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6월 한 송이 장미보다

인쇄

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9-06-02 ㅣ No.2057

 

 


 

 

 

6월 한 송이 장미보다

 

 

  지난 5월 25일부터 27일까지 대전 신학교 하상 바오로 교육관에서 소공동체 전국 연수가 있었다. 연수 파견미사 봉헌예절에서 참가자들이 장미 꽃 한 송이씩을 들고 봉헌함에 꽂는 순서가 있었다. 그 행렬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면 시들어 말라버릴 저 꽃 한 송이도 그렇게 이뻐하는데, 왜 어떤 사람은 사랑받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받지 못하는가? 누구는 인정받았다고 여겨 스스로 기뻐하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시샘을 사고, 누구는 인정받지 못했다고 여겨 스스로 아파하고 다른 이들의 동정을 받는가?

  하느님께서는 인간 하나 하나를 만드실 때 각기 다른 한 가지 이상의 선물을 주셨다. 곧 시들어 버릴 장미 한 송이도 이처럼 인간에게 이쁘게 보이도록 만들어 주셨는데, 사람들은 얼마나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셨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누구는 반기고 존중하지만, 누구는 피하고만 싶으니 이는 우리의 눈이 잘못된 것이든지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이리라.

  예수님께서는 영특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딘지 가난하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듯한 사람들을 제자들로 삼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을 맡기시고 그들을 통해 당신의 사명, 즉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 나라를 이루도록 하셨다.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시편 118,22-23; 마르 12,10-11)

  우리 각자가 자기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또 그 선물을 자신의 일생을 통해 잘 양성시켜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이와의 공동체 생활을 적절하게 영위하는 사람이 되어 적극적으로 인류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그렇게 온전히 누군가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자신을 성취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니 그의 소명과 자질이 그 시대 그 상황에 각광받지 못하더라도, 장미 꽃 한 송이보다 더 귀중한 순간을 그와 나누고 싶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주 예수님, 제 눈을 열어주시어

  제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 숨겨진 주님의 모습을 뵈옵게 하시고

  그이 안에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협조하게 하소서.

  아멘.

 

 

 

 



38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