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2006년 8월 27일 세나뚜스 월례회의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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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 쪽지 캡슐

2006-08-29 ㅣ No.38

훈화

(세나뚜스 월례회의-2006년 8월 27일) 윤병길 세례자요한 지도신부

찬미 예수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월례회의 때는 미국에서 심포지엄에 참석하느라고 제가 없었는데 모두 더운 여름을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오늘 영적 독서는 준주성범의 2권을 마무리하는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 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영적 독서로는 좀 많은 분량이라 5회로 나누어서 올 연말까지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말씀입니다.


오늘 영적 독서를 읽으면서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뻔한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게 될까요?

사실 요즘의 세상은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원칙을 내세우면서 이야기하면 “왜 이리 꽉 막혔냐” 면서 “좀 융통성을 갖고 살라.” 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씩 하나씩 융통성을 적용시키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무엇이 원칙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잘 모르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은 변화합니다. 그러다 보면 상황도 변하고 점차 상황에 따르는 방법도 바뀌게 됩니다. 그런 것이 융통성이라면 좋겠습니다. 즉 이때에 말하는 융통성은 원칙과 정신이 변하지 않고 적응하는 방법이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방법에만 매달리다 보면 주객이 전도된다는 말처럼 본래의 순수한 정신은 사라지고 형식과 방법에만 매달려서 이것이 옳으냐? 저것이 옳으냐? 하면서 방법적인 것에 치우쳐 결국에는 껍데기만 남게 되는 불행한 현상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은 본래의 정신과 원칙이 무너져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원칙을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한다”(마태16,24). 이 말씀은 우리가 많이 들어서 잘 아는 말씀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부활은 없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도 매 미사 중에 강론을 통해서 자주 들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그렇게도 잘 알고 있는 말씀에 대해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우리가 과연 자신의 십자가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레지오 단원으로서, 간부로서 어떤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의 모습을 좀 깊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하늘나라의 성인성녀들이 아니라는 것은 저나 여러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족한 모습이 있고, 때로는 주님의 말씀을 모두 지키고 살기 힘에 겨운 때도 있습니다. 더욱이 레지오의 교본에 따라 그 정신에 맞게 모두 지키며 살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래도 잘 안 될 때가 있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잘 안 된다고 잘 안되는 것을 원칙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결국 우리가 하느님께 나가는 길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껍데기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느님은 우리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의 십자가를 허락하십니다. 미리 겁을 먹고 시작도 해보지 않는 겁쟁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나친 겸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무시하는 교만의 죄를 짓게 됩니다. 또한 지나친 교만은 자기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무시하는 큰 죄를 짓게 됩니다.


부족한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시는 하느님을 만나십시오.

우리의 부족함을 은총으로 채워주시는 성령의 손길을 느껴보십시오.

우리의 십자가는 구원으로 가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영적독서 :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王道)1. (준주성범 2권 12장)

1. “너를 버리고 네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라”(마태16,24). 하신 말씀은 흔히 너무 가혹한 말씀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다음 말씀은 더 무섭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영원한 불로 가라”(마태25,41). 현재 십자가의 말을 듣고 따르려 하는 사람은 영벌의 선언을 두려워할 것 없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심판하러 오실 때는 십자가 표시가 하늘에 나타나리라. 그때에 십자가에 죽으신 그를 따라 살아간 십자가의 제자들은 자신 있게 그리스도를 맞아 가리라.


2. 그러니 너는 왜 하느님께로 인도해주는 십자가 지기를 두려워하느냐. 십자가에 구원이 있고, 십자가에 생명이 있고, 십자가를 져야 원수의 침범에서 보호를 받는다. 십자가에 하늘의 즐거움이 내리고, 십자가로써 덕이 높이 오르고, 십자가로 성화가 완성된다. 십자가에만 영혼이 건전하고 영생의 희망이 생긴다. 그러니 너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라.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너도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 위에 죽기를 원하도록 그리스도는 너보다 앞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고, 그 위에 못 박혀 죽으셨다. 너도 그와 같이 죽으면 그와 같이 살 것이고, 그 수난에 참여하면 그 영광에 너도 참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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