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明洞聖堂) 농성 관련 게시판

신부님들의 삭발을 보며

인쇄

박희균 [clement] 쪽지 캡슐

1999-09-07 ㅣ No.164

오늘 비 그친 하늘이 맑아서 오랜만에 명동성당 뒷편 성모동산으로 갔다가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님들의 삭발예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신학교에서 삭발례를 하신 신부님들이 또다시 삭발예식을 가지는 이유는 국가보안법 철폐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이자는 취지였습니다.

 

대학시절, 전두환, 노태우 아저씨들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엿장수 맘대로 적용함으로써 수많은 영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던 국가보안법이라는 그 괴물이, 10여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털끝하나 다치지 않은 채 우리 가운데 굳건히 버티고 서 있음을 느끼고선 새삼 가슴이 서늘해져 왔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치안유지법’을 이 나라의 권력자들이 정권안보를 위해, 정적을 숙청하기 위해 그대로 가져다 만든 국가보안법. 소위 국민의 정부에서까지 그 위력을 떨치고 있음이 심히 분노스럽고도 슬펐습니다.

 

파르라니 깎여나가는 젊은 신부님의 머리카락이 못내 안쓰러워 성당을 돌아나오는데 어떤 놈이 이렇게 키들거리더군요. "요즘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가 유행인데 가톨릭 신부와 불교 중들도 크로스오버를 하는 모양이군..."

 

정말 한 대 콰악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없으면 이 나라가 당장에 붉은 물이 드는 줄 알았습니다. 그 녀석도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제대로 모른 탓에 그랬겠지요.

 

다만 기도하는 것은, 더 이상 신부님들이 두 눈을 빛내며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머리를 깎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 생활 속의 작은 것에서부터 정의와 평화의 실현에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부님들, 단식농성에 들어가신다고들 하시는데 부디 몸조심 하십시오.

 

 

 



1,27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