제공의 현재의 Editor의 결함으로 이 글자가 꺠어져 "?" 로 교체되기 때문에, 부득불 동일한 의미를 지닌 지금의  글자로 교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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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고 "중국천주교순교사", 서양자 수녀, 제148쪽에는, 바로 이 "古新聖經(고신성경)" 에 대한 설명에 이어서, "북경에서 출판된 이 책들은 북경에 드나들던 사신들을 통하여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고 서술하고 있다.

 

비록 여러 권들로 필사의 형태로 존재하였을 것이 분명한 이 "古新聖經(고신성경)" 의 원본이, 예를 들어, 지역 언어로의 성경 번역이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엄격하게 통제되어 온 이유 때문에 당시의 해당 지역의 교구장 주교 혹은 수도회 관구장의 허락을 사전에 득하여 출판까지 되지는 못하였을 수도 있으나, 그러나, 필요시에 그 일부분이 수시로 필사되어, 당시에 중국에서 선교 활동중인 다수의 천주교 사제들과 평신도들에게, 적어도 성경 본문의 일부분의 필사본의 형태로 전달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더 나아가, 이 "古新聖經(고신성경)" 의 일부분들이 필사되어, (i) 북경에 드나들던 육상 왕래인(즉, 사신들의 수행원들, 예를 들어, 유진길[역관(譯官)], 정하상 등)들을 통하여,(#4) 혹은 (ii) 서해 뱃길을 통하여(#7), 우리나라에도 들어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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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게시자 주:

(1) 예를 들어, 전문학술지인 大韓醫史學會 醫史學 제6권 제1호 (통권 제10호), 49-62, 1997에 실린, 다음의 논문[제목: 정약용의 우두법 도입에 미친 천주교 세력의 영향]제4쪽부터 제6쪽까지를 꼭 읽도록 하라:

 

출처: http://medhist.kams.or.kr/1997/49.pdf [옛 주소] (#5) <----- 필독 권고

https://www.medhist.or.kr/upload/pdf/kjmh-6-1-49.pdf [새 주소(2022-09-21)]

(제5쪽 마지막 단락에서 발췌 시작)

그 동안 유진길은 거의 매해 북경을 다니면서14) 서양 선교사들과의 연락을 도맡았다. 신부의 파견 문제로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과 파리 외방선교회 선교사들 사이에는 잦은 접촉이 있었고 사신 일행을 따라온 신자들은 북경에서 교회를 둘러보고 이들과 만났으며 또 조선 신자들이 필요로 하는 성물을 구입하여 가곤 했다. 유진길의 다음 편지에서 우리는 이들이 성물과 성서, 교리서 등을 가지고 가서 신자들에게 전파하고 또 그것으로 제반 비용을 충당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물건으로 말하면 그것들은 저희들이 조선에 돌아간 뒤 팔아서 그 값은 주교님

          을 위한 물건을 사는 데 쓰겠습니다. 거기 대하여서는 염려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이밖에 미사 경본과 성서와 다른 성물도 받았사온데 그것들

       은 왕요셉 선생을 통하여 받은 목록에 따라 땅히 받아야 할 분

        들에게 전해 드리겠습니다.(#6) (當帶中國物貨回國賣貨以爲及時需用之決不

          漏雜糊塗勿慮勿慮其外經本書本及聖物都依王先生照數帶去. 1835년 1월19일자 서한.

          북경 남당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에게 보낸 편지. 유진길, 조신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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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832년 11월 23일자 브뤼기에르 신부의 일기. “나는 북경에 주재하고 계신 남경 주교님과 나보다 먼저 조선에 가기로 된 중국인 유방제 신부, 그리고 조선 왕의 이름으로 황제께 인사를
드리러 매해 12월에 북경에 들어오는 조선 사신들에게 편지를 보내라고 왕요셉을 북경으로 보
냈습니다. 이 사신들 중에는 언제나 교우들이 몇명은 끼어 있습니다.”(샤를르 달레. 안응렬 외 역. 한국천주교회사. 서울 : 한국교회사연구소, 1990 : 제2권 246쪽)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9월 17일] 

(#5) 게시자 주: 이 논문을 읽을 때에, 이 논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다음에 있는, 한국고전 종함 DB 제공의 "한국문집총간 >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 第七集醫學集第六卷○麻科會通 > 種痘要旨, 新證種痘奇法" 을 또한 참고하도록 하라: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옛 주소]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97A_1580_030_0250&solrQ=query%E2%80%A0%E6%96%B0%E8%AD%89%E7%A8%AE%E7%97%98%E5%A5%87%E6%B3%95$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MO_AA$solr_toalCount%E2%80%A01$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GS_ITKC_MO_0597A_1580_030_0250 [새 주소(2022-09-21)]

 

혹은 다음을 클릭하십시오:

"新證種痘奇法詳悉" "奎光齋刻本天花之症" [옛 주소]

奎光齋刻本天花之症 [새 주소(2022-09-21)]]

 

추가 참고 자료: https://goo.gl/oecHcv

[이상, 2015년 9월 17일자 내용 추가 끝]

 

(#6) 게시자 주: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마땅히 받아야 할 분들" 에는,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당시에 목숨을 부지(扶持)하고 있었던, "성 정하상(丁夏祥) 바오로(1795-1839년)"의 친삼촌이기도 하였던,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마땅히 포함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12월 21일]

(#7) 게시자 주: 고려시대 이후,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을 연결하는 삼각 무역 항로였던 서해 뱃길의 한 말단인, 우리나라 서해안에 위치한, 항구들에, 다산 정약용 선생님께서 18년간 귀양살이를 하였던 전남 강진(康津)이 포함되었음을 꼭 기억하도록 하라. 이와 관련하여서는,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들을를 참조하라:

http://younghwan12.tistory.com/m/post/4045# [제목: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청자의 생산과 유통]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14/2015121402837.html [제목: 일제가 청자를 쓸어간 다음에 강진을 고적 107호로 지정한 이유]

(이상, 2015년 12월 21일자 내용 추가 끝]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10월 21일]

그런데, 아래의 제2항에서 집중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개신교 선교사인 모리슨에 의하여 중국어본 신약 성경1814년에 이르면 중국에서 목판본으로 발행되었다고 알려져 있기에, 그리고 또한 중국어본 구약 성경1823년에 이르면 개신교 선교사인 모리슨에 의하여 중국에서 목판본으로 발행되었다고 알려져 있기에, 굳이 필사를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성경이 구입되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포함되었을 "마땅히 받아야 할 분들" 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상당한 비용을 수반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i) 필사할 대본인 고신성경을 확보하는 수고와 그리고 (ii) 필사를 하는 수고를 전혀 할 필요가 없는, 그러나 이와는 달리(iii) 개별 필사 행위와 비교하였을 때에 대량 부수의 출판으로 그 제작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였을, 목판본 성경이 지니고 있는 커다란 장점 때문에, (iv) 특히 그리스도교 성경은 본질적으로 하나이기 때문에, 개신교 선교사인 모리슨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이 된 이 성경이 빠르면 1814년경 이후부터, 늦으면 1823년 이후부터, 중국에서 입수되어, 다산 정약용이 포함되었을 "마땅히 받아야 할 분들" 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바는 19세기 초반부의 중국 소재 중국인들의 한문본 서적들의 거래라는 경제 활동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이 시기보다 약 200년이 앞선 17세기 초였던, 1603년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저서인 "천주실의" 가 중국 북경에서 초간되었을 때에, 불과 1년 뒤에는 서해 뱃길을 통하여 일본에까지 이 책이 전달되어, 일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읽혔다고 알려진 바에 비추어 보더라도, 충분하게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상, 2015년 10월 21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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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2)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1823년 경에 입교하였던, 역관(譯官)이었던 "성 유진길(劉進吉) 아우구스티노(1791-1839년)" 의 활동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 있으니, 또한 꼭 읽도록 하라: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4153 <----- 필독 권고

 

그리고,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다산 정약용 선생님 형인 성 정약종(丁若鐘)의 둘째 아들이었던 "성 정하상(丁夏祥) 바오로(1795-1839년)" 의 활동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 있으니, 또한 꼭 읽도록 하라: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3132 <----- 필독 권고

-----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古新聖經(고신성경)" 의 일부분의 필사본이 우리나라에도 전달되었을 것임은, 예를 들어, 다음의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고경(古經)" 에 대한 설명에서도 또한 추정되고 있다: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195

 

     왜냐하면, 당시에 중국에서 라틴어본 성경 본문이 중국어로 번역된 근본 이유는, "한문 문화권" 에 살고 있는 이방인/외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 즉, "하늘 나라(천국)의 도래"를 널리 전달하기 위한 복음화(evangelization)/선교(mission)의 이유 때문인 것이지, 예를 들어, 중국어로 번역을 하였던 선교사 신부 당사자가 자신의 입신양명를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떄에, 나중에 별도의 글에서 더 자세하게 다룰 것이지만, 예를 들어,  "古新聖經(고신성경)" 마태오 복음서 4,17에서 "kingdom of heaven" "天國(천국)" 으로 번역되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특히, 국내에서 지금까지 사용해 온 개신교측의 신약 성경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차용 번역 용어인 "천국" 이, 개신교 고유의 차용 번역 용어가 아니고, 가톨릭 교회 고유의 차용 번역 용어임을, 국내의 그리스도교 신자(가톨릭 및 개신교 신자)들 모두가, 즉, 중국에 개신교 선교사가 진출하기 훨씬 전이었던, 명나라 말기부터 청나라 초기의 시기에 중국에 파견되었던 다수의 가톨릭 선교사 신부들에 의하여 "Christus" 의 음역으로 표기된 "기리사독" 을 사용하고 있는 복합어인, "기리사독교", 즉, [약어로] "기독교", 신자(가톨릭 및 개신교 신자)들 모두가, 자신이 평소에 사용 중인 성경 용어의 출처/기원과 관련하여,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4) 인명과 지명 등의 고유 명사들의 음역에 있어서의, "聖經直解雜(성경직해)", 古新聖經(고신성경)" 그리고 다른 중국어본 성경들 사이에서 차이점은, 예를 들어, 다음의 논문에서 약간은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古新聖經" <----- 클릭한 후에, "文本之網: 《古新聖經》與前後代《聖經》漢譯本之關係摘要" 제목의 pdf 파일을 클릭한 후에, 제285쪽을 보라.

 

예를 들어, "古新聖經(고신성경)" 에서는 "Abel" 이 "亞伯耳(아백이)" 로 음역되었는데, 따라서, "聖經直解雜(성경직해)" 에서 "Abel" 이 亞伯爾(아백이)" 로 음역된 것과 동일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5) 그러므로, 4자성구로 저술된 "성교요지" 에서 "Abel""亞伯(아백)" 으로 음역되고 있는 것은, "聖經直解雜(성경직해)" 에서 "Abel" 이 亞伯爾(아백이)" 으로 음역된 바로부터, 운율이라는 문학적인 이유 때문에, 4자성구 시(詩)의 틀에 맞추기 위하여, "Abel" 을 말할 때에, 마지막 글자인 爾(이)"  혹은 "耳(이)" 를 생략하고, 첫 두 낱글자들 "亞伯(아백)" 을 사용하였을 것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6) 그런데 이러한 종류의 생략은 "성교요지" 에서 뿐만이 아니었고, 중국에 파견된 천주교 선교사 신부들에 의하여 훨씬 더 이른 시기에 마련되었던 중국어본 문헌들에서도 또한, 고유명사들의 중국어 음역 용어들의 경우에, 음역된 중국어 단어가 두 개 이상의 한자 낱글자들일 경우에는, 예들 들어, 바로 위의 제(5)항에서 지역하였던 4자성구의 경우에서처럼, 문학적인 이유 때문에 중국어로 번역된 문장을 운율이 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하고자, 이렇게 첫 두 개의 낱글자로 된 약자를 사용한 예들이 많았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므로 [주: 예를 들어, 1654년 경부터 25년간에 걸쳐 저술되었다고 알려진 "초성학요" 본문 전체], 이러한 관습을 "성교요지" 의 저자가 그대로 답습하였을 것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亞伯(아백)" 이, 1800대 초에 처음으로 중국에 입국하였던 개신교측 선교사들에 의하여 마련되었던 중국어본 성경 본문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고유명사 "Abel" 에 대응하는 음역된 한자 번역 용어라는 주장은, 심각한 논리적 오류(error)가 있는 귀납적 추론 행위(inductive reasoning)의 결과라고 아니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상, 2015년 9월 10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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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2.

An Encyclopaedia of Translation: Chinese-English, English-Chisese: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Early History

 

초기의 역사

 

Christianity was introduced into Chian in A.D. 635 during Taizong's reign by the Nestorians. From the reference found in Nestorian Tablet unearthed in Xi'an in 1623, it is evident that the New Testament or parts of the Bible was translated into Chinese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seventh century. There were also reports of translations done by Catholic missionaries from the 13th to the 16th centuries. Unfortunately, none of these translations has ever been found. The earliest extant text is the Slone Manuscript (#3599) now housed in the British Museum. It is translation done by Jean Basset (1662-1707), a French priest from Paris, and contains a Harmony of the Gospels, the Acts of the Apostles, the Letters of Paul, and the first chapter of the Letter to the Hebrews. This is the manuscript which Robert Morrison, the first Protestant missionary to China, copied and took with hem to Guangzhou in 1807, and from which he apparently learned his Chinese. Morrison;s transcript is now kept in the Morrison Collection in the Hong Kong University.

 

그리스도교는 기원후 635년에 네스토리우스 파(Nestorians, 경교 신자)들에 의하여 당 태종(Taizong's)의 통치 동안에 중국 안쪽으로 소개되었습니다. 1623년에 서안(Xi'an)에서 발굴된 경교비(Nestorian Tablet)(*)에 발견되는 언급으로부터, 신약 성경 혹은 성경의 일부들이 7세기 초반 동안에 중국어로 번역되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가톨릭 선교사들에 의하여 행하여졌던 번역본들에 대한 보고들이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들 번역본들의 어떠한 것도 여태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초기의 현존하는 사본(text)은 지금 영국 박물관에 간수된(housed) Slone Manuscript (#3599)입니다. 이것은, 파리 [외방 선교회] 출신의 한 명의 프랑스 사제였던, 장 바쎄(Jean Basset, 1662-1707년)에 의하여 행하여졌던 번역본이며, 그리고 복음서들의 한 조화(a Harmony of the Gospels), 사도행전, 바오로의 서간들, 그리고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의 제1장을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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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경교비문을 처음으로 조사하였던 트리고우 신부님과 다른 가톨릭 신부님들 그리고 가톨릭 교우(여기에는 이지조와 조광계가 포함됨)에 대한 언급은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서양자 수녀), 제234쪽에 그 출처와 함께 서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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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3.  

[<----- 여기로의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중국어성서번역사_1653.htm

게시자 주: 아래의 논문(민영진박사 회갑기념 논문집 2)이, 2014년 여름보다 무려 14년 전인 2000년 9월에 작성되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아래의 논문의 저자는 현재 감리교 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출처 1: [옛주소] http://www.bskorea.or.kr/about/worldtrans/chnbib/중국어성서번역사.hwp [주: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 제공; Not Available]

출처 2: [새주소] http://biblesociety.kr/about/worldtrans/chnbib/중국어성서번역사.pdf [주: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 제공; 그러나 본문 안에서 검색되지 않음]

출처 3: http://ch.catholic.or.kr/pundang/4/cb/2000_중국어성서번역사_이환진.hwp [주: mirror]

출처 4: http://ch.catholic.or.kr/pundang/4/cb/2000_중국어성서번역사_이환진.pdf [주: mirror] <----- 전문 필독 권고

(발췌 시작)

19세기와 20세기의 중국어 성서

 

이환진
(뉴욕대학교 예술과학대학원 히브리?유다학)
2000년 9월

 

 들어가는 말
 1. 경교의 성서번역(7-9세기)
 2. 중국 초기 가톨릭교회의 성서번역
 3. 쟝 바쎄의 슬로안 사본 #3599 (1707년)
 4. <모리슨역>을 중심한 개신교회 선교초기의 성서번역(1807-1839년)
 5. <1852 대표본>을 중심한 성서번역(1852-1874년)
 6. 쉬운 문리체 역본들(1885-1902년)
 7. 여러 <연합본>을 중심한 성서번역(1890-1919년)
 8. 1924년 이후 중국 가톨릭교회의 성서번역
 9. 현대중국어 성서번역 (1920년 이후)
 10. 문체별로 보는 19-20세기 중국어 성서
 맺는 말
 *부록 - 로버트 모리슨의 1819년 11월 25일자 편지(광동) 전문

 

[...]

 

3. 쟝 바쎄의 슬로안 사본 #3599 (1707년)
   1738년 영국의 동인도회사 하지슨Hodgson은 광동에서 신약성서가 담겨있는 중국어 사본을 발견한다. 호기심에 이끌려 그는 그 사본의 필사본을 만들어 그 다음 해에 영국으로 가져간다. 한스 슬로안Hans Sloane 경에게 그것을 보이고 영국 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기증한다. 이 사본이 바로 <바쎄역>이라고 편의상 부르는 사본이다. 쟝 바쎄Jean Basset(1662-1707)가 1707년에 세상에 내놓은 중국어성서 사본이다.12) 편의상 <바쎄역>이라고 이름붙였지만 사실 이 역본은 신약 가운데에서 일부만 들어있는 번역이다. 연합 복음서a Gospel Harmony, 사도행전, 바울서신들과 히브리서1장까지가 순서대로 수록되어 있다. 사실 바쎄는 신약 전체를 다 번역하지 못하고 1707년 광동에서 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필사본 형태로만 존재하고 있다(Willeke 1945:451). 이렇게 <바쎄역>은 온전한 신약전서 번역이 아니고 또 번역대본도 라틴어 <불가타역>를 사용한 역본이다(Strandenaes 1987:23). 하지만 [국내의 개신교 측의](*1) 한글성서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우리가 지금껏 사용하고 있는 많은 [국내의 개신교 측의] 성서의 전문용어가 바로 이 역본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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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이 항에 발췌된 글 중에서 대괄호 [ ] 안에 있는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삽입하였고 , 그리고 일부 표현들에 대하여 색칠도 하고 굵게 표시하고 또 밑줄을 그은 것도 또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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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안네스 바쎄 신부는 아직도 우리들 가운데 살아있다. 그는 이 성의 남쪽과 서쪽에서 선교용 번역서를 통하여 지금도 계속 사목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은 사본 형태로 남아 있다. 소교리문답집의 첫 부분은 “영세” 편까지가 인쇄되었으며 지금도 이 성의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그는 신약성서를 라틴어에서 중국어로 번역하였는데 성 마태 복음서부터 성 바울의 히브리서 제1장까지가 들어있다. 그의 놀라운 사목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쟝 바쎄는 1662년 프랑스의 리용에서 태어났으며 빠리외방전교회Societe des Missions Etrangeres de Paris 소속 중국선교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중국 개신교 선교사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이 성서번역을 착수하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책들은 모두 중국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활동한 로마 가톨릭 사제들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의 그리스도교] 중국어성서의 전문용어들은 대부분 로마 가톨릭 사제들이 오래 전부터 심사숙고하여 고안해낸 용어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즉, 국내의 개신교 신자들이] 지금껏 사용하고 있는 [국내의 개신교 측의] 교회 전문용어들은 대개 18세기 초부터 중국에서 [중국의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해오고 있는 용어들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바쎄역>에 나오는 팔복은 다음과 같다.

 

福矣心貧者蓋天國爲其國也福矣良善者蓋其將得地也福矣涕泣者蓋其將得慰也福矣飢渴義者蓋其將得飽也福矣哀矜者蓋其將獲哀矜也福矣哀心淨者蓋其將見神也福矣和睦者蓋其將稱神之子也福矣爲義忍捕者蓋天國爲其國也汝等爲我遭怨?捕害蓋各惡誣時必歡喜因汝等之賞?厚于在天蓋先汝歷先知者所遭亦然也

 

이 역본의 4복음서는 앞서 말한 대로 한권으로 요약되어 있는 연합 복음서a Gospel Harmony이다. 제목은 四史修編耶蘇基利斯督福音之會編第九章이다(Strandenaes 1987:166 참조).

 
  유난Yunan의 책임사제 요아킴 엥죠베르 드 몽티야Joachim Enjobert de Mantillat 주교는 <바쎄역>에 근거하여 마태복음을 펴냈으며, 췌쯔안에서 활동한 중국인 사제 리 앙드레Andre Li(1692-1774)가 1751년에 <바쎄역>을 바탕으로 관화체 화합복음서를, 1759년에는 역시 <바쎄역>을 개정하여 예전용 복음서들Liturgical Gospels와 서신들Epistles을 펴냈다(Willeke 1945:452, Spillett 1975:xi). 이 사본은 뒤에서 언급할 <모리슨역>의 근거가 된다(Wylie 186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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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 사본의 이름은 이렇다. Diatessaron ex evangeliis, Cum actis apostolorum et B. Pauli Epistolis. Canton, 1737/38. 영국도서관The British Library에 Sloane MS #3599라는이름으로 보관되어 있다. “디아테싸론”(Diatessaron)이라는 이름은 일반적으로 4복음서가 아닌 단일 복음서를 가르킬 때 사용되는 이름으로 복음서의 한 장르이다. 기원후 2세기경에 나왔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리아어 복음서가 이 이름을 지니고 있다. 이 단일 복음서는 지금 존재하지 않으나 기원후 4세기경의 인물인 시리아 에데사의 聖 에브라임Ephra(e)m의 주석만이 전해지고 있다.

 

13) 아드리엔 루네이가 편집한 Journal d’Andre Ly, pretre chinois, missionaire et notaire apostolique. 1746-1763. (Hongkong, 1924)에 실려있는 중국인 리 앙드레 신부의 글. 번워드 윌리키Bernward H. Willeke가 라틴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옮김. 그의 글 “The Chinese Bible Manuscript in the British Museum” Catholic Biblical Quarterly 7 (1945), 451쪽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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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모리슨역>을 중심한 개신교 선교초기의 중국어 성서(1807년-1839년)
4.1 <모리슨역> (신약, 1814년)


  로버트 모리슨은 런던선교회the London Missionary Society 소속 선교사로 1807년 1월 31일 영국을 떠나 미국을 거쳐 1807년 9월 7일 중국 광동廣東에 발을 내디딘 장로교회 선교사이다.14) 그의 가방에는 그리스어 신약 <공인본Textus Receptus>, 영어 <흠정역>, 중국어로 된 신약 일부의 사본 그리고 라틴어-중국어 사전 사본 등이 들어있었다(Morrison 1839[I]:4). 여기서 중국어 신약 일부 사본이란 런던의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슬로안 사본 #3599 the Sloane MS #3599>를 가리킨다.15)


 라틴어-중국어 사전 사본은 모리슨 자신이 중국으로 떠나기 전 어느 중국인의 도움을 받아 왕립공회the Royal Society 도서관에서 빌려 주요부분을 베낀 사본을 말한다(Milne 1820:20). 1808년 10월 2일자 그의 일기에 의하면 모리슨은 영국에서 중국선교를 준비하면서 <슬로안 사본 #3599>의 필사본을 공부하였던 듯하다(Morrison 1839[I]:233).

 

나의 조사는 내가 영국에서 가져온 복음서와 서신들은 어떤 중국인이 번역한 것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문체가 좋은 이 역본은 외국인이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조사는 중국인 용삼택Yong Sam-Tek을 가르키는 듯하다(Spillett 1975:xi). 복음서는 화합 복음서 를 가리키고 서신들은 바울서신 가운데서 히브리서 제1장까지를 가르킨다. 그는 성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이 필사본을 약간 고쳐 자신의 역본 속에 포함시켰다고 말한다(Morrison 1839[1]:395). 그의 1814년 1월 11일자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내가 세상에 내놓은 이 번역은 완벽한 번역으로 내놓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몇몇 문장은 잘 알 수가 없고 어떤 문장들은 더 잘 번역되기도 하였습니다. 외국인이 옮긴 번역에 의레이 있을 법한 일이지요. 그리고 특별히 설명을 집어넣어 옮겨서는 안될 성서번역의 경우가 더 그렇습니다. 저를 아시는 모든 분들은 내가 드리는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복음서와 서신 끝부분 그리고 묵시록은 모두 저의 번역입니다. 이 책의 중간 부분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분의 노작에 의지한 부분입니다. 그분이 심혈을 기울인 그 작품은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지요. 제가 판단하기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고치고 보충했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선배의 노작을 바탕으로 제가 번역했다는 점을 무엇보다도 먼저 이렇게 말씀드립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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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 Morrison, Memoirs of the Life and Labours of Robert Morrison, D.D. compiled by his widow with critical notes of his chinese works, by Samuel Kidd, and an appendices containing original documents. Vol. I & II. London: Longman, 1839, 106, 126, 151-152. 아래에서는 이 책의 제1권은 Morrison 1839(I), 제2권은 1839(II)로 표기함.

 

15) Thor Strandenaes, “The Sloane MS #3599 - An Early Manuscript of an  Incomplete Version of the New Testament,” Theology and Life 6 (1983), 61-76.

 

16) BFBS Annual Report 3 (1814-1815), 333에도 똑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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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 필사본은 본디 누구의 작품이었는지 모리슨 자신은 몰랐으나 바로 앞서 언급한 <바쎄역>을 가리킨다(Strandenaes 1988:23). <바쎄역>에 들어 있는 사도행전을 그가 그리스어 원어성서와 대조하여 고친 것을 그는 런던선교회로 보낸 1811년 1월 7일자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Morrison 1839[I]:310).

 

  저는 그리스어 본문을 보고 조심스럽게 개정한 사도행전을 9월에 중국인 인쇄소에 보냈습니다. 그가 만든 견본을 먼저 본 뒤에 1000부를 찍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인쇄소측과 계약을 맺은 대로 양질의 나무를 잘라 만든 인쇄판형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 판형으로 15000부를 찍어내려고 합니다. 보수하기 전까지 말이죠. 그런 뒤 이 판형들로 얼마나 더 많이 찍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521불이 듭니다. 중국어 책 한권을 펴내는 것보다 더 먹히는 가격이라는 점을 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니까요.
  회계에게 3부를 우송했습니다. 저희가 이 견본들보다 더 잘 인쇄된 성경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중국어로 된 제 첫 번째 성서 번역이 제가 29살이 되는 날 인쇄되어 나오게 된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1814년 1월 11일자로 그가 영국성서공회로 보낸 편지에는 그가 신약성서 번역을 끝냈음을 알리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한 영국성서공회the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가 성서번역과 인쇄 그리고 반포를 할 수 있도록 500파운드를 1812년에 그에게 보냈다는 내용도 실려있다(Morrison 1839[I]:394).

 

  1812년 9월 14일자와 1813년 1월 1일자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중국에서의 성서번역과 인쇄 및 반포를 위해서 두 번째로 500파운드를 보내주신 영국성서공회에 깊은 존경과 고마움을 표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중국어로 신약성서 번역이 완료되어, 인쇄소에서 마지막 장이 도착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동료 밀른W. Milne 목사가 도착하여 전에는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성서를 반포하는 실제적이고 확실한 방식을 알려주었습니다. 밀니 목사는 자바와 말라카 그리고 페낭으로 떠날 계획입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중국사람들에게 중국어 신약성서를 반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일에 깊은 관심이 없다면 성서반포가 늦어질 수 밖에 없지요.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은 약 20-30만 명쯤 됩니다.


 <모리슨역>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모리슨역>의 중국어 이름은 <耶蘇基利士督我主救者新遺詔書> 第一至八本, 廣東, 1814年이다. 이 신약전서가 완성되기 전, 1810년에는 광동에서 사도행전을, 1811년에는 광동에서 누가복음 100부를(Spillett #5), 1812년에는 광동에서 로마서에서 히브리서까지 50부를(Spillett #6), 1813년에는 세람포어에서 요한복음과 요한1-3서를(Spillett #7), 같은 해에 광동에서 갈라디아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를(Spillett #9) 각각 펴냈다. 1815년에는 이 신약전서의 제2판이 광동에서 출판되었다(Spillett #11). <모리슨역>은 개정되어 1832년에 다시 출판된다. 이 개정본의 이름은 <救世我主耶蘇新遺詔書> [修訂版, 1832, 馬六甲]이다.


  모리슨은 성서를 번역하면서 또한 중국어 문법과 사전 출판도 함께 준비하였다(Morrison 1839[I]:306). 문법책은 1815년 A Grammar of the Chinese Language란 이름으로 쎄람포어Serampore에서 인쇄되고 출판되었으며(Milne 1820:84), 제3부 6권으로 된 중국어 사전은 A Dictionary of the Chinese Language란 이름으로 마카오Maccao에서 1815-1823년에 출판되었다(Strandenaes 1987:42, 주102).

 

[...]

(이상, 발췌 끝)

 

2-4. 天主?中文聖經?譯簡史

http://olqoa.catholic.org.hk/Evangelisation/Bible/Frame/others/BibleTranslateHistory.htm

   

3.

이상은, 위의 제1항에 안내된 바에 대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답변의 일부로서 말씀을 드린 것인데, 나머지 답변은, 위의 제2항에 안내된 김학렬 신부님의 소견에 대한 윤민구 신부님의 답변을 읽은 후에, 드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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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36시간 (자료 조사 및 분석, 그리고 우리말 번역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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