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성당 게시판

김대건 부제의 고향 중국 소팔가자 성당

인쇄

김현욱 [khubosco] 쪽지 캡슐

2004-08-25 ㅣ No.732

김대건 부제의 고향 중국 소팔가자 성당




" 그 강가에는 간간이 주막이 있었는데 하루는 신자의

주막을 만나게 되어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였습니다.

그 주막 주인이 우리를 형제처럼 후대했고 숙박비로

아무 것도 받지 않을 뿐더러 길 가다가 먹을 음식 까지도

억지로 거저 주었습니다. 이것은 인정 해야할 중국인

교우들의 미덕 입니다. 그들은 외국인과 그들의

형제 들에게 지극히 너그럽게 대접해 보내는 것이

관습입니다". 김대건 부제가 페레올 주교께 쓴 보고서

형식의 편지 의 한부분이다. 170년전 중국 소팔가자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 께 부제품을 받고 조선 국경까지 왕복

5천리 길을 다녀온 후의 편지다. 그때 그의 나이 24살 이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유학생으로 알려진 유길준 보다

60년 먼저 서양의 언어, 라틴어 불어 포루투갈어 중국 말에

능통 했고, 서양의 역사, 철학 천문학 지리학 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민족 최초의 선각자 였고 성직자 였다.

김대건 신학생이 팔가자 중국인 성교촌에 처음 도착 한것은

168년전 그가 22세 되던 해 였다. 이미 46년전에 성교촌을

이룬 팔가자에는 그때 약 300명의 신자들이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이었는데 김대건 신학생은 그때 이미 보좌신부

역활을 하면서 실제로는 주임신부의 역활도 도맡아

감당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가 중국말로 쓴 편지를 보면

당시 사물을 관찰 하고 사회와 당시의 삶의 현장을 서술

한 것을 읽노라면 그의 해박한 학식과 출중한 언어의

구사력, 위기가 올때마다 하느님께 의탁하고 비굴 하지 않고

항상 담대 하고 지혜롭게 뚥고 나가는 박력은 가히 초인적인

것이며 확실한 그리스도의 사람이었음을 확신 하게 된다.

중국 소팔가자 성당 교우들의 신뢰와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그 곳에서 2년 6개월 을 보내게 된다.

그가 부제품을 받을때 쓴 모자가

문화혁명 당시까지 보존 되었으나 기적의 치유를 일으키는

모자로 소문이 나서 무신론자들의 세력이 빼았아 갔다는 것

이다. 김대건 신학생의 영성은 소팔가자 성당 교우들의 기도

와 사랑, 중국 교우들의 너그럽고 관대한 보살핌 속에서

무럭 무럭 성장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제 서품을 상해에서 받고 조선땅에 돌아와 사제로 활동한

기간은 9개월인데 감옥 생활 2개월을 빼면 겨우 7개월에

불과 하다. 그러기 때문에 중국 소팔가자 성당 교우들은

2년 6개월 동안 사목 한 소팔가자 성당이 김대건 심부의

참된 영적 고향이요, 그래서 그는 중국 소팔가자 의 성인 이라는

것이다.

주장우 안토니오 소팔가자 주임 신부 는 김대건 부제의

영성과 신앙과 드라마틱하고 센세이쇼날한 복음 전파의

모습을 더 크게 더 넓게 전파 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일생 일대의 사업이라는 것이다.

1998년에 성모동산을 조성 하여 제일 좋은 자리에

오기선 신부가 제작한 성인동상을 모시고, 다음해인

1999년 에는 10킬로 시골 황토길을 포장 하고 그 도로의

이름을 "김대건로" 라고 한 것이다. 중국의 현실에서

있을수 없는 일이 기적 처럼 일어 난 것이다. 하느님이

원 하시는 일이기에 그럴수 밖에 없다고 믿는다.

중국에 하나밖에 없는 성지, 소팔가자 김대건 성인

성지 성역화 사업 제 3차 사업인 김대건 교육관 건설은

지금 공정이 60% 진행이 되고 있다. 추위가 몰아

치기전에 준공을 하고자 주 안토니오 신부와 전교우들이

돈 하나 받지 않고 노력 봉사를 하는 모습은 김대건 부제의

확신에 넘치는 믿음과 담대한 행동력의 모습인 것이다.

주 안토니오 중국 소팔가자 주임 신부는 가난한 막노동자의

모습으로 김대건 성인의 영성을 심기 위해 밤 낮으로 기도

하며 달리고 있다. 성역화 사업이 끝날 때 까지 그는 잠자느것,

먹는것, 입는 것 거의 모두를 포기 하고 생활 하고 있다.

그의 살과 영성은 어느덧 김안드레아 성인을 닮아 가고 있다.

한국의 사제나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을 그는 혼자서 하고 있다.

한국의 가톨릭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자기 자신이 져야할

영광의 십자가로 알고 건설 현장을 작년 9월 부터 지금 까지

뛰고 있다. 돈에 쪼들리는 것 밖에는 어렵고 힘든 일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60% 공정의 김대건 교육관은 금년 9월 말을

준공일로 잡고있다. 김대건 성지순례와 중국 선교를

위해서 8월 9일부터 약 6박 7일 소팔가자 성지와 선교활동

순례를 예정하고 있다. 주 안토니오 신부의 초청이다.

2008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종교 정책도 변하고 있다.

소팔가자 성지를 중심으로 중국 선교의 길, 북한 선교의

길이 서서히 열리고 있는 것이다.

김대건 부제는 중국 땅에 살아서 숨쉬고 있다. 그의 체온,

그의 목소리, 그의 영혼의 숨결이 들려 오고 있다. 소팔가자 에서.

한국 교우들의 김대건 성인의 영성을사랑 하는 마음과

기도의 힘으로 김대건 교육관(피정의 집)은 21세기

중국선교의 중심지로 떠 오를 것이다.


ps: 몸을 낮추어 익명으로 도와 주시는

큰 은인들 께 특별히 감사 드리며 ,지속적인

협력과 기도를 두손모아 부탁 들입니다


김현욱 요한 돈 보스코

2004. 7. 4.

김대건 성인사제 대 축일 새벽 아침에


2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