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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본 교황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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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22 ㅣ No.264

고국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본 교황 프란치스코

축구 좋아하고 할머니와 대화 즐긴 '파드레'



1986년 14살 때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왔다. 한인타운이 있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플로레스 마을. 다른 교포들처럼 우리 가족도 5층 이상되는 건물이 없는 이 동네에서 지내게 됐다. 오후 6시면 모두 퇴근해서 가족들과 산책하는 모습과 주말 오후면 으레 마떼차를 마시며 거리에서 대화하는 친구들, 축구공을 가장 귀중하게 생각하며 뛰노는 아이들 모습이 바로 이 동네 매력이다.

가톨릭 신자 비율이 80%가 넘는 이곳 성당 신부님들은 항상 마을 사람들의 길잡이자 말동무, 친한 친구가 돼줬다. 나도 이러한 신부님들을 만나 신앙과 인생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고, 내 성소를 키워온 것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러한 아르헨티나가 낳은 교회 일꾼이다. 플로레스 마을에서 태어나 동네 공업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구 신학교에 들어가 며칠 전 교황이 될 때까지 항상 같은 모습으로 살아오신 분이다. 싸움을 모르고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가난이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오셨다.

교황님은 사제생활을 하면서도 동네 축구팀인 '산 로렌소'를 응원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친구들과 고기를 구워 먹거나 옆집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분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주교좌성당의 작은 고해소에 몰래 들어가 신자들 고해성사를 주기도 하셨다.

교황 선출을 위해 여행 준비를 도와주던 사제들이 돈을 모아 추기경께 새 구두를 사드렸다고 한다. 비지니즈석 항공권을 사려했던 비서신부에게 교황님은 일반석을 사라고 지시했다. 절대 자가용을 타지 않고 나이 여든이 다 됐다 하더라도 대중교통만을 이용하는 교황님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콘클라베 기간에 숙소에서 시스티나성당까지 걸어다닌 추기경은 베르골료 추기경밖에 없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신자들을 만나고, 아버지 모습으로 사제들을 만나온 그는 그 흔한 고기 외식 한 번 하지 않았다. 늘 기도와 대화, 전례를 사랑하는 전형적 예수회 신부님으로서 모든 이에게 목자이자 친구로 평생을 살아오셨다.

나는 1998년 베르골료 추기경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으로 임명됐을 때 로마 오푸스데이 신학교에 입학했다. 사제품을 받고 돌아온 2004년까지 그분을 만나지 못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목생활을 했던 5년 동안 교구 행사 전후 가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철저히 추기경들에게는 '에미넨차(Eminenza)', 주교들에게는 '엑첼렌자(Eccellenz a)'라고 불러야 했지만, 베르골료 추기경은 첫 만남에서부터 '추기경님' 대신 더 가깝게 느껴지는 '몬시뇰' 혹은 '파드레(신부님)'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또 농담을 좋아하셨기에 동양인이 남미에서 사제생활을 하며 겪는 어려움을 웃음으로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처음에 교황님이 예수회 출신이고, 나는 오푸스데이 소속 사제라 영성적으로 다른 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교구 안에 모든 단체, 모든 신자를 위해 열정적이면서도 너그러운 모습으로 격려하셨고, 평생 알고 지낸 할아버지 신부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 pam, '교황이 탄생했다'는 라틴어)이 선포되고 베르골료 추기경님이 교황이 됐다는 소식이 TV 전파를 타고 전해지자, 아르헨티나 국민은 1986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처럼 거리로 뛰쳐나와 서로 기쁨을 나눴다.



▲ 아르헨티나 신자들이 17일 교황 탄생 경축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 주교좌대성당에 줄을 지어 들어가고 있다.


발표가 난 당일 오후 6시에 봉헌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교좌성당 미사에는 그 어떤 행사보다 많은 이들이 참례했다. 종교에 관심이 없는 이들과 정치인들, 연예인들까지도 이 소식에 기뻐했다. 정치적 이념 차이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크리스티나 대통령도 기뻐하며 교황 즉위식에 꼭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에서 신적 존재인 축구선수 마라도나도 인터뷰에서 "교황님을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낙태ㆍ동성애ㆍ혼인법에 대한 입장, 또 전례나 교회 행정 등에서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추기경이지만, 그날은 진보와 보수를 초월해 모두 한마음으로 일치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새 교황님은 진보적 스타일의 예수회 출신이지만, 가톨릭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다. 올바른 진보는 올바른 보수에서 나오고, 올바른 보수는 올바른 진보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지혜를 가진 분이다. 자신의 영광을 이미 포기했기에 선을 행할 때 겪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제는 평온한 라 팜파(La Pampa) 평야를 떠나 복잡한 세계와 교회를 이끌게 됐다. 하지만 어떤 현실에서도 지평선을 발견해 관상하고 마떼 차를 즐기며, 작은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떠나며 외친 일치를 교회에 전할 것이다. 필요없는 논쟁과 선입견을 버리고, 타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교황. 그는 자신에게는 엄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태도로 세상에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인물이다.

[평화신문, 2013년 3월 24일, 홍지영 신부(오푸스데이 서울대교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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